일 년에 한번 꼭 읽어보는 글

도무지 잠들 수 없는 날이 있어요. 그리움이 야기하는 무력감으로의 완전한 투신인데, 제겐 어젯밤에서 오늘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그런 순간입니다. 할아버지의 기일이에요.

저는 십대 초중반을 할아버지 서재의 커다란 책상 밑에서 보냈어요. 그 방엔 세상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며 자료들이 쌓여 있었고, 몸을 성질대로 뻗고 독서를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책상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려받아 현재 사용하고 있... - -)
주말에 낮부터 그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독서하노라면,  해가 져도 어둠을 인식하지 못하고 책장에다 코만 박기 일쑤였어요. 시력 나빠지기 좋은 무신경 상태였죠. 
그럴 때, 할아버지가 책상 밑으로 말없이 스윽 넣어주시던 스탠드의 오렌지색 불빛. 살면서 힘들다 싶을 때마다  의식에  환히 켜지며 지금까지도 저를 감싸안고 있는 그 불빛! 

에니웨이~  
대학시절, 아버지가 쓰신 글 하나를 읽고 눈시울을 붉혔던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에 관한 소회를 적은 글인데,  할아버지 기제사를 지낸 후엔 꼭 찾아 읽곤 해요. (문득 함 타이핑해보고 싶어서 듀게에다....)

" 가까운 풍경에만 익숙해져 있던 눈앞에 갑자기 광활한 시공이 펼쳐지면 정신은 긴장한다.  긴장한 정신이 때때로 그것을 슬픔으로 오해하는 건 슬픔의 성분엔 긴장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  4월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그날 새벽 이상한 한기가 몸을 흔들어서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첫눈에 들어온 건 평생 잊히지 않을 푸른 여명이 가득한 창문이었다. 그 푸름에 압도된 영문모를 슬픔 위로 집안 어른들의 두런거리는 낮은 목소리들이 불안하게 지나다녔다.
삼류신문의 삼류기자라는 친구분들의 놀림에도 '9류 저널리스트'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가 내 곁에서 사라진 날이었다.

곧 5월의 광주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세상이 닥친 것인지 내가 제대로 알았을 리 없다. 무엇인가 결정적으로 어긋났다는 느낌, 불행한 느낌만 확연했다. 나중에 자아분석된 것인데, 그때 나는 세상을 잡고 있던 한 손을 놓아버렸던 것 같다.
0.75평에 갇힌 아버지에게 매일 편지를 쓰면서 낯설어진 날들을 태연히 살았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이 아닌 그림자 삶을 살고 있다는 슬픔이 있었지만 대체로 무사했다.

아버지가 돌아오고 군부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어떤 몰두, 어떤 슬픔, 어떤 어스름의 시간은 내 안에서 계속되었다. 유리창에 손과 이마를 대고, 저 멀리 세상에 켜지는 불빛과 소리없이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붕들 너머로 매일 해가 무심히 지고 그렇게 날들이 흘러갔다. 나의 이십대가 그랬고 지금도 자주 그러하다. 
고교시절에 스피노자와 니체를 읽었는데, 주로 느낌은 스피노자로부터 왔다. 아마 그의 '영원'보다는 그의 '근원'을 읽었을 것이다. 근원은 자신을 넘어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한 근원은 다른 근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얼마나 넓은가!

아버지가 감방에 계실 때 난생처음  '시간의 병'이라는 제목으로 시라는 걸 써봤다. 개인들이란 시간이 담긴 하나의 유리병과 같다고 상상했던 것 같다. 어떤 병은 중도에 깨져 시간이 흘러나오고 전체 속으로 소멸된다. 또 어떤 병 속의 시간은 소리없이 증발하고, 어떤 병 속의 시간은 서서히 동요하며 회전한다. 아마도 소모와 삶은 구분하기 힘든 거라는 생각으로 골똘했을 것이다.
이젠 소모가 아닌 소모라고 해도 개의치 않을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백퍼센트의 완성이나 긍정이라면 그건 이미 삶이 아니겠지만, 소모로부터 인생으로 변하는 어떤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사코의 긍정, 안간힘의 긍정, 암암리의 긍정, 전전긍긍의 긍정에 의해서.

오늘은 그 시의 '시간'에다 '역사'라는 단어를 대입시켜본다. 모든 기억들은 저마다 작은 역사다. 개인들은 거대한 역사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아니 오히려 작은 역사의 흔적에 연연하며 괴로워하거나 아쉬워한다. 기억은 과거로의 탐험인 동시에 과거와의 결별이다. 기억은 조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지난 일이 떠오를 때면, 이제 그 지난 일과 멀어지고 있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역사란 현재 속에서 과거가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형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기억은 역사의 태어남이다. 이와 같은 새로움을 생각한다. 간신히 잠들었다 곧 깨어나서는.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는 한번도 꿈속으로 나를 보러 오지 않으셨다. 내 사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어젯밤 기제를 지낸 후 깜박 졸았는데,  떠나시던 해 즐겨 입으시던 흰 모시 바지 저고리 차림으로 나타나셨다. 
몇 걸음 앞에서 눈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가만히 웃기만 하시더라. 새가 날아 올랐고 벼랑이 어지러이 하늘로 떨어졌다. 너무 멀었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덧: 아버지는 저와 대학 과동문으로 동문 게시판에 쓰셨던 글.


    • 유전이라기 보다는 가풍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님에게로 이어지는 뭔가가 읽히네요.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아빠에 대해 뭔가를 느끼고 이렇게 글로 추억해 줬으면 싶습니다. 

      • 가풍. 오랜만에 대하는 단어라 사전을 찾아봤어요. '한 집안의 고유한 기율과 풍속 등의 생활양식'이라는 뜻이네요.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오는 가치관과 축적된 지식체계는 어느 집안에나 있는 것 아닌가요. ㅎ

    • 지난걸 생각하는건 그것과 멀어지는거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어럼풋이나마 아버지 마음을 느끼네요
      • 자주 글에서  남다른 포인트를 집어내는 가.영님~ 
    • 아버지의 그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느껴지네요.

      • 우리 형제 머리가 다 자란 후에도, 아버지는 할아버지 꾸중을 들을 때면 (주로 술 취해서 한 실수 탓) 무릎 꿇고 앉아 고개 조아리고 들으셨어요. 그 모습이 저희에게 가르친 바가 컸어요. ㅋ
    • 제가 기억해낼수록 그 (창피한)과거의 순간이 저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라면 정말 다행인데요 ㅎㅎ은근 위로되네요. 부디 제가 기억하는 것보단 덜 어글리한 순간이었길.
      • 어글리한 순간에 대한 기억은  자신의 예민함(만)이 인지하고 반성하는 자세인 거죠. 그런 되새김은 한두 번으로 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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