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바낭] 미쿡 사법제도 구경 다큐 '계단 : 아내가 죽었다'를 봤습니다

 - 제목 그대로 다큐멘터리입니다. 사건 하나를 다루는데 45분씩 13화나 되는 분량이에요. 스포일러 없이 뭔 얘길 하기 힘든 작품이긴 한데 그래도 스포일러 없이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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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12월의 일입니다. 여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더럼'(옛날엔 '더램'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이라는 도시구요. 한밤중에 911 신고가 접수됩니다. 아내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어가고 있대요. 7분 후 구급 요원과 경찰이 도착하고, 30분 후 이 일은 살인 사건 수사로 전환되며 외부 침입자의 흔적이 없는 관계로 유일한 용의자는 집에 단 둘이 있었던 신고자, 남편이자 나름 유명한 작가인 마이클 피터슨입니다.


 사실 합당한 조치로 보입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 치고는 사방팔방에 피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뿌리고 흘렸거든요. 머리에 난 상처도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계단에서 구른 상처로는 보이지 않구요. 하지만 피터슨이 동원한 변호인들의 논리에 따르면 그걸 낙상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아 보이고, 피터슨에겐 딱히 살인 동기가 없으며 (그래서 자식들도 아버지의 무죄를 믿습니다) 결정적으로 집을 아무리 뒤져도 흉기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면서...



 -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지만 이 제작진의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피터슨의 편이에요. 그래서 십여년이 넘는 기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늘 피터슨과 피터슨 곁에 남은 가족들, 그리고 피터슨의 변호인들만 따라다니죠. 다큐 초반에는 피터슨이 범인이라 믿는 아내측 유족들의 모습도 종종 비춰줍니다만, 다큐의 내용이 피터슨 편이라서 제작진 저리 꺼지라고 그랬나봐요. 조금 나오고 말더라구요.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건, 이 다큐가 노골적으로 '피터슨은 무죄다!' 라고 외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뭐 어쩔 수 없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긴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죄다 피터슨의 무죄를 믿는 사람들이니까요) 이 다큐가 말하려는 건 '피터슨은 무죄다!'가 아니라, '그가 무죄든 유죄든 간에 이런 일을 당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피터슨 편향적인 부분들을 걷어내고 생각해봐도 피터슨이 받은 재판은 정말 개판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미국 사법 제도의 허점을 보여주고, 그것에 본격적으로 말려든 개인이 얼마나 억울하고 비참할 꼴을 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리고 그걸 되게 와닿도록 잘 보여줘요. 왜냐면 이 사건과 그 재판이 정말로 드라마틱하거든요. 실화가 아니라 순수한 허구의 드라마라고 해도 믿을 법한 전개를 거의 13화 내내 보여줘서 지루할 틈이 없이 쭉 달렸습니다.



 - 동시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다큐는 꽤 훌륭한 가족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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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다시피 가족 구성원이 좀 많죠. 이건 피터슨의 범상치 않은 인생 행적과 관련이 있는데... 뭐 하도 복잡해서 잘 기억도 안 납니다만. 암튼 15년의 세월 동안 이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다큐답게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꽤 감동적입니다. 심지어 인물들도 꽤 훌륭... (쿨럭;)



 - 마지막으로 이 쇼(?)의 하일라이트는 바로 마이클 피터슨이라는 사람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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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쓴 사람은 담당 변호사입니다)


 피터슨이 결백하다고 믿는다면 이 할배는 정말 강인하면서도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죠. 말빨도 좋아서 그럴싸하게 멋진 멘트들도 자주 남겨 주고요. 

 피터슨이 사실 거짓말쟁이 살인자라고 믿는다고 해도 캐릭터의 재미는 여전합니다. 평생동안 주변 사람들을 철저하게 속아 넘겨 온 연기력 만렙의 싸이코패스 살인마가 되는 거니까요. 종류는 달라질 지언정 지켜보는 재미는 확실하겠죠.


 피터슨을 오랫동안 돕는 저 변호사 아저씨도 참 괜찮은 캐릭터(?)입니다. 뭐 돈 받고 일하는 프로이긴 하지만 받은 돈값 이상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게 확확 보이는 사람이고. 또 막판의 전개를 보면 (뭐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인간적인 한계를 보이면서도 피터슨의 인생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어주는 훌륭한 고용인이거든요. 둘이서 주고 받고 하는 드립들도 훈훈하게 재밌구요.



 - 결론적으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무조건 기피하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모두 한 번 보실만한 '재미있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 나이, 제 처지에 이런 거 알아서 뭐하나 싶은 미국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게 해주고요.

 동시에 인간극장스런 재미도 꽤 세련된 형태로 전해 주고요.

 전 원래 다큐는 잘 안 보는 사람인데 어쩌다 아무 생각 없이 1화를 눌렀다가 그만 끝까지 다 봐 버렸네요. ㅋㅋㅋ




 + 이 다큐의 또 한 가지 재미는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호사들의 스킬이 늘고 변화하는 걸 구경하는 겁니다. 결과와는 별개로(?) 후반 에피소드들에 보이는 변호사들이 확실히 더 능력 있어 보이거든요. 바꿔 말하자면 초반 재판에서는 저 훈훈한 변호사 아저씨가 전략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모자란 부분들이 많았다는 건데, 그게 순서대로 보고 있으면 초반엔 전혀 안 그래 보입니다. 


 ++ 혹시 이 다큐를 보실 분들이라면 끝까지 다 보시기 전에는 이 사건에 대해서 검색해보지는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실제 사건이다 보니 검색 즉시 스포일러가 팡팡 터지거든요. ㅋㅋ


 +++ 다시 강조하지만 '피터슨의 진실과 관계 없이', 이 재판에는 분명한 죄를 저지른 빌런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다 보고 나서 검색을 해 보니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더군요. 그 중 가장 심했던 놈은 해고되긴 했는데 바로 같은 직장에서 다른 일 담당으로 채용이 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있구요. 역시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한가 봅니다(?)

 

 ++++ 도대체 15년동안 이 다큐 감독은 이거 찍으면서 뭘로 먹고 살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넷플릭스에 있는 게 말하자면 '최종판'이고 중간중간 이런저런 형태로 공개를 했었나 보더라구요. 그래도 여전히 신기한 건 이 감독의 센스입니다. 보면 거의 사건 초반부터 이미 따라다니며 촬영을 하고 있거든요. 뭐 그땐 이게 이렇게 장대한 드라마가 되리라는 건 모르고 그냥 유명인 관련 사건이라 그랬겠습니다만. ㅋㅋ

    • 메이킹 어 머더러도 볼만 하더라구요. 이쪽은 뭔가 분노(?) 같은 게 좀 더 끓어오르는 느낌입니다만..

      변호사 바뀌는 것도 비슷합니다. 시즌 2에 변호사는 확실히 간지가...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ㅋ
      • 그것도 보고 싶었는데 현실세계 버전 스포일러(?)를 먼저 접해 버려서... 제작진이 다큐에서 내세우는 핵심 논거에 오류가 있다고 하죠. 이런 다큐도 믿을 수가 없는 세상이라니. ㄷㄷㄷ
        • 근데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이 이런 범죄를 저지를 것 같단 느낌이 안 들더란 말이죠..ㅎ 물론 n번방 사건으로 세상에 믿을 놈 없다 상태긴 하지만 이건 능력치가 문제란 느낌이라...

          게다가 공방이 있었던 증거 부분도 뎡경찰에서 조작을 했다면 애초에 외부에서 밝히기 힘든 부분도 있고 여러모로 스티븐 쪽에선 어려운 부분이 많은 사건이라 생각되고 뭣보다 동기 부분에서 스틴 보다는 매니토왁 쪽이 훨씬 강해서 의심을 거둘 수가 없네요ㅎ
          • 저는 정작 그 다큐는 안 보았지만 글로 정리된 걸 읽어보면 Tr1K님처럼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더라구요. 말씀대로 '능력치가 문제'라는 생각을 저도 했습니다. ㅋㅋ

    •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평생동안 주변 사람들을 철저하게 속아 넘겨 온 연기력 만렙의 싸이코패스 살인마가 되는 거니까요. 종류는 달라질 지언정 지켜보는 재미는 확실하겠죠.
      ==>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이를테면 첫 장면의 911전화 장면에서의 그 사람 목소리의 톤 자체가 너무 연극적이었다는 거죠. 거기서 확신했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경제적 동기로 MP가 약 1억 7천의 신용카드 빚이 있었고, 캐슬린에게는 16억 상당의 생명보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MP의 외도들을 주요 동기로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MP는 캐슬린이 그걸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글쎄요, MP와의 결혼생활 이전의 결혼생활에서 파트너가 외도한 사실 때문에 이혼을 하고 MP와 결혼하게 된 캐슬린이 남편의 (남자들과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주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되죠. 게다가 이게 다큐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제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살해 전날과 살해날 살해 후 날에 MP가 엄청난 수의 파일을 지운 기록이 있다고도 합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MP의 유죄를 확신하면서 2회차 3회차를 하면서 살인마-friendly한 카메라와 함께 시점을 공유하며 오싹함을 즐기는 것 같아보이더라구요. 마치 <액트 오브 킬링>을 감상하듯, <계단>을 감상하는 거죠. 기껏해야 인터넷 검색이긴 하지만 양측의 의견을 다 조사해본 결과... 저는 'MP가 죽였다.'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관련 토론타래 들을 읽어보면서 여러 새로운 가설들을 알게 되었는 데 너무 흥미로웠던 한가지만 적어보자면(이미 아실 수도 있겠지만), 이건 'MP가 죽이지 않았다'는 주장이긴 한데 '부엉이 공격 설'입니다. 술마시다 집에 들어가는 캐슬린을 부엉이가 덮쳤고 부엉이 발톱으로 캐슬린의 두피가 긁혔고 당황한채 집에 들어온 캐슬린이 (근이완제와 항불안제와 알코올의 영향 하에) 집 안 계단을 오르다가 뒤로 넘어졌고 블랙아웃, 과다출혈로 죽었다는 설입니다. 놀랍게도 부엉이 털이 캐슬린의 모발에서 발견되었기도 하답니다. 

      +저도 이 다큐감독이 풀뜯어먹고 살았나 궁금했었는데, 중간중간 편집해서 공개하는 형태가 있군요. 지식이 하나 늘었습니다. 
      • 부엉이설은 저도 다큐 다 본 후에 읽어봤네요. 그게 가장 모두에게 평화로운 결론인 것 같아서 정답이었음 좋겠지만 그걸 확인할 기회는 이제 영영 없겠죠.



        피터슨이 범인이면 재밌(...)기는 하겠습니다만. 그 자식들이 불쌍해서라도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카메라 뒤에서 뭔 일이 벌어지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보기엔 다들 아빠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느낌이라. ㅠㅜ



        그게 잘 보니까 아시다시피 이 사건의 1차종결(?)이 있잖아요. 그 때 한 번 완성본이라고 공개했다가 2부(??)가 시작되면서 더 찍고 지금의 풀버전이 완성된 것 같아요. 유튜브에도 중간중간 올렸던 것 같구요.
    • 저는 궁금중을 이기지 못해 검색해봤습니다.


      그리고,,,,


      크림롤님의 스포에 힘입어 말씀드리자면,


      저도 알포드 플리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네요.


      남편이 범인인지는 확신이 없네요.

      • 저도 뭔가 미국 법률 용어들을 많이 알게된 다큐였네요. ㅋㅋ



        애초에 다큐의 목적이 진범 찾기가 아니다 보니 이렇다 저렇다 확신을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그저 각자 판단대로... 하하.
    • 넷트플릭스에 있는 건 2004, 2013 그리고 2018년 작품들을 다 모은 건가요? 전 2004년 다큐 보고 굉장히 놀라했던거 기억합니다. 증거가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리고 마치 영화를 보여주고 어떤 쪽으로 가야 더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을 까 하듯이 예습하는 모습들. 그때는 아직 제가 순진했었던 건지 참 충격이었어요.




      스포일러






      케서린의 딸 둘은 페터슨에 대한 입장이 다르지 않나요? 한명은 무죄로 보고 한명은 유죄로 보는 걸로 기억하는데요.이건 또 다른 비극입니다.

      • 재편집을 한 건지 그냥 이어 붙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넷플릭스에 있는 버전에 사건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오는 걸 보면 '완전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2004, 2013, 2018년이면 대략 몇 부부터 몇 부까지 내용일지 짐작이 가는 걸 보면 그게 맞을 것 같아요.






        저 많은 자식들 중 딱 한 명(말씀하신 딸)이 죽은 엄마의 유족들 편에서 계속해서 인터뷰를 하고 다니는 게 나오죠.


        마지막에도 피터슨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15년간 피해왔던 형제와는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는 대목이 나와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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