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의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

새 광고 콘셉트를 잡느라 동료들의 추천 수가 가장 많았던 <광란의 사랑>을 다시 봤습니다. 세 번째 보는데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데이빗 린치 감독의 작업 컨벤션이 이 작품 속에 매우 친절하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농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화평론가들이 공통으로 말하길 데이빗 린치는 영화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멀리 나간 감독이라죠. 저는 그의 영화에 심취한 마니아는 아니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진지하게 독해해왔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단순해요.  그의 영화는 쉽게 해독되지 않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

그의 이야기 서술 방식은 저의 영화 보는 방법을 교정시키는데 일조했습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독특한 클로즈업의 그의 취향, 거친 편집  등등 독특한 개성의 지문들이 가득했어요. 가령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쌍생아라고 할 수 있고 <블루 벨벳>과 <트윈 픽스>는 피를 나눠가진 가족 같아 보였어요. 하지만 감상 후 그의 작품들을 명쾌하게 해명하는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엘리펀트맨>과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제외합니다. 두 작품은 선명했어요.

아무튼 새벽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데이빗 린치가 나이브하게 자신의 정체를 노출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캐치'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그의 작품 세계가 그렇게 심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달까요. <로스트 하이웨>]나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심장부에 도사리고 있는, 맥락없는 변신의 현실화에 대한 문제를 해명하는 열쇠가 이 영화에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빅터 플레밍의 <오즈의 마법사>가 데이빗 린치의 모든 작품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어쩌면 '오즈'가 보여준 변신이 이 감독에게 어떤 영화적 영감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제가 알게 된 것은, 변신의 현실화에 있어서 데이빗 린치의 생각이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것입니다. 

"내 개는 잘 짖지. 지금 그 개를 상상한다고 해도 너희는 가질 수가 없어. 내가 그럴 줄 알고, 개의 종류만은 알려주지 않은 거야. 지금 너희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개 토토를 연상할런지도 몰라. 하지만 내 개는 충실해서 오직 나만을 따라. "
로켓 기술자인 노인이 세일러와 룰라에게 하는 이 대사. 제 생각엔 이 우스꽝스런 대사에 데이빗 린치의 영화 포인트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만으로 소유할 수 있다'라는 것! 상상하는 것 자체가 영화적 현실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의 영화들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시공의 현실을 해명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아닐까 싶습니다.

데이빗 린치 영화의 시공간이 뒤틀려서 생성되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로의 변화는, 결국 상상적인 우주의 데칼코마니인 것 같아요.. 그것은 어느 한쪽이 현실이라면 다른 한쪽은 자연스럽게 상상이라는 것으로 낙착됩니다. 저는 그동안 데이빗 린치의 작품세계를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어떤 거대한 우주론적 기획으로 생각해왔어요. 그 짐작이 첫 단추를 잘못 잠근 것처럼 그의 작품에 대한 저의 이해를 계속 어긋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미국 중산층의 deranged된 내면을 극단적인 불안심리에 근거해서 절묘하게 해부해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흔들림이 낳는 또 다른 시공의 세계, 설명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찬 세계는 상상이자, 상상으로서의 또 다른 현실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에요..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두통이 일 것 같던 거대한 변신의 뫼비우스 드라마가 그러하고, 화해할 수 없는 두 버전이 한 영화 속에 훌륭히 동거하고 있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역시 그러합니다. 그 사이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빙하의 크레바스처럼 존재하며, 그 틈새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관객들을 모조리 삼켜버려요. 

그 심연에 빠지더라도 정신을 놓치 않으면 데이빗 린치의 세계를 정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장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의 세계는 누가 친절한 해답을 내놓는다고 해서 무너질 허약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여지껏 데이빗 린치에 관한 엄밀한 작가주의 연구서를 접해보지 못했어요.)

그렇다 해도, <Wild at heart>은 그가 던지는 모든 문제의 단초들을 품고 있는 나이브하면서도 솔직한 텍스트라는 것이 저의 감상입니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제외한 그의 나머지 모든 작품들이 결국 <Wild at heart>의 욕망의 궤적, 그 물질적인 징후 속에서 해독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성마른 생각마저 듭니다. 제 기억으론 그의 후기 작품들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받은 원천적인 영향력을 많이 퇴색시키거나 내면화하므로서 모호해진 듯해요. 그러나 <오즈의 마법사>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에요. 그 길을 발견하기를 그가 (곁묻어 저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엘리펀트맨, 듄도 어렵지 않죠. 듄은 제작자도 인정했듯 한 시간 정도 분량은 더 남겨었어야 했는데 난해하지는 않죠. 이 두 영화가 원작이 있는 상태에서 린치는 고용 감독이었기에 그런 것도 같습니다.

      블루 벨벳 극찬한 건 우디 앨런.

      광란의 사랑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고 트윈픽스 배우들 등장시켰죠.

      이레이저 헤드도 그리 어렵지는 않으니 차근차근 보세요. 이레이저 헤드는 린치가 아버지되는 걸 두려워했단 생각이 듭니다.

      https://youtu.be/oepfkpkxjmA

      린치가 감독하고 마리옹 꼬띠야르 나온 디올 광고

      https://youtu.be/VvqaHqYT6x4

      이레이저 헤드


      난해함의 끝판왕은 <인랜드 엠파이어>가 아닌지

      • 링크하신 영상들은 제가 다 본 것이지만 놓치고 못본 분들에겐 안내가 되었겠어요. 
        오래 전, 우연히 린치가 그린 그림들을 모아서 볼 기회가 있었어요.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죠)  영화만큼 인상 깊은 솜씨의 그림들이었습니다. 뭐랄까, 카프카가 주제를 잡고 프란시스 베이컨이 붓 터치로 거들어준 것 같은 분위기의 그림들이었어요.  알려진 바로도 린치가 가장 좋아한 화가가 베이컨이라죠. 

        큐브릭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이레이저헤드>를 꼽은 걸로 보건대, 두 감독이 세상을 읽어내는 방식에 분명 공통점이 있는 거겠죠. 
        디지털로 작업한 <인랜드 엠파이어> 이후 다시 필름 작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인터뷰한 바 있던데,  그후로 십몇 년이 되도록 극영화 한편 찍지 않고 있는 건 무슨 이유인지.... 

        • 린치가 좋아하는 영화가 큐브릭의 <로리타>입니다.

    • 저는 <아이즈 와이드 셧>보면서 린치와 큐브릭이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 https://youtu.be/BWsufFmRNt8

      - 린치가 찍은 마이클 잭슨 dangerous 티저




      해석될 것 같으면서 해석되지 않는 게 린치 영화의 매력이죠. 해석되지 않은 채로 남겨 둘 필요도 있고요.




      https://vimeo.com/6217493




      단편영화 알파벳. 페기 린치는 첫 부인.

    • 제목만 많이 알았는데 이제 보기로 했어요
      • 아직 못 본 영화와 안 읽은 책이 남아 있는 건 좋은 거예요. 그것도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며 활력소가 되어주는 요소랄까요. (음?)

    • 데이빗린치...30년전 트윈픽스를 꽤 열심히 보았는데 벌써 그렇게 오래됐나 싶네요. 요즘 트렌드가 90년대로 회귀인가 보던데, 이 컨셉도 레트로인가요? 이 양반 작품은 레트로로 살리기 어려울텐데요. 린치작품은 미술사적으로보면 초현실주의죠. 현실세계의 마약(섹스, 마약은 섹스의 수단일 뿐이죠),살인 같은 부정적인 장치들을 깔아놓고 그 토대 위에 정상적인척 하는 현대인의 위선을 꿈속을 헤매듯이 전개시켜버리죠. 다소 몽환적이면서 기괴하고, 암울하면서도 강박증적이라 이 느낌을 커머셜로 만들기 정말 어려울 것 같네요. 트윈픽스가 일본에서 빅히트를 치고 출연자들이 대거 조지아커피광고를 찍었는데 데이빗린치에 대한 환상을 완전 박살내버리죠. 참고하시길
      • 어디선가 눈동냥한 건데 트윈픽스를 만들 무렵 조금 앞서 린치는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브로 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요. 근데 '돈만 많이 들고 돈이 벌릴 만한 작품은 아니라' 며 제작을 하지 않았고 대신 발표해서 세간에 충격을 던지며 돈도 번 게 트윈픽스였다고. - -
        린치와 저의 공통 버릇이 있더군요.  셔츠 단추를 하나도 풀지 않고 맨 위까지 잠근다는 것. 그러는 이유는 서로 달라요. 그는 단추를 다 잠궈야 강인해 보이기 때문이라던데, 저의 경우는 단추를 풀면 막연히 불안해져서...ㅋ

        • 단추를 다 잠그면 답답해 보이죠. 땀도 많이 찰 뿐더러. 같은 옷을 여러벌 사서 같은 옷만 입고다니는 사람도 있죠. 이 양반 아직도 담배와 콜라 물고 다니는지 모르겠네요. 많이 늙으셨든데.
          • 음. 제가 단추를 다 채우는 센스 없는 차림을 하게 된 트라우마에 대해 꼭 한번 글을 써보고 싶어요. 죽기 전에 일기장 외에 어디에든 함 써보긴 할 거에요.  (불끈~)


            같은 옷 마니아라면  잡스와 저커버그가 떠오르는데, 그 단순함이 바로 천재성이라죠. 저는 새옷을 구입하면 아무리 비싼 옷이라도 반드시 집에서 입고 뒹굴뒹굴해서 살짝 낡아버린 -이라기 보다 친숙해진- 후에나 외출 시에 입어요. 쇄골이 드러나는 옷도 집에서 입고 단련해보는데 외출 시에는 결국 안 입게 되네요. 





            • 단추를 다 채울 수밖에 없는 슬픈 이야기는 차차 듣기로 하고 린치의 영화보다 더 위어드한 이 분의 tv광고들을 감상해 볼까요. https://lwlies.com/articles/david-lynch-tv-commercials/
          • 커피 팔잖아요




            잡스도 일본인 디자이너에게 같은 옷 주문해 몇 십 벌을 갖고 있었다죠

    • 이 영화가 데이빗 린치의 유일한 실패작이라고 해서 전 아직 안보고 있습니다.

      저도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극장에서 연달아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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