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을 넷플릭스에서 보았습니다
초반10분을 보는데 웃음이 나더군요. 이 영화가 <달콤한 인생>이랑 뭐가 다른 것일까요. 소재를 한국 정계 개편의 역사에서 가져왔을 뿐 구도는 완전히 흡사합니다. 그래도 매너있고 상식있는 깔끔한 2인자가, 무례하고 세상을 망치는 폭력적인 3인자에게 점점 밀려나고 보스의 총애도 잃어가면서 돌아버리는 이야기를 그렸으니까요. <남산의 부장들>에는 황정민의 백사장과 신민아의 윤희수가 안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이병헌이 조금 더 나이를 먹었죠.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 무려 국정운영이라는 큰 일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치열한 권력암투를 벌인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훨씬 더 사사롭게 나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남자들의 궁상스러운 집단 내 자리다툼을 인간적 본능으로 표현하면서도 그것이 아주 우아하고 커다란 것인것처럼 표현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은 그 익숙한 서사구도입니다. 물론 모든 정치적 사건이 다 공적이고 비개인적일 수만은 없겠죠. 그러나 지나치게 개인화되는 이야기, 혹은 개인간의 드라마에만 천착하는 이야기는 한 인물의 공과 과를 모조리 "인간적인" 것으로 편집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삼류 건달이나 현실에는 있지 않은 정장 쫙 빼입은 인물들간의 이야기라면 그 책임이 조금 덜 할 수 있겠습니다만 박정희같은 공인에게는 보다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모두의 책임이 더 큽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성민이 연기하는 박정희는 상당히 찌질하고 좀스러운 인간이라서 그것만으로도 박정희 미화를 깨부수는 공은 있겠습니다만 오히려 이 영화의 이 시각이 드라마화된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굳이 박정희를 가지고 코리안 맥베스를 읽으면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근원적 한계를 탐구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악행과 한계가 "인간이어서" 발생하는 것처럼 영화가 특정 인물을 그리는 것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 부분에서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가 꼭 같은 장르 내의 훌륭한 영화들을 본받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함정을 최대한 피해나간 다른 영화들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한국영화에서는 윤종빈의 <범죄와의 전쟁>이 있을 것이고, 멀리는 스콜세지의 작품들이 있을 것이고. 심지어 고전적인 누아르 영화로서의 <대부>도 인간적인 지점 때문에 걸작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의 비인간성, 필연적인 자본주의화를 한 인간의 변화를 통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영화의 누아르 세계관도 조금은 의아합니다. 제가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정말 잘 찍었습니다. 때깔이 좋고 꽤 시네마틱합니다. 장르영화로서는 선배들의 훌륭함을 계승하려는 영화적 지점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건조함은 어딘지 멜빌의 <형사>나 <사무라이>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드는 의문은, 왜 한국영화들은 모든 세계를 정장입은 남자들이 총질하는 수직적 세계로 해석하려 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워낙 오래된 장르적 문법이니 어쩔 수 없고 우민호의 이 영화도 기존의 날건달스러운 영화들에 비하면 상당히 괜찮습니다만, 어떤 악과 폭력을 꼭 가해자들의 근사하고 경직된 세계를 통해 그려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한국드라마의 검사 판타지처럼, 양복에 넥타이 차려입은 남자들이 선악을 초월하는 폭력을 휘두르는 걸 아름답게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슈트 안의 힘과 로열티만이 뭔가 이 세계의 진리인것처럼 그려내는 게... 그 수직적 구조에 대한 판타지를 이제는 좀 깰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영화의 성찰은 늘 조직적 세계의 낭만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남산의 부장들>의 낭만은 2인자 김규평의 충심을 몰라주는 1인자 박정희의 어리석음에서 나옵니다. 따르는 사람의 충언과 충심을 잘 듣고, 지배하는 자는 조금만 더 이해심이 넓었더라면... 하는 그 비극 속에서 결국 완벽한 조직의 이데아는 그 자체로 어떤 판타지처럼 제시된다는 겁니다. 충성과 복종의 가치관이 깨지거나 지켜지는 세계는 이제 좀 그만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세계의 필연적 질서라고 하더라도요. 제가 좋아하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 같은 경우는 훨씬 더 사적이고 좀 비즈니스적이잖아요. 그런데 한국 누아르들은 늘 조직 자체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멜빌의 영화들도 사실 조직이나 서열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들의 건조한 가치관과 사무적인 성실함이 더 크게 충돌하지 않았나요. 왜 이렇게 한국영화들은 위/아래에 대한 그 관계도가 크게 작동하는 것인지... 때로는 그 수직성 자체가 어떤 가치관처럼 보입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제가 특히 예쁘다고 느꼈던 씬들입니다. 주로 해외 씬들이 이뻤는데 국내 촬영분에서의 답답하고 누리끼리한 실내 촬영분들과 아주 대조적으로 칼라풀하고 개방적이면서 프레임 안의 프레임들이 많이 활용되어있는 장면들이에요. 해외에서는 항상 방 너머의 방이 있고 다른 데로 통하는 공간이 있는데, 한국은 언제나 폐쇄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장면으로 찍혀있습니다. 아마 당시의 정치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습니다. 뭐 원래 잘하는 배우들이 모이기도 했는데 이 영화에서 특히 다들 잘하더라구요. 제일 인상적이던 건 데보라 심을 연기한 김소진씨. 연기 정말 능청스럽게 잘합니다. <미성년> 때도 참 잘한다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 되게 잘해요. 주역 배우들의 존재감이 정말 대단한데 그 안에서도 유독 자기 캐릭터를 확 살리시더군요.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가 현실과 만날 때의 책임감이나 장르서사가 휘발시키는 어떤 현실감각이라든가. 그런 게 영화의 본질이면서 위험한 지점이기도 하잖아요. 부정할 수 없는 건, 영화가 잘 뽑혔다는 겁니다. 꽤 괜찮았어요.
영화는 못봤습니다만 올려주신 이미지들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구도와 색감이네요. 보고싶어졌습니다.
달콤한 인생은 1인자와 2인자간의 감정적인 뭔가가 있지만 3인자에게 밀려난다는 설명에는 ,,,좀....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데요.
수직적 구조를 깨는 영화를 만들려면 소재가 박통 시대를 택하면 안될 것 같고,
다큐스런 영화면 더 안되겠죠..
달콤한 인생에도 차지철같은 분이 계시긴했지요. 그 김뢰하 씨가 분했던.
김뢰하가 보스에게 사랑받는 위치가 아니었죠... 오히려 무시당했죠..
살을 찌우고 소리를 지른다고 차지철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차지철에 대해 좀더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영화를 기다려봅니다
흠 그렇군요...
'남자들의 궁상스러움'이란 표현을 읽다가....문득...'더 페이버릿'이 생각났어요...
사랑받기 위해서...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리고..시대적 배경을 재현하는데...지금의 해석으로 재현하는건 때때로 무모하지요...
그냥 나한테는 못만든 깡패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배우들 낭비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김형욱이랑 김재규가 친구 사이라는 설정이
친구가 친구를 배신한다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거 같은데 거기서 감정 다 깨져서 그냥 우습더라구요.
ㅎㅎ 현실은 좀 그렇죠 마지막에 김규평이 배신감을 느끼는 장면 "친구도 죽인 새끼야"를 임팩트 있게 그리고 싶어서 그랬던가 봅니다
아 그래서 제가 이영화를 괜찮게 봤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