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어제 한 선배의 부음을 접했습니다. 무빈소 1일 가족장으로 치른다더군요. 자발적 죽음의 의미를 따질 필요는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건 그 선택에 그림자를 부여하는 짓이니까요. 그저 한 송이 국화를 영전에 바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음미해봅니다. 

- 공무도하가
公無渡河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님은 그예 물을 건너
墮河而死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네
當奈公何     가신 님을 어이할까

바람소리처럼 흐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은 시입니다. 시가 전달하는 상황은 선명하지만, 그 선명함이 바람처럼 불어가므로 어떤 해명의 여지조차 없어요. 이 시는 문자의 명백한 고착성을 부정하는 듯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가 좋아요.

간명한 노래입니다.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늙은 남편을 만류하다 비탄에 빠지는 여인의 슬픈 외침뿐이니까요. 그러나 지어진 내력를 따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 시에는 네 사람의 시선이 있습니다.
1. 강에 투신하는 노인 2. 노인의 뒷모습을 보는 여인 3. 우연히 이 광경을 목도하는 사공 4. 그에게서 이 광경을 전해듣는 사공의 아내.
열여섯자 속에 펼쳐지는 시공간이 참 커다랗습니다. 낮부터 저녁에 이르는, 네 개의 시선을 통과하는 그 초조한 시간의 흐름마다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닫힙니다.

- 시선 하나.
강으로 걸어들어가는 백수광부의 시선은 미지의 저편을 향해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등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시선은 황홀이든 죽음이든, 개인이 소멸되는 지점 - 피안의 세계에 닿아 있습니다. 아닐지도 모르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가 강으로 걸어들어갔다는 사실, 그의 뒷모습뿐입니다.

- 시선 둘.
백수광부 아내의 외침과 시선은 이별의 고통과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과연 그것 뿐일까요? 
극심한 고통이나 공포의 표정은 섬뜩한 無를 드러냅니다.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전체성의 맥락 속에서 개관하는 자는 울부짖거나 외치지 않는 법이에요. 아내의 외침은 고통과 無, 이 양자의 중간 어딘가에 있습니다.
시를 보면, 아내의 외침에는 고통을 느끼는 주체로서의 자기 응시가 없어요. 고통의 주체는 있지만 고통받는 자신을 아는 주체가 없기에 이 시는 떠도는 바람소리처럼 들립니다.
바람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에 투명하게 흘러갈 수가 있어요. 노인은 강물 속으로 들고, 아내는 바람 속에 서서 이미 거의 바람이 되어 있습니다.

- 시선 셋.
이 상황을 우연히 목도한 이는 뱃사공 곽리자고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가 놀라기는 했겠으나 아파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는 시/노래가 아닌, 이야기의 매개인이니까요. 그는 이 시에 관여된 네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서사적인 것을 매개하는 인물입니다. 노래의 비정이 노래의 노래됨에 있다면, 서사의 비정은 이야기의 이야기됨, 즉 그 이성에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강물을 붙들고 바람을 가두는 힘입니다.

- 시선 넷.
여옥에겐 시간처럼 흐르는 강에서 사공일을 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가 낮의 세계에서 돌아와 이야기 하나를 던져놓아요. 그렇게 저녁은 시작됩니다. 공후인을 타며 이 시(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동안, 여옥에겐 비로소 낮이, 슬픔이, 세계가, 남편이라는 타자가, 저무는 하루가 구체적인 소리로 확인됩니다. 노래를 만드는 동안 여옥의 눈앞에 무엇인가 활활 타며 깨달음이 되었을 것이에요. 그러나 그순간 노래는 이미 지워지고, 그녀에겐 아무런 느낌도 남지 않습니다.


    • 아내와 여옥이 겹치는 듯 해요 제목만 알고 다 몰라요 아주 잘만든 영화 같은 글이에요
    • 저도 무척 좋아했던 시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라는 노래도 있으니 기회되면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앨범 전체가 다 환상적이었죠. 저는 "새"를 가장 좋아합니다












        • 저도 너무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이상은이 펄펄 날아다니던 시절이죠. 

    • 장강명 작가가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쓴 소설도 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이라는 단편집의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라는 꼭지죠.

    • 여기에서 물은 부활의 의미가 없는 죽음만을 뜻한다고 배운 기억이 나요
    • 살며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커다란 고통 중 하나는 난데없이 지인의 죽음을 통고받았을 때의 무기력함입니다. 감히 비유하자면 마리아가 십자가에 매달린 아들을 보며 오열했을 때의 느낌을 알 것 같달까요. 거기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그가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받은 고통을 전혀  몰랐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아버지와 바둑을 뒀는데, 일판일승할 때마다 제가 많이 울었어요. 그냥 눈물이 터져나와서... 그리고 잠자리에서 바흐의 '페르골레지'를  반복해 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HQVtYzjLao&t=2s
      이 곡은 바흐가 복잡하지 않은 선율로 전통적인 기도문을 편집하여 만든 곡입니다. 성모의 슬픔에 대한 거리 조절을 반복함으로서 그 슬픔에 대한 자세를 잘 표현한 곡이라고 할까요. 
      세월호 아이들 비극의 현장이 방송으로 생중계 될 때, '우리는 어디 있는가, 지금!'이라는 어이없음/허탈/무기력을 달래면서 몇날며칠 들은 후 오랜만에 계속 듣고 있습니다. 

    • 이상은 님의 음악을 알긴 하지만 많이 듣지는 않은 세대입니다. 
      언젠가, 부산에서 올라오는 KTX 앞자리에 그 분이 계셔서 3시간 쯤 바라본 시간이 있어요. 
      그 분 앞자리에 앉아 있던 서너 살바기 꼬마가 의자 뒤로 돌아서서 계속 장난질하며 괴롭히는데도 묵묵히 다 받아주시더군요.
      하여, 칸트가 말한 '관심없는 즐거움의 상태'를 즐길 줄 -인내할 줄- 아는 분이구나 하는 인상이 각인돼 있습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3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9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6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9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4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3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9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3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30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41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2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8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90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