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12 (타인의 시각)

대학 동기가 한 모임의 뒷풀이 자리에서 저를 '사립斜立(비스듬히 선)형 인간이자 심미적 인간형'으로 예시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니 이 무슨 자유롭고 대범하면서 무심한 듯 디테일한 평가란 말인가요~   어리둥절합니다. - -
키에르케고르 식으로 (동의하든, 하지 않든) 심미적 인간과 윤리적 인간은 구분이 가는데  '사립인'이라는 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얼핏 뇌리를 스친 단어는 '사립문'과 공룡의 걷기 방식이었다는 '사립보행' 뿐입니다. 

그리하여 줄줄이 사탕처럼 꿰보는 생각. 
1 인간 중심주의의 편견 중 하나가 인간만이 서서 걸었다는 주장이었죠. 중생대에 공룡도 서서 걷고, 앞발을 사용해 움켜잡고 잡아뜯고 할퀴는 섬세한 동작까지 사용했다는 게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후 공룡은 1억 8천만 년을 서서 걸어다녔다더군요. 더불어 악어도 무려 1억 년 전에 이족보행二足步行을 했다는 게 알려져 있고요.
지구의 천문학적 역사에서 동물들에게 어떤 진화가 일어났는지는 현재의 인간이 다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 과학자는 공룡이 자신의 신체기관 일부를 악기로 만드는 진화까지 해서 '생체 악기'까지 사용하여 몸 전체의 공명까지 일으켰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어요. 다른 동물에게 일어난 몸 전체의 공명은 인류의 진화에도 결정적인 변수일 만큼 중요한 진화의 역사인 것이죠.

그렇다면 공룡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단지 4만 년의 시간 동안 현생인류에게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를 생각한다면, 1억8천만 년의 시간을 함부로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1억8천만 년 동안 단지 먹이를 찾아서 어기적거리며 다니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짐작을 해볼 뿐이에요. 그 시간이면 공룡에게도 굉장히 놀라운 지성적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지구에서 존속해왔으면서 모든 것을 인간중심으로 수렴시키는 인간의 상상력이란 참 고약한 면이 있음을 유념하고 있고요.

아무튼 공룡은 제게 사립보행斜立步行 (비스듬히 서서 걷기) vs 직립보행直立步行 (똑바로 서서 걷기)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동물입니다. 지구사에서 공룡이 1억8천만 년의 통치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지구를 존속시켰다면, 인간종은 고작 4만 년이란 시간만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 듯 지구를 작살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비스듬히 서서 걷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단지 동기가 저를 사립형 인간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해보는 생각은 아닙니다. 에취!)

2. 존재의 차원은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으로 변화해가는 거라고 주장한 철학/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종교는 제외하더라도 어떻게 심미와 윤리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윤리에 대해 아이러니컬한 심미란 것도 있는 것 아닌가요? 문학에선 그런 걸 '자의식'이라고 하는데 그 둘을, '나'와 '나'를 어떻게 구분한다는 것일까요?
동기의 말대로 저를 심미형 인간이라고 해보죠. 아름다움에 대해서 쓸데없이 민감하고 그런 쓸데없는 면을 자랑스럽게 여길뿐만 아니라 그 괴물 같은 속성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면 저 같은 유형에게 윤리형 인간은 무심할까요, 계도의 의지를 발휘할까요. (먼산)
(뻘덧: **아, 심미형 인간도 공동체의 윤리에 대한 관심이 얕거나 옅지 않아. 다만 윤리형 인간보다 관심이 고독한 개인 쪽에 좀더 기울어 있긴 해.)

3. '사립문'을 구글링하니 이런 글이 뜨더군요.
(전략)
사립문은 집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베어다 엮어 놓은 문을 말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립짝을 달아서 만든 문’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사립짝은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문짝’이라는 뜻이다. 
거기까지 확인해도 사립이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은근히 궁금해진다. 혹시 ‘사립’(斜立ㆍ비스듬하게 섬)이란 한자어에서 온 것은 아닐까? 늘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사립문과 딱 어울리는 말이다. 
혹자는 ‘싸리문’으로 적기도 하는데, 싸리문은 말 그대로 싸리를 엮어서 만든 사립문이다. 싸리가 지천이었으니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을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의 삶이 그랬다. 물려받은 밭 한 뙈기 없이 드난살이를 전전하다 어렵사리 오두막이라도 한 채 지어 놓고 보니, ‘내 집’이라고 어깨에 힘 한 번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이라도 제대로 있었을까.
내에서 호박돌이라도 져다 쌓으면 좋으련만 늘 일손이 달리다 보니 그마저 없는 집도 많았다. 그런 마당에 솟을대문이 어울릴까, 나무대문이 맞을까.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는 섭섭한지라 잔 나무 베어다가 잎사귀를 훑어 얽어 놓은 게 사립문이었다.
(후략)

- 이호석 시인이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전문은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522034004

    • 평소 짝다리 짚고 서 있는 모습이 많은가봐요. 이게 보통 윗사람들 앞에선 싸가지 없는 태도로 인식되어 왔죠. 특히 예전 꼰대같은 선배들 짝다리 짚으면 뭐라고 하고 그랬어요. 이 짝다리가 나는 권위주의에복종하지 않는 사람이야. 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죠. 저도 굳이 분류하자면 짝다리 지적 많이 받고 자란 사립형 인간 -,.-

      • '짝다리'에서 난데없이 빵 터졌습니다. 아직 운전할 자신이 없어서  택시 신세를 지느라 출근길에 가끔 접속하는데, 제가 ㅋㅋ거렸더니 기사 아저씨가 '재밌는 건 나도 좀 압시다아~' 궁금해하셨어요.
        제가 독특하게 발레리노의 턴아웃 3번 포지션으로 선다는 지적은 더러 받았어요. 한쪽발 뒤꿈치가 다른 발 발등 근처에서 교차되도록 서는 자세.   짝다리와는 다르지만 근골격에 좋지 않고 척추측만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죠.
        오늘도 안녕 세상아~ 좋은 하루이시길...
    • 사립형 인간 어감이 어울리네요 두손 허리에 얹고 삐딱하게 서있지 않나요 두손 허리에 기대고 바로 서서 노래 부른 주디스 더램이 보기 좋네요 심미형이 자라 윤리적이 되기 쉬우니 흙수저자립형이라 해도 좋을듯,
    • 흙수저자립형... 이라는 단어가 기억 하나를 길어냅니다.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던 날이었어요. 학생회관 매점에 들렀는데,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이 친구가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굉장히 마른 체격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몸집이 크게 불어난 모습이더군요. 인사로 "외모에 변화가 있네?" 건성 한마디 건넸더니 "잘봐~" 라면서 입고 있는 티셔츠를 한장씩 들추기 시작했죠. 무려 18장! 그는 9월 초 아직 더운 날씨에 그 엄청난 양의 티셔츠를 껴입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갸우뚱거리자 설명하기를 "자취방을 아직 못 구해서 보따리들을 ++이네 집에 맡겼는데, 짐 부피를 줄이느라 일케 다 걸치고 나왔어."


      그후 몇년 동안- 졸업 후에도-  9월이 시작되면 18장의 티셔츠를 껴입고 해맑게 웃고 있던 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그리고 어떤 대화 중에 제게 던졌던 그의 이 말도. 


      "세상과의 어떤 경쟁에서도 난 이길 자신이 있어.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So what?"


      그가 지시한 그 ' 의미'는 아직 제 '가능한 의미들'의 창고에 저장돼 있습니다. 그가 질문하는 장면을 봤으니, 그가 답을 찾는 장면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성큼 가는 것들에 말을 걸어보는
    •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심미-윤리-종교 단계를 보니 요즘 세상은 반대로 나아가는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철학의 레퍼렌스는 하나도 모릅니다만.) 종교가 영향을 끼치고 있긴 하지만 구태하다고 생각들 하고, 윤리보다는 심미적(취향)으로 서로를 이해해주자는 흐름을 느껴요. 어떤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혹은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있는지가 매 번 고민입니다. 놀림거리가 되는 추와 강제되는 미에 대해서요. 어디로갈까님의 심미성은 훨씬 추상적인 영역에 걸쳐 있으니 이런 이야기와는 결이 다르겠지만요.

      •  그렇죠. 현재 한국에서는 종교(특정해서 기독교)가 윤리적이라는 콘크리트 생각은 많이 무너졌죠 . 더 과하게 말하자면 종교가 맹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경이고요. 
        저는 종교와 윤리와 법이 분리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의 여러 종교가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

        근대초기까지는 윤리가 미학에 우선한다는 주장이 득세했던 반면, 현재는 미학이 윤리에 우선한다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실히 높아지고 있어요. 저는 미학이 윤리와 종교의 족쇄에서 풀려나 자기충족적인 세계로 발전했고, 하고 있고, 해갈 것이라 믿는 사람입니다. ㅎ
         

      • 제 감정미학을 건드리는 이 해석, 마음에 들어요. (헤벌쭉)  역시 꿈보다 해몽인 거죠. 여름님의 직관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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