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뛰어난 에세이스트는?

​어제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하는 동안 dpf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는 누구야?
나> 글쎄... 여러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는데 , 오십 년 내에서 살펴보자면 관점 이동을 잘한 작가라는 점에서 양주동, 백남준, 정운영, 신영복, 김영민 등이 꼽힐 것 같아.
그> 백남준, 신영복은 나도 알아.
나> 근데 내가 꼭 넣고 싶은 사람이 있어., 평론가 김현이야. 나는 그의 평문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해. 번역체 문투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오키~ 책 추천해줘 읽어볼게.

나> 니가 좋아하는 에세이스트는 누구야?
그> 키에르케고르
나> 동감! 그는 철학자, 시인이기 전에 에세이스트이지. 그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감탄을 하게 된 게, 추상적인 철학을 말하지 않고,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솜씨 때문이었어.
그> 니체는 어때?
나> 시나 아포리즘은 뛰어나지만  그의 산문은 재미가 적더라.  내 수준이 이해 못하는 거지 뭐~
그> (씨익~)

나> 아, 페터 바이스의 산문도 좋더라. '슬퍼할 줄 모르는 무능력'이 뭔지 내게 가르쳐준 글솜씨였음.
그>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와 더불어 나치라는 과거를 청산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한 작가지.
그> 그런데 넌 비관론적 분위기의 글에 끌리는 취향이네?
나> - -:

좋은 에세이에는 몇 가지 필수 요건이 담겨 있습니다.
1. 경직된 체계/형식으로는 표현되기 어려우나 표현돼 나올 수밖에 없는 독특한 체험. 
2. 그 체험을 갈무리해내는 지성과 사유의 깊이.  (이건 우리의 삶과 문명에 관한 깊은 질문과 관련되는데 루카치가 에세이를 영혼, 운명과 관련시킨 이유인 듯함.)
3. 이런그런 질문을 자신만의 고유한 형식과 스타일로 표현하는 능력.  즉  체험과 사유와 표현의 완만하면서 아름다운 결합으로 표출되어 있는 솜씨

여러분의 최애 에세이스트는 누구일까요? 추천해주시면 설 명절에 함 읽어보렵니다. 

    • 임어당 생활의 발견.... 이런건 이미 읽으셨겠네요. 
      아직 안읽으신 것으로 예상되는 이슬아 수필집을 추천드립니다. 말씀하신 요건 세 가지 중에 3번만이 부합하는 것 같지만 읽음에 재미가 없지는 않으실거에요. 3번이 너무 뛰어나서..
      혹시 읽으신다면 어디로 갈까님의 후기도 궁금하네요. 

      저도 한때는 수필가가 되고 싶었죠. 뭔가 재능은 있는 것 같았었던 어렴풋한 기억만 남긴 채 끝나버렸지만.. 

      •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예요. 검색한 후 저보다 젊다는 점에 점수를 듬뿍 주고요, 일단 <심신 단련> 주문했습니다. 


        그나저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어째 대화가 중딩체로 쓰였네요. 실제 대화는 훨씬 시크한 분위기인데 웬 귀염체인지. ㅋㅎ



      • 아, 정작 하려던 말을 안 썼네요. 끝나버리다니요~ 포기라니요~ (때찌때찌)


        니체가 말한 <거리를 두는 열정 Pathos zur Distanz>정도만 간직하고 가도 돼요. 치어럽!



    • 저는 남들 사는 얘기는 맞장구치면서 귀로 듣는게 좋고 글은 잘 읽혀지더라고요.


       왜그럴까요 일방적이라고 생각되어서일까요

      • 귀로 듣든, 눈으로 읽든, 해석적 권위를 부릴 일 없이 접하는 것들은 모두 신선하고 사랑스럽죠. 재미있다, 없다 차원에서 끝내고 말면 되니까요. - -


    • 조지 오웰, 위화의 글쓰기와 관련된 에세이들 좋죠. 


      최근 읽은 거로는 김영민의 칼럼집도 재밌었고 '논어 이야기' 생각 나네요.

      • 저도 조지 오웰에 1표.
      • 언급돼야 할 이름들이 언급됐네요. 오웰과 위화라...  듀게는 죽지 아나써~~~~ 



    • 임어당 생활의 발견 읽은 거 같은데만 머리에 남아 있고 내용이 없네요ㅜㅜ

      • 아마 이광호의 책은 다 소장하고 있을 거예요. 서호준은 낯서네요.


        암튼 듀게는 죽지 아나써~~~~

    • 막 글의 멋을 알려할 때 여러사람이 쓴 수필 한권이 아련합니다 김현 글 좋아했어요
      • 과거형으로 쓰기 있기 없기? ㅋㅎ

    •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무척 좋아해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간결하고 아름다운 글을 쓸까하고 읽은 후 며칠간 그 생각을 했었죠. 읽은 지 오래인데 아직도 '마음의 성역'이란 표현은 생각나요
      • 이 분의 글에 대해서는 제 소감이 여럿이라... 간결하고 아름다운 글이라는데는 공감합니다. 조명해볼 작가죠. 

    • 한국은 아니긴 한데 후지와라 신야 <아메리카 기행> 재밌게 읽고 있어요
    • 김현도 대단하지만 그와 대척점에 있는 김훈 추천. 라면을 끓이며. 한 인터뷰에서 문학이 인간을 구원한다,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 그런건 개소리라고.
      • 천리안 통신시절(중딩 시절) , 김훈에 대한 우호적 글을 썼다가 융단폭격을 맞았던 기억이... ㅋ


        저는 제 옛글들을 갖고 있지 않지만,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는 글들이 있을 거예요. 


        여쭤보고 가지고 있으면 받아서 따로 함 올려볼게요. (재밌겠다~)

        • 진영논리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겐 밥맛없는 인간이겠으나, 김훈의 기름기 쫙 뺀 언어가 제입맛엔 잘 맞더군요.
          • 진영논리와 이데올로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김훈 작가가 이상하게 추잡한 여성 캐릭터 묘사로 엄청 까였던게 기억이 납니다. 넷에서 하도 난리길래 뭔가 찾아봤더니 참 이렇게 구역질나게 묘사하는 것도 참 재주구나 싶더라는…수필은 뭐 다르겠죠?
            • 이상문학상 받았던 <화장>외엔 그의 작품에 여성은 거의 안 나오죠. 나오더라도 주변부일 뿐이고요.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여자는 너무 어려운 존재다"라고 고백한 바 있어요.


              여성을 어떤 역할/인격으로 묘사하는데 아주 서툰 작가라고, 스스로 자신의 미숙함을 토로했죠.



          • 저는 김훈의 산문보다는 소설 문장이 훨씬 더 좋아요. 초기 산문은 감정이 출렁출렁 넌출넌출대는 느낌이라.... 


            여덟살 땐가, 웁살라에 살던 중 여름에 아버지랑 잠시 귀국한 적이 있어요. 인사동에 <평화만들기>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어인일이었는지(아버지가 일보시는 동안)  바에 한참을 혼자 앉아 있었죠. 어느 순간, 맞은편 주방에서 어떤 아저씨가 막 세수한 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쑥 나타났는데, 그게 김훈이었어요. (한국일보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던 듯.)


            "아가~ 왜 이런 곳에 혼자 있니?"라고 묻던 그 음성이 잊히지 않아요.

            • 지금은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옛사진보면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보이죠. 또 어떤 한 인간을 매체로 볼 때와 실제로 만나볼때는 꽤 차이가 있고. 좋은 기운을 내뿜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 경험을 이미 8살때 하셨나보네요. 아니면 그냥 외모에 약한..? 

              • 저는 상대의 표정에나 약하지 외모에는 약하지 않아요. ㅎ 


                그순간, 김훈 아저씨가 제 얼굴을 곰곰 들여다보며 "얘 큰일 낼 얼굴이지 않아?"라고 제 옆자리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말 건넸죠.


                그 아주머니가 <혼불> 작가 최명희 님이었다는 것. "아이 놀라겠다, 그러지마."라고 제동을 거셨죠.   


                두 분의 정체는 후에 아부지가 알려주신 겁니다.



                • 김훈은 기자시절에도 팬들이 많았던걸로 압니다. 팬레터뿐만아니라, 과자니, 꽃다발이니 보내는 소녀팬들이 많은걸로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셨죠. 어릴때부터 아버지따라 문인들가는 까페를 드나들으셨으니 글쟁이 유전자는 가지고 계시는걸로 보입니다.  김훈선생이 큰일낼것 같다 하셨으니 이제 큰일내셔야죠. 기대합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있죠
    • 하루키 잡문집에서 그가 피츠제랄드와 헤밍웨이에 대해 쓴 부분은 읽을 만했어요
      • 피츠제럴드에서 '청춘'과 '상실'이라는 정수를 취한 점에서 하루키와 저는 찌찌뽕~ ㅎ

    • 몇 번이고 댓글을 달다가 일이 생겨서 마무리를 못 짓고 날려버렸는데 이번에는 다 쓸 수 있을까요. 전 에세이인지 아닌지 분별을 잘 못하기도 하고 얼마 안 읽어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에요. 황현산, 듀나, 박완서, 오정희... 김영민이 겨우 겹치는 수준이군요. 추천된 책들은 찾아보려구요.


      한국 작가 중 추천한다면 한승태가 떠오르네요. 다소 감정이 많이 첨가되고 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듀나도 취향에 맞는지 한 번쯤은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요.


      외국인이라면 발터 벤야민이나 도나 헤러웨이도 에세이스트로도 넣을 수 있는지. 벤야민이 제 취향인데 [모스크바 일기]를 읽고 나서는 선뜻 남 추천 못 하겠더라구요.


      이번 명절에 읽을 콕, 한 권 추천하자면 박보나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어떠실지. (부끄럽지만 저도 다 읽진 않았는데 정말 좋아하는 한 편이 들어있습니다.)
    • 한승태, 박보나 다 제겐 생소한 작가입니다. 읽어볼 거에요. 아무튼 질문은 좋은 거군요. 일케 얻어내는 게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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