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구경하기.

연휴를 비생산적으로 보내고 난 반동으로 글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써 봅니다. 트위치라는 게임 스트리밍 - 실시간 방송 - 플랫폼이 있는데 이번에 보니 컨텐츠 소모 시간이 유투브와 비슷비슷 하더군요. [소셜 딜레마]를 엇그제 봐서 그런지 남의 게임 구경에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는 자괴감이 더 심해요. 어떻게 말하면 인간의 주의력을 빼앗는데 최적화된 무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게임 구경 시간이 극적으로 늘어나는 기간이 있는데, 취향에 맞는 게임이 나타났을 때에요. '도타 오토 체스',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일명 항아리 게임) ', '하스스톤 - 전장' 등이 제 시간을 갉아먹은 게임이었죠. 이번 연휴는 'TeamFight Manager'를 보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시간은 짧고 빠르게 지나갑니다. 스트리머들이 게임에 익숙해지고 메뉴얼과 공략집이 널리 퍼질쯔음 관심이 줄어들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나 기억조차 잘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어떤 게임을 하는걸 보는게 아니라, 새로운 과제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숙련 되어가는 과정과 관람객들의 새로운 반응들을 즐기는 거죠. 벌써 네 사람이 초반부를 헤쳐나가는 것을 봤는데 각자 다 다르게 적응해갑니다. A는 설명을 거의 읽지 않고 일단 감으로 진행합니다. 감정적이고 호쾌하게 진행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게임 후반부를 선두에 서서 다 밝혀내죠. 그러나 관람자들은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놓치게 됩니다. B는 한 발짝 떼는 것도 힘들어 하며 모든 조건을 확인하고 다음 턴으로 이동합니다.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제공 되고 나중에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은 과정들에 시간을 소비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겠죠. 그러나 아직 몇 걸음 가지 못했어요. C의 경우, 수첩을 들고 여러 사항들을 간단히 메모해가며 분위기도 잘 살립니다. 게임 인물들에게 인격을 가장 많이 부여하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이 C를 매끄럽게 시청하도록 하는구나 싶습니다. D는... 롤플레잉에 가장 뛰어나 보여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설정들이 서사를 구성하는 포인트들이 됩니다.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는 조작감이 매우 안 좋은 상태로 실수를 했을 경우 지금까지 해놓은 성취들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게임입니다. 말하자면 가짜 개고생을 사서 하는 게임이죠. 어떤 분들은 이 게임 플레이를 굳이 길게 보지 않을 겁니다. 주요한 부분들,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비명을 지르는 것만 모아 놓는다거나, 아니면 고생 자체로 인해 의미가 생긴 성취를 하는 부분만 모아 본다거나 하는 것이죠. 저는 개인이 미묘하게 숙련되어 더 잘 해나가는 과정을 질릴 때까지 즐기더군요. 한 번 보면, 어느 정도 실력으로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지경으로 봤습니다. 각자 고통에 대응하는 자세도 다르구요. 허탈감, 분노, 슬픔, 체념, 헛웃음.


뇌를 쉬어가는데는 좋지만, 나중에는 절실히 후회하게 됩니다. 시간이 아까울 뿐더러 사이클도 어느 정도 망가지니까요. 하지만 어떤 가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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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느 정도 안정된 - 변할 요소가 그렇게 많지 않는 - 상태에 진입하니까 뭔가를 더 하고 싶기도 하고, 뭔가를 한다는게 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싸한건 뭘까요. 삶을 살면서 정말 그럴싸한게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있어 보이고 싶다는 욕망과 실제 무언가 있는건 어떤 차이일까요. 보통 책을 인용하면 좀 있어보이고, 책을 인용하지 않고 꾸덕한 글을 써내면 글이 있게 됩니다.


최근 이런 말을 듣고 여러 번 곱씹고 있어요. 최근에는 작가보다 독자가 더 귀하다는 말을. 그러니까 적어도 말하기 보단 읽기를 더 많이 하고 싶은데 우리의 시간과 주의를 빼앗기에 최적으로 설계된 주변 환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군요. 무언가를 읽을 동기가 솟아나네요. 역시 쓰기를 잘 헀어요. 그럼, 좋은 저녁 되시길.

    • 게임을 좋아하지만 중계는 아예 안 봐요. 해야할 게임이 산더미인데 남이 하는 거 구경할 시간 따윈 없다! 라는 이유인데... 최근에서야 깨달았죠. 트위치 같은 매체로 게임 구경을 하는 것 자체가 게임 플레이와는 별개의 종목(?)이라는 거. 그거 자체를 재미있는 컨텐츠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한 옛날 사람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영화나 게임이 좋아서 이걸로 여가 시간을 거의 다 소진하고 있는데, 언젠가 이것들에 더 이상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난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등산일까요. ㅋㅋㅋ



      뭔가 넷플릭스와 vod의 시대가 열린 후로 그런 생각들이 종종 들더라구요. 관성 비숫하게 취향에 맞는 걸 찾아 열심히 보고 있긴 한데 이게 과연 가치 있는 시간일까... 뭔가 구체적인 결과물이 남는 취미는 아니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쓸 데 없이 집요하게 일일이 다 듀게에 후기를 남기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게임 구경하기는 사실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죠. 거기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직접하는 것보다 동생이 하는걸 옆에 앉아 구경하는 편이 재미있더라구요. 편한 자리에서 훈수도 두고. 확실히 별개의 취미입니다 ㅋㅋ.


        하는 과정에서 찰라에 구성되는 몇몇 깨달음들이 나중에 보면 흔적도 없죠. 글을 써서 갈무리하는건 참 좋은 일이에요. 마치 책 읽고 이야기해서 더 기억이 오래가는 것마냥. 앞으로도 많이 써주세요 ㅋㅋ.
    • 혹시 채널 포인트로 토토도 해보셨나요?

      감상이 궁금합니다.
      • 100 포인트 이상은 안 하고, 감상에 방해되서 - 귀찮아서 - 안하게 되더라구요. 크롬캐스트, 노트북, 태블릿 전부 투표하려면 멍하니 주시하기 이상의 공력이 들어갑니다 ㅋㅋ. 어차피 모아봐야 아무 의미도 없어서 더 관심이 없어요.
        • 그렇군요, 인터랙션보다는 감상을 주목적으로 삼는다면 안 하는 쪽이 맞겠어요. 후기 감사드립니다.

          저는 '정말로 안전한 놀이터'쯤으로 여기고 몇 번 참여했는데, 따도 패배 잃어도 패배한 기분이더라고요ㅎㅎ
          • 그러고보니 TeamFight Manager를 스트리밍하는데 채널포인트 예측을 사용하는 사람은 C 한 명 뿐이었어요. 그걸 운영하냐 마냐, 어떻게 운영하냐도 개인 성향이 드러나더라구요. 왜 어찌되었든 패배하신건지, 진심이 섞여 들어간걸까요 ㅎㅎ. 마음 한 켠에서 저와 비슷하게 가치를 재고 있었다던가.

    • 이 글 읽고 생각난 김에 대도서관 항아리 게임 하이라이트 영상 다시 보면서 간만에 실컷 웃었습니다. 매일 생산적으로 보내면 뿌듯하긴 한데 가끔 정해진 스케줄에서 벗어나 일탈하고 쉬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쉬었다가 다시 제 궤도로 돌아가는 걸 잘하게 되면 그런 죄책감도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 매일 회사에서 남을 위해 생산적으로 보내고 있는데, 자신을 위한 은편 한 닢을 바라게 되더군요. 일에 매몰되어 시야는 좁아지는데 휴식에서도 좁아지는 시야를 가속화하는 느낌이 들고. 이 글을 통해 기분 전환 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군요. 저는 몇 명 안 보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인기 많은 사람을 보면 인기는 이런 식으로 모으는구나 싶은 부분이 있어요. 대도서관 플레이를 나중에나 한 번 봐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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