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감각

제가 호주에서 워홀을 할 때의 일화입니다. 당시 저는 친하게 지내던 남자 동생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딱 봐도 동양인처럼 생겼고 몸도 좀 호리호리해서 근육떡대랑은 거리가 먼 체형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고 그는 종종 저를 보기 위해 시드니의 여행자 숙소에 놀러오곤 했습니다. 어느날은 저를 보러오는데 아주 괴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오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어떤 호주 20대 남자들이 자기를 갑자기 걷어차고 튀었답니다.


"전 진짜.. 그냥 걷고 있었는데... 누가 엉덩이에 싸커킥을 날리는 거에요?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까 싸커킥을 한대 또 날리고 웃으면서 막 뛰어갔어요..."


http://www.koreatimes.com/article/1365457


호주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백호주의 차별범죄입니다. 그 때까지 저는 인종차별을 거의 겪은 적도 없고 인종차별을 일종의 '>>>>>>>>>주류와 어울릴 수 없게끔 뛰어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별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터지니까 그 때부터는 좀 걱정이 되더군요. 저는 다행히 그런 일을 겪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저를 볼 때마다 계속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동안은 길을 걸으면서 두리번거리기도 하구요.


이런 일화를 이야기하면 호주에서 인종차별이 분명히 있고, 그곳에서 거주하는 아시안과 코리안들은 명백한 사회적 약자라는 걸 다들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예시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미국 (남부)에서 사는 흑인이라든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라든가... 어떤 종류의 무차별 폭력은 대다수가 그 사회의 주류가 비주류를 향해 저지르는 사건들입니다. 거꾸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사건들의 질과 비율이 누가 사회적 약자인지를 증명합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주류 특유의 권력적 의식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비주류는 여기에 저항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몸을 사리면서 자신의 안전을 개인적으로 지키려고 하구요.


제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국적이나 인종에 따른 테러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분류기준으로 사람들이 잘 인식을 하는데, 이걸 성별간에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대구 도심 카페서 처음 본 여성에게 '묻지마 폭행' 40대 남성 검찰 송치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413010001964


길 가던 행인들 ‘묻지마 폭행’한 50대 징역 2년 6월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413010001964


서울역 묻지마 폭행 50대 남성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611/107389793/2

20년 전, 내가 겪은 묻지마 폭행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53003&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여친과 헤어진 분풀이…심야 '묻지마 폭행' 20대男 구속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1061666677

만취 20대, 아파트단지서 여고생 등 '묻지마' 폭행

https://www.yna.co.kr/view/AKR20210621008200065?input=1195m

서울서 한달에 3번, 처음 본 여성 '묻지마 폭행'…"다니기 무섭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62109244940712



특정 조건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테러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하나의 사회적 사실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가에서 그냥 걷는 행위조차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들은 아주 많은 수가 "여성"입니다. 제가 올린 링크가 다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며칠 전에 인천에서 어떤 20대 남자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어떤 여자의 등에 소변을 봤습니다.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고 어느 미친 놈 한명의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식에 체액 테러는 이 전부터 계속 벌어지고 있던 일입니다. 궁금한 이야기 Y나 다른 뉴스들도 엇비슷한 종류의 체액테러 사건들을 계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남자들은 꽤나 많고 피해자 여성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이걸 도촬이나 폭행이나 다른 종류의 성폭력으로 엮어보세요. 얼마나 많은 "테러"들이 여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지. 

물론 이런 사건 때문에 여자들이 집밖을 못나가겠다며 갑자기 울고 불고 하진 않죠. 그러나 어떤 사건을 재수없으면 당할지도 모른다는 긴장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남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불안함이 삶 평생에 걸쳐서 도사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굉장히 불공평하고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들이 대부분 여자에게만 일어난다는 걸, 대부분 남자가 저지른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건 통계나 표가 있어야 발견할 수 있는 21세기 한국사회의 숨겨진 신비 같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뉴스에 진저리게 나옵니다. 하다못해 주변 여성으로부터 이런 일화들을 들은 경험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길을 가는데 자신의 안전을 위협했던 "어떤 미친놈"의 이야기를 안들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실 물어보거나 표를 통해서 수치로 확인해야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냥 너무 흔하게 듣고 보는 일이니까요. 이건 논쟁거리도 아닙니다. 일제 치하에 조선인들은 정말로 불행했을까 그런 걸 묻는 거랑 똑같은거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당연한 사회적 감각들을 잃어버린 것처럼 질문한다면 그 질문에 친절히 대답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양의 인내가 수반되겠죠. 이런 질문은 당당하게 할 수 있거나 대답이 갈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질문이 아닙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그냥 너도 나도 다 아는 사실이거든요. 여기에 대한 표나 통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상한 일입니다.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현실을 조금 더 학술적으로 가다듬으려고 하는 거면 모를까... 세상에는 아주 학술적인 종류의 도표 같은 자료가 없이도 일단 체감이 되는 진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진실을 알 수 없는 미스테리로 여긴다는 건 그 진실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아마 미국 출신의 흑인 친구가 있다면 그에게 "미국에서 그렇게 인종차별이 심해? 난 모르겠던데?" 라고 용감하게 묻지 않을텐데요.

저는 저런 기사들을 굉장히 많이 접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이 만약 트위터에 올라오면, '나도 이런 일을 당했고 그 때 엄청 무서웠다'는 일화들을 몇배는 더 보고 듣습니다. 그 때마다 늘 충격을 받습니다. 이런 일들이 이렇게 자주 일어나고 있구나, 내가 만약 이걸 못봤다면 수천 수만의 여자들이 공유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화를 나는 모른 채로 지나쳤겠구나... 제가 단언할 수 있는데 저런 종류의 사건들은 기사에 안난게 훨씬 더 많습니다. 맥도날드에 배달주문을 시켰는데 밤 12시에 갑자기 남자배달원이 또와서 문을 두드리는 그런 일은 뉴스에 안나옵니다. 하지만 일어나고 있죠. (해당 맥도날드 지점은 그 배달원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유야무야 됐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사회적 감각을 모두가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걸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려하는 건지는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이런 사건들을 맨날 맨날 갖고와서 이 게시판을 도배해버리고 싶지만 그냥 안하고 있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여자들이 이렇게 불행하고 엿같은 인생을 산다면서 제가 나서서 맨날 떠들고 싶진 않거든요. 아마 그런 말들이 다 터진다면 이 게시판은 장담컨대 한 페이지에 열개씩은 여자가 어떤 꼴을 당하고 살고 왜 사회적 약자인지를 체감하게 되는 그런 글들이 채워질 겁니다. 여자가 왜 사회적 약자인지 저는 진짜 시시하게도 아주 뚜렷한 범죄들만 이야기했지 그보다 더 교활하고 치사한 태도들은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 제 동거인은 중학교 2학년때 까지는 키가 150도 되지않는 작은 체구였답니다. 그래서 소위 "삥"뜯기는 일이 한달에 한두번씩 있을 정도로 잦았죠. 학교에가서 특정 불리에게 뜯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으슥한 골목이나 공원에서 서넛모인 불특정한 "형들"에게 뜯기는 거죠. 그래서 키가 훌쩍 자라고 야구를 하면서 단련이 되기 전에는 멀리서 고학년들이 두섯만 모여있어도 가슴이 뛰고 두려워 돌아가거나 다른 지나가는 어른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 기분을 평생 일정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느끼며 살아야한다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을 해보았답니다.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을 자신은 그 경험을 통해 유추한다고. 맨날 남자는 어쩌구 저쩌구 떠드는 근육마초도 그정도 센스는 있습니다. 근데 이제는 약자성을 증명하라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부류들이 라이징하고 있군요. 짜증나는 일입니다. 

      • 너무.... 너무 이상합니다 공감하라곤 안하지만 약자 본인이 약자성을 정성스레 증명해야하는 시대라니..
    • 2030 남자들이 찌질해지는 이유가 이런 사소하고 자잘한 성추행들을 못하게 단속하고 몰카같은 거 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겨서 그렇다고 (진심으로)아우성치는 부류들이 있기 때문이죠. 정말 놀랍긴 합니다만, 페미 때문에 한국남자들 다 죽게 생겼다고 비명을 지르는 걸 (남초 사이트)에서 종종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짜 저긴 딴세상이군. 여초에서는 (성범죄에 맞서서 살아남기 위한)생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남초에서 말하는 '생존'은 그 생존과는 전혀 다른 걸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네 너무 딴 세상입니다..
      • 2030ㅇ,로 한정할 필요도 사실 없지요

    • 저런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보고 꾸준한 관리를 해야할지


      혼자서 컨트롤이 가능한 정상인으로 보고 따끔하게 벌을 주면 정신을 차린것으로 보고 도로 사회에 풀어놔줘야할지 


      제가 괜히 고민입니다.

      • 저도 심정적으로는 배제를 하는데요 그래도 보고 들을 수 있게끔 이런 사회적 감각을 대외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차별이나 혐오라는 것의 토양이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세대나 자란 환경에 따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면 상상력 또한 빈약할 수밖에 없죠.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자신의 세상에서는 당연하니 구태여 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때까지와 달리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을 왜 내놔야 하는지 짜증과 분노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살기도 빠듯한데 '관심 갖고 싶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 '관심'에는 따르는 비용이 있으니까요. 


      제 경우도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배움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갈수록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새로운 이야기들, 다른 이야기들, 내 환경에서는 좀체 접하지 못했던 것들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교 교육이 줄 수 없었던 혐오나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과 공생에 대한 내용들에 배우려는 자세로 접근하느냐 아니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운만큼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많이 중요한 것 같아요.

      •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배우려는 사람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말해도 말짱 꽝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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