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와의 카톡 14 (희비극과 플라톤)

머저리/ 어 누나, 희비극에 대해 설명해주셈.
머저리누나/ 희극은 자기와 독자보다 평균적으로 못난 사람에 대해 과장해서 쓰는 것이고
비극은 자기나 평균적인 독자보다 고상하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 대해 드라마를 입히는 것.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음. 
머저리/ 설득이 되네.
머저리누나/ 작품에 등장하는 희비극이란 건 달과 화성과 금성이 일렬종대로 도열하는 미니 천문쇼 같은 거야 순전히 독자의 지구중심적인 착시인 거고. 
머저리누나/ 어떤 관점에 서봄으로써 일시적으로 자기위치를 확인해보라는 작가의 요청에 응하는 거지.
머저리/ 글쿠나

머저리/ 날도 덥고 심심해서 쉬운 대화체로 된 책을 읽고 있는 중이야 플라톤의 <국가>. 
머저리누나/ 넌 어째서 나이먹어가며 어릴 때도 안 하던 허세떨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냐?
머저리/ 거짓말 아냐. 정말 쉬운 대화체잖아. 이처럼 소박하고 무지막지한 잡담을 오랜만에 대하는구먼.
머저리누나/ 플라톤은 나쁜 제자의 표본이야. 기껏 쌓아올린 스승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를 와르르 무너뜨리면서 박박 우기고 맞장구치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게 귀엽긴하지. 
머저리/ 솔직히 두 분을 보작시면 비글종 부자가 대화하는 만화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긴해.
머저리누나/ 그들에 대한 다른 개론서로 균형을 맞춰보기 바라.

머저리/ 뭐좀 먹었어?
머저리누나/ 놉!

카톡을 닫고 나니, 인간은 자명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또다시 강렬하게 와 박힙니다. 우리는 태어난 자연 상태 그대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죠. 인간이 인간이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절대 불변이 아니라면 인간의 범주는 단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는 우주적 이타주의에서 볼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지만.... 그보다 저는  밥을 좀 묵어야 하는데 말이죠. 냉장고며 딤채며 열어보니 온갖 종류의 먹거리들이 쌓여 있는데 까꿍~ 인사만 하고 닫게 되네요. 그것참.

    • 안먹으면 위가 활동을 멈춰 배가 안곺픈 것이오 먹기 시작하면 더 먹게 되요 보통은 나중에 생의 1/10정도만 나름 세상과 생의 원리를 잠시나마 볼수 있고 그나마 유지하기도 힘드니 비극이라 아니랄수 없으나 새것과 끝의 근원이기도 하려니 합니다,서보므로서는 서봄으로써이고 볼작시면은 맞나?
      • 서봄으로써가 맞죠. 냉큼 수정했어요. 먹는 건 결심 작심한다고 가능한 게 아닌 것 같아요. 20대 땐 아무리 안 먹어도 그런 소리 안 났는데 요즘은 자려고 누워 있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세차게 나요. 그렇게 보채도 음식을 넣어볼 수가 없단다. 미앙~ 진심으로 몸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아요. 코미디가 따로 없어요. ㅋ

        • 심장에 좋다 그래서 요즘은 깐호두 무척 싸자나요 조금씩 먹기 귀차나 갈아서 설탕이랑 섞어서 먹습니다 한번 해봐요 안먹다 설사할까?
          • 집에 호두, 아몬드, 땅콩 다 있어요. 누룽지 끓일 때 갈아서 넣어 먹었습니다만 그것도 이젠 안 넘어가서요. 거울을 피해다니는데 제 몰골을 보작시면 말랐다 정도가 아니라 앙상합니다. 제 몰골 대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 -:

            • 그럼 어쩌려고요 그러다 괜차나지겠죠
    • 어려워요 그리스 인간들은. 아킬레우스가 왜 자꾸 화를 내나 이해하는데 꽤 오래걸렸어요

      • 아킬레우스를 처음 접한 건 제목도 기억 안 나는 어느 영화에서였어요. 아킬레우스와 대결하다가 죽은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거두어갈 수 있도록  '작은 은혜'를 아킬레우스에게 요청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거기에 꽂혔죠. 


        아킬레우스의 결단이 곧 아버지에게 '선물'이 된다는 걸 이해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읽으면서 아킬레우스적 베품이 귀족주의적인 게 아니라, 니체가 비웃었던 동정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작은 것이나마 베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 트로이 아니었나요?

          피터 오툴이 프리아모스,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 오툴은 아주 가슴뭉클하게 만드는 연기를 펼쳤는데 피트는 ㅠㅠㅠㅠ

          저는 you are still my enemy. But enemies can show respect to each other라는 오툴 대사를 좋아해요.
          • <트로이>보다 십년 정도 먼저 나온 작품이에요.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아킬레우스는 좋았죠. 신화에 정통한 학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더군요. 그 작품은 아킬레우스의 무력은 독보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봐요. (거들먹~)
            아킬레우스를 최고의 장수로 인정하고, 꼭 아킬레우스가 있어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명성을 제대로 입증해달까요. 
            • 혹시 제가 밑에 올렸던 펩시 광고가 일리아드를 떠올리시게 한 건 아닌가 싶네요 ㅋ




              트로이 영화의 각본을 데이빗 베니오프가 썼는데 신보다는 인간의 투쟁과 고뇌에 초점을 뒀죠. 나중에 제작하는 <왕좌의 게임>역시 원작의 종교적인 건 빼고 인간군상에 초점.

    • - 혼잣말
      그동안 우리에게 소개된 플라톤의 <대화편>은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느낌이 있었다. 노년의 플라톤이 쓴 작품이 별로 소개된 것 같지 않았다. <파이돈> <심포지온> 정도는 알려져 있지만, 후기 저서는 많이 소개되지 않은 감이 있었다. 
      런데 <소피스테스> <폴리티코스(정치가)> <필레보스> 등등이 희랍어 원전 번역으로 2000년대 초반에 나왔다고 선배가 알려주었다. 몰랐던 사실인데, 그렇다면 이제 최소한 플라톤의 온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법률>이 바로 <국가>의 업데이트 편인데, 훨씬 너그럽고 원숙해진 플라톤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아내와 어린이들, 재산까지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젊은 플라톤은 얼마나 치기만만했던가. <법률>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스승이 필요없어진 것이겠지. 독자적이 된 것. 
    • 플라톤을 읽는데 머저리라니.. 

      • 그가 스스로 정한 닉네임인데 아마도 '자연'을 그 단어로  표현한 것 같아요. 남을 공격하기 보다 자신을 공격하겠다는 마음먹이랄까요. 

    • 그래서 희비극이란?

      • 작가가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유미주의의 상관관계를 미학적으로 짜집기해 버무리려는 근원적인 시도? ㅎ
    • 어릴 때 갔던 독일 식물원Palmengarten에 이런 게시문이 붙어 있었어요. "이 동굴에는 박쥐들이 겨울을 지내고 있으므로 당분간 이곳엔 들어갈 수 없다" 
      형식적이라 하더라도 동물들도 자리를 차지하면 함부로 내쫓지 않는 배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있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 요즘 세상의 각박한 뉴스를 대할 때면 '여기 동물이 있으니, 방해하지 마시오' 라는 그 어구가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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