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부조리에 대해서

제가 입대했을 적에 한참 좌빨뽕(?)에 물들어서 군대라는 억압적이고 부조리한 체제에서 구르게 될 병사들이 서로에 대해 동병상련의 마음과 연대의식을 가진다면 군생활도 해볼만 할 것이다. 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나이브한 기대는 훈련소때부터 무너졌죠. 요즘은 공익이나 상근은 훈련소도 따로 배정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는 다같이 함께 훈련 받고 잤습니다.

당연히(?) 사회에서 좀 놀던 양아치랑 조폭(문신도 있고 등치는 산만한) 출신의 훈련병들이 공익 등 약한 사람들을 타겟 삼아 괴롭히곤 했고 따돌리곤 했습니다.

전 제 앞가림도 벅찬 상황이었지만 괴롭힘 당하던 애들을 뭉치게 했고 적어도 지네들끼리 괴롭히는?(A가 타겟이 되면 B, C, D가 놀리고 B가 타겟이 되면 A, C, D가 놀리는 상황에서) 행위를 멈추게 하고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가해자들과 신경전을 벌이곤 했습니다.

처음엔 이를 성가셔하던 가해자들도 꾀가 생겼는지 자신들이 괴롭히고 따돌리던 애들을 회유해서 저만 따돌리도록 상황을 바꿨고 그때까지 따돌림 당하던 애들은 좋다고 절 배신하고 따돌림에 가세했죠.

왕따 가해를 주도하던 이들과 같은 부대에 배정되었고 그 가해자들은 저에 대한 안좋은 소문을 적극적으로 퍼뜨려 전 부대 가자마자 왕따가 되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가 속한 소대는 후에 후임이 폭력을 신고해 공중분해되는 내무부조리가 심한 소대였고...

전 욕설과 폭력과 비웃음 따돌림 속에 하루하루가 힘겨웠습니다. 제가 입대전 생각했던 나이브함이 견딜 수 없이 미웠습니다. 군대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우선 간부들의 성과주의와 부추김이었지만 그걸 몇배로 악화시켜 악습을 만들고 되물림하는 병사들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죠.

전 병사생활의 절반이상을 관심병사로 보내야했고 제가 당하는 여러가지 폭력에 못 이겨 자살시도도 했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 소대는 폭력을 못 이긴 후임의 보고에 의해 공중분해되고 저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임 동기 후임들은 영창으로 보내진 뒤 타중대로 보내졌죠.

연대고 나발이고 제가 가진 좌빨뽕이 허무맹랑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전 당장 병사들이 제게 아낌없이 쏟아내는 악의를 감당하기에도 힘에 벅찼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제 손에 피를 안 묻히는 것. 제 손을 물로 씻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선임들에게 혼나고 맞으면서도 후임에게 손찌검을 안했고 욕설도 안(제 기억으로는 아예 안했는데 이건 폭력을 안한만큼의 확신은 없네요.) 했습니다. 묘한게...그걸 비웃는 선임은 차라리 이해(?)가 가는데 후임들도 절 무시하고 비웃더군요...ㅋㅋ아 저 선임은 착하니까 막대해도 돼...선임들에게 인정 못 받으니까 무시해도 돼...

그렇게 적어도 나는 내무부조리를 행하지 말자는 신념은 겨우 지켰고 군생활 후반부엔 그나마 말이 통하는 후임을 만나서 우정?도 나름 쌓고 할 일은 하고 전역했습니다...

군대라는 체제는 한국식 사회화를 시킵니다. 강압적인 명에 복종하도록. 폭력에 무감각해지도록. 약자가 도태되고 강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승자독식사회를 수용하도록. 약자를 혐오하고 강자에게 굽신거리도록.

이걸 1년 반에서 2년 길게는 3년이 넘는 시간을 성인 남성들에게 세뇌를 시켜왔죠. 전 입대당시 이념적으로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고 신념이 강했지만 저 혼자의 양심을 지키는 것도 고전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서 체제의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만 많은 사람들을 동정하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억압적 체제를 결정적으로 더 지옥으로 만든 것은 '주적'이라 불리는 간부가 아닌 병사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이 바뀌려면 결국 먼저 바뀌어야 하는 건 개개인의 용기있는 병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비록 군대가는 성별은 아니지만(죄송합니다.) 웹툰과 드라마로 만들어진 '송곳'에서 대사 '찌질한 약자를 위해 싸운다' 가 맘에 와닿더라고요.


      군대에서 고생많이 하셨군요.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들이 애들을 영어수학 공부시켜서 앞날을 닦을것이 아니라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있습니다. 맘이 편하지 않네요

      •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년 반에서 2년 길게는 3년이 넘는 시간"


      => 언제 군복무 하셨는지?,,,



      • 저는 1년 10개월입니다...세대에 따라 짧게는 1년 반남짓 길게는 3년 가까운 시간이란 말을 하려 했어요.
        • 아, 그렇군요.


          제가 듀게에서도 옛날 사람에 속할 것 같은데, 제가 군복무 할 때에는 공군도 3년은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공군도 2년이 안되요.

    • 구조적 문제 해결을 개개인에게 전가하면 좋은 사람은 따로 있죠.

      • 시스템의 문제인 건 저도 잘 압니다. 밑에서부터의 개혁과 시스템 자체의 개혁이 함께 동반되어야 하죠. 말했다시피 구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사람들을 이해하고 동정합니다. 다만 군대를 지옥으로 만드는 주체또한 병사들 스스로라는 불편한 진실은 마주해야 합니다.
        • 철저한 명령체계의 군 조직에서 유독 군 행동강령만 안지켜지는 건 지휘자 책임입니다. 한국의 권력집단의 문제점은 밑에 부기우기님 댓글처럼 재량권이 커서 생깁니다.

          •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시스템의 중요성은 저도 잘 알기에 이쯤하겠습니다.
    • 많이힘드셨겠어요. 글을 읽는데 고통이 그려지네요ㅜㅜ 혼자 양심을 지키는일이 얼마나 고단했을지요. 같은 생각을 하는 단 한명의 사람만 있었어도 덜 외로웠을텐데 되려 약한선임이라고 무시하였다니..인간의 뻔뻔함이 제한없이 통용되는 그곳에서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 그래도 글에 있는 후임이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녀석이라 이해받고 위로받으며 남은 군생활을 했어요. 감사합니다. (여담이지만 저 후임을 사회에 나와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잠깐이지만 연락도 하고 지냈습니다. ㅎㅎ)
    • 제가 군대에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군대라는 곳이 생각 외로 시스템적인 제한은 적고 반대로 개인의 재량에 맡겨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그만큼 선량한 사람들이 모인 부대는 부조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람의 선의에 기댄 구조는 무너지기 쉬운 법. 이번 공군에서 벌어진 일이 그 최악의 예이죠. 저는 군대든 더 큰 사회든 인권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양심에 맡기지 않고 시스템이 좀 더 확실한 규정을 가지고 있어야 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개개인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게 시스템의 구축이긴 하죠. 쓰신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 결국 인류는 민주주의로 인해 멸망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되고나서 제 친구가 한 말-




      인간 자체의 성장은 완벽한 시스템의 구축보다 더 중요합니다. 


      욕망이와 도덕이가 제도라는 끈으로 다리를 묶고 2인3각 달리기를 하는데 끈 자체를 세게 묶어도... 결국 욕망이가 문제 아니던가요?



      • 둘 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아 정말 고생하셨군요 ㅠㅠ 군대를 혼자 바꾸는 건 정말 말도 안됩니다 너무 고생스러운 군생활을 보내신 적당히살자님께 눈물의 위로를...

      • 감사합니다...제가 너무 순진했죠. 멀쩡히 살아나온 것만으로(사실 멀쩡히는 아닙니다.) 다행이긴 합니다.
    • 동감합니다


      기껏 부조리 없애놨더니 저 전역하고 바로 3개월 후임이 부조리 부활시켰다는 말을 듣고는 어이가 ㅎㅎㅎ

      • ㅎㅎㅎ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했는데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면 그 선한 선임이 사라지는 순간 도로묵이 되지요.
    • 사실 군대 가서 집합, 얼차려, 구타 거부하고 없애보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의외로 되게 많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많았고 저도 그랬거든요.


      근데 나아중에 보니 저랑 친했던 제 후임들이 저 몰래 자기 밑으로 집합도 걸고 얼차려도 주고 그러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니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로병장님, 이렇게 안 하면 소대가 안 돌아갑니다!' 하하...;






      근데 근래에 제대한 젊은이들(...)과 이야길 나눠 보니 요즘엔 정말로 예전 대비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상태라는데. 그 사람들 경험담으론 핸드폰 사용이 허가된 게 되게 컸다고들 하더군요. 일과 후에 집중해서 할 즐거움이 생기니 쓸 데 없는 곳에 쏟을 에너지가 줄어들었나봐요. ㅋㅋ 물론 제 주변 소수의 사례이니 일반화 하겠다는 건 아니구요. 그래도 뭔가 그럴싸합니다.

      • 핸드폰 사용허가가 실제로 부조리감소효과가 있다는 뉴스를 봤어요. 욕망이를 잘 컨트롤한거죠. 

      • 로병장님이 집합을 안하시니 소대가 안돌아가지 않습니까...젠장...

        뭐 이런거 아닐지...^^ ㅋㅋㅋ
      • 핸드폰 허가는 신의 한수였던 건 맞습니다.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 톰 크루즈, 데미 무어, 잭 니콜슨 나왔던 '어 퓨 굿맨' 이 이 문제를 법정 드라마로 다룬 기억이 납니다. 


      우린 어떤 의미에서 전 국민의 문제인데 이 문제를 본격 다룬 영화가 생각 안 나네요.


      개인의 소양에 비중을 더 두면 해결이 요원해지고 시스템이 잘 작동하도록 위에서부터 보여 주고 본보기가 누적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둘 다 중요하다고 해야 했는데 너무 개개인의 양심만 종용한 것 같아 반발이 심하네요. 글을 잘 못 쓴 것 같습니다.
    • 군조직 특성상 상명하복이 그 어떤 원리, 규율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인권, 민주 이런 단어들이 스며들기가 어려운거죠.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왼쪽으로 가는 후임이 있다면 사회에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군조직 내에선 즉결처분이 최선이에요. 내비두면 부대원 전체가 몰살되니까요. 이등병시절 직접 구타당하는 것보다 참기 어려운게 뭐냐면 나의 실수로 인해 나와 상관없는 부대원들이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는 것인데, 고참들이 이런 걸 하는 이유가 나의 실수하나로 내 전우들이 죽을 수 있다는다는 것을 피부에 각인시키려는 것.
      • 그렇게들 포장하더라구요. 실제 전쟁나면 동료병사와 간부부터 안 쏴죽이면 이상한 상황입니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다!라고 진지하게 교육시키는 게 병사들인데요.
        • 사실 저도 예전엔 님과 같은 생각이었어요. 허나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죠. 집에 강도가 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니면 LA폭동때처럼 치안이 부재인 상태라고 생각해보세요. 가족들,이웃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더라도 이런 경우는 내가족,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서로 연대하게 됩니다. 살려면 연대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더우나 추우나 밤이나 낮이나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결과라는 거.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1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6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5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9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4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4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0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7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5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9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6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8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