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과자 워스트 '산도'

즐거운 과자 이야기 생각하신다면 뒤로가주세요. 요즘 우울한 제 기분이 반영되어 글 분위기가 어둡습니다. 


산도를 제가 돈 주고 사먹은 적은 없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흔한 과자였기 때문이죠. 집에 가면 항상 있는 과자.

아버지는 자주 산도를 사오셨습니다. 퇴근하는 그 분의 한 쪽 손에 봉다리가 있다면 거의 매번 산도였습니다. 작은 실망들이 매번 쌓였죠. 왜 맨날 산도지. 산도지옥인가. 

저는 매번 확실하게 실망의 어필을 했습니다. 나는 00 좋아하는데요. 산도는 이제 그만 먹고 싶어요. 등등

그래도 그 실망이 별거 있겠습니까? 그래도 명색이 과자인데. 매번 실망했지만 매번 먹었어요. 맛이 없진 않았거든요. 저는 아이였구요. 

산도가 뭔지 아시죠? 샌드위치 쿠키인데 일본어로 산도입니다. 쿠키 두개 사이에 크림 들어있는 그 과자. 

꽤 옛날 과자라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한 때 국민과자였습니다. 


몇년 전, 진열대에 놓여져 있는 산도를 보고 어린 시절 작은 실망들이 다시금 생각났고 어른이 된 시선으로 복기해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내가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매번 산도를 사오셨을까? 

악의없는 무관심이었을까? 실망하는 내 모습에 어느 정도는 고약한 심보로 사오신걸까?  의식하지 못하는 이기심? 아 모르겠다. 그 사람은. 정말 어떤 사람인건지...

어른의 시선으로도 잘 모르겠더군요. 어쨌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진열대의 산도를 사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 좋아하는 산도 사왔어요.'


굉장히 당황스런 얼굴로 저를 한참을 쳐다보다가 나직하게 말하더군요. 


'....네가 좋아하는거지. 난 산도 싫어해. 가져가라'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기억이 잘못된건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건지. 서로의 역사를 되짚어 부질없는 과거의 진실을 찾고 싶지 않았어요.

단지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유일한 진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두 사람은 산도를 싫어하고 있구나. 였어요. 그게 유일한 진실이었죠. 

관계가 잘못되는 것은 인과적이지 않습니다. 운명적이고 직시적입니다. 우리 둘의 운명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 둘 다 싫어하는 그 산도였습니다. 


집으로 가던 중, 들고 있는 산도를 버리려고 했다가 문득 한 봉지를 뜯어서 먹어보았습니다. 

미묘한 맛이었어요. 리뉴얼을 한 건지 맛이 세련되졌다고 해야하나. 먹을만 하더군요. 



편안하고 싶어요. 요즘에는 특히. 힘들군요. 이렇게 한가득 내뱉으면 조금 나아지려나. 

    • 네 우울할 땐 이렇게 속마음을 이야기 하면 한동안 마음이 다스려지죠 조금은 우울한 이야기지만 남이니까 재밌게 들었어요 단걸 너무 좋아해 아니 과자는 다 달지만 산도 아주 좋아했어요 속 크림만 이빨로 긁어먹을 때도 있었고,살다보니 지금은 어떤 과자도 안먹습니다 밥을 거의 안먹었는데 지금은 밥만 먹어요
    • 마음이 추우신가요


      저도 산도 진짜 싫어했어요. 국희샌드도 싫었어요

    • 어렸을때에, 제가 먹기 꺼리던 돼지비계를 엄마가 좋아했어요.


      먹기 꺼리던 동태찌개의 머리를 엄마가 좋아했지요.


      또 닭 모가지를 엄마가 좋아했지요. 


      요즘은, 고기도 살코기를 좋아하시고, 동태도 몸통을 좋아하시죠.


      치킨은 날개만 드세요.


      엄마의 입맛이 바뀐건지, 상황이 변한건지(제 기억은 바뀌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그때와는 다르게, 가슴살 위주로 먹고...나중에서야 남겨진다면, 다리나 날개를 먹죠.


      그리고, 요즘은,,,제가 어려서 좋아했던 산도등의 과자를 부모님이 좋아하세요.









    •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을 사랑할수 있다는 말은 참 잔인하게 들리기도 하죠. 그,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뭐냐고 물으시던 누군가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 그냥 그정도의 세심함은 없던 아버님이신 건 아닐까요ㅎ


      저만 해도 어린시절 그냥 아버지 퇴근길에 당신 마음대로 과자 사오셨던 기억인데, 과자 종류는 항상 비슷비슷했음에도 그게 또 아버지 취향이라고 하면 어리둥절하실 듯 합니다..


      뭐 그 당시에 손에 집힌 이유가 있었겠고, 사람이 생각없이 집는 것도 결국 패턴이 있게 마련이라..


      그럼에도 사오셨다는 사실만으로는 자식에 대한 생각인데, 거기서 더 나아간 세심함은 모자랐던 거죠.


      본인이 무심하게 자주 사오면서도 긴 시간이 흐르면서 그걸 chu-um님의 취향으로 진짜 오해하셨을 수도 있다는 소설(?)도 덧붙여봅니다..




      이건 chu-um님의 아버님과의 기나긴 역사를 모르고 마음대로 끄적인 거라..


      그냥 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겠고.. 무례였다면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1위-7위의 과자를 아직 말씀 안하신...ㅎ



    • 제 경험에도 어떤 과거의 일을 거기 얽힌 사람과 얘기했을 때 전혀 상반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었어요.


      산도과자의 경우 반복되었다고 하시니 아닐 확률이 높지만요. 


      당연한 기억으로 그 때문에 괴로움을 안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 기억이 믿을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일도 있더라고요. 


      저도 어릴 때 산도 안 좋아했어요. 내 돈 주고는 안 샀던. 

    • 산도는 딸기맛이 맛있......;;;;

    • 한 때, 일본 잔재 몰아내기로 산도 이름을 '샌드'로 바꾼 적이 있죠. 관련 CF도 만들고.. 그런데 어느새 슬쩍 산도로 회귀하더군요. 판매량이 급감했었나 봅니다.
    • 단편소설 같군요... 작은 오해가 모두의 오랜 고통(?)을 만들다니 에고...


      저는 산도 좋아하는데 산도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신기합니다...
    • 진짜 엽편 소설 읽은 느낌이예요. 


      아마 산도가 가장 싸고 가장 양이 많았을 겁니다. 제가 요즘 그런 거 사거든요. (먼 산...)

    • 아버님의 기억이 왜 잘못되었을까 궁금해 하다가 chu-um 님이 말로는 산도 그만 먹고 싶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만 먹지 않고 매번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님 입장에서는 chu-um 님이 산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놓으면 매번 먹으니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가 보다 생각하게 되고 매번 사놓을 때마다 매번 먹으니 어느 정도는 좋아하나보다로 


      해석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른들은 먹고 싶어도 이런 거 안 좋아하니까 사오지 말라고 인사말을 하는 적도 많으니 실제로 먹는가 안 먹는가로 


      판단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아이가 일부러 사양하느라 싫다고 말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으셨겠지만 


      그래도 사놓으면 잘 먹으니 산도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셨던 게 아닐까 싶네요. 


      저희 어머니도 제가 싫어하는 거 맨날 먹으라고 가져오시는데 제가 억지로라도 먹으면 계속 가져오시고 


      싫다고 아예 손도 안 대고 놔두면 그제서야 좀 멈칫하고 안 가져오시더라고요. ^^ 

    • 산도는 단지 악연의 겹겹이 쌓인 사적인 오브제입니다. 미술관에 산도가 하나 놓여져 있다면 전 풀썩 주저앉아버렸을거에요. ㅎㅎ

      어쩌면 내 삶이 지금보다 더 찬란할 수도 있었겠다는 치사한 마음이 들어요.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은 없으면서도 괜히 누군가의 탓을 하게 되네요. 이렇게 손쉬운 오해를 하면서 힘겹게 살아가는게 꼭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어쩔수없음에 매번 절망하면서 또 한편 기특하기도 하고...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3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7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4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89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0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5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6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3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7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1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4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4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0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3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