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나이트 잡담

니트족을 위한 영화같습니다.

주인공은 수동적, 맨 처음 찬물세례받고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하고,

"Christ is born"이라고 말하며 그를 깨우는 것은 여친. 깨어나는 곳은 매음굴이죠. r그 다음 여친이 "you a  knight?"라고 묻자 주인공은 "not yet"이럽니다. 그리고 I’ve got time. I’ve got lots of time. 전에 <반지의 제왕>팬픽에서 아라곤이 맨날 "still not a king"이라고 투덜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노오력은 안 하며 허세로 가득 찬 주인공입니다.  여친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수동적인 주인공을 움직입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데서 시간적 배경이 성탄절임을 알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일대기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죠. 어머니가 빠져서 간 자리에서 왕은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니트족이라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하고 왕비가 "아직은(yet)"이라고 하면서 주인공을 움직입니다.이 때 녹색 기사가 등장합니다. 화면과 교차되는 게 어머니가 다른 여인들과 함께 기도하고 뭔가를 쓰는 장면,그리고 녹색기사가 편지를 읽는데 마치 어머니가 준 편지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시작하고 성문을 나가는 두 남녀가 트로이 전쟁의 파리스와 헬렌이라고 하네요. 이 둘의 트로이 전쟁 후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죠,영웅들의 이야기 대신. 저는 이게 영웅들의 전설의 시대가 끝나고 평범한 사람들의 시대로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네요. 왕과 왕비 역시 자식이 없고 쇄락해 가는 모습이죠. 



Look, see a world that holds more wonders than any since the Earth was born. And of all who reigned o’er, none had renown like the boy who pulled sword from stone. But this is not that king… (HOARSELY) …nor is this his song. Let me tell you instead a new tale. I’ll lay it down as I’ve heard it told. Its letters sent, its history pressed, of an adventure brave and bold. Forever set, in heart, in stone, like all great myths of old.



어쨌든 허송세월하던 남주는 녹색기사를 만나러 가기 위해 떠나는데,이게 다 본인의 적극적인 추진이 아니라 떠밀림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날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는 것도 여친입니다. 그 사이에 남주의 이름은 유명해지고 꼬마 팬들도 따라다니는데 이 꼬맹이들을 무시합니다. 한 꼬맹이가 시무룩해져서 한동안 서 있는 장면이 있더군요. 
"친절"이라고 제목이 붙은 장에서 낯선 이가 길을 가르쳐 주지만 그 친절함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하지 않죠. 낯선이에게 친절함을 베풀 정도의 아량도 없는 인간입니다. 그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 전쟁이 있었고 왕은 혼자 960명을 죽였다는 신화가 떠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신화, 전설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가 계획을 짜고 상황에 떠밀려 니트족 주인공이 나선 겁니다. 어머니가 널 보호해 줄 거라고 준 녹색 허리띠를 강탈당하고  여자 귀신을 만납니다. 여자 귀신이 머리를 건져 달라고 부탁하자 그 보답으로 뭘 줄 거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귀신 반응이 "why do you ever ask that?" 궁지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같은 기사도의 미덕(virtues)따위는 남주에게 없습니다. 실제로 길을 떠나기 전 왕비가 축복하면서 기사도의 미덕을 말합니다("And the five virtues of a knight light your way")


그런데 이런 성격이 계속 갑니다. 저는 이게 영화 마지막까지도 계속 된다고 봅니다. 영웅담은 바라지만 그에 맞는 덕성은 갖추지 못 한 인물이고 중간에 만난 성주의 아내 - 알리시아 비칸더가 1인 2역- 는 그가 마음에 둔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자 당신은 기사가 아니라고 하죠.

여차저차해 녹색 기사를 만나지만  도망가고 성으로 돌아와 왕이 죽으니 자연적으로 왕이 되고 창녀인 여친이 낳은 아이를 마치 교환이라도 하듯이 돈 몇 푼 던져 주고 빼앗고 정략 결혼을 하고 전쟁을 일으켜 그 아들은 죽고 말고 온 백성의 증오와 멸시를 받고 적이 쳐들어 오자 그제서야 그를 지켜 주던 녹색 허리띠를 뺍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 다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녹색 기사에게 잠깐 이라고 외치고 녹색 허리띠를 벗고 그의 일격을 받죠. 이 때서야 어머니의 보호 안에서 내내 수동적이었던 그가 자신의 한계마저 인식하고 스스로의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어머니의 존재와 손길은 내내 느껴집니다. 초반에 어머니가 모임에 가지 않을 테니 네가 가서 보고 온 것을 들려 주라(tell me what you've seen)고 하는 데서 아들의 영웅담을 만들기 위한 세심한 손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교가 같이 공존하는 시대이며 어머니 역시 강한 마법을 구사하는 여성입니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게 어떤 계획을 짜는 것과 관련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들이 왕이 될 수 밖에 없긴 했지만 아들의 도량이 부족해 비극을 일으키는 것을 어머니는 옆에서 보게 됩니다. 여친이 했던 " 왜 꼭 위대해져야 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안 돼"?라는 말은 주인공의 이런 허세와 부족함을 찌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죠. 영웅담은 전해지지만 진실은 모릅니다. 과연 영웅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는지 등등. 성주의 아내 역시 어떤 이야기들은 더해지고 편집되고 그런다고 하죠. 성주 역시 묻습니다. 모험 마치면 사람이 변하느냐고?


중간에 동행하는 여우는 성주의 집 안에는 없지만 성주의 사냥 그림 안에 나옵니다. 여우는 나중에 녹색기사를 만나러 강을 건너기 전 사람의 말로 "행복한 결말은 없다"라고 경고를 하고 주인공은 창을 던져 그를 쫓아 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인공이 왕이 된 다음 보는 그림에 남자의 얼굴을 한 여우가 있죠. 저는 이걸 여자의 얼굴을 한 표범으로 잘못 봤더군요. 



주말에 세 번을 보고 자꾸 의미를 곰씹게 되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한 공간 내에 고대, 중세, 근대가 겹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어머니 캐릭터는 감독의 어머니에게 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감독이 어머니와 오래 살았는데 어머니가 자신을 쫓아냈다네요.

음악이 <더 위치>음악 담당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 이 영화 무척 좋으셨나봅니다.


      왓챠에서 보셨다고 하신 것 같은데 극장이 아니라 아쉽진 않으셨나 궁금합니다.  

      • 스나이더 컷도 집에서 봤지만 영화관이 아쉽지 않았어요.병크 몇 번 당해봐서요. 취식금지해도 먹는 사람은 먹어요.
    • 영화 엄청 좋았지요. 데브파텔 정말 이런 연기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 그린나이트와 약속한 그날이 오면 용감하게 녹색띠를 풀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잔상이 긴 영화였습니다. 

      • 내내 수동적이고 찌질하고 별볼일없는 인간 역을 잘 하더군요. 성주로 나온 조엘 에저튼은 하는 역마다 잘 녹아드는 것 같고요.




        <브라운 신부 전집>의 <부러진 칼>이라는 단편에 어떤 장군의 무용담과 동상이 나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고 한 개인의 과오를 덮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한 게 진실이었지요. 저는 이 영화 보는 내내 그 단편을 떠올렸어요.




        <듄>과 <라스트 듀얼>은 패스해도 아쉽지 않지만 이 영화를 왓챠에서라도 본 것은 횡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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