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올모스트 페이머스

날밤을 새우는 날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어제부터 시작된 윗분들과의 머리 아픈 논쟁이 오늘도 이어질 예정이라, 아무 작정없이 잠이 달아나버리고 말았어요. 그런데 오밤중에 난데없이 카메론 크로우의 <올모스트 페이머스>가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한 분야의 권위자가 햇병아리에게 충고하던 장면이요.

심드렁하고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품성의 음악평론가 래스터 뱅스는 굉장히 유명한 록비평가이죠. 음악전문지 '크림'의 편집장이자 1970년대에 이미 록큰롤의 사멸을 예감하던 그는 크리틱을 지망하는 소년 윌리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알아둬. 평론가는 가수와 친구가 될 수 없어. 가수는 너를 모셔다가 밥 사주고 약도 같이 하고 여자와 놀게도 해줄거야. 하지만 그들이 너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한가지뿐이야. 너를 통해 자신이 신神이 되는 것.
세상에는 정직하고 따뜻한 글만 써도 되는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평론가는 정직하면서 잔인해야 돼. 평론가로서 올바른 명성을 쌓으려면 정직함과 잔인함을 가져야 돼."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래스터가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체험적인 진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Rreal world' 에서나 들을 수가 있는데, 요즘은 그런 세계를 함께 구성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참으로 힘들잖아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한 사람의 크리틱 critic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크리틱은 세상의 등에(곤충)처럼 성가시기 짝이 없는 존재이기 십상인데 세상은 왜 그런 존재를 허락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밥벌이하는 한 직업군 이상의 무슨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그저 따뜻하고 관대한 시선으로 옥석을 가리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한다면, 크리틱이 대중과 구별되는 점이 있기나 한가요. 그 또한 제대로 작동되는 세상은 아닌 거겠죠. 

회사 일로가끔 보스/상사들의 결정에 정직하고 잔인한 비평을 감행하곤 합니다. 아무도 안 하니까 제가 합니다. - - 어제 그럴 일이 있었는데, "당신은 우리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군" 으로 시작되는 반론을 받았습니다.
비평의 대상자에게서 나온 반론은 영향력도 설득력도 없어서 볼멘 항변은 덧붙이지 않았어요.  물론 누구나 자신에 대한 평가의 강도를 자연히 깨닫기 마련입니다. 불쾌하셨겠죠. 그렇지만 신뢰가 쪽박에서 물이 줄줄 새듯 센치멘털하게 일방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 거잖아요. 그것은 표나지 않게 관계의 배면에 공평하게 깔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또 충분히 정직하고 잔인하게 그분들과 맞설 수 있을까? 잠을 놓친 이 새벽까지 줄어들지 않은 고뇌이자 부담입니다. 
어릴 때 읽었던, 누구의 말인지 기억 안 나는  이 조언이 떠올라서 굳이 적어둡니다.
"젊은이는 기성세대에게 환상을 갖거나 그들을 복제해서는 안 된다. 차별하는 권위에 복종하지 마라. 차이만이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위해 힘을 쓰는 게 청춘의 몫이다. 세상의 변화는 구경꾼이나 감상주의자가 아닌 비평가에 의해 시도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의식조차 못할 정도로 느리게 온다. "

    • 그렇게 가는 세상을 응원 큰소리 없이구경만 하니 항상 세상에도 누구에도 미안해하며 살죠 하지만 세상 구석구석 안박히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또 한자리 끼려고 난 저렇게 말하고 사네요 유명하니 봤을텐데 전혀 영화가 기억이 없네요
      • 세상에 부채감 없는 사람이 있나요. 뛰어난 개인이 이뤄내는 변화도 결국 사회, 자연, 역사, 타자들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잖아요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자신의 업적에 대해 건강한 부채감을 드러냈잖아요. '나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난장이이다.'
        (속닥속닥. 아주 드물게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오만방자한 사람이 있긴 해요. - -)
    • 읽다 보니 전에 몇몇 외국 배우들 난 별로다라고 제가 쓴 글에 그 사람들 인터뷰 이런 거 보면 자의식 강한 사람들이라고 가짜뉴스 퍼뜨리지 말라고 댓글달린 적 있었던 게 기억나요. 매체 인터뷰 좀 읽어 보고 그 사람들이 자의식 강하다는 건 어떻게 아나요? 그 사람들과 속내 터놓는 사이도 아니고 관심법, 염력소유자도 아니면서요. 인터뷰야말로 그 대상을 신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죠. 유명인들 말을 성경봉독하듯 신봉하라는 건지. 그런 댓글이 듀게에서 달렸다는 게 놀랍더군요.

      요새는 특정 영화에도 자아동일시하며 조금이라도 나쁜 말 한다 싶으면 상대를 자신이 적대시하는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하는 행태 보면서 우상 섬기지 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싶어요. 


      저는 배우들이나 유명인들이 자기가 하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그럴 듯 하게 들리는 말들 늘어놓는 경우가 꽤 있다고 생각해서 인터뷰나 자서전에 제 시간 허비 안 해요. 차라리 작품을 보고 말죠. 


      한국 소설에 달린 평은 다 주례사 비평이라 안 읽는데 한국 소설 자체를 안 읽은 지 10년은 된 듯 하네요.


      올머스트 페이머스에서 케이트 허드슨이 눈물 흘리는 장면이 좋았어요, 프란시스 맥도널드가 연기하는 어머니 역도 무지 좋았고요.say anything에서 존 큐잭이 i gave her my heart and she gave me a pen의 연장선같았어요.


      • 공중을 나는 물고기 '날치' 아시죠.   따뜻한 바다에 살고, 가슴지느러미가 새 날개처럼 큼직해서 위험한 순간에는 불쑥 물 위로 튀어나와 날아가는 flying fish 말이에요.
        고래를 비롯해 대부분의 물고기가 ‘좌우요동’인 것과 달리 재미있게도 ‘상하요동’을 해요.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며 살죠.
        누군가의 공격을 받으면 날치처럼 이렇게 날아보서요~ (간만에 찾아보는 영상이에요. 강추!)
        https://www.youtube.com/watch?v=bk7McNUjWgw 
        • 날치는 유전자,골격,운동신경이 다르겠죠?


          장자 소요유가 생각나서 찾아 봤어요



          “초목이 나지 않는 불모지의 북녘에 검푸르고 어두운 바다가 있으니 그것은 하늘의 못, 天池입니다. 거기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넓이는 수 천리이고 그 길이는 아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새가 있으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합니다.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 한 쪽에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습니다. 〈이 새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羊의 뿔처럼 빙글빙글 선회하면서 9만 리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구름 위로 뚫고 나가 푸른 하늘을 짊어진 연후에 남쪽으로 가기를 도모하며 바야흐로 남쪽 바다를 향해 떠나가려고 합니다. 메추라기가 이것을 비웃으며 말하기를 ‘저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겠다고 하는 것인가. 나는 힘껏 날아올라도 몇 길을 지나지 않고 도로 내려와 쑥대밭 사이를 날아다닐 뿐이다. 이것이 또한 내가 날아다닐 수 있는 최상의 경지이다. 그런데 저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9만 리 꼭대기까지 올라 가〉는 것인가.’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이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5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6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9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5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3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9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3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30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41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2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8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90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