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 아놀드옹이 사탄을 막 두들겨 패는 영화 '엔드 오브 데이즈'를 봤습니다

 - 1999년작입니다. 오컬트+액션이라는 누가 생각해냈을지 모를 장르구요. 런닝타임은 2시간 1분.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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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포스터는 세기말 갬성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상대평가로 더욱 그런 생각이 들구요. ㅋㅋ)



 - 때는 1999년 12월 말이에요. 어르신들은 다들 기억하고 계실 세기말 난리통 분위기의 뉴욕이 배경이죠.

 그러니까 대충 이런 설정입니다. 1979년에 여자 아이가 하나 태어나요. 영문은 모르겠지만 암튼 얘는 20년 후 지상에 내려온 사탄과 섹스를 한 후 세상을 멸망시킬 아이를 임신할 운명입니다. 나름 창의적으로 변태스런 설정이네요.

 그리고 20년후 뉴욕. 어떤 사건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아침마다 음식 쓰레기 쉐이크를 만들어 먹는 프로 경호원 아놀드씨가 등장하구요. 자신의 경호 대상을 저격하려는 놈을 막아낸 후 뭔가 상황이 괴상망측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닫고 탐정 놀이를 하며 돌아다니다가 이 세상의 운명을 건 영적인 배틀에 휘말리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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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조금 뜨다가 망했나... 싶었던 로빈 튜니는 한참 뒤에 '멘탈리스트'로 그래도 흡족한 경력을 만들었죠.)



 - 시작부터 바보 같은 이야기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오컬트물이라뇨. 장난합니까? ㅋㅋㅋ

 일단 아놀드 하면 근육 액션 아니면 그 이미지를 활용한 코미디 정도가 커버 범위인 배우였고 세상 사람들 다 그걸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뭐 크리쳐물도 아니고 오컬트. 그것도 신과 악마의 싸움에다가 아놀드를 던져 넣을 생각을 하다니. 그냥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기획이었던 거죠. 그냥 제 멋대로 망상을 펼쳐 보자면, 슬슬 액션 배우로서 한계를 느끼던 아놀드가 뭔가 좀 변화를 주고 싶었고. 영화 제작진은 어쨌거나 기본적으론 흥행 보증 수표였던 아놀드가 출연한다면 손해볼 건 없을 것 같았고. 그런 이해 관계가 만들어낸 기획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사연이야 어쨌거나 망한 기획이었다는 건 변함이 없죠.

 그래도 어떻게든 손익 분기점은 넘겼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아놀드의 티켓 파워는 입증한 셈이 됐네요. 영화 퀄리티를 볼 때 이딴(...) 영화가 제작비를 1억 달러 넘게 들이고도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은 아놀드의 티켓 파워 덕이라고 밖엔 볼 수가 없거든요. 물론 실제로 1999년 홀리데이 직전에 개봉한다는 기획 덕도 조금은 봤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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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탄 발사기로 사탄 물리치는 영화를 또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 핵심은 이미 윗 문단에서 다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구요. 어쨌든 글 적기 시작한 김에 굳이 각론으로 들어가자면... 시나리오가 제일 문제였습니다.


 이게 오컬트도 보통 오컬트가 아니라 세계 멸망, 우주의 종말을 다룬 오컬트잖아요. 그럼 당연히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를 그럴싸하게 설명해서 바탕을 깔아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게 없거나, 있으면 저엉말로 허접해요. 예를 들어 운명의 그 여자가 왜 운명의 여자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구요. 그 여자가 그 여자라는 걸 바티칸에선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곧 바티칸이 보낸 비밀 사제단이 이 여자를 죽여 없애려고 하는데, 이 양반들은 종말 직전까지 뭐하고 있다가 왜 때문에 이 타이밍에 난리인지도 끝까지 안알랴줌이에요. 악마도 그렇죠. 여자를 임신 시켜야 하니 인간의 몸을 택해서 들어가야 한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렇게 인간이 된 상태로도 온갖 초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놈이 어째서 그렇게 번거로운 길을 택해서 스스로 고생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구축에도 정말 완벽하게 실패합니다. 적고 나니 앞문장이 좀 적절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냥 캐릭터 구축을 하려는 노력 자체가 보이질 않아요. 소재만 툭하니 던져져 있고 디테일이 아예 없는 거죠. 당연히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할 포지션인 악마 숭배자 리더 양반은 중반에 거의 개그에 가까운 장면으로 급퇴장하고. 아놀드가 구해야 하는 여자분은 그냥 '나 무서워요. 나 살려줘요.' 말곤 시작부터 끝까지 하는 일이 없어요. 막판에 나름 드라마를 연출해야할 아놀드의 동료나 형사 반장님도 아무런 디테일이 없다 보니 그냥 끝까지 쌩뚱맞기만 하구요. 결정적으로 주인공 아놀드 아저씨에게 조차도 디테일이 없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신을 안 믿는다, 그냥 이걸로 끝이에요. 심지어 이 양반이 뭣땜에 그 여자를 구하겠다고 그 난리를 치는지도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주인공, 시나리오의 신이 이끄는대로 달릴 뿐이다!' 뭐 이런 느낌.


 그러니까 일단은 세계 종말 오컬트 영화로서 분위기가 아예 안 잡혀요. 그리고 그렇게 분위기가 안 잡힌 가운데 바티칸, 악마와 그 숭배자들이 다 함께 이해 불가능의 뻘짓만 거듭하는 가운데 우리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님께서 고뇌하는 히어로의 내면 연기를 선보이려 몸부림치고 계신데 시나리오는 하나도 안 도와줍니다. 그러니 이게 웃기겠습니까 안 웃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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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될 필사의 내면 연기를 맛보시오!!!)



 - 영화 꼴이 이렇다 보니 초반부터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냥 코미디로서 즐기게 됩니다. 근데 그쪽 방향으론 꽤 괜찮았어요.

 불길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기다렸다는 듯이 콰콰쾅!!! 하고 하늘로 솟구치며 폭발하는 90년대 액션 영화 자동차들이라든가. 이상할 정도로 앙증맞은, '사랑의 열매'랑 닮은 바티칸 비밀 사제단 심볼이라든가. 악마가 들린 것도 아닌 걍 평범한 악마 숭배자 아줌마에게 신나게 쥐어 터지는 아놀드 아저씨의 보기 드문 모습이라든가. 온갖 초능력을 다 쓰고 총알도 소용이 없는데 높은 데서 떨어뜨리니 막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악마님이라든가... 그리고 가장 웃겼던 건 바로 클라이맥스였어요. 이게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정각에 바로 악마님이 임신을 시키셔야 하는 건데. 긴장감을 주려고 막 '12월 31일 밤 11시 57분' 이런 자막을 띄우거든요. 근데 그럼 이미 늦은 거 아니에요? 3분 안에 잡아서 임신을 시켜야 하는데 장소는 길거리란 말입니다. 그럼 언제 잡아서 언제 어디로 끌고 가서 거사를 치르나요. 그냥 길바닥에서 바로 하는 과감함을 보인다고 해도 3분 안에 끝내야 하는데 우리 사탄님께선 설마...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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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십자가라니!!!)


 - 글을 끝내기 전에 예의상 괜찮았던 점, 좋았던 점도 하나씩만 얘기하고 마무리하려구요.


 일단 액션은 사실 '괜찮습니다'. 막 좋은 건 아니고 그냥 괜찮아요. 앞서 말했듯이 이게 무려 제작비 1억달러짜리 프로젝트란 말이죠? 그리고 피터 하이암스가 그렇게 막 무능한 감독도 아니었구요. 스턴트를 활용한 라이브 액션 느낌이 물씬 나는 도입부의 헬리콥터 액션도 괜찮았고 이후로 이어지는 총격 액션들도 다 평타 정도는 해줍니다. 또 요즘엔 드문 90년대 액션 분위기 같은 것도 느껴져서 좋구요. 또 제작비 파워 덕에 나름 군중씬 같은 것도 그럭저럭 볼만하게 연출이 돼요. 


 그리고 가브리엘 번이 연기한 악마는 좋습니다. 약간 '데블스 에드버킷'에서의 알 파치노 연기랑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깊이 생각 안 하고 그냥 시종일관 과장 쩔고 허세 넘치게 악마 흉내를 내는 거죠. 허접한 시나리오 덕에 괜찮은 대사빨의 지원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연기이고 캐릭터였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이 영화에겐 넘나 과분한 연기였으니 더 바랄 순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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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들어간 제작비를 엉뚱하게 탕진하진 않았는지 나름 볼거리도 있고 기본적인 프로덕션 퀄리티도 괜찮습니다.)



 - 대충 마무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액션 + 오컬트인데 액션은 평타 정도 하고 오컬트는 허접한 가운데 이 둘이 정말 괴상한 배합으로 붙어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우리 전직 주지사님의 넘나 놀려주고 싶은 연기가 토핑으로 얹혀 있구요.

 디즈니 플러스 가입은 해놨는데 보고 싶은 영화는 없고, 그런데 또 본인이 괴작, 망작 취향이셔서 마구 놀려대며 즐기고픈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 외엔 보지 마세요. 하지만 전 사실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어차피 놀려대며 보게 될 거라는 것 알고 있었고, 또 제 오랜 숙제 영화였거든요. 후련하고 좋네요. ㅋㅋㅋㅋ




 + 그러고보면 90년대엔 유독 뭔가 트라우마로 인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어두컴컴한 액션 히어로가 많았던 것 같아요. 왜죠. 그냥 다 마틴 릭스 때문이었을까요. 아, 리쎌 웨폰 다시 보고 싶어라...



 ++ 사실 이 영화를 꾸준히 보고 싶었던 이유는 '스트레인지 데이즈'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데, 제목도 비슷하고 배경도 1999년 12월 31일 밤이어서 자꾸만 연달아 연상이 되고 있었거든요. 정말 하찮은 관람 동기죠. 하하.



 +++ 사실 제가 얼마 전에 '이렇게 된 김에 아놀드로 달린다!'는 식으로 영화 소감을 몇 개 적은 적 있었는데, 그 때 다음 영화로 보고 싶었는데 vod가 비싸서 포기했던 게 이 영화였죠. 디즈니 덕에 무료로 보고 내친 김에 연달아서 본 영화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입니다. ㅋㅋㅋ



 ++++ 이건 그냥 짤 검색하다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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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찍고 홍보 활동 중에 촬영한 화보였나 봅니다. ㅋㅋㅋ

    • 재밌겠는데요 어떤 사탄은 십자가를 보이면 우그러트려버리든데
      • 세상엔 참 다양한 사탄들이 있죠. ㅋㅋ 진짜 사탄이 있다면 자기 나오는 영화들 다 챙겨보며 즐거워할 듯.
    •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비슷한 오컬트물인 '다크 앤젤'에 비해서도 많이 허접했었어요. 이 영화는 세기말 오컬트물로서나 아놀드의 커리어면에서도 '끝물' 느낌이 많이 났었죠.
      • 실제로 이 영화 이후로 히트작이라고 할만한 게 터미네이터3 뿐이니 끝물이란 말이 그리 틀리진 않겠죠. 몇 년 후에 주지사가 된 것도 있겠지만요.
    • 개봉 때 극장에서 한번 본 것이 전부인데 아직도 아침에 쉐이크 만들어 먹던 건 기억나네요. 나름 영양소 골고루 섞어서 만드네 했던 ㅋㅋㅋ
      • 커피에 먹다만 과일에 상해가는 피자 조각에... 단백질은 생각이 안 나지만 나름 다양하긴 했었죠. ㅋㅋㅋ
    • T2, 트루 라이즈로 커리어 정점을 찍고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 즈음에 찍은 작품인데 캐스팅도 좋았고 전 나름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아놀드의 피지컬도 건재했었구요. 
      요즘 기준으로는 결것 아니지만 당시 나름 호러와 액션의 결합의 특이한 블랜딩은 결말을 궁금하게 했었네요. 나름 아놀드가 연기를 심각히 노력하려는 작품이 아니었나 기억합니다. 
      • 글에도 적었듯이 아놀드의 액션은 괜찮았습니다. 오컬트 무비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을 뿐. 정보를 찾아보니 원래 톰 크루즈를 쓰고 싶어했다가 차선으로 고른 게 아놀드라던데. 스타일이 이렇게 다른 배우를 쓴 걸 보면 그냥 흥행 배우면 아무나 쓰고 싶었나... 싶기도 하구요.



        놀라운 건 아놀드의 연기가 '6번째 날'보다 훨씬 나았다는 거에요. 그게 이거 다음 영화인데... 이 영화에선 그래도 이전 연기들에 비해 배우 같은 느낌이 조금 있었는데 그 영화에선 그냥 평소의 아놀드였거든요.
    • 가브리엘 번은 저는 점잖은 심리치료사 아저씨로 기억하고 있는데 저런 사진에 나오니 이상하게 민망하네요.

      • 보통은 카이저 소제 (아님) 역할을 가장 기억하지 않나요. ㅋㅋ 이 영화에선 저런 캐릭터로 나옵니다. 악마가 빙의하자마자 처음 하는 짓이 성추행이고 최종 목표는 성폭행인 캐릭터라(...) 이건 뭐 사탄에게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해도 할 말이 없네요.
    • 까마득하게 뇌리 저편에서 기억이 납니다. '…- 시작부터 바보 같은 이야기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오컬트물이라뇨. 장난합니까? ㅋㅋㅋ…' 저도 사실 그 때 이런 생각하면서 극장에 갔었더랬…은근 주지사님의 연기 변신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 연기 변신을 하긴 했죠. 사실 각본이 좀 받쳐줬더라면 이것보단 훨씬 나은 연기 보여줬을 것 같긴 해요. 뭐 그것도 결국 본인의 선구안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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