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냥

깊게 들숨하는 게 어려워진 지 1, 2 년은 된 것 같아요. 마음 편히 깊게 쉬면서 살아도 될 삶이련만 감정적으로 쉬어지지가 않네요. 
모르겠습니다. 어제 경기도 외곽으로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시골에서의 깊은 들숨은 상쾌하더군요. 밤하늘 별들도 서울에서 듣던 거와는 달리 소리의 우주로 다가왔고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요즘 인도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호흡의 날숨이 길었던 곳이거든요. 체온유지가 된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느꼈던 곳인데, 뭐, 위도가 높은 중국이 호흡 들숨이 길었긴 했습니다.
진중한 글 하나 쓰려다가 버거워서 흰소리 함 해봤어요. 오늘 내로 이 글에 덧붙여 놓을 거에요. 나름 저도 이 게시판에 허세를 부리고 있는 사람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ㅎ
(그나저나 잠을 좀 자야하는데 도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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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려다가 갸우뚱한 생각이라 넘길까 하다 기어코 써보는 글입니다.

예술과 윤리는 서로 다른 타율적인 영역으로 다른 영역에 대해서 서로 우위를 주장하며 자율성을 전제로 다퉈왔죠. 역사적으로 예술은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었고, 예술은 당시의 윤리적 한계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술과 윤리는 공통으로 묶이기도 하고 서로 반립하는 영역으로 파악되기도 했고요. 이런 문제는 '예술과 법'이라는 차원에서 지금도 갈등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예술은 사회적 통념 체계인 윤리에서 어긋날 때 법적인 차원에서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종교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예술과 종교가 종교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예술과 법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완 매큐언의 <청소년법 Children act>이라는 소설을 두고 두 친구가 논쟁하고 있는 걸 보자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엔 법과 문학이라는 대학 강의까지 있는 세상인데, 서로 관련 없는 영역 사이에 관련을 맺어 주는 시도가 유행하는 시대인데, 아직도 저 문제로 싸우고 있구나 싶어요. 흠.

사람들은 기술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를 쉽게 뒤섞는 것 같아요. 예술의 기술적 발달 내지 숙련도에 대한 평가를 망각하고 윤리적 차원을 부각시키면서 자신이 지닌 예술에 대한 이해로 치환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문장 몇 개 엮어서 윤리 차원의 비판을 가할 수 있겠죠.  그림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알레고리적 해석을 만들어 그림의 자율성을 타율적인 윤리 차원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알레고리적 해석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는 게 예술 아닌가요.

모든 예술 자체가 문제 지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윤리 차원에서  제거하겠다는 노력들을 접하노라면 먼산을 바라보게 돼요. 
인간적 삶에서 떨어져 나온 순수한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책임의 윤리"가 부재하다고 욕할 수 있는 건가요.  오히려 책임의 윤리를 내세우며 예술적 참여의 차원을 고작해야 선언문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이들에게 비판의 의견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책임의 윤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를 거쳐야 합니다. 예술가의 윤리적 전언에 해당하는 문장 몇 개를 모아낸다고 예술가의 윤리성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예술가가 만들어낸 형상을 이해할 해석학적 도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책임의 윤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형상의 구체적이고 직관적이면서 수수께끼 같은 모습에 주목해야 하는 거고요.  예술작품을 작가의 윤리적 견해가 담긴 몇 개의 문장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마옵시고"에 해당하는 비평가와 해석자의 자기 금욕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작품이 그렇지 않은 작품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지나치게 인문주의적 humanistisch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전문가로 예술 비평하는 친구와 논쟁하다가 감정이 복받쳐서... 
    • 아래 pc보기를 눌러 일찍도 일어나나 시간을 보니 3시가 되어가는군요 이러면 개인 활동 침해에 해당되나? 본인이 그렇치 않다고 할테니 침해가 아니라 관심, 들숨날숨 하니 지금은 외계행성에서 마스크 쓰듯 지내니 조금 힘들면 입을 벌리고 숨을 쉬어 어쩌면 마스크가 심장의 운동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도 하는데 모르겠어요,어쩌다 별이 꽉찬 밤하늘을 보면 나이든 누구나 저기서 이리 왔으니 아련하죠,난 가본 듯 저기가 거기야 하는 곳을 어디로님은 다 가봤네요 암튼 어디로님은 부지런히 산 편입니다,저도 아래 그런 주장에 거부감을 많이 가지는 편, 여기서 편이 우리편 내편 니편 할때 편이 맞나? 하나도 안틀리고 휴대폰 글 빨리쓰기 정말 안되네요 이건 연습과 노력으로 안되는듯 한데요
      • 분리수거하는 날이라 이것저것 나눠서 아파트 마당에 나갔는데, 이웃 할머니가 제 몰골을 보시곤 손을 꼭 잡으시더라고요. "돼지갈비 재어놓은 것 있는데 좀 나눠줄까?" (에~ 제집에도 고기 많은데... 못 먹는 거지, 먹을 게 없는 게 아닌데?) 아파트 살이에서도 이웃이 뭔지 살가운 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잦아요. 이렇게 데면데면 흘러가는 듯한 게시판에서 가영님 같은 분 뵐 때와 비슷한 느낌이죠. 그나저나 저도 인터넷질에 스스로 치일 때가 많습니다.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가 제 얼굴도 안 들여다보며 살고 싶은 충동이 잉잉 이는 중이에요. 숨쉬는 것도 귀찮... ㅋ



        • 없어 못먹어 그런줄 아시는군요 얼마나 삐쩍 말랐으면 그럴까 그게 그렇데요 남이 날 왜 말랐냐고 그러면 아주 이해가 안가요 맨날 보는 내얼굴 내가 알아 아무렇치 않은데 별꼴이야 하지만 남이 보는게 맞는거 같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얼굴을 남이 보듯 반전해서 보면 첨엔 이상하게 보이죠 쉽게는 숟가락 밑으로 보면 꺼꾸로 보여요 구부러져서
          • 숫가락은 뒤집어져 보인단 말이네요
    • 셜록 홈즈 팬인 조카가 책을 보내줘서 홈즈 탐정 놀이에 입문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석이 달린 커다란 책인데, 본문 아래에 절마다 필요한 주해가 달려있네요. 
      아니, 이 친구는 그 나이에 문헌학적 전통을 따른 글을 읽고 있구만요. 좀더 크면 나중에는 정본 텍스트를 어떻게 만들고 이본 텍스트와 어떻게 구분되는지 밝히고 말 기세입니다. 제가 이런 아동들과 경쟁해서 살아 남겠나요? (절레절레~)

      <주석달린 셜록 홈즈>라는 이 책은 소설을 읽으라고 만든 책이 아니라 소설을 읽으면서 필요한 자료를 모아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Concordance>라는 개념도 오랜만에 접하게 되네요. 
      표제어를 만들어 두고 어디 몇쪽에 나오며 사용된 사례는 어떻다고 정리한 사전 같은 책. 유명 작가들의 책에는 대개 주해판 말고도 이런 <콘코던스>도 만들어지죠. 

      좋은 책은 사전 찾듯이 작가에게서 발견되는 모든 단어들을 정리해보노라면 그 만큼 또 다른 독서의 재미가 생겨납니다. 대개 전집에는 이런 <콘코던스>가 <인덱스>의 형식으로 붙어 있고요. 
       왓슨이 홈즈를 처음 만나는 대목에서 홈즈가 "I've found it! I've found it!"이라 외쳐대는 대목에 길게 눈길을 멈추고 있는 중입니다. 
      이 대목은 진정으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를 연상시키는 대목인 것 같아요.  오늘날 <휴리스틱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생각의 방법에 근원이 되는 아르키메데스의 장면을 홈즈에게서 또 보게 되는 식이랄지. 

      There was only one student in the room, who was bending over a distant table absorbed in his work. At the sound of our steps he glanced round and sprang to his feet with a cry of pleasure. “I’ve found it! I’ve found it,” he shouted to my companion, running towards us with a test-tube in his hand. “I have found a reagent which is precipitated by hoemoglobin, 4 and by nothing else.” Had he discovered a gold mine, greater delight could not have shone upon his features.

      • 헤모글로빈이란 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금광 발견할 때 보다 더 좋아하는 얼굴,난 몇번이나 그런 얼굴이 됐을까
        • 댓글로 시인 인증하시는 가영님. 이뻐요. 함 만나뵙고도 싶지만 제게 반하실까봐 그건 안 되겠고... ㅋㅎ

          • 그럴 치명적인게 있어 만나자고 해도 안만납니다 제세상 살아야죠
      • Elementary, dear Watson 


        저는 그 책 읽고 이것만 기억나요
    • 외설이냐 예술이냐,,,,같은 건가 싶네요?


      대중성이 결여되면 주목받지 못하고 평가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고,


      대중적이 되면 많은 사람들(대중)이 전문가가 되어 비평하죠.. 

      • 캬~ 외설 아닌 예술이 가능하겠나요. 뭐 해보고 더해보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자꾸 까묵해서 글이 안 써지네요.


        놀면 뭐하나요. 정신 돌아오면 함 써볼게요.

    • 19금 예술은 예술이 아닙니다. 사랑은 아가페죠

    • 바빠서 이 글을 읽고 별 생각없다 몇 시간 지나 드는 생각이 전에 <듄>보고 백인 남자의 환상에서 나온 낡은 소설을 헐리우드 백인 남자 경영진들이 만들었다는 댓글달렸던 기억이 나네요. 예술은 불공정하고 특정 집단에 치우친 면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그에 파생되는 또다른 창작마저 비난해야 할까요? 만들고자 하는 의지나 수용하는 관객의 반응과 의지도 pc앞에서 쓰러져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 다석 (多夕)의 이 글이 문득 떠오르네요.


        "써먹기를 먼저 생각하는 배움은 끊어야 한다. 스스로 배우고 익혀 영글어야 쓰임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써먹는데 빠진 배움은 덜 익어서 쓰디 쓴 근심이다. 근심에 싸여서 속 태우고 우울하다. 배움이 익어 솟아야 앎을 낳고 속알 키우고 깨닫는다. 익은 이는 착해서 ‘네’라 하고, 덜 익은 이는 모질어서 ‘네에’라 한다.”




        저도 저렇게 익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과연?

        • 쓰디 쓴 근심이니라 똑같지 않아도 나도 저렇게 말해줄수 있으리라 맘은 그래도 어디 같을라고요,하 혼자 네 해보고 네에 해보니 좀 우습다
        • 어설픈 지식이 문제죠. 마치 다 아는 태도로 후려치고 가르치려는 태도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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