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바낭] 험악하기 그지 없는 사고 실험, '더 플랫폼'을 봤습니다

 -  2019년작이고 장르는... (아주 대충) SF적 설정의 스릴러라고 해야겠네요. 영화에요. 런닝타임은 94분이고 스포일러 없게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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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동안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어쨌거나 SF입니다. 같은 장면인데 포스터로 보니 더더욱 확실히 SF느낌이네요. ㅋㅋ)



 - 한 남자가 잠에서 깹니다. 네모진 회색 콘크리트 건물의 한 층에 있는 것 같은데... 무슨 감옥 같기도 하구요. 침대에서 깨어났고 방(?) 맞은 편엔 할배 하나가 자길 째려보고 있는데 특이한 건 방 가운데에 네모난 구멍이 있다는 겁니다. 남자는 할배에게 말을 걸어보려 하지만 할배는 매우 까칠 시큰둥하구요.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위에서, 그 문제의 구멍을 통해 내려온 것은... 음식입니다. 남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요. 당연히 할배는 거기 달려들어 와구와구 먹어대고 당연히 주인공은 우웩... 하는 반응을 보이고 안 먹어요.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이 건물은 수직으로 된 수백층짜리 건물이구요. 맨 꼭대기가 0층, 아래로 내려가면서 숫자가 불어나는 식입니다. 0층에선 식사 때마다 수백인분의 식사를 아주 고급지고 럭셔리하게 차려서 내려보내요. 그리고 그 식탁이 층마다 잠시동안 멈추고, 그럼 윗층부터 차례대로 식사를 하게 되겠죠. 0층 사람들은 이 시설에 존재하는 사람들 숫자에 맞춰 음식을 준비한다고 합니다만, 당연히 윗층 사람들은 와구와구 끼니마다 과식을 하고 결국 아랫층 사람들은 빈 식탁만 보게 됩니다. 


 재밌는(?) 건 요 건물에서 몇 층에 살게 되느냐는 철저히 랜덤이라는 거에요. 한 달에 한 번씩 랜덤으로 층이 바뀌고, 운 없이 낮은 층이 걸린 사람들은 남은 뼈다귀라도 씹어 먹든, 단식으로 버티든, 아님 룸메이트 살이든 자기 살이든 뜯어 먹어야 살아남습니다. 뭐 다 포기하고 구멍으로 뛰어 내리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주인공이 맞게 될 운명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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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몇 층인지 모르겠으나 최소 200층 이상 된다는 설정이고 층당 높이가 6M라고 하니 이 건물의 사이즈는 도덕책...)



 - 그냥 설정이 흥미로워서 봤습니다. 도무지 말도 안 되지만 전 원래 이렇게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설정 좋아하니까요. 극단적으로 막나가는 이야기도 좋아하구요.

 그리고 그래서 본 영화는 어땠냐면, 진짜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면서 극단적으로 막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하하. 성공했네요.


 당연히도 이 영화는 자신의 설정에 대해 책임질 생각이 없습니다. 보면 이게 엄연히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시설이거든요. 심지어 주인공은 본인이 자원해서 면접까지 거치고 들어온 양반이에요. 근데 또 다른 사람들을 보면 큰 죄를 짓고 너 평생 정신병원 갈래 여기서 1년 버틸래? 라는 상황에서 선택해 들어온 놈도 있구요. 그 외에도 딱히 중죄를 지어서 들어온 것 같진 않은 사람들이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세상의 어느 합법 시설에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막 죽이고 뜯어 먹는 걸 그냥 방치한답니까? ㅋㅋㅋ 보아하니 이 시설 종사자들도 아주 높은 사람이 아니면 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모른다... 는 식으로 모면하려 하는 것 같은데. 역시 말이 안 되죠. 본인이 원하면 아무나 막 입소(?)할 수 있는 시설인데 그게 어떻게 비밀로 유지가 돼요.


 그리고 끝까지 이 시설의 정체나 목적에 대해선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아요. 철저하게 '그냥 그런 셈치고 봐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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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고급진 양반들께서 정성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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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걸 만들어서 내려보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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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층 지나지 않아 이렇게 됩니다... ㅋㅋㅋㅋ)



 - 근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대충 납득해주고 본다면 의외로, 상당히 잘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약간 배틀로얄물스럽구요. 호러 영화들에 종종 나오는 '이제 게임을 시작하도록하지~' 류의 이야기죠. 밀폐 공간에 감금된 사람들에게 괴이하기 짝이 없지만 동시에 아주 심플한 룰 하나 던져 주고, 그 심플한 룰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변형과 변칙 상황들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 놀래키고 겁주고 하는 이야기들이요. 그리고 다행히도 이 영화의 아이디어들은 그럭저럭 90여분을 버틸 정도는 됩니다. 

 

 일단 시작 부분에서 바짝 달려요. 인물 소개, 룰 설명은 후딱후딱 해치워 버리고, 설정을 듣는 순간 관객들이 '대충 이런 게 하일라이트겠네' 싶은 장면을 30여분만에 다 보여줘 버립니다. 그리고 '그럼 이제 뭐가 남았지?' 싶은 순간에 예상 못한 방향으로 튀고, 또 반전을 집어 넣은 후에 그걸로 끝을 보는 식이에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의 흐름이 대체로 이치에 맞고요. 또 상황이 전환되는 타이밍들도 꽤 적절해서 시간도 잘 가고 집중도도 상당히 잘 유지가 됩니다.


 이야기의 마무리도 괜찮아요. 대략 20분 남은 시점부터 갑자기 궁서체로 진지한, 심지어 건전한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로 흘러가는데요. 전반이나 중반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드라마가 나름 개연성 있게 이어지기도 하고. 또 나름 설득력이 있기도 해서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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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익후. 주인공 소개를 깜빡했네요. ㅋㅋㅋ 돈키호테를 사랑한 그 분!!)



 - 다만... 여러모로 보기 불편한 영화입니다.

 앞서 말 했듯이 사람 생살 뜯어 먹는 장면도 몇 번 나오구요(...) 또 막 극한 상황에서 정신줄 놓고 폭주하는 인간들 모습 보여주는 게 자주 나오구요.

 막판으로 가면 폭력 장면들도 꽤 나오는데 하나 같이 피칠갑에 싹뚝 우지끈 콰직!의 연속이라 이런 류 못 견디시는 분들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사실 저도 재밌게 보면서도 중간중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걸 보고 있나' 라는 생각을 종종 했구요. '마지막에 얼마나 좋으신 말씀 하시려고 이렇게 캡사이신 가득한 매운 맛으로 달리시나'... 하는 생각도 하고 그랬거든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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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이 이 시설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만나는 룸메이트가 정말 대박입니다. 사무라이 맥스! 사무라이 플러스!!!)



 - 그래서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싶었던 영화일까요? 라는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음.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윗층이 다 독점하고 아랫층은 찌꺼기나 빨아 먹고 살아남든가 죽어버리든가... 라는 설정에서 당연히 소수 특권 계층이 모든 자본을 다 독점하고 대다수를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한 풍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긴 합니다만. 앞서 말 했듯이 이 시설의 윗층 아랫층은 매달 랜덤 로테이션이에요. 그리고 이 '랜덤'에 어떤 부정이나 개인의 능력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식이어서 쓸 데 없이 공평하거든요. 그래서 사회 계급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하기엔 좀 무리가 있구요. 그 외에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해보려 해도 저 '랜덤 로테이션' 때문에 다 가로막히더라구요. 실제 무슨 사건이나 스페인 고유의 어떤 문제점을 다룬 이야기도 아닐 테구요.


 다만 굳이 주인공이 들고 들어간 '돈키호테' 책을 계속 언급하고 강조하는 걸 보면 어렴풋이 뭐 그런 생각은 듭니다. 세상 썩었고 인간들도 대체로 별 꿈도 희망도 없고 이 망할 놈의 세상을 바꾸는 건 설득으로도, 협박으로도, 폭력으로도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남들 다 허황하다 비웃는 이상주의란 걸 포기해선 안 된다는 거? 오히려 그렇게 절망적인 세상이고 사회 구조이니만큼 그런 허황된 꿈을 갖고 그걸 실행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소수의 사람들이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는 거? 뭐 그런 얘기 아니었나... 라고 혼자 생각해 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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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 '시선 강탈'을 맡고 계신 분인데요. 강렬해서 좋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서양 영화들이 동양계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안 좋은 클리셰 같기도 하고...)



 - 결론은 대략 이렇습니다.

 아주 매운 맛의, 극단적 설정과 거기서 파생되는 극단적 상황들로 관객들 압박하는 류의 영화입니다. 이런 거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보시고 아닌 분들은 꼭 피하시고.

 필요 이상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한 장면들이 초반에 몰려 나오지만 결말까지 보고 나면 그냥 자극으로 저렴한 재미 뽑아내는 데만 집착하는 영화는 또 아니고 그렇습니다.

 막판에 긴장감이 좀 풀어지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설정'만' 튀다 만 스릴러 무비들에 비해 상당히 준수한 편 아니었나 싶었어요.

 기대보다는 상당히 집중해서 재밌게 잘 봤습니다. 육포 얌냠 쫄깃(...) 장면 두어번만 눈 감고 넘겨준다면 꽤 괜찮은 영화였어요. 





 + 바로 윗 짤의 저 분은 극중 이름도 '미하루'이고 외모도 완전 동양분이신데 스페인 배우라고 해서 신기하네... 했는데 필리핀쪽 혈통이 섞이셨나 보더군요. 근데 뭘 굳이 이름은 또 일본 이름으로. ㅋㅋ



 ++ 위에선 돈키호테 얘기만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종교적인 색채도 은근 여기저기 깔려 있는 영화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하긴 뭐 서양권에서 인간의 구원 얘기하는데 기독교가 빠지면 섭하긴 하죠.



 +++ 극중에서 몇 번씩이나 대사로 '0층에선 시설 인원에 맞춰 음식을 만든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양보해봐도 택도 없습니다. 어디서 약을 팔어... 이틀에 한 끼씩만 먹기로 다 같이 약속하고 간신히 생명 유지만 한다고 쳐도 택도 없는 양인데요. 그리고 윗 짤을 자세히 보면 느끼시겠지만 매 끼니마다 희한할 정도로 디저트의 비중이 커서 괜히 혼자 웃었는데. 여기에 대해선 핑계 비슷한 게 살짝 나와요. 입소(?)할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니?' 라고 물어보고 그 메뉴는 매 끼니마다 꼭 넣어준다나요.

 ...하지만 이 시설 수용 인원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결국 뻥이거나 소소한 스토리상 오류인 듯.

    • 대체로 평은 꽤 괜찮나봐요.
      큐브 같이 단순 기괴한 설정이 재미있어 보여서 오래전에 볼까 했는데 역시 안보길 잘했네요.
      네, 지적하신 카니볼리즘류에 심약한 편이라.. 지우학도 겨우 봤거든요. 
      • 영화 완성도는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고어 말고도 강렬한 부분도 많고 괴이한 설정도 재밌구요.


        다만 사람 뜯어 먹는 건 아무래도 좀... =ㅅ= 이런 거 많이 싫어하시면 안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ㅋㅋ

    • 그게 영화가 현실성에 아예 신경을 끊어 버리다 보니 참 애매하더라구요. 바깥 세상이 어떤 꼴인진 모르겠으나 자발적으로 거기 들어간 사람들 중에 기간 채우는 데 성공한 사람이 있음 다 소문이 날 것이고, 없다고 하면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 시설이니 또 그쪽 방향으로 소문이 날 것이고. 근데 그 시설의 실체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는 식이니... ㅋㅋ 물론 말씀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어쩌면 그런 걸 의도했는데 설정을 감당 못해서 이런 결과물이 나왔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 아무래도 제일 쉬운 해석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허상이겠지만, 역시 랜덤 섞기가 걸리네요.


      하긴, 현실에서도 밑의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최고위층인 시스템의 설계자는 대체로 고정이라는 점에서 비슷할지도요?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 거짓말이라는 점에서도 말이죠)
      • 그렇게 아예 큰 틀로 보면 그런 해석이 잘 맞아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수감자들 중에 남몰래 특혜를 누리는 사람도 하나 있긴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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