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도 불치병인가요?

지난 토요일에 대학교 동창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나러 갔습니다.

결과는 보기좋게 바람 -.-;;

물론 제가 핸드폰만 가져갔다면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테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저의 핸드폰 소지여부가 아니었어요.

친구의 지각병이 불러온 참사였죠.

이 친구는 대학교 동창이고 졸업이후에도 꾸준히 만나고는 있지만 사실 만나는 횟수로 따지면 1년엔 두세번 만나는 정도랍니다.

1년에 두세번밖에 만나지 않으면서도 서로 신뢰하고 만나면 어제 만난듯 편한 그런 친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두세번 이상 절대로 만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친구의 심각한 지각병이예요.

돌이켜보면 대학교때도 항상 그랬거든요. 수업시간에 2-30분 뒤에 들어오는 친구는 항상 그 친구였고

그러면서도 절대 결석은 안해서 구박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친구^^

 

지난 토요일에도 오래간만에 만나서 점심이나 먹고 연말 분위기나 즐기자 하고 약속을 잡았는데

1시에 만나자는 제안에 2시에 만나면 안되냐고 하길래 저보다 거리가 먼 친구를 생각해서 그러마하고

대신 이번에도 늦는다면 1분도 안기다리고 난 집에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지요.

1시가 넘어서 저는 집을 나섰고 버스 정류장에 와서야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처음엔 집에 돌아갈까 했지만 연락올 사람도 없고 친구가 늦으면 난 그저 기다리면 되니까 하고

엄포까지 놓고 정작 제가 지각하면 안될것 같아 버스에 올랐습니다.

도착하니 시간은 1시 50분이었어요. 친구가 절대 2시전에 올리는 없고 평상시 습관을 생각할때 2시 30분까지는 오려니 하면서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만나기로 한곳은 지하철입구였는데 날씨가 풀렸다지만 어쨌든 겨울이고 밖에 내내 서있긴 추워서

지하철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커피숍 창가자리에서 창이 뚫어져라 창밖을 응시하며 친구를 기다렸죠.

10분 20분 30분이 지났지만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분명 몇분쯤 늦는다고 문자를 보냈을텐데 하는 생각에 답답하긴 했지만 약속장소가 확실했기에 나만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기다렸고 어느새 시간은 3시를 넘었고 저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자리를 떠 버스정류장까지 갔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지하철입구와 커피전문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3시 20분...

우울하고 짜증스런 마음에 마음을 굳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오니 시간은 4시가 훌쩍 넘었고

점심도 못먹고 커피한잔 하지도 못하고 길에서 커피집에서 왔다갔다 하느라 감기 기운마저 느껴져서 우울하더군요.

집에 도착하니 친구의 문자와 전화가 여러통....

예상대로 첫 문자는...(1시 40분경)

 

"친구, 나 30분쯤 늦을 것 같아. 정말 미안 미안 최대한 빨리 갈게."

 

두번째 문자(2시 20분)

 

"친구, 나 도착했어. 근데 너 안보이네. 정말 집에 간거야? 어쩌지?

 

세번째 문자(2시 30분)

"화나서 정말 간거야? 미안 ㅠㅜ 나도 가야겠다. 오래간만에 만나는건데 미안 ㅠㅜ"

 

그리고 여러통의 전화들...

문자를 보는 순간 어이없음+화남+허탈함이 겹쳐서 그냥 웃음이 나더라구요.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문자를 했죠.

난 1시 50분에 도착해서 3시 20분까지 너를 기다리다 돌아왔다고.

친구가 전화를 걸어서 쩔쩔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했지만

화도 안나고 그저 웃겨서 됐다고 너도 잘 들어가라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날 얻은 감기 덕분에 오늘 최악의 감기증상으로 결국 방금 내과에 다녀와서

죽기보다 더 싫은 물약에 감기약 잔뜩 조제해 왔습니다.

 

그날의 교훈은 뭘까요?

 

1. 지각은 불치병이다.

2.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말자. ("이번에도 늦는다면 1분도 안기다리고 난 집에 가겠다")

3. 핸드폰만 믿지말고 필요한 번호는 외우자.(자주 만나지 않는데다 바뀐 번호라 친구의 번호 010외에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이렇게 골치 아픈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끊어지지 않는 인연인걸 보면 나름 소중한 인연이겠지요.

게다가 이 친구 만나면 항상 즐거웠어요. 항상 늦게와서 처음에 열받는거 빼고는 ㅎㅎㅎ

대신 지각병때문에 1년에 두세번 이상 만나는건 무리네요. 포기한다고 하는데도 스트레스 받아요.

내 시간도 소중하단 말이죠.

    • 불치병이더군요. 늘 30분 늦는 친구면 본인도 그냥 30분 늦게 맞춰 나가는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_-
    • 고쳐질 걸 기대하지 않아요. 그래도 회사는 제 때 나가는 거 보면 신기하죠. 그냥 두 시에 만나야 되면 열두시나 한 시로 약속을 잡고 천천히 나가죠. 오래만나고 그래도 그 친구가 좋으니 별 수 없지요.
    • 하느니삽, KIDMAN/ 그 방법도 여러번 써봤는데 전 제 성격상 그게 안됩니다. 전 항상 제 시간에 나가요. 단 저 친구 만날때 또 다른 친구랑 거의 꼭 셋이 만나요.그래야 제가 덜 스트레스 받거든요. 미리 또 다른 친구랑 만나서 먼저 밥먹고 차마신게 한두번이 아니죠.ㅎㅎ 간만에 지각쟁이 친구랑 둘이만 만난건데 역시나 이런 일이. 간만에 바람이란거 맞아봤어요. ㅎㅎ
    • 불치병 맞아요. 이전 직장에서 지각을 일삼던 친구가 있었는데 회사 밖에서 약속 잡고 만날 때도 늦게 나타나길래 얜 정말 항상 이러는구나 싶더니만 이젠 서로 같이 일을 하지 않아서 저도 일 년에 서너번 만나는데 30분은 기본이고 보통은 1시간 정도 늦습니다. 회사는 그나마 강제성이 있어서 1, 2분씩 지각이었던 것 같아요. 절대로 못 고쳐요. 좋아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너무 열받게 하지 않는 이상 감안하고 만납니다. ;
    • 영화나 공연 같이 시간 정해져 있지 않은 거면 늘 20분씩 늦게되는 절 생각하면 불치병 맞는 것 같아요. 누구나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근대적 시간 개념은 가지고 있는데, 단골 지각생들은 심리적 마지노선이 남들보다 좀 늦는 거죠. 이게 무엇보다 생활 습관의 문제이다보니 결국 대오각성할 계기라도 있지 않는 한 쉽게 고쳐지지 않는 듯 해요. ;
    • 저도 그 불치병(?) 걸렸는데, 고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그래도 아직 10번에 한번씩은 늦어요.
      고치게 된 계기가 뭐냐면, 어떤 책을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더라구요.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은 남의 시간은 소중한 줄 모르고 자신의 시간만 소중한 줄 아는 이기주의자다. 다른 이가 날 기다리기 위해 기다리는 30분은 아깝지 않아도, 혹시나 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게 되는 10분은 아까워서 시간 낭비 하지 않기 위해 딱 맞춰 나가려는 행동을 보인다" 뭐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친구분도 딱 이런 타입이네요. 님이 30분 기다리는건 그냥 미안하고, 자신은 단 10분 기다리다 그 시간이 아까워 돌아갔네요.
      전 이 책 읽고 대오각성했습니다. 전 정말 제가 이기적인지 몰랐거든요. 스스로가 좀 혐오스러워질 정도라서.
      한번 친구분에게 이런 내용을 넌지시 얘기해주심이 어떨까요.
    • 주변에서 오냐오냐 안 해주면 치료됩니다. 사람이란 게 이런 나쁜점이 있고 저런 좋은점이 있어서 오냐오냐 안 해주기도 참 어렵죠. 그냥 자기 시간만 소중한 거고, 그런 사람은 시간뿐 아니라 매사에 자기중심적이기 쉽죠. 전 사람이 다른 점이 꽤 좋다 싶어도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사람은 깊이 사귀기 싫더군요. 그냥 제가 스트레스 받기가 싫어서요.
    • 저도 그런 친구 있었는데 만나기로 한 시간에 집에 있더라구요
    • 불치는 아니고 그냥 병이죠.
      100만원씩 예치금 걸어 놓고 한 번 늦을 때마다 20만원씩 갖기로 하면 치료될 겁니다. 그래도 안되면 액수를 10배로 올리고...
    • 저는 아기엄마가 되면서부터는 모든 종류의 지각에 관대해졌어요.
    • 불치는 아니고 난치병입니다,
    • 어떤 핑계를 대던 지각은 나쁜겁니다. 애가 있는 경우는 제..제외;;
    • 벌금제(1분에 만원)로 바꾸고 늦게 오면 칭찬해줍니다. 회식비 보태주려고 일부러 늦게 와줘서 고맙다.
      덕분에 친구들이 모두 시간을 금같이 여기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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