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상상' 보고 왔어요.

우연과 상상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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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봤습니다. 저는 때와 장소가 맞아떨어져서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꼭 극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고 집에서 보셔도 될 것 같아요.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극장에서 보는 게 훨씬 나을 것이고요. 

이로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는 어쩌다 보니 '아사코'를 빼곤 다 봤네요. '아사코'는 씨네21 평이 2점도 있고 8점도 있어요. 무슨 일일까? 보기 드문 경우네요.

'우연과 상상'은 세 편의 단편 영화가 묶여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의 특징이 확 다가오는 듯했고 그리하여 이전에 본 감독의 다른 영화에 대한 이해도 살짝 더 생겨나는 기분입니다. 

지난 번에 드마카를 보고 의미 깊은 대사가 연극적으로 너무 길지 않나 라는 생각을 적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대사 얘긴 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분 대사에 진심이십니다. 상대적으로 이미지보다 말입니다. 이 영화는 대사가 사건의 전개를 이해시키는 역할이라기 보다 대사가 주가 되고 상황은 이를 더 잘 살리기 위한 그림들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인물들의 대화를 일단 맛깔나고 세련되면서 생각해 볼 여지도 많도록 의미를 담아 완성, 그리고 이 대화가 만드는 화학작용이 최대한 잘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이런 식으로 본인의 역량을 사용하시지 않나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도 차에서의 대화장면이 나오는데 특히 드마카에서 더 뚜렸하게 느껴졌던 차 안의 긴 대화 장면이 그렇습니다. 달리는 차의 뒷 좌석은 정말 대화하기 좋은 곳입니다. 외부와 차단되어 방해하는 이도 없고 화난다고 박차고 나갈 수도 없고 오로지 듣고 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요. 내밀한 내용이면 더 적절한 장소고요. 범죄 영화 같은 데서는 그래서 차 안에서 중요한 대화가 오가는 상황을 십분 활용했는데 이런 일상 드라마에서 대사에 집중하기 위한 장치로 하마구치 감독이 활용하네요. 운전은 누가 해줘야겠지만 이 제3자도 말없는 관찰자로 대화의 맛을 살리지 않을까요. ('두 명은 위험하다, 세 명은 되어야지' 이런 말 어디서 본 기억이 납니다.) 

이런 특징은 영화를 보면서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우연과 상상'에서 특히 여자 배우들의 발성이 참 좋았어요. 1편의 메이코 경우 전남친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발음이 아주 똑 떨어지고 귀에 쏙쏙 들어와 연극적인 발성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3편에선 인물들이 서로 상대가 원하는 인물이 되어 아주 짧지만 실제로 역할극을 하기도 합니다. 

하마구치 감독님은 영화 작업에 문학과 연극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활용하시는 것 같아요. 문학 텍스트를 그대로 읽는 상황이 영화마다 등장하고 본인이 쓴 대사도 의미나 문장의 연결에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연극 역시 준비 과정 자체가 전면에 배치되거나 대사의 전달을 중시하는 상황을 만들고 배우들이 연극적 발성을 한다는 것까지 느끼게 되니까요. '해피아워'를 보면서는 하나의 시도로 보았던 것이 세 작품을 보고 나니 문학과 연극을 활용한 영화 작업이 감독님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다른 자료를 다양하게 찾아본 것은 아닌데 같은 감독의 영화 세 편을 길지 않은 텀을 두고 연달아 본 감상은 그렇습니다. 저는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들은 보는 동안 누리는 즐거움이 있네요. 잘 맞지 않는 분이라도 '우연과 상상'은 단편들이라 보실만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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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메이코 역의 배우는 발음이 참 좋았어요.(저 일어 못합니다만 그래도 오 전달력 좋은데, 싶을 정도로) 외모도 넘 마음에 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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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책 읽기 장면. 내용 때문에 거북했습니다. 소설 속 내용이 엄청 일본스러웠다고 하면 제가 또 편협한 것인지. 보신 분들 동의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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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나이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저는 가장 재미있게 보았어요. 극장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 2편 좀 불편하긴 하죠. 문란하다고 할까 내용도 의도도 불순하니까요. 그래서 다들 순위를 3>1>2 순으로 매기는 것 같습니다.
      • 네, 그리고 세 편 중 이것만 우연과 상상의 작용이 부정적인 결말이었죠.  

    • 3편은 상상도 못했던 찐한 감동도 있었죠. 2편에서 그 낭독하는 장면은 해피아워 생각 나더라구요 ㅋㅋ 확실히 내용이 좀 그렇긴 했습니다만 결말 때문에 결국은 재밌었어요.

      • 배우의 낭독 소리는 교수 말대로 듣기 좋았습니다. 내용 빼면요. 교수님이 하는 말도 감동이 있었고 인생을 아주 살살 살면서 소설 속에다 분풀이?하는 스타일인 거 같은데 꼬일려니 그렇게 되더군요.

    • 저도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봤는데 세 편 다 너무 재밌었어요. 우연과 상상에서는 어쩌면 모든 게 상상이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도 했고요. 세 개의 단편을 꿰뚫는 테마는 “역할극”과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특히 2, 3번째 영화는 본의 아니게 역할극을 하게 되는 인물들이 가짜 안에서 진심과 진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재밌고 감동적이었어요. 감독이 글을 너무 잘 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작품마다 허를 찌르는 부분이 있어서 재미있고 대화 내용이 좋지요. 저는 3편 '다시 한번'이 찡했습니다.('여기서 뭐하고 있나 생각할 때가 있어' 같은 옛 친구분 역할의 대사 등에서요.)


        하 감독님은 소설을 써도 괜찮게 쓰겠다 싶어요.

    • 맨 마지막 사진 두 중년 여인들이 길을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 좋네요. 저의 요즘 생활과 가장 근접하기도 하고요

      • 거리와 집 두 장소를 배경으로 생각지 못한 사람 둘이 의도치 않게 오래 품고 있는 진실을 나누게 됩니다. 편안한 담소 속에 찐한 진심이 오가는. 저도 제일 좋았던 단편입니다.ㅎ

    • '드라이브 마이 카'가 제 취향상 좀 애매한 느낌이라 5시간 짜리 '해피 아워'는 시원하게 포기했습니다만.


      이건 고작(?) 두 시간인 데다가 단편 이야기 셋을 붙인 거라니 저 같은 사람도 볼 수 있겠어요. ㅋㅋ 대사 중심, 문학적인 느낌이라고 하니 마구 확 보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다들 좋게 평하시니 귀가 팔랑대며...

      • '해피 아워' 시원하게 잘 포기하셨어요. ㅎㅎ


        문학, 연극 활용 얘기는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라는 거고 이분 영화 중엔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요 단편 묶음이 로이배티님 취향일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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