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소환

주인이 정을 들이고 오래 쓰던 물건들은 이후에 도깨비가 된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밤이 되면 우산이나 싸리비나 소쿠리 같은 것들이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다가, 아침해가 밝아오면 자리로 돌아가 딱 사물인 척을 하고 있겠죠. 어딘가 귀엽습니다. 그래도 주인의 눈치를 보고 몰래 자기들만의 자유시간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도깨비가 된 물건들은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주인의 정을 잔뜩 받고 태어난 녀석들이니까요. 딱히 고마움은 없어도 그 생명력을 뽐내며 이런 저런 자유를 누렸을 것 같습니다.

어쩐지 현대 사회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설화입니다. 디지털 기기가 도깨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는 아닙니다. 워낙에 소비가 당연해진 시대라 물건에 대한 애착이 깃들 틈이 없기 때문이죠. 잃어버리면 사면 됩니다. 부숴져도 사면 됩니다. 찾거나 고치는 행위야말로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사치입니다. 하자가 있으면 바로 갈아치워지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합니다. 도깨비가 잉태되기에는 수천만개의 동일상품이 다시 찍어져나와서 헐값에 팔립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핸드폰과 노트북도 도깨비는 되지 못합니다. 새로운 디자인 때문에, 혹은 선천적으로 2년을 넘기지 못하는 내구성의 한계 때문에 이 기기들은 부숴지거나 다른 나라로 여행을 추방됩니다. 주인의 모든 정보를 안에 담고서, 늘 주인이 손에서 떼놓지 않는 기기들인데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모든 걸 교체하는 세상에서 인간도 그런 취급을 받지 않을거라 자신할 수 있을까요.

얼마전에 산 마인크래프트 횃불의 전등을 갈 수가 없어서 문의를 해보았습니다. 건전지가 있어도 전등이 불이 안들어오면 그 땐 어떻게 해야하냐고. 전등을 갈 수가 없는 구조이니 그 부분은 양해를 바란다고 합니다. 이게 과연 현대의 편리인 것일까요. 하나 더 사면 되고, 혹은 그냥 버리면 되는 이 세상에서 어떤 물건이든 오래 쓰고 싶은 게 저의 괜한 욕심인지. 제 많은 물건들이 저와 오래오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20년 후에는 밤에 저 몰래 뛰어다니는 뻔뻔한 녀석들이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현대식 퇴마가 이뤄지는 이 세상에서 저는 남몰래 작은 귀신들을 부르는 중입니다. 그 중 대장은 중학생 때부터 입던 저의 오래된 반바지가 확실합니다.

    • 그 전설에 의하면 제 주변에는 도깨비가 엄청 많네요. 
      최고령 도깨비는 이불입니다. (25살)

      • 와우!! 오래되셨군요 계속해서 장수하시길...
    • 제 부엌에는 저희 어머니가 45년 전 혼수로 해오신 스뎅 양푼을 물려받아서 쓰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전 물려줄 자식이 없으니 아마도 죽을 때까지 쓸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대왕도깨비 후보에는 들 수 있을까요?
      • 와... 제 반바지를 제 평생 간직해도 이길 수가 없겠는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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