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포) [파벨만스] 보고 왔습니다

AKR20230317155700005-01-i-P4.jpg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걸작입니다. 정말로 걸작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스필버그의 필모를 다 못깨고 봐서 아까울 정도입니다. 스필버그 특유의 그 부드러운 흐름으로 개인의 선명한 굴곡들을 훑으며 지나가는 그 능력이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소개상으로만 봤을 때 상상할법한 클리셰들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일단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니까, 보기 전에 다 그런 걸 상상하겠죠. 이 꼬마가 얼마나 영화에 미쳐있었고 또 얼마나 신동이었는지요. 그런 이야기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것만 나열해가면서 "스필버그 더 비기닝" 같은 걸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얼마나 천재였고 열정적이었는지를 주목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제목이 [파벨만스]니까 당연히 가족이야기죠.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또 익숙한 이분법적 세계를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와 가족을 두고 팽팽히 줄다리기를 하는, 그러면서 종국에는 영화가 가족을 하나로 합치거나 가족을 통해 영화를 완성하거나 하는 정반합의 어떤 세계 말이죠. 이 영화는 그렇게 안흘러갑니다. 가족과 영화는 스필버그에게 어떤 옵션이 아닙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다면서 예술에 대한 연설을 하는 장면도 있고, 이 영화에 또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뻔한 가족드라마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와 가족이 서로 트리거가 되는 갈등의 순차적 연쇄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영화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도 깨달아가는 그런 뻔한 드라마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 가족과 영화(꿈)의 키워드는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입니다. 모두가 상상하는 것처럼 영화 제작현장의 비하인드도 나오고 영화에 미쳐있는 스필버그 본인도 나옵니다. [열차의 도착]을 연상케하는 장면도 당연히 나옵니다. 영화에 매혹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도 나오죠.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영화 제작이나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 모든 씨네필들을 대변하려는 영화가 아니거든요. 영화에 대한 영화이지만 이 작품이 다루는 영화는 하나의 매체라기보다는 삶에 끼어있는 누군가의 목표입니다. 이 작품에서 영화는 그 자체로서의 마법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가린다는 점에서 당사자들이 삶에 영향을 받는 계기로서 훨씬 더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그런 점에서 스필버그가 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영화에 대한 애정은 훨씬 더 땅에 붙어있으면서도 오묘한 것입니다.


저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완성도를 기대하지 수수께끼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스필버그의 이 작품은 저에게 너무 큰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 분명히 납득하고 있는데, 보기 전에는 절대 믿지 못했을, 보고 나서도 왜 이게 납득이 되는지 다시 알 수 없게 되면서 의문의 소용돌이가 제 안에서 계속 휘돌고 있습니다. 저는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여태 품고 있었던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로... 


@ 저는 어떤 생각까지 하고 있냐면, 오스카 심사위원들이 젊은 척을 하기 위해서 에브리띵...을 고르고 이 영화를 일부러 외면했다는, 불공정한 심사를 했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습니다. 오스카는 이 영화에 최소한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을 줬어야 합니다. 

    • 아 이게 개봉을 했군요? 검색을 해 보니 저 사는 동네에서도 상영 중이구요. 감사합니다. 스감독님 영화라 극장 가서 보려구요.  자칫하면 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처럼 다 지나고 극장에서 내린 후에야 깨달을 뻔. ㅋㅋㅋ

      • 꼭 극장가서 보셔야죠!! ㅋ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극장에서 못보고 놓쳐서 정말 아쉽습니다 ㅠ
    • 첫 문단과 끝 문단만 읽었는데 쓰신 후기 중 가장 격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가족 이야기를 선호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은 극장에서 챙겨 보고 싶습니다. 



      • 무조건 보세요. 가족은 소중하다는 그런 헐리우드의 전형적 교훈극이 아니니까요!!
    • 전 군데군데 어르신스러운 유머 같은 부분이 좋았어요 낄낄거리면서 봤는데 의외로 극장 안은 너무 적막해서 웃다 당황스러웠습니다 ㅜㅜ 딱 봐도 대놓고 웃으라고 배치한 상황이나 멘트인데 왜 그렇게 진지하게 보는 거죠!
      • 엇 저도 그랬습니다!! 웃기는 장면인데 안웃어서 좀 아쉽더군요 ㅠ
    • 정말 좋았습니다. 저도 에에올원보다 이 쪽을 더 재미있게 봤네요.

      •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아직 스필버그 필모를 다 못깼지만 필모를 다 깬 사람들이 스필버그 베스트 5안에 포함시키는 게 이해가 됩니다

    • 가족과 영화, 둘 모두가 내 인생 그 자체였다. 뭐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영화를 뭐뭐 하거나 영화를 위해 가족을 뭐뭐 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 둘이 하나이고 그게 내 인생이고 그게 나란 사람이다. 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와중에 가족에 대한 애정도, 영화에 대한 애정도 참 절절하게 끓어 넘치더라구요. 스감독답게 표현상으론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펄펄 끓는 느낌이었습니다. ㅋㅋ 덕택에 극장에서 재밌게 봤어요. 관객도 별로 없던데 이번 주말을 모르고 넘겼으면 그냥 극장에선 못 봤을 듯.

      • 어떤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은 얼마나 속이 깊길래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저한테 스필버그의 이번 영화가 딱 그랬습니다. 이건 단지 연령이나 커리어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3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7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5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0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0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5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7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4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9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5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5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2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4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