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만스, 기대보다 더 좋네요
'매혹'에 관한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확실히 영화에 관한 영화로군요. 좀더 범주를 넓혀 예술에 관한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겠고요. 현직 예술가나 자신의 일부를 예술가로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더 흥미롭겠어요. 사실 꼭 예술이 아니어도 될 것 같습니다. 가정과 양립불가능한 것이 예술뿐이겠나요? 도박이나 예술이나 다 또이또이아닌가 싶은데 말이죠. 물론 전자는 좀더 자기파괴적입니다만. 영화의 리듬이 느긋하면서도 처지지 않고 아주 좋았습니다. 오래 전 영화지만 뮌헨같은 경우 장르 속성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가쁘면서도 뭐랄까, 넘 테크니컬한 느낌이었거든요. 후반부 캘리포니아로 가족들이 이주하고 나서는 살짝 루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만, 그 호흡이 또 영화 속 상황과 맞물리는 듯도요.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서 춤을 추는 엄마에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자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딸들은 민망해 했지만 주인공에게는 맨몸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낸 엄마조차 그저 비일상적인 흥미로운 피사체였던 것 같군요. 현실 관계의 진짜 일면을 발견하기는 그 나중일이고요.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의 디렉팅에 상황에 몰입하고만 아마추어 배우의 모습이요. 컷 이후에도 걸음을 멈추지 못할만큼 얼마나 진실한 연기였던지요. 필름 속에서 엄청 멋진 주인공이 돼버리고만 어떤 이는 저거 다 페이크라며 당황해 했지만요. 사실 영화뿐 아니라 재현은 선택적이고 불완전한 진술일 수밖에 없죠. '언어'를 사용하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조차요. 어떤 걸 사실처럼 제시하고 또 사실로서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욕망에 달린 문제겠고요. 특히나 멈춰있는 수십 개의 프레임이 움직이는 걸로 보이는 영화-활동사진이야말로 재현 혹은 속임수의 끝판왕이다보니 이 화두에 더 민감한 것 같아요. 이외 스필버그를 처음 매혹시켰던 이미지가 스펙타클한 것이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부모에 대한 묘사는 되게 균형잡혀 있네요. 정말 좋은 부모였나봐요. 부모를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크레딧에 데이빗 린치가 있길래 나중에서야 찾아보니 노장 감독 역할이었네요. 꽤 말라서 못알아볼 정도던데. 명상에 빠져 있다더니 살도 훅 빠진 것인지. 하기야 나이도 꽤 잡쉈고.. 미쉘 윌리엄스가 나오는 영화를 보기는 오랜만입니다. 역시 참 잘해요. 아, 영화에 나오는 피아노 연주곡들도 좋았습니다.
엔딩은 귀여워라, 풋풋 순수한 ET 갬성이 물씬나는 조크라니요.
매혹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고, 그에 대한 재능도 있으며, 마침 그 재능을 꽃피울 환경이 받쳐주고, 그 매혹된 무언가가 사회적으로 인정까지 받는 것이라면 진짜 행운 아닙니까. 스필버그의 사주는 엄청 좋을 것 같네요 ㅋ 넹, 뻘소리였음다... 여튼 다른 의미에서 이 영화가 계속 기억에 남게 생겼습니다. 왜냐면, 극장에서 혼자 봤거든요. 이렇게 혼자 보기는 처음이고요.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관객이 저밖에 없더군요 >>> 궁금: 해당 회차에 예매한 관객이 없으면 그 회 영화 상영은 안하는 걸까요?
혼자만은 아니었지만 관객이 다섯 이하였던 또다른 영화들은 천재선언과 매트릭스2입니다. 좌석이 나무로 된, 되게 큰 옛날 영화관들에서 봤었던 기억.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대중적인 재미는 있습니다.
저는 이게 진짜 스필버그의 능력인 것 같아요.
정작 저는 기대보다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렸지만, 어쨌든 좋게 보셨다니 기쁘네요. 어쨌든 저는 아주 좋게 봤으니까요. ㅋㅋ
저는 실제 극장에서 관객 가장 적었던 게 바로 스필버그의 '이티' 재개봉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넷이 갔는데 단관이 되어 버렸었죠.
그리고... 맞아요. 스필버그 할배가 근래들어 제 취향이 아닌 작품들(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는 드라마라든가)을 자주 하시는데. 아 왜 자꾸 이런 걸 만드는 거야... 하고 투덜거리면서 보면 결국 재밌습니다. 그래서 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저도 그 몰입 만빵 아마추어 배우 장면이 참 좋았어요. 계속해서 스필버그 자신의 영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그 장면에선 자기 말고도 정말 순수하게 영화의 매력에 빠져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들까지 보여주는 느낌이었거든요. 살짝 감동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몸이 살짝 비추는 블라우스를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가 어머니의 내면을 엿보게 된다는 일종의 메타포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