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전만 하는 출산율 논의

최근 thoma님의 책추천에 자극받아 [암컷들]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책의 앞부분을 보면 다윈을 포함해 세계 저명한 생물학자들이 암컷의 생태계와 성별 선택의 권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데 얼마나 헛발질을 했는지가 나옵니다. 저자가 이 과학자들의 남성주의적 실패를 "씹어대는" 말투가 너무 신랄해서 과학서적임에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기사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선대의 편견없는 과학자들이 부닺친 결과를 낼름 주워먹는 후세대로서의 특권이겠지요. 지금의 저도 분명히 후세대들에게는 고루한 벽창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암컷들]의 시선을 대한민국이란 곳에 거주하는 인간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최근 어느 남초커뮤니티든 한번 글이 올라오면 타오르는 주제가 "출산율"입니다. 정말이지 별의별 댓글이 다달리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저 주저앉아서 우린 망했다며 망국가를 부르는가 하면 누군가는 집값 때문이라고 부동산 정책을 욕하고 누구는 알 수 없는 문재인 부작용(문재인이 페미랑 붙어먹어서 이꼴이 났다!)을 이야기하며 문정권 인사들을 강하게 처벌해야한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조금 더 온건하게 남자들이 군대를 가서 2년간 사회진출이 늦어지니 남자들한테 돈을 더 줘야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임신, 출산을 한 부부들에게 돈을 팍팍 줘야한다고 합니다. 독신세를 매겨야한다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은 여성인권이 낮으니 여성인권을 낮춰야한다는 리틀 히틀러의 논리도 자주 튀어나옵니다. 아무튼 아우성은 치는데 생산적인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여가부에 대한 원한도 덤으로 있습니다. 


@ 임신출산을 하는 부부에게 돈을 팍팍 지원해준다는 방향의 정책은 무조건 실패합니다. 정부가 천만원을 주든 이천만원을 주든, 출산율이 반등하는 일은 없습니다. 엄청 간단하게, 그게 한 아이를 낳고 기르는 20년간의 비용에 비하면 엄청 푼돈이기 때문이죠. 그냥 자본주의적으로 수지타산이 안맞기 때문에 정부가 "아이를 구매하는" 철학의 이 지원금 정책은 소소한 도움은 되어도 출산율 전체를 끌어올리는데는 별반 의미가 없습니다.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est2&sort_index=pop&order_type=desc&document_srl=5943176832


제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출산율을 출산율로만 이야기하는 이 남초커뮤니티의 시선입니다. 출산율을 어떤 수치에 관한 목표로 바라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의 과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거죠. 이 시선이 [암컷들]의 초반부가 지적하는 그 오류와 너무나 흡사해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출산의 주체가 여자인데 여자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출산율의 실질적 주체를 누구로 놓느냐에 따라 문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출산을 누가 하는가? "암컷"이죠. 인간의 경우 여성을 이 문제의 실질적인 주체로 두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출산율을 진지하게 고민하더라도 남자들은 이 문제를 여자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여자를 빼놓은채로, 바로 사회의 문제라거나 국가의 문제라는 추상적 주체를 설정해놓고 바라보는거죠. 아무리 이 문제를 개인단위로 바라보려고 해도 남성적 시선에서 그 최소한의 단위는 2인 부부=가족까지밖에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법 이성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본다는 슈카조차도 백날 이 주제를 떠들면서도 "왜 (한국)여자는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는가?"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게 그의 의도적인 회피인지 순수한 한계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출산율 논의는 "출산율"이라는 단어 자체에서부터 가로막히게 됩니다. 어떤 성적을 끌어올리면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되면서 출산의 주체인 여성은 이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은 여성인권이 낮다 (이게 딱히 총합적인 사실도 아닙니다) -> 그러니 여성인권을 떨어트려서 출산율을 끌어올리자 같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진지하게 토론거리가 되고 맙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논의에서는 여자들이 출산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환경적 요소, 한국 내 사기업들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보장하기는커녕 바로 여자를 해고한다는 (클릭하면 기사 뜹니다) 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남편은 실질적인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독박육아나 "맘충"이라는 단어를 소비하는 한국의 사회적인 분위기도 당연히 누락이 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바로 "페미대장" 등극이죠. 프락치 취급받고 실질적인 문제는 입밖에도 못꺼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왜 "여자들만" 챙기냐면서 그 논의는 순식간에 남자들의 억울함으로 새버리고 맙니다. 생리대 지원을 이야기하면 면도기 지원을 이야기하듯, 출산의 주체를 지원하는 걸 이야기하면 남자도 정자를 제공한다면서 똑같은 임신과 출산의 주체로서 대접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출산율 논의는 사실 출산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남성중심적 시각이 가장 큰 변수이자 함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출산을 누가 하는가?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가면 아마 출산율을 엄근진하게 떠드는 남자들은 금새 눈을 돌리고 말 겁니다. 물론 출산의 주체를 여성으로 놓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짠 하고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출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주체조차 이야기하지 않으면 한국은 이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스티즈나 더쿠같은 여초커뮤니티에서는 응 안낳아 응 너가 낳아 하고 아주 냉소적인 시선만 보내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 이 문제를 출산휴가를 쓸 수 있게끔 노동자의 시점에서 바라봐야한다는 어느 댓글을 저는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어딜 가서 검색해도 남초 커뮤니티 게시글 중 1 ~ 5%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 주제죠. 오래 전부터 이 이슈에 관심 있어 봐온 저로서도 기가 막히는 부분입니다 ㅋㅋ.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라는 말이 어떻게 단 한 번도 나오지를 않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저는 '그럴 거면 계속 고통이나 받아라' 포지션이 된 지 너무 오래되었네요. 보건사회연구원이 인구 전략과 국가의 미래 (총 6권) 같은걸 10여년 전에 내면 뭐합니까, 그런 부분은 쏙 빼 놓고 읽는데. 굽히지 않을거면 꺾이시던지 같은 마음으로, 인구가 자발적으로 줄어드는게 친환경이다 같은 심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잊을만 하면 올라오고 잊을만 하면 올라오는데 맨날 그말이 그말입니다 ㅋㅋㅋㅋㅋ제 평생 이렇게 "탁상공론"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논의를 또 본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다급해지면 지혜를 찾게 된다는 말도 조건부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머저리 파티만 맨날 열더라구요

    • 지금 출생 미신고 아동문제도 친모만 잡아서 족치고 있죠. 저출산 문제라고 떠들어대면서 여성들에게 앞으로 절대 애낳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더 굳어지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런 사건들이 계속되면서 출산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강해지는데, 이런 건 또 이상하게 캐치를 못하더군요. 답답쓰...

    • 차라리 이민자든 난민이든 다 받자는게 출산율 어떻게 올릴까 하는 것보다 단기적인 효과는 더 빠를텐데,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겠죠...

      • 당장 "국민정서"를 이유로 들면서 반대를 할 것이고, 그 이민을 받는다해도 2세 3세들이 한국에서 과연 어떻게 자라날지를 생각해보면 아직 허들이 높은 것 같습니다. 국가 자체가 너무 폐쇄적이어서...

    • 암컷들 정말 재미있지요. 올해 본 책중에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국가적 자살로 가는 것 아니던가요. 그냥 저는 포기했습니다. 문제를 진단하는 한겨레 기사도 가장 중요한 페미니즘은 빼먹고 변죽만 울리더군요. 

      • 이걸 단순히 현세대를 부양해줄 후세대의 부재라고 생각하면 진짜 큰 착각인데 말이죠... 여성들이 이 나라에서 미래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이야기인데 그 절망이 완전히 같은 줄 압니다 진짜 깝깝...
    • 시작하셨군요. 흥미롭게 읽다가 저는 어제 오늘 딴짓하고 돌아다니느라 아직 반 밖에 못 읽었어요. Sonny 님께서 먼저 끝내시겠네요.ㅎ




      우리 나라 인구 문제는 제 경우에는 걱정이 안 되는데 어딘가의 남성들께서는 걱정하고 있나 봅니다? 헛발질에 탁상공론하며. 가사도우미 수입하자는 의견질이나 내고 있잖아요. 


      이런 환경에서는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기만 합니다. 지금의 남성 중심 사고로 돌아가는 사회가 변화하긴 어려울 것 같고 앞으로 계속 인구는 줄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구가 줄면 그것대로 괜찮을 것 같아요. 다만 확확 줄어드는 것에 맞추어 교육 제도나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 곳에 되어야 할 텐데...누가 신경 쓰고 있나 몰것네요.  

      • 저도 지금 막 초입부읽고 있어서 아마 thoma님이 더 일찍 끝내실수도?? ㅎ


        가사도우미 수입 의견 진짜 황당하더군요 자국여성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다른 여성들을 최저임금도 못받는 지옥으로 부르려고 하다니...
    • 옛날 옛적에 제가 좋아했던 만화책에서 '멸망을 향해 즐겁게 걸어가는 도시'라는 표현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 세상(꼭 한국만이 아니더라구요)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 대사가 자꾸 생각납니다. 어차피 엔딩이 정해진 분위기라면 차라리 즐겁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ㅋㅋ

      •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가끔 남자들이 완전히 절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정말 콧방귀를 뀔 정도로 미래에 아무 기대도 갖지 않고 있거든요. 남초에서는 토론을 되게 많이 하더라구요. 이 차이가 참...
    • 제도적,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사실 다 제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보다 백년 정도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국가들도 있고 최근에도 해외에 맡긴 리서치에서도 비슷하뉴지적이 있었다고 알고 있고요.

      다만 그걸 이 남성위주의 사회와 정부, 의회 등의 각 권력 주체들이 동의하고 합의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아 이건 어렵겠는데 싶은거죠.

      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어찌보면 뻔하디 뻔한 얘기이죠.

      가사노동에서 남성의 비중을 확 끌어올리고,

      남자도 육아휵아를 강제로 쓰는 등 직장에서의 차별을 철폐하고(일단 차별금지법부터 좀)

      비혼출산과 이민의 장려 등,

      다 제시된 방법이고 이걸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만한 용기있는 정부가 필요한데

      각종 핑계를 대며 저건 이래서 못하고 이건 저래서 못한다고 안하죠.

      저 지적들이 대부분 성평등으로 가야한다는 얘기이고 궁극적으로 조금 더 개인의 권리를 지켜주는 사회를 지향하는 방향인데 그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비단 남자들만이 아니라요.

      출산율 저하를 정말 심각하게 바라본다면 안되는 이유를 찾지말고 그걸 다 뛰어넘어서라도 실행할 수 있는 명분과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맨날 무슨 하나 낳으면 천만원...이런건 한숨 나는 정책이죠.

      그러면서 출산율 저하방지를 위해 돈은 또 엄청 쓰죠. 다 어디로 가는건지 모르겠어요.
      • 이게 되게 슬픈게, 노동자 방향으로 의제를 끌고 가서 출산육아를 못쓰게 하면 고발이 가능하게 해도 같은 노동자들이 오히려 출산휴가를 못쓰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거란 점이죠...

        • 의무사용으로 하면 그 부분은 무마가 될 것 같습니다.

          (노동자끼리 그런 분위기 만들거라는게 너무나 현실감이 높다는게 참 슬프죠)

          부부가 출산했다면 무조건 번갈아가며(순서는 재량껏) 육휴를 사용하는 강제조항으로 해서 불이행시 사용자측에 강한 벌금 같은거 주도록하죠.

          그럼 아니 나도 안쓰고 싶지만 회사가 쓰라고 시키네??

          회사도 당근 나도 안주고 싶지만 국가가 시키네 하고 핑계를 줘야죠.

          근본적으로는 결국 육아의 난이도와 가치를 너무 하찮게 보기 때문에 육휴의 가치도 도매금으로 후려쳐지는 거겠죠.

          부부 단 두 명 만 육아의 책임을 지는 건 너무 힘들다는게 계속 증명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사회구성원의 관념이 다르게 바라보니 제도변화가 느린 것 같네요
          • 저는 그런 강제조항의 실효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강제되면 당연히 이전보다 쉴 수 있는 사람들은 늘어나겠지만.... 이를테면 회사에서 육휴를 아예 못쓰게끔 사원들끼리 눈치주고 분위기를 형성해서 출산이라는 이벤트 자체가 아예 안일어나게끔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아예 강제를 하려면 육휴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규모에 맞춰서 어떤 회사는 연 몇명의 육휴를 무조건 담당한 이력이 있어야한다 이런 거면 또 모르겠는데 그러면 고용인의 재량을 훼손한다고 다들 들고 일어날 겁니다. 저도 이 육휴를 어떻게 하면 문화로 정착시킬지 범인의 눈높이에서 효과적인 대안이 뭔지 모르겠네요.... 남양같은 대기업이 터졌을 때 아주 개작살내서 일벌백계를 보여주고 그 때 전수조사 한번 싹 했으면 몰랐을텐데...
            • 안되는 방향으로만 보면 안되는 이유 투성이죠.

              그럼에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겠죠.

              다만 뭐 여기서 우리끼리 얘기해봐야 소용없겠지만요 ㅋ

              제도는 때로는 인식보다 느리게 바뀌지만 어쩔 땐 제도가 먼저 바뀌어서 인식을 따라오게 해야한다죠.

              제도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부모가 아주 많을거고 그건 막을 수 없을거에요. 실제 스웨덴에서는 먹혔고 옆나라들도 시행한다고 하죠. 스웨덴 옆나라가 아니라 우리 옆나라도 하고요.

              일단 의식의 변화를 기다리기엔 너무 늦다면 제도가 먼저가야하겠죠
              • 네 저도 그래서 현실적으로 '육휴를 쓰게 하는 직원을 못말리는 회사'가 아니라 '육휴 쓴 직원 이력이 없으면 처벌받는 회사'의 방향이 더 맞지 않나 고민해보게 됩니다. 저도 어떤 식으로든 제도의 강제성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ㅋ
    • 몇 달 전에 네이버 직원이 육아휴직 후 불이익 때문에 자살했었죠. 대기업도 이 지경인데요 뭐.

      맞벌이 부부 지원책이라고 나온 아이디어란 게 홍콩식 가사도우미 수입, 어린이집 연장 운영 같은 것들 뿐이니..

      주 69시간.. 아니 120시간 일해야 된다는 정치 집단이 큰 지지를 받는 나라에서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세 명씩 낳아서 120시간씩 일해주세요.

      • 이런 건 형사처벌해야하는 거 아닌지... 너무 갑갑하더라고요. 딸기와플님 말씀 들으니 노동권과 떼놓을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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