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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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놀란의 영화 중에서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두 편은 웅장한 화면과 음악 때문인지 극장에서의 체험영화스러운 재미를 느꼈었고 좋아하기는 '프레스티지'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직전 영화 '테넷'은 안 봤고요. 이번 영화는 보고 싶었습니다. 로스앨러모스에서 있었던 일을 화면으로 재현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제일 컸고, 인물 중심이라 제가 즐길 여지가 많을 것 같았어요. 의도는 아닌데 핵오염수가 배출되는 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스포일러 없이 배우들 연기만 짧게 적어 봅니다.


일단 재미있었습니다. 좋게 보았어요. 대사를 충분히 다 읽어내지 못해서 놓친 내용들이 있고 자막 읽느라 놓친 화면도 있어서 아쉬운 점은 있으나 그래도 좋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매우 업되어 있다고 할까요. 영화의 흐름을 '도레미파솔라시도' 단계로 말하자면 놀란의 다른 영화도 조금 그런 경향이 있으나 이 영화는 특히 도레미파 없이 솔을 시작으로 라, 시, 도를 오가는 '솔라시도'로만 이루어진 영화 같습니다. 음악이 과하게 들어가서 그런 효과도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시종 긴장과 흥분의 연속이라고 느꼈습니다. 화면에 천재들이 우글거리며 왔다갔다하고 핵이 폭파하는 영화니 그럴까요. 거기다가 질시와 복수, 음모, 죽음, 수많은 죽음, 이런 것을 거기에 더하고 있으니까요. 


배우들의 연기가 다 훌륭합니다. 아쉬운 인물이 하나도 없고 구경할 만합니다. 배우들 연기만으로도 극장 나들이 보람찹니다. 킬리언 머피는 젊을 때는 초현실적인 눈빛에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면이 두드러진 배우였던 기억인데 이번에 보니 그런 면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그다지 튀지 않으며 평범해 보이는 연기였어요. 천재고 두뇌에 걸맞는 지적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로 놀래켰습니다. 이런 정극 연기를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잘 합니다. 살을 뺀 걸까요. 나이도 꽤 들어 보이고요. 심지어 아주 잠깐 나왔지만 게리 올드먼도 얼마나 연기가 좋던지. 

딱 한 장면 플로렌스 퓨가 등장했던 그 장면이 다른 표현 방법이 없었을까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를 사랑하게까지는 안 되는 이유가 되네요. 여성 역할이 없다고는 하지만 에밀리 블런트가 남성 배우 몇 명을 해치울 현명함과 카리스마를 갖추며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역할이라 숫적 열세가 문제 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플로렌스 퓨의 청문회 장면은 그럴 필요 없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어요. 짧은 분량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연기도 좋았는데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의 감상은 어떠할지. 자부와 비참의 극과 극을 오갈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중간한 감상은 아닐 거 같은데. 역사상 가장 큰 피해국이면서 오늘은 가해당사국으로 나아가네요. 

    






    • 정식 공개된 지 2개월이 되어가지만.. 일본 공개는 어려울 거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실제로 개봉예정일도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이지요. 교토는 아내랑 여행 어쩌구... 하는 대사도 그렇고, 끝내 정식개봉은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플로렌스 퓨의 노출장면들을 포함했기에 R등급을 받았겠지만... 당사자는 오펜하이머인데 말씀하셨듯, 여성인물이 다소 용도적으로 쓰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김혜리 평론가가 별 3개를 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 일본 아직 개봉하지 않았군요. 제 생각엔 그래도 개봉할 것 같은데요.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표현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민이 부족해 보여요. 

    • 저는 이미 몇 번 썼지만 놀란화된 오펜하이머를 봤지 오펜하이머를 봤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배트맨처럼 오펜하이머를 이해하고 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책은 안 읽어도 실제 오펜하이머는 더 크고 다채롭고 외향적이고 인싸적인 인물이었을 거 같은데 머피는 웅크려 있는 듯 해요. 김혜리 기자도 팟캐스트에서 내향적이라고 지적했더군요.


      오펜하이머는 또렷한 형상을 제게 갖추지 못 한 인물이고 놀란 해석과 연출의 결과물인 듯 한데, 진짜 활활 살아있는 인물은 로다쥬의 스트로스였죠. 놀란 영화 통틀어 제일 사람같았던 연기였습니다. 과학자들과 동등하게 통하고 싶었으나 그게 좌절된  평범한 인간과 You complete me라고 절실한 눈빛을 보였던 조커가 겹쳐지더군요. <조디악>에서의 연기를 두고 에스콰이어에서 2007년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으며 스크린 상 가장 위대한 자기 소모의 연기라고까지 했죠

      • 아직 딴 분들 글을 안 읽었는데. 김혜리 기자의 팟캐스트도 들어봐야겠어요. 


        저도 책은 안 읽었는데 과학자들 끌고 몇 년에 걸친 복잡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을 보면 괴팍한 천재과라기 보다는 리더십 있는 전지적인 인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수소폭탄 만들자는 과학자 다루는 걸 보여 준 의도도 그렇게 그리려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저도 '조디악' 연기도 봤네요. 연기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 행정가로서도 뛰어났고 김혜리 기자는 권력에의 의지도 있던 사람이라고 언급하더군요.

          다방면에 관심많고 바람둥이였다는데 저는 머피 연기갖고는 그게 잘 실감이 안 났어요. 놀란이 몇 달만에 네덜란드 어 마스터해 강의하는 장면 넣어 주고도 말입니다.

          킬리안 머피가 헐리우드에서 찍은 영화들 보면 레이첼 맥아담스나 케이티 홈즈같이 키 좀 큰 여자들 옆에 있으면 쭈그렁탱이같아 보였던 거랑 관련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로다쥬는 살리에리+조커였다고 생각하네요
    • 개봉날이 광복절이고 윤이 반공주의 연설을 한 날이라 우리나라 현실이 겹쳐졌죠,인혁당 사건도 생각났고요.


      작고한 류이치 사카토모가 오펜하이머의 아리아를 작곡했는데 승전국 영국인인 놀란이 보는 시선과 패전국의 예술가이자 원폭 피해자 지원 콘서트를 해 온 사카모토가 보는 시선은 다르겠죠
    • 거의 비슷한 감상입니다. 저도 플로렌스 퓨의 진 태틀록 캐릭터가 가장 아쉬웠어요. 이것만 아니었어도 저에게는 거의 부족한 부분이 없이 꽉찬 작품이었을텐데...




      전쟁영화 덩케르크를 만들면서도 피 한방울 안나오게 해서 R등급을 피했던 놀란이 이번엔 그걸 감안하고 이걸 반드시 넣어야겠다며 최초로 도전한 노출과 섹스씬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벌써 커리어가 20년이 넘어가는데 여성 캐릭터와 로맨스 등은 앞으로도 평생 기대하면 안될 것 같아요. 김혜리 기자는 소재상 놀란의 약점인 저 부분이 아예 빠진 덩케르크가 그래서 놀란 필모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기억도 나요 ㅋ

      • 그렇죠? 꽉 찬 작품이라고 느낄 뻔했는데. 의도는 알겠지만 다른 식으로 가 보자고 누군가 암말 안 했을까요...참 그렇습니다. 

        • 놀란 정도의 입지가 있는 감독이 이건 꼭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태클 걸기 힘들겠죠. 스튜디오에서도 간섭 못하는 몇 안되는 감독 중 하나니까요. 플로렌스 퓨도 굳이 비중도 애매한 역할에 저런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씬도 마다않고 출연하는 걸 보면 역시 감독의 이름값이 크긴 한 것 같아요.

    • 진과 얘기하면서 융 얘기가 나오고 진의 직업이 심리치료사인 거 등 나름 빌드업해 두고, 힌두교 경전 인용하며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 시도한 거 같은데 영 어색했죠. 경전 구절 인용 문제로 힌두권에서 반발했고요


      저는 피해자 시선이 없는 이 영화에서 어딘선가 누군가의 멀쩡한 육신이 망가지고 있을 때 애인과의 섹스 대화에 나온 세상의 파괴자 이러는 게 우주적 농담같고 놀란 영화 이제까지 보면서 유일하게 웃긴 장면이라 생각했네요 ㅋ 이 인간 농담할 줄 아네 이런 느낌 ㅋ


      <테넷>에서 가정폭력 장면도 꽤 역겹고 뜬금없었는데 놀란이 나름 고통받아 탈출 결심하는 여주 빌드업한다치고는 과도하고 어색한 연출이었습니다
    • 굉장한 영화였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연기들이 다 너무 좋았죠. 제가 상상하는 오펜하이머는 사회 안에서 통제가 안되는 너무 자신만만한 천재의 이미지였는데 킬리언 머피는 조금 더 진중하면서 고뇌를 꽉 누른 캐릭터로 표현하더군요. 흥미로웠습니다. 진 테트록의 표현은... 이번 영화에서 저는 놀란이 그동안 자기 영화에서 계속 금기시해오던 뭔가를 한꺼풀 벗어던지는 도전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관객들이 수용할 때는 당황스러웠던 지점인 것 같아요. 

      • 오펜하이머 스스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해명하는 대사가 없고(말타고 들판에 나가 우는 장면 빼면) 주변인들이 한 번씩 언급하는 것으로 표현했던 거 같습니다.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명멸하지만 남과 공유하지 않는지 못하는지, 감독은 쉽사리 이 과학자가 자기를 드러내지 않도록 연출을 한 것 같더군요. 킬리언 머피의 튀는 개성이 없는 밍밍한 연기나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대사가 거의 없었던 것도 그런 의도인 거 같은데 감독이 오펜하이머를 왜 이렇게 표현했는가는 따로 생각해 볼 거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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