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럼프라는 춤을 보며


스우파를 리뷰하는 스맨파 멤버들의 리뷰 영상을 보다가, 그 중 한명인 트릭스라는 사람이 스맨파에 나오는 영상을 보고 크럼프라는 춤에 좀 흥미가 생겼습니다. 직관적으로 말하면 크럼프는 다 때려부술 것처럼 추는 춤이고 특정한 안무가 있다기보다는 아주 강한 힘으로 팝핑을 하는 춤에 가까습니다. 아마 춤의 모든 장르를 통틀어서 가장 남성적이고 파괴적인 장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코리오 씬의 유려하고 화려한 안무들과 다르게 의도적으로 뚝딱거리면서도 쾅쾅거리는 춤이랄까요. 


설명을 찾아보니 왕국을 찬양하는 춤이라고는 하는데, 제가 이 크럼프라는 춤을 보며 느끼는 건 다른 종류의 감정입니다. 분노, 원한, 끓어오르는 충동 같은 마이너스의 감정들이 이 춤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프라임킹즈의 저 메가크루 영상 때문에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춤출 때 주로 하는 동작들이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질처럼도 보이고, 유인원들이 자기과시를 하면서 내딛는 발걸음처럼도 보입니다. 음악들도 소리지르는 힙합이나 사운드가 쎈 일렉트로니카를 쓸 때가 많죠. 배틀을 붙을 때도 상대를 향해 팔꿈치로 치는 듯한 움직임도 자주 보이구요. 


여러 영상을 보면서 크럼프라는 춤이 시체가 추는 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춤을 다 못추고 죽은 사람이 춤에 대한 집념과 춤을 못추게 한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다시 부활한거죠. 하지만 무덤 속에서 이미 부패가 진행되었으니 중간중간 힘줄도 끊어져있고 뼈도 부숴져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걸음걸이도 뚝딱거립니다. 중간중간 동작에 적응이 되었다 싶으면 힘조절을 못해서 너무 세거나 빠르게 팔을 휘두르고 통제가 안되죠. 크럼프에서 신발트릭이나 모자 트릭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데, 저는 이게 시체가 자기 머리나 발을 따로 떼서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체의 익살이랄까요.


춤은 세상을 재해석하는 몸짓이죠. 어떤 춤은 무중력을 가정하거나 관절이 없다거나 자신의 육체가 로봇인 것처럼 몸을 씁니다. 크럼프는 자신의 몸을 뭔가 강하게 붙들어매고 있어서 거기에 저항하는 몸짓처럼 느껴집니다. 저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언젠가 해골 분장을 하고 춤을 춰주면 좋겠군요ㅋ




물론 크럼프도 다른 장르에 추려면 얼마든지 출 수 있습니다!! 

    • 다음 웹툰 중 2010년대 초중반에 연재한 [페이머스맨]이라는 춤 만화가 있는데 저는 거기서 크럼프를 처음 접했죠. 그 작품에서도 "제가 이 크럼프라는 춤을 보며 느끼는 건 다른 종류의 감정입니다. 분노, 원한, 끓어오르는 충동 같은 마이너스의 감정들이 이 춤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라고 관찰하신 그대로 묘사하고 있었어요. (참고로 만화는 다양한 춤을 묘사한 것은 좋았지만 캐릭터 및 전개가 하나부터 열까지 고리타분할 정도로 이른바 '소년 만화의 왕도'만을 걷고 있어서, 유료 전환된 지금은 선뜻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또 2005년에 나온 [라이즈 / Rize]라는, 9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유행한 하위문화로서의 크럼핑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는데요, 거기서도 이 춤들을 폭력과 마약 등에 노출된 빈곤 비백인 계층의 울분과 좌절을 긍정적인 형태로 표출하는 표현 수단으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리지요. 지금 검색해 보니 뜻밖에도 유튜브에서 대여/판매 중이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m_ffiJktb_4

      • 와!! 재미있어 보입니다!! 저는 크럼프라는 춤이 뭔가 춤을 추는 사람들을 강하게 옭아매고 있어서 그걸 끊어버리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니 흥미롭습니다. 사회적 억압이 이런 식으로 하나의 문화로 탄생하는 건 진짜 신기한 것 같아요. 

    • 예전에 '댄싱9'에서 크럼프 장르 춤을 추는 출연자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유인원의 몸동작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떤 춤을 크럼프라고 구분하는지는 몰랐는데, sonny님 글 덕분에 크럼프라는 장르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어요.

      시체가 추는 춤 같다고 느끼시고, 신발과 모자 트릭을 시체의 익살로 해석하고 표현하신 부분이 신박하고 재밌습니다!
      • 감사합니다 ㅋ 가끔 모자 트릭이나 신발 트릭 쓰는거 보면 되살아난 시체가 통증을 못느끼는 몸을 이리저리 떼보면서 즐거워하는 느낌이에요 ㅋ










        댄싱 나인 이야기가 나와서 웃기는 영상 하나 올려봅니다 ㅋㅋ

        • ㅋㅋㅋㅋㅋ 멋있네요

          이건 딴 소린데 외길 인생 산 사람들 멋있고 존경스럽죠 ㅋㅋ
    • 매우 쌩뚱맞은 뻘플이지만 본문 글과 댓글들을 보니 괜히 마이클 잭슨의 'They don't care about us'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뮤직비디오를 찾아 봤네요. 




      https://youtu.be/t1pqi8vjTLY?si=Bn4W6kvE70kQ0RgI




      이건 감옥 버전




      https://youtu.be/QNJL6nfu__Q?si=AWr3aKb-X54pNPpn




      이건 브라질 버전인데.




      춤은 전혀 다르지만 짧은 군무도 나오고 대충 정서가 비슷하다고 우겨 봅니다. ㅋㅋㅋㅋ


      스파이크 리 감독을 데려다 연출한 야심작이었죠. 당시에 화제도 됐었고.

      • 오 덕분에 마이클 잭슨 뮤비 잘 봤습니다... 클래식의 힘이 느껴지네요.

    • 하카를 오마주 한 걸까요? 너무 비슷한데요.

      https://youtu.be/TI93YHILSgk?si=I-8OG5A8pCjeBjY_
      • 하카 오마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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