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온다

이번 설 연휴 전에 조카의 방문이 좀 부담이 된다고 글을 하나 썼었죠. 제 동생 부부와 조카가 함께 방문했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조카는 저나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도 방방거리기 시작했는데 별 거 아닌거 같으면서도 맞장구를 쳐주느라 에너지가 다 빨렸습니다. 친정과 시댁이 모두 같은 도시에 있어서 동생 가족이 왔다갔다 했는데 이번에는 그 틈이 생기면 저희 아버지도 한숨을 몰아내쉬더라구요. 모든 생활패턴이 조카에게 맞춰지기 때문에 집의 주인인 아버지는 그게 별로 편하지 않을 수 밖에요. 어머니는 그저 손자 귀여워하는 마음이 큽니다만.
이를테면, 제 동생은 조카 앞에서 절대 동영상을 켜지 못하게 합니다. 티비를 틀지 않는 건 당연하고 핸드폰 동영상 시청도 안됩니다. 한 네다섯살까지는 이런 디지털 영상을 접하지 않게끔 할 거라고 하는데 저는 그 정책(?)에 아주 대찬성입니다. 어른들도 정신못차리고 숏폼 및 10분 단위의 영상에 정신못차리고 중독되는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런 부분에 큰 불편이 없는데 아버지는 조금 갑갑해하시죠. 밥먹으면서 뉴스도 보고 싶고 재미없는 외화도 멍하니 보고 싶은데 그걸 못하시니까요. 그러니까 조카와 시간을 보내면 조카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며 계속 교류를 하는 것인데 이게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긴 시간을 지속하면서 하기엔 쉽지 않죠. 그러니 기쁨보다도 노동이 훨씬 크게 됩니다.
거기에 제 동생의 태도가 조금 꺼끌거린다고 느꼈습니다. 제 동생은 타인에게 어떤 요구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믿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생이 가게 주인에게 아이스크림 값을 흥정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소상공인들 남겨먹는 거 없으니 그렇게 부담주지 말라고 해서 한번 다툰 적이 있거든요. 이런 태도가 본인 자식의 양육과 결부되고 그 사람들이 가족이면 더 당연하게 요구를 합니다. 이를테면 조카는 계란 알러지가 있으니 음식을 조리할 때 조심해야하는데, 동생이 그걸 엄마에게 시험관처럼 캐묻고 야단치는 형식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죠. 세대차이가 있다보니 어머니는 알러지에 덜 민감할 수 밖에 없고 원래도 막 그렇게 칼같이 딱딱 구분하는 성격도 아닙니다. 그러니 동생이 엄마를 약간 '부리는' 식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런 건 저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조카가 저를 보고 혼자 울면서 땡깡부리길래 제가 방에 들어가자 제가 조카에게 사과를 하고 풀어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시간이 좀 흐르고 조카랑 또 같이 방방거리면서도 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조카가 집에 온다는 건 결국 온 가족이 육아의 책임을 나눠야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명절 연휴 때에는 좀 편히 쉬고 싶습니다ㅎㅎ 조카를 귀여워할 수는 있지만 이런 저런 일들에 적극적인 책임까지 질 준비는 아직 되어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어딜 데리고 놀러가면 모르겠는데 생활 패턴 자체를 조카에게 맞춰야 한다는 게 좀 번거롭긴 하더군요. 나중에 조금 더 커서 제가 맡아줄 상황이 되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아이를 이뻐하는 마음을 사촌동생에게 다 써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카가 귀엽긴 해도 큰 책임이나 애착이 아직까지 생기진 않군요. 이것도 시간 지나면서 생각해볼 일이지만 '첫 애기친척'이란 정이 또 따로 있는 건 아닌가 혼자 의심해봅니다. 그냥 제가 아이들을 안좋아하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군요 ㅠ
@ 그래도 조카가 귀여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배를 먹으면서 강아지 인형에게 "이거 정말 맛있어~"라고 말하는 건 촬영을 못해서 아쉬웠네요.
하게 되는 말의 대부분이 "하지 마" "위험해" "조심해" "건드리지 마" 뭐 이렇더라고요 ㅎㅎㅎ
밑에서 두 번째 문장 '첫 얘기친척'은 '애기'겠죠? 그런 게 있는 거 같았어요. 제 주변을 봐도 집에 처음 태어난 손이나 조카에 대해 좀 각별하더라고요. 너무 각별해서 진을 뺐는지 다음부터는 점점 덜해지는.ㅎㅎ
아기 사진 넘 예쁘고 좋습니다. 원래 아기는 자고 있으면 최고 귀엽고 아쉽고, 깨서 돌아다니면 좀 버겁고 그런 거 같아요.
앗!! 수정했습니다 ㅎㅎ
사촌동생은 저를 좋아해서 더 꺄르르 논 것도 있어서 그런지... 조카는 아직 그만치 못어울려요 ㅋㅋ 제가 무서운 척 하면 꺄르르 하면서 숨긴 하는데 ㅋㅋ
말씀대로 아기는 자고 있을 때 제일 귀여운 것 같아요 걸어다니기 시작하면 정말 아웃 오브 컨트롤입니다
미묘한 부분을 짚어주셨네요. 아주 미묘하지만 정확한 묘사입니다. 주양육자와 주변인들과 묘하게 대립되는 정서가 있어요. 그건 주양육자 사이에도 일어나는 일이구요.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미디어를 배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립되는 정서가 어떻게 융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오만잡다한 것을 예민하게 다 느끼니까요.
저는 제 조카에게 툰드라 아이처럼 알아서 척척척하라고 할 순 없지만...ㅎㅎ 그럼에도 양육이라는 게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매우 피곤하다는 걸 느끼고 말았네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그 말씀을 예전에는 끄덕이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어떤 각오를 하게 됩니다. 쉽지 않겠구나~ 하는...
저희는 3세대(그러니까 제 입장에서는 조카)가 이제 세 명으로 늘었는데 귀엽지만 피곤한 그 심정은 정말 이해합니다 ㅋㅋㅋㅋ 저희 아버지도 이번 명절에 보니 손주들이 방문해서 만날 때 한번 즐겁고 시간을 보낸 뒤에 손주들이 돌아가니 아이고 편코 좋다 하고 한번 더 즐거워하시더라고요(어찌됐든 즐거워 하시니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조카 1호와 2호는 주양육자가 못 하게 하는 게 워낙 많은데 나머지 가족들은 거기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 귀여움과 별개로 번거롭긴 합니다 조카 3호는 그보다는 좀 느슨하게 키우는 듯 한데 아직 아기라 또 번거롭고요 ㅋㅋㅋ 그래도 아직 이모 고모 삼촌 하고 엉길 때가 좋은 거 아닐까요 다 커서 만날 일도 없고 딱히 통하는 점도 없어서 차츰 멀어지는 경우도 저와 저의 손위로 3촌지간을 생각해보면 너무 흔하기도 하니까요
이게 손자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더 그럴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이미 자신들의 자식을 키워낸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한 세대를 건너뛴 존재에게 또 양육이라는 수고를 반복해야하니 조금 더 진력이 날만하겠지요. 해삼너구리님의 아버님 반응이 아마 제 아버지 반응과 그리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ㅋ
그래도 말씀주신 것처럼 뿌 하면 꺄갹 하는 어릴 때가 삼촌에게도 더 좋긴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