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라고는 책 속에서 조용히 나이드는 것 뿐
“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임유경, 2014)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집었습니다. 제목처럼 문헌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여자들의 삶에 관한 글을 적은 내용인데요. 여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남긴 것도 있지만 사실 드물고, 주변사람들이
전하는 그녀들 이야기 위주로 짤막한 사연들을 모았습니다.
“소원이라고는 책 속에서 조용히 나이드는 것 뿐”은 시집간 딸이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가 딸을 기억하면서 쓴 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어린 나이에 책을 통해 학문의 재미를 알게 된 딸에 대해서 아버지는 이렇게 씁니다.
….(딸은) 날마다 문을 닫고 책을 잡고 푹 빠져들어 먹고 자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것을 가상하고도 기특하게 여졌다. 그리하여 금지시키지 않고 말하였다.
“이 딸아이는 성품이 고요하고 질박하니, 글을 알더라도 탈이 없겠다”
이 똑똑한 딸아이는 열다섯살에 시집을 갔는데 스물두살에 아들을 낳고 죽습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딸을 기리기 위해 쓴 글에 따르면 시집간 이후 7년 동안 시집 사람들은-심지어 남편까지도 딸이 책을 읽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답니다.
김운이라는 이름의 이 여자애가 아버지와 읽은 책은 주로 유교 경전이었는데 그 내용은 당연히 여자의 도리는 남편과 시댁을 공경하여 자신을 낮추고 살라는 것이었고 그 가르침에 따라 결혼한 다음에는 책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글의 마지막에는 딸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아버지 필자의 오촌 조카가 어린 나이에 죽자 묘문을 지어주었는데 당시 열두살 쯤이던 딸아이기 말하기를
“이 언니는 그래도 아버지의 글을 얻어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니 불행한 것이 아니네요”
그리고 죽기 전에 남편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자라 세상에 드러낼 공덕이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차라리 일찍 죽어 아버지의 글 몇 줄을 무덤에 새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는군요.
십대 소녀에 불과한 여자애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자기가 책 속에서 배운 세계관에 따라 스스로 버렸다는게 너무 이상하고도 슬픕니다. 저도 십대 소녀일 때 책만 보며 사는게 소원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슬프고요. 결국 자기가 바란대로 젊은 나이에 죽어서 아버지의 글과 묻히게 되어서 아버지는 “딸은 과연 바라던 바를 얻은 것인가”라고 한탄하는데요. 삼백년도 더 전에 죽은 여자에 대한 공감에서 독자인 제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그 존재가 아주 잊혀지진 않았다고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현대와 같은 교육을 받았다면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스티브잡스 뺨쳤을 천재들이 조선시대에 얼마나 무명으로 죽어갔을지 생각하면.. 겸손해집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기 싫어서 영 딴청 부렸는데,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이렇게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기만 바랬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좀 머쓱해졌어요.
시집 간 집안의 압박으로 글 읽기를 포기 당한 게 아니라 본인이 그토록 열심히 읽었던 책의 내용을 실천하느라 안 읽었다... 라는 대목이 참 슬프네요.
밖에서 가하는 규제도 무섭지만 자신이 내면화한 규제가 진정 무서운거지요 ㅜ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으면 나이들어 더 여유있는 상황에서 다시 책을 찾아 보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십대 때 아는 세상의 이치와 나이 오십들어서 알게 된 세상의 이치가 얼마나 다른데요.
아이러니라고 해야할지 생각해보니 그냥 비극이네요.
(그 시대 맥락에 맞게) 아버지는 딸이 결혼 후에는 책을 들추지 않았다는 걸 살았을 적의 미덕으로 생각하여 적고 있기 때문에 더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