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한국액션영화는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홍콩액션영화는 지금도 이 게시판에서 계속 회자되는 말그대로 전설로 남아서 그 계보와 영화적 의미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되는데

한국액션영화도 그런게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올시다네요. 물론 그 당시 한국액션영화들을 리얼타임으로 보고 자란 세대중에는 자신만의 특별한 감식안으로

좀 더 다른 고찰을 해볼 수 있을까하지만 비평계나 씨네필이나 한국액션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언급을 하는 경우는 거의 못봤습니다.

유일하게 이 장르에 매우 깊은 애정을 가진 오승욱 감독이나 류승완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요.


사실 홍콩액션영화도 그 시작이 대단히 화려했던건아닙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원래 홍콩영화는 멜로영화나 홈드라마가 중심이었고 무협영화라는 것도 칼싸움보다는 주로 말로 때우는 영화들 즉 사극에 가까운 영화들이었죠.

그럴때 쇼브라더스라는 걸출한? 영화사에서 뛰어난 감독과 배우, 스탭을 줄줄이 고용해서 고퀄리티 무협영화들을 찍어내는데 이게 보통 신파무협이라 불리는 당시로서는 뉴웨이브 액션물이었죠.


다만 당시 홍콩영화계에는 액션을 제대로 찍을 줄 몰라서 주로 일본의 스탭들을 고용해서 제작을 합니다.

60년대 초중반만해도 아시아에서 액션영화를 제대로 찍는 곳은 사실상 일본밖에 없었으니까요.

소위 찬바라라고 물리는 사무라이 활극인데 이 칼부림 영화들을 20세기 초부터 주구장창 공장에서 물건 만들듯이 찍어냈으니 그중에 당연히 고퀄이 나울수 밖에 없는 구조였죠.

7인의 사무라이, 산주로, 요짐보, 네무리 쿄시로, 자토이치, 대보살고개, 아들으동반한검객, 고요키바 등등 걸작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오고 나서 일본에서는 이 장르가 슬쩍 식상해질 즈음

홍콩에서 무협영화 붐이 일어나니 일본 스탭들은 새로운 일감을 찾아 홍콩으로 오게 됩니다.


허나 일본은 몇다리가 떨어진 동네이고 물가도 비싸다보니 이동네랑 계속 제휴하기엔 금전적, 지리적으로는 좀 힘들고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죠.

당시 한국영화계도 르네상스라고 불릴만한 호황이었기에 대작 사극부터 홈드라마까지 많은 장르의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고 인력풀도 괜찮았기에 정창화 감독같이 뛰어난 인재는

홍콩영화계에 스카웃됩니다. 또 좁은 홍콩땅에서는 찍기 힘든 다양한 배경의 무협물도 한국의 산과 사찰등지에서는 제법 괜찮은 그림으로 찍어낼 수 있었죠.


그러다보니 아예 한홍합작으로 무협영화들이 줄줄이 제작되고 성룡, 홍금보 등이 아예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영화를 찍던 시절이 바로 이때입니다.

당시 홍콩 무술배우들은 그들이 배운 쿵푸 동작에는 화려한 발차기같은 기술이 없다보니 뭔가 박력있고 화려한 그림을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초창기 권격영화들을 보면 발차기가 어딘지 모르게 허접하거나 뒤뚱거리고 허우적대는듯한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특히 왕우가 심했었죠.


그나마 불세출의 스타 이소룡으로부터 시원시원한 발차기가 나오고 권격영화는 그 이름에 걸맞게 이제야 제대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가 요절하고 난 후 그를 이을 스타가 없었고 이에 한국의 황정리, 왕호같은 배우들이 직접 홍콩에 건너가 태권도로 단련된 제대로된 발차기들을 전수하죠.

황인식같은 발차기와 수기가 절묘하게 조합된 액션도 이때 상당한 볼거리였다합니다. 이때 한국 배우들이 홍콩액션영화에 끼친 공헌은 현지 배우와 스탭들도 인정을 하더군요.

물론 영화가 발길질 잘한다고 잘되는게 아니고 독자적인 액션스타일 구축과 스턴트등 그쪽 영화인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어서였겠지만.


그렇게 홍콩에서 액션영화가 주류로 떠오르는 동안 한국에서도 액션영화는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홍콩처럼 무술영화의 형식으로서는 아니었지만 반공물, 첩보물, 시대극, 갱스터, 느와르 등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액션장면이 빠질수 없는 볼거리로 자리잡았죠.

하지만 이렇게 타 장르와 혼합되지않은 정통 액션물은 '으악새'영화라고 비하받으며 싸구려 영화취급을 받았죠.

이두용 감독의 외다리 시리즈가 당시에는 대단히 화제였지만 비평계의 차가운 외면과 대중의 싸구려 영화 취급으로 인해 그는 결국 액션영화를 접고 문예물로 전환을 모색합니다.

김효천 감독은 그나마 갱스터물의 외피를 두른탓에 조금은 덜 싸구려 취급을 받았네요.

임권택 감독은 지금도 70년대 초중반까지 찍었던 자신의 통속물이나 액션영화들을 혐오하죠.


그렇지만 꾸준히 한국액션영화는 계속 제작이 되었습니다.

마카로니웨스턴 마냥 한국배우들이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인으로 행세하는 산동물장수, 무림걸식도사같은 짝퉁 쿵푸영화들부터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까지.

박우상 감독, 이두용 감독도 80년대에는 현대배경의 액션물을 찍었고 제법 괜찮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딱 거기까지였고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액션영화는 한국영화계 내에서도 싸구려, B급의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90년대 들어서는 이런 짝퉁무술영화도 죄다 사라지고 남은건 깡패영화뿐이었죠.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아들 시리즈가 과거 다찌마리 영화의 추억을 되살려줘서 시라소니 등 비슷한 깡패영화들이 줄줄이 만들어졌습니다.

70년대 액션배우들이 80년대의 주류 한국영화 정극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단역으로 근근히 얼굴을 내밀 정도였는데 이런 액션영화 속에서는 주,조연을 맡으며 꾸준히 활약을 하죠.

당시 액션영화들을 많이 보신분이라면 박동룡, 배수천, 조춘, 현길수, 거룡, 김태정, 신우철 이런 이름들이 친숙할겁니다.


이런 쿵푸영화, 현대활극, 갱스터물 등등 온갖 장르의 액션영화들이 20년 넘게 꾸준히 제작되었는데 영화사에 이름이 남을 만한 괜찮은 작품이 몇 없다는 것은 참 지금 생각해도 씁쓸합니다.

물론 괜찮게 봐주면 괜찮은 작품도 몇몇은 있지만 대부분이 너무 조악하고 시시하니까요.

진짜 장군의아들 시리즈가 흥행해서 조감독 출신인 김영빈이나 무술배우로 참여했던 정두홍같은 인물이 90년대를 대표할만한 괜찮은 액션영화들이 나온건 고무적인 일입니다.

쿵푸영화는 완전히 사멸했지만 (그나마 90년대 가자왕, 고수같은 손에 꼽을 정도는 있었음) 깡패영화들은 한국의 주류 장르가 되었던 덕분에 테러리스트, 본투킬, 게임의법칙같은 괜찮은 작품들도 나오게되었죠.

박우상 감독은 미국에서 KK훼미리리스트라는 갱영화를 내놓기도. 당시엔 멜로영화도 박신양같은 배우가 깡패로 나와서 주먹질해줘야 폼이 났으니....


홍콩영화인들도 당시 한국 깡패영화들의 집단 패싸움씬의 액션연출을 매우 칭찬했다는 후문이 있는데 실제로 이런 장면은 한국영화의 일종의 전통이 되었을 정도로 아직도 느와르물에서 이런 패싸움 장면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그러고보니 홍콩도 반환이후에는 영화계 자체가 침체된 면도 있지만 액션영화 역시 성룡, 홍금보 이후로는 시들해진감이 있습니다. 뭐 이연결, 견자단같은 차세대 스타가 계속 이쪽 계보를

이어받았긴했지만요.  


오히려 홍콩은 액션영화가 주류가 되어서 타 장르의 영화들이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았다고합니다. 제작사들이 영화제작비의 대부분을 액션에선 할애를 해서 액션파트외 다른 장면들은 날림을 연출하는 관행이 생기기도 하는 등 울며겨자먹기로 액션을 집어넣어서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멀쩡한 정극배우를 스턴트맨 마냥 액션장면 찍으라며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고.

다만 홍콩영화를 망하게 한건 액션보다는 싸구려 코미디물이 더 큰 원인이라는 얘기가. 


어쨋든 홍콩액션영화들이 한시대를 풍미하고 계보가 만들어지고 영화사에 그 족적을 남겨 비평, 산업적으로 영화학자들에게도 중요한 파트로 남은 반면에 

한국액션영화들은 뭐랄까? 영화적으로는 별로 남긴건 없고 사회학적으로 보면 결핍과 억압이 낳은 산물이라할까요? 제대로 이름 당당히 꽃피우지못하고 변방에서 차갑게 시들어져갔는지

한번 생각해볼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 평론가의 얘기로는 '문사의 기질'이 강한 한국인의 특성상 순수히 말초적, 오락적 재미만을 추구하는 액션영화에 거부감을 느끼는게 아닌가?하는데

어느 정도 수긍이 되더군요. 물론 수입한 외국놈들의 그것이야 괜찮지만 같은 한국인들이 으악으악 소리지르며 쌈박질하는 영화를 별로 좋지않게 보았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야동도 다른 나람 사람, 다른 인종이 나오는 것과 같은 문화적 동질감을 가진 자국인이 나오는것을 보았을때 느끼는 감정적 동화가 분명 다르니까요.


이제는 그런것도 옛말이고 K어쩌고하는 한국산 장르물의 전성시대이고 액션영화들도 엄청 쏟아져나오는 시대이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늘 고픈 클래식에 대한 갈망은 적어도 한국액션영화에서는

너무도 찾기 힘든 부분이 아닌가합니다. 물론 과거 한국영화의 제작환경이나 시대적 상황이 멜로물, 홈드라마를 제외한 본격 장르영화들이 융성하긴 힘들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블루레이를 사거나 OTT를 뒤적거릴때 한국 클래식 액션영화를 찾을 수 없다는게 참 많이 아쉽긴하네요.

가장 안타까운건 새벽시간 케이블TV의 영화채널을 보다보면 리마스터링도 안된 후줄근한 화질의 옛날 한국영화들이 나올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에로물이나 멜로드라마, 통속물이지만 가끔 액션영화도 나오긴하더군요. 문제는 그 퀄리티가 참 시대적 한계, 제작환경을 고려해줘도 보기 민망한 정도로 허접해서 보기가 너무 힘들다는겁니다.


90년대 만들어진 한국영화들도 요즘의 시네필들의 시각으로 낄낄거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이전의 작품들이라면 에휴~

저는 그런 의미에서 본투킬, 비트, 게임의법칙 정도의 작품들을 비웃을 정도의 시네필들이라면 그 이전 시대의 작품들은 아예 안보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단순히 이 영화 참으로 허접하네 낄낄~~~ 이런 표현으로 일갈하는 것돠 그것이 어떻게 왜 허접한지를 아는 것는 분명히 다르니까요. 

아마 보더라도 그 감상을 글로 표현하기 힘들런지도?




    • 잘 읽다가 마지막에 뜨끔! 했네요. 솔직히 비트, 게임의 법칙은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본 투 킬'은 너무 별로였거든요. 하하;




      생각해보면 그렇네요. 그나마 한국 영화 고전들 발굴하고 홍보하는 일 했던 게 씨네리 정도인데 거기서도 옛날 한국 액션 영화들 언급은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류승완 감독이 한국 고전 액션 매니아다! 오마주를 한다!! 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정도. 말씀대로 이제와서 찾아서 볼 곳도 거의 없기도 하구요.




      참고로... 웨이브에 몇 달 전에 갑자기 옛날 한국 영화들이 무더기로 업로드 된 적이 있는데요. 나름 한국 영화사에서 한 자리 하고 있는 영화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작품들까지 대중 없이 마구 올라와 있는데, 그 와중에도 언급하신 옛날 액션 영화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방금 다시 확인해 봤는데요, 역시 없네요(...)

    • 이대근씨는 김두한 때 정말 대역 없이 열심히 찍었다고도 하시고, 당국의 검열이 아쉬웠다고 토로하는 배우도 봤습니다만, 보는 입장에서 재미도 없고 시원스러움도 없는 걸 뭐 어쩌겠어요. 소설 속 묘사이긴 합니다만 전후 일본에서처럼 진검들고 죽일듯 살릴듯 악으로 깡으로 영화를 찍었다던가 성룡처럼 찍었으면 걸작이 남았겠지요. 그리고 액션 말고 다른 부분에 뭔가 좀 성의가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장군의 아들만 봐도 돌핀 전자시계 차고 나오고 89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옷이 나오고 그러면 좀 깨고 그러니까  

    • 개인적으로 한국 권격 영화의 잔재는 80년대 TV의 아동용 드라마 중에서 [소년탐정 이지돌과 루팡]이란 물건으로 이어지고 이런 것들이 이후 잊혀진 과정 내 정도에서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단은 모리스 르블랑의 루팡 시리즈 추리소설 [기암성]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지만, 어째 등장인물들이 중국 무협지 풍으로 싸우는 괴작 아닌 괴작이거든요 ㅎㅎㅎ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적겠지만 KBS는 녹색 타이즈에 가슴에 S자 대신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국산 수퍼맨 드라마도 찍었었죠… 



      • 거의 다 봤을 겁니다. 소년 탐정 시리즈는 꽤 길게 이어져요. 각색의 한계는 있었지만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도 있었고. 날아라 슈퍼맨도 종영까지 다 봤고요. 유튭에는 이지돌 1편만 있어서 아쉽지만----그 시절 명절, 납량 특집 무술 드라마는 꽤 올라와 있어서 많이 봤어요 적어도 영화보다는 훨씬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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