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로스트 하이웨이]를 보고

@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lost-highway-1-1024x533.png


약 5년 전 이 영화를 죄의식이란 키워드로 설명해주신 정성일 평론가 덕분에 대략적으로 가늠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제는 이렇다. 그는 정체불명의 비디오테이프가 집 앞으로 배달되는 건을 방문조사하는 경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I like to remember things my own way." 자신은 일어난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기억한다고. 프레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도 못하는 채로 경찰서에 끌려가지만 토막살해당한 르네의 시체와 그 피를 묻히고 절규하는 프레드의 이미지가 순간 스쳐간다. 프레드는 이를 "자기 식대로", 불편한 기억은 생략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수용되어있던 감옥에서 두통을 호소하다가 프레드는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있다. 피트라는 이름의 20대 청년이 누군가한테 맞은 듯한 상태로 프레드 대신 들어가있다.


lost-highway-5.png



이후 2부격인 내용에서 영화는 피트의 삶을 따라간다. 피트는 카센터에서 일하는 유망한 정비공이고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친구 셰일라가 있다. 피트는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차를 수리한다. 그는 그 지역의 유지이자 위험한 조직폭력배처럼 보이는 미스터 에디 / 딕 로렌트에게 정비공으로 총애를 받고 있다. 어느 날 피트는 미스터 에디가 데리고 다니는 금발의 고혹적인 여자를 본다. 그 여자는 그 날 저녁 정비소에 혼자 나타나 피트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이 날 바로 둘은 섹스를 하고 밀회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2부의 피트는 1부의 프레드가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낸 망상의 인격이라면 어떨까. 프레드는 아내인 르네를 죽였지만 이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르네를 죽인 적도 없고 그런 사건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전혀 다른 인격체인 피트를 창조해내서 그 인격으로 도망쳤다. 프레드는 르네를 성관계로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피트는 여자친구나 앨리스를 만족시킬 줄 아는 그런 청년이다. 오죽하면 피트를 미행하는 경찰이 하루종일 섹스만 해대는 피트를 보며 투덜거리기까지 한다. 피트는 프레드의 초라하고 끔찍한 현실을 벗어나가 위한 인격적 탈출구이며 그 환상에서 프레드는 피트가 되어서 망상을 누린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lost-highway-8.png


이후 피트와 앨리스의 밀회를 미스터 에디가 눈치챈다. 피트와 앨리스는 이대로 가다간 살해당할거라면서 탈주를 시도한다. 그러나 피트는 앨리스가 유명한 포르노 배우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피트가 찾아간 앤디의 집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앨리스가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계속 상영되고 있다. 거기서 피트는 앤디를 유리탁자의 모서리에 머리가 거의 절단되는 방식으로 살해한다. 앨리스는 아무렇지 않게 앤디의 귀금속을 챙기고 피트는 앨리스의 지시대로 어느 오두막집을 향한다. 그곳은 1부에서 프레드가 환상 속에서 본, 불에 타다가 원상복귀되는 사막 한 가운데의 오두막집이다. 이 장면 역시 1부에서 프레드가 앤디라는 남자가 르네에게 접근하는 것을 불안해하다가 환상 속에서 그를 죽여버리면서 불안을 해소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혹시 르네가 앤디라는 남자와 이상한 일을 했던 과거가 있던 것은 아닌지, 그것을 망상 속에서 확인하기도 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야 불안을 해소할 수 있으니까.


lost-highway-7.png


그 오두막집에 도착해서 피트와 앨리스는 섹스를 한다. 그러나 앨리스는 섹스 후 "넌 나를 가질 수 없어"라는 말을 하고 오두막집으로 들어가버린다. 피트는 오두막집에 들어가보지만 그 곳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이상한 남자밖에 없다. (편의상 그를 미스테리맨이라 부르겠다) 피트는 갑자기 프레드의 얼굴로 뒤바뀐다. 피트의 옷을 그대로 입은 프레드는 이후 '로스트 하이웨이'라는 모텔에 들어가 자신을 괴롭히던 미스터 에디 / 딕 로렌츠를 납치한다. 이후 트렁크에서 그를 빼내고 잠시 몸싸움을 하지만 미스테리맨에게 칼을 건네받고 프레드는 딕 로렌츠를 죽인다. 피트가 봤던 앨리스는 사진 속에서 미스터 에디, 앤디, 르네와 함께 찍혀있었다. 하지만 경찰들이 본 사진에서는 르네 한명만 있었다. 피트가 본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환상일 수 있다. 그렇다면 프레드가 망상 속에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는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모두 실체없는 망상이었다는 것이 아닐까. 붉은 머리의 르네는 딕 로렌츠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바람 피우는 아내'의 이미지는 포르노 배우였던 금발 아내의 이미지로도 해소가 되지 않았다.


131090533.png


이후 얼굴이 바뀐 피트, 즉 프레드는 경찰들에게 추격을 당한다. 이후 그는 아침에 어느 집앞의 문에 도착한다. 그는 부저를 누르고 "딕 로렌츠는 죽었다"고 말을 한 후 경찰들의 추격을 피해 다시 달아난다. 이 장면은 영화 도입부에서 프레드가 집 안에서 들었던 누군가의 목소리다. 그렇게 추격을 당하면서 프레드의 얼굴은 환상처럼 일그러진다. 그렇다면 아주 대략적으로, 프레드는 환상속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을 수 없었고 그걸 자기자신에게 알리기 위해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를 들은 프레드는 이후 영화의 전체 내용을 다시 반복하며 피트로 변화했다가 다시 프레드로 되돌아오며 영원히 자기자신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것일까. 





이렇게 설명이 끝난다면 이 영화가 난해한 작품이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프로이드의 이드와 슈퍼에고의 법칙으로만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많은 디테일들이 삐걱거린다.


1. 이것이 프레드의 환상이라고 치자. 그런데 프레드를 체포했고 피트를 미행하는 경찰들은 제3의 관찰자들이다. 이들은 밀실인 감옥에서 프레드가 피트로 바뀌었다는 것을 목격했고 그걸 인정했다. 2부의 내용이 환상이라면, 이들은 환상 속의 목격자로서 단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환상 속에서 피트가 본 사진 속에서는 적발의 르네와 금발의 피트가 함께 있었는데 이 경찰들은 오로지 르네만이 있는 사진을 보는 것일까. 이들이 현실 속의 객관적 관찰자라면 이 영화의 1부가 현실이고 2부가 환상이라는 전제는 다 박살나는 것이 아닌가?


2. 미스테리맨은 이드(욕망)을 제어하는 슈퍼에고(초자아)일 수 있다. 프레드는 그를 어둠 속의 르네 얼굴에 합성된 듯한 미스테리맨의 얼굴로 맨 처음 인식한다. 그렇다면 그가 집 바깥을 촬영한 테이프를 보냈다가 점점 집 안으로 보여주는 테이프를 보내는 것은 프레드가 슈퍼에고의 경고메시지를 느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스테리맨이 이드를 제어한다면, 왜 그는 그렇게 사악한 미소를 띄우고 프레드를 억제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모든 것을 제멋대로 기억하는 프레드에게 이른바 '양심'으로 분류되는 초자아의 원칙을 대면하는 게 끔찍하다는 표현일까. 미스테리맨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그는 어떻게 분열되어있고 이것은 프레드에게 어떻게 기능하는가? (죄의식이 쫓아다닌다고 한다면 어디로든 따라간다고 하면 되지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는 왜 딕 로렌츠를 죽이려는 프레드에게 칼을 건네며 협조하는가?


3. 프레드가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피트라는 인격체를 가상으로 만들어냈다고 치자. 그런데 이걸 마냥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상세하다. 그리고 그는 프레드가 갑자기 뒤바뀐 게 아니라, 프레드가 바뀌기 전에 따로 존재하는 인격체로서 부모가 만류하는데 프레드의 호출에 응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피트의 부모님은 피트의 그날 밤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경찰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프레드는 그 존재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딕 로렌츠를 왜 피트가 만나고, 그에게 이쁨을 받으며, 그에게서 도망치는 계획을 결행하는가.


4. 프레드는 딕 로렌츠를 모른다. 그가 딕 로렌츠는 죽었다는 정체불명의 음성을 들었을 뿐이다. 이런 존재를 극복하기위해 프레드는 환상 속에서 구체적인 그의 존재를 만들고 그를 일부러 죽이기까지 하는가? 2부에서는 딕 로렌츠가 어떤 사람인지 피트를 차에 태워서 상세하게 그의 성격을 묘사하기까지 한다. 피트가 프레드라면, 프레드는 그 음성 하나로 딕 로렌츠는 이런 사람이고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도 있으며 내 아내와 이런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을 이어나가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그를 왜 미스테리맨과 함께 죽일 수 있는가??


5. 피트의 직업은 자동차 정비공이다. 이 영화는 '하이웨이'를 달리는 영화다. 차가 고장이 났다면 그걸 다시 고쳐야 하이웨이를 달릴 수 있다. 프레드는 갇혀있는 상태이고 그는 더 이상 하이웨이를 달릴 수 없다. 피트가 자동차를 고치는 것, 그리고 그런 그가 앨리스와 함께 하이웨이를 달리는 것은 과연 우연인가? 맨 처음 그가 고쳤던 자동차는 딕 로렌츠의 자동차다. 딕 로렌츠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어느 운전자를 쫓아가 두들겨패고 그와 동승한 피트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겁에 질린다. 그리고 피트는 딕 로렌츠에게 쫓긴다. 이것이 폭주와 규칙에 관한 영화라면, 피트가 자동차를 고치고 달아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지옥같은 이미지들의 나열 속에서 어떤 공식이 맞춰질 듯 하면서도 맞춰지지 않는다. O.J. 심슨의 사건을 모티브로 데이빗 린치는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 윤아랑 평론가의 글을 포함해 다른 글들을 읽었지만 현실 / 환상의 이분법으로만 이 모든 이야기를 짜맞출 순 없다는 것만 확인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1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6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5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9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4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4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1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7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5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0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6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8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