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바낭] 할 말이 별로 없어서 좋습니다. '끝없음에 관하여' 잡담
- 2019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16분.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없는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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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이 포스터 이미지에 낚여서 봤습니다. 근사하지 않나요? ㅋㅋ)
- 도입부 소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 형식이 그래서요.
그러니까 정체불명의, 아마도 신이 아닐까 싶은 어떤 존재의 목소리가 나레이션 역할을 합니다만 말이 길진 않아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무엇무엇을 하려고 했다' 이러면 끝이고 그 '한 남자'가 나와서 대략 1~3분 정도 짧게 어떤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고 다음은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다른 시점, 다른 배경의 다른 사람이 나오고 또 '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한 다음에 또 1~3분 정도. 이걸 계속해서 반복하다 끝나는 영화입니다. 그냥 이게 다에요. 줄거리도 없고 당연히 주인공도 없고 아주 짤막한 어떤 상황들을 수십 개 연달아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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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두 번 이상씩 나오기도 합니다. 이 '아내에게 요리를 해주려는 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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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멋지게 내리는 눈 풍경을 바라보지 않는 치과의사' 같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인데... 뭐 대단히 특별한 점은 없구요. ㅋㅋ)
- 딱 봐도 처음부터 특이합니다. 일단 하나의 상황은 거의 대부분 원테이크로 끝납니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요. 옛날 영화 이론책에서 자주 접하던 딥 포커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활용하기 때문에 화면 거의 대부분에 초점이 맞아 있어서 이걸 보라는 건지 저걸 보라는 건지 보는 사람이 알아서 찾아야 합니다. 딱 하나의 상황을 제외하곤 다 현실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게 실내든 실외든 주변 환경이 어떻든 가리지 않고 색감이 거의 비슷한 톤으로 통일이 되어 있고 이게 현장감과는 거리가 멀어서 다 스튜디오 실내 세트 촬영 같은 느낌을 주고요. 등장 인물들은 종종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을 겁니다. 제가 얘기 하나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이런 식으로요.
보통 이런 식으로 찍은 영화 얘기를 할 땐 '연극적이다'라는 말을 마구 갖다 쓰게 마련이고 이 영화도 좀 그렇긴 합니다만. 보다 보면 연극보단 움직이는 그림(?)을 구경하고 있단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요. 그 고정된 카메라로 잡은 구도가 참으로 정돈되고 차분한 느낌이라서, 게다가 위에서 말한 일관된 색감까지 어우러져서 굉장히 회화적인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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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와서 올려놓고 보니 짤에 블러가 들어간 것 같은데 그냥 색감이나 빛만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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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일관되게 톤이 조절되는 게 좀 신기했습니다. 후보정을 빡세게 하셨나 보죠.)
- 그래서 무슨 상황들을 보여주느냐... 하면요. 그것도 참 난감합니다. ㅋㅋ
그러니까 이런 식이에요. '한 여자를 보았다. 홍보담당자인 그 여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라는 나레이션이 나오며 한 여자가 고층 빌딩 안의 사무실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라봅니다. 계속 바라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쭈뼛거리며 뒤를 돌아보는데 표정이 뭔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 같은 표정이에요. 그리고 다시 창 밖을 바라봅니다. 계속 바라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요. 험(...)
다행히도 죄다 이런 건 아니고, 이런 상황은 대략 절반 정도. 나머지 절반 정도는 그래도 대충 봐도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긴 해요. 명예 살인을 저지른 직후에 후회로 울부짖는 아빠라든가. 믿음을 잃고 매일 밤 십자가를 끌고 가며 채찍으로 두들겨 맞는 꿈을 꾸는 신부라든가. 친구에게 열역학 제1법칙을 설명해주는 남자애라든가... 다만 문제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쌩뚱맞아 보이는 장면들이 의미 있어 보이는 장면들보다 덜 중요하거나 별 의미가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ㅋㅋㅋ 결국 관객들에게 두뇌 풀가동을 강요하는 몹쓸 영화입니다!! 그렇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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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빠가 비 맞으며 애 신발끈 매주는 걸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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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자동차 고장나서 혼자 수리하는 게 뭐가 어떤 건데!!! ㅋㅋㅋㅋ)
- 영화 제목. 그리고 중간에 나오는 그 열역학 제1법칙. 덧붙여서 영화 속 여러 상황들을 엮어서 머리를 굴려 보면 결국 '이런 게 인간의 삶'이라는. 뭐 그런 걸 전달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구요.
그러니까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콜라주처럼 만들어서 보여주며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는. 그런 형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다 보면 살짝 비슷하게 겹치는 소재들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명예 살인을 저지르고 후회로 오열하는 아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 받아 가는 어린 딸의 운동화 끈을 매주기 위해서 쏟아지는 폭우를 맞는 아빠, 할머니가 예쁜 사진 찍도록 갓난 아기를 계속해서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아빠... 그러니까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고. 어떤 건 비극이고 어떤 건 희극이고. 또 이런 다양한 모습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영원히 반복되며 이어져가고...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게 우리 삶이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이런 느낌? 뭐 아니면 말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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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최다 출연자가 아니셨나 싶은 '믿음을 잃어 버렸는데 어떡해야 하나요!!!' 신부님.)
- 근데 솔직히 막 이해를 하거나 정리를 할 수 있으면 당연히 더더욱 좋겠습니다만. 그냥 넋 놓고 보고만 있어도 이게 은근히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으며 심지어 몰입도 됩니다.
일단은 처음에 말 했듯이 그림들이 다 근사해요. 그리고 상황들이 다 짧아서 '이번엔 또 무슨 얘기냐!'하고 잠깐 집중하다 보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가요. ㅋㅋ 그리고 그 중엔 난해하고 쌩뚱맞은 것도 있지만 그보단 어떤 식으로든 인상을 남기는 상황들이 더 많습니다. 짠하고, 애틋하고, 우울하고, 절망적이고, 끔찍하고, 냉소적이고, 웃음이 나오고... 등등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뭔가 조금씩은 남아요. 그리고 그런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역시 또 하찮은. ㅋㅋ) 상황까지 보고 나면 뭔가 전달 받은 듯한 착각(...)이 들고 그럽니다. 심지어 다시 한 번 보면서 생각이란 걸 해보고픈 기분이 들 정도였네요. 그래서 대략 절반 정도는 진짜로 다시 봤습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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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미적 감각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보는 사람이 뭔지 못 알아 먹으면서도 감동 받게 하는!!! ㅋㅋㅋ)
- 저만 몰랐지 아주 널리 인정 받는 유명한 감독님의 최근작이라고 하더라구요. 찾아보니 듀나님도 리뷰를 남기고 별 셋 반이나 주셨군요.
작정하고 고독한 작가주의에 동참을 요구하는 류의 영화이긴 합니다만.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이유로 의외로 허들이 낮고 저같은 사람이 봐도 '이해가 안 가!'라는 난감함보단 감정적 울림 같은 부분을 더 크게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어요. 불친절한데 친절하달까요.
요즘들어 이런 아트하우스 영화를 본지 오래 돼서 간만에 한 편 감상하고픈 기분이 든다... 는 분들에게 추천해 봅니다. 솔직히 보다가 잠들지 않을까 걱정하며 틀었는데 끝까지 즐겁게 잘 봤어요. ㅋㅋ 대체로 울적한 상황들이 많지만 그 와중에 훈훈한 느낌도 주고.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엔 전 그래도 희망 같은 걸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시니컬, 냉소 같은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그리고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이유로 스포일러 구간도 없고 또 아는 게 없어서 잡담 할 거리도 없습니다. 그냥 끝이에요. ㅋㅋ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 [유 더 리빙], 그리고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로 확립된 감독 로이 안데르손의 그 특유의 건조하지만 부조리하게 웃기는 방식의 연장선이지요. 3부작에 비해 그저 앙코르 연주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이것도 아주 인상적으로 봤는데 이게 그저 앙코르 연주 정도라니 이전 3부작도 궁금해지네요. 하지만 다시 또 저의 아트 무비 쿨타임이 돌 때까지는 기다려 보는 걸로... ㅋㅋㅋ
업계나 전문가 아닌 일반인이 전위 음악 듣는 것 같은 느낌일까요? 위의 영화 멍 때리며(?ㅋㅋ) 보는 것이? 아님 나름 집중이 되나봐요?
확실히 실험적이고 예술적인(쿨럭;) 형식이긴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허들이 높진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 짧은 상황들이 은근 호기심도 자극하고 가끔은 웃기거나 심란하거나 이런 기분도 유발을 하고... 그렇거든요. 게다가 워낙 다들 짧으니까요. ㅋㅋ
로이 안데르손 감독의 영화는 아무 장면이나 잘라놔도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런 느낌의 영상이 나올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해요.
관객은 의식의 흐름 따라 정처없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히 아름다우시죠.
그냥 예쁜 그림 잡아내는 감각이 있는 사람... 을 넘어서 아마 미술에 조예가 깊은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대로 정말 미술관 그림 스타일이잖아요. 이런 건 대체로 정말 공부를 했든 어쨌든 많이 아는 사람들이 뽑아내는 그림 같더라구요. 그리고 그림만 멋지게 그리는 게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상황들 같은 것도 참 잘 쓰신 것 같아요. 저는 몰랐지만 진작부터 대가 취급 받으셨다는 게 납득이 되더라구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