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라면 잡담

옛날옛적에 NHK에서 만든 '실크로드'라는 관광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중국이 아직 중공이고 거기 가려면 목숨 내놔야할 각오를 해야했던 시절에 대륙의 이런저런 풍경을 안방에 공개하는 당시로선 충격적인 구경거리였죠.

그거 만드는 데 KBS도 숟가락을 얹어서 (정확하게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동제작이라는 명분으로, 일제 컨텐츠는 무조건 금지되어있던 시절이지만 한국에 방영이 되었었죠.

근데 다까먹고 지금 기억나는 건 키타로가 만든 주제음악하고 딱 한장면 뿐이예요.

제작진이 중국 어느 동네에 가서 국수를 시켜먹으면서 '라면의 본고장에 와서 라면을 먹으니 정말로 감개가 무량하다'는 나레이션이 나왔던 거.

그장면을 기억하는 것도 그때 처음 라면이 원래 중국음식이었다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이겠죠.

몇년뒤에 신문을 보고 라면이 원래는 음식 이름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면을 만드는 이런저런 방법중에 拉麵법이라는게 있다는거예요. 랍면법은 밀가루를 계속해서 죽죽 잡아늘여서 만드는 거.  요즘 사람들에게 친숙한 말로는 수타죠.

랍면, 즉 라몐은 특정한 음식 이름이 아니라 랍면법으로 만든 국수가 들어간 음식은 다 라면에 해당하는 거였어요. 세상에... 짜장면도 라면이었어요.


일본 사는 화교들이 수타, 라몐으로 만든 국수를 먹는 걸 본 일본사람들이 '라몐'을 음식 이름으로 오해한 거였다나 봐요. 지금도 정통 일본 라멘은 수타로 만든다는 듯... 아니 수타란 말 자체가 일본말인 것 같아요. 手打ち.


중국음식 작장면이 한국화를 거쳐 짜장면이라는 한국음식으로 재탄생했듯이, 원래 어떤 음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라몐으로 만든 중국 음식이 일본화를 거쳐서 일본음식으로 재탄생한 게 라멘. 글구 일본에서 라멘의 위치는 딱 한국의 짜장면과 비슷하다나 봐요. 중국집 배달음식의 대명사. 라멘만 따로 파는 전문점도 있고 집에서 직접 해먹는 사람도 많다는 데서 짜장면과는 살짝 갈리긴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알고있는 라면은 일본에선 '인스탄토 라멘'으로 일반 라멘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나봐요.
짜장면 짬뽕 우동이라는 체계가 꽉 잡힌 한국의 중국집 메뉴에는 라멘이 들어오지 못했고 라멘이 한국에 알려진 건 삼양이 인스턴트 라면을 국내에 생산하면서부터였죠. 인스턴트 아닌 라멘은 21세기가 다 되어서야 알려지게된 것 같네요. 그래서 기존에 익숙한 인스턴트 라멘을 라면,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먹는 라면은 라멘. 이렇게 구분하나 봐요. 전 라멘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네요. 아직 그렇게 국내에서 인기있는 메뉴인 것 같지도 않고...


일본에서 인스탄트 라면은 원래 컵라면계열에서부터 시작했다나봐요. 우리나라는 끓여먹는 라면이 먼저 들어오고 부어먹는 라면은 한참 나중에 들어왔죠. 어렸을 때 부자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일본 컵라면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무렵 막 나오기 시작했던 한국 컵라면하고는 차원이 달랐어요. 그 시기쯤에 일본라면이 동남아쪽에서 인기라 한박스 들고가면 산더미만큼의 바나나랑 교환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때 우리나라에선 바나나는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죠.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한국라면이 일본 라면을 추월한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한국라면이 일본라면보다 인기가 있다는것 같아요.

어째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한국이 다른 나라에서 만든 걸 개조해서 일등먹는 걸 잘하는 것 같다는... 태권도도 그렇고 걸그룹도 그렇고 라면도 그렇고...

    • 라멘으로 옛날 얘길 하시니 '담뽀뽀'가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사실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한 마리 라면 애호가로서 "아 저게 말로만 듣던 일본식 라면이구나" 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추억 때문에요. 재밌었는지 어땠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만화책으로만 가끔 보던 일본 라멘에 대한 로망 같은 거였죠. 정작 실제로 여기저기서 먹어본 후론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ㅋㅋ 

      • 저는 라멘 만화를 보고 간장라면 된장라면이란 개념을 알았네요. 그만화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 일본에서 인스탄트 라면은 원래 컵라면계열에서부터 시작했다나봐요.

      -> 아닙니다. 원래 끓여먹는 인스탄트 라면이 먼저였고 그걸 외국에 가서 홍보하려다가 서양에는 국그릇에 음식을 담아먹기보다는 접시에 먹는다는 걸 알고 용기(그릇)의 중요성을 깨달은 닛신의 안도 모모후쿠 회장이 용기에 물을 부어먹는 라면을 개발하자고 해서 컵라면(일본식 명칭은 컵누들)이 개발되었습니다. 

      [기적의 프로젝트 X 컵라면의 탄생] 이라는 만화에 보면 자세히 나와요.
      (현재 절판)
      https://www.yes24.com/Product/Goods/3531002


      일본 라멘 요즘 들어오는 거 보면 예전 이탈리안 파스타 생각납니다. 90년대만 해도 스파게티라는 이름으로 토마토 소스와 미트볼 들어있는 면요리 먹는 게 다였는데 2천년대 부턴가 하나둘 전문점이 생겨나더니('쏘렌토'가 대표적) 지금은 잘하는 집들 널려있어서 어딜 가든 일정 수준 이상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죠. 라멘은 아직 그렇게까지 대중화는 안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잘하는 집과 보통 이하인 집의 맛 편차가 큰 편이에요. 저같은 경우는 라멘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다가 잘하는 집에서 한번 먹어보고는 한달에 한번 정도는 찾게 되었습니다.
      •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이라고 하는 '치킨 라멘'이 뜨거운 물 부어놓고 기다렸다 먹는 거였다고 합니다. 처음엔 컵모양이 아니었지만 개념이 컵라면과 비슷해서 컵라면계열이라고 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issin_Chikin_Ramen


        https://ko.wikipedia.org/wiki/%EB%8B%9B%EC%8B%A0_%EC%B9%98%ED%82%A8_%EB%9D%BC%EB%A9%98




        파스타도 특정 음식 이름이 아니라 면의 종류라고 하는 것 같더군요.


        파스타란 말이 (아마도 드라마 때문에) 유행하면서 요즘은 스파게티란 말을 듣기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네요.

        • 아.. 최초의 라면이 끓이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 붓는 거였는 줄은 몰랐네요. 라면과 파스타도 둘다 면의 종류를 말하는 거 였는데 음식이름으로 지칭하게 된 것도 재미있고... 오늘도 많이 배워갑니다. ㅎㅎ

    • 라면 먹을 때 마다 인스탄트 라면의 창시자에게 큰 상을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맛있고, 조리 간편하고, 저장성 뛰어나고, 가격도 싸고, 한 끼 식사가 되는 '인류 최고의 음식 발명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던 농심 라면 (구봉서 곽규석),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먹어 봐야 맛을 알지! 하던 배삼룡의 '시락면' !...  국딩 때 접하던 광고가 기억나는, 비 내리는 가을 오후 입니다. ㅋㅋ  

      • 평생 인스턴트 라면을 하루 한그릇씩 드시고 장수하셨다고 하죠.

    • 인스턴트 라면은 안도 모모후쿠라는 대만계 일본인이 만들었죠. 현재 그걸 기업화 한게 닛신이고요. 위에 적어주신 것처럼 인스턴트 라면에서 컵누들로 서양에서도 유명한... 컵라면은 전공투세대가 있었던 시기, 아사마 산장 사건 때까지 많이 안팔리다가 진압하려는 특공대원들이 추위로 컵라면이라도 먹는 모습이 방송탄 후 많이 팔렸다고. 안도 모모후쿠의 창업과정은 각색된 부분이 있겠지만 NHK TV연속소설(아침드라마, 신인 등용문이기도 하면서 인기배우가 출연하는 자극적이지 않은)에도 나왔어요. 안도 모모후쿠역은 남자배우고, 원래 주인공은 여자인데, 안도 사쿠라가 모모후쿠의 부인역할을 했죠.

      • 저는 라멘 좋아해서 좀 슬픈 글이네요... 시오(소금), 돈코츠(돼지뼈육수), 스지(소 힘줄)등 맛도 여러가지라서 요즘은 한국에도 꽤나 맛집이 생겼고, 저희 고향동네 인근에도 그럴듯하게 하는 맛집도 있더군요. 수타우동이나, 오코노미야키, 마제소바같은 일식으로 승부를 보기도 하고요. 음... 혹시나 생각바뀌시면 찾아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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