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형태로 작성해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헝가리의 거장 마르타 메사로시 회고전이 열리고 있고 10월 20일까지 계속된다.(회고전 링크: https://www.cinematheque.seoul.kr/bbs/board.php?bo_table=program&wr_id=1187&sfl=wr_30&stx=1)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지만 메사로시의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추천글을 쓴다. 마르타 메사로시는 <입양>(1975)으로 여성 감독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여성 감독들 중에 상대적으로 아녜스 바르다, 샹탈 애커만과 같은 감독들보다는 덜 유명하다. 나는 메사로시의 영화를 지금까지 네 편 보았는데 그녀의 영화를 보면 볼수록 메사로시가 국내에 덜 알려져 있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들마다 스타일과 장기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메사로시는 무엇보다도 얼굴 클로즈업의 대가다. 내가 처음 본 메사로시의 영화는 <입양>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내내 등장하는 얼굴 클로즈업들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메사로시만큼 얼굴 클로즈업을 잘 찍는 감독은 영화사적으로도 많지 않다. 다큐멘터리로 영화 경력을 시작한 메사로시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사건보다는 일상의 파편들과 우연이 개입되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아내거나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는 류의 영화를 만든 존 카사베츠, 모리스 피알라, 다르덴 형제의 영화와도 일정 부분의 접점을 갖는다. 그녀의 영화에서 현장감이 넘치도록 카메라에 포착된 여성의 얼굴들은 표면을 보는 것 이상의 감흥을 자아낸다. 그녀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얼굴 클로즈업들은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영혼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만든다. 그런 측면에서 메사로시의 영화 속의 얼굴 클로즈업들은 칼 드레이어, 잉마르 베리만, 존 카사베츠, 니콜라스 레이 등의 영화들과도 견줄 만하다. 좀 과장을 하자면 차이밍량의 <애정만세>(1994)의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는 양귀매의 얼굴 클로즈업과 맞먹는 장면들이 메사로시의 영화에서는 한 두 번 이상 늘 등장한다. 도대체 촬영을 어떻게 했길래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메사로시의 영화 속에는 서사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의 얼굴 클로즈업이 나올 때도 많은데 그 얼굴 클로즈업들이 자아내는 감흥은 주연 배우들의 그것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이것이야말로 메사로시의 독보적인 성취라고 할 만하다. 메사로시의 영화 이외에 나는 영화 속에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 메사로시의 영화는 얼굴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과 감동을 준다. 가히 얼굴의 민주주의 혹은 평등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두번째로 메사로시의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유려한 롱테이크이다. 메사로시는 얼굴 클로즈업으로 쇼트를 나눌 때를 제외하면 많은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는다. 그녀의 롱테이크는 흔히 얼굴 클로즈업으로 시작하고 줌 아웃을 하면서 쇼트의 사이즈가 변화되는 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메사로시가 롱테이크로 장면을 보여줄 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 줌과 트래킹인데 빈번하게 줌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줌의 사용이 어색하다가나 촌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없다. 그리고 메사로시의 롱테이크는 유려한 카메라의 이동과 함께 보여진다. 그런데 카메라가 계속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구도가 무너지지 않고 우아한 화면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관객이 롱테이크로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계산된 편집으로 설계된 쇼트들이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에 크게 지루하지 않다. 누군가 메사로시의 영화를 분석하게 되면 롱테이크 장면이 많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랄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영화 속 롱테이크 장면들은 잘 조율되어 있다. 이를 통해 그녀의 영화 속에서 관객은 흘러가는 삶을 잘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밖에도 메사로시의 영화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고 나머지는 관객 각자가 판단하고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을 이만 줄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마르타 메사로시의 영화를 페미니스트의 관점에 국한해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영화 속에서 젠더의 문제를 뛰어넘어서 무엇보다도 인간의 영혼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영화 속에서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녀의 영화가 페미니즘적인 텍스트로 읽히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이해되지만 내가 그녀의 영화에 이토록 감동을 받은 것은 메사로시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세계에 대한 통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영화를 보고 인간의 영혼을 보게 만든 압도적인 시네마의 힘이 그녀의 영화에 있다. 그러니 오늘 상영되는 그녀의 세 편의 영화 중에 굳이 무엇을 고를 이유는 없다.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그녀의 압도적인 시네마의 위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동하신 분들은 마르타 메사로시의 영화 속 얼굴들과 조우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수많은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메사로시의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