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2 감상...4천억 파인다이닝 식당에서 먹는 레토르트식품


 1.감독이 글래디에이터2는 감독판이 없을 거라고 했다는데, 사실 이 영화는 감독판이 나올 필요가 없어요. 감독판으로 나와봤자 이건 해결이 안 되거든요. 


 글래디에이터2의 스토리가 좋냐 나쁘냐? 스토리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야 모르죠. 다른 거 다 집어치우고 이 영화의 문제점은 러닝타임이 너무 짧다는 거예요. 물론 2시간이 넘으니까 영화 치고는 길죠. 그러니까 이 영화의 문제는 이 영화가 영화라는 거죠. 이건 정 만들고 싶었다면 드라마로 만들었어야 해요.


 '스토리가 좋냐 나쁘냐의 문제가, 상영시간이 기냐 짧냐랑 무슨 상관이 있냐? 좋은 스토리라면 길게 보여주든 짧게 보여주든 좋은 거 아니냐?' 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죠.



 2.한데 요리를 생각해 보세요. 요리 중에서는 1시간동안 만들면 그 요리의 레시피가 추구하는 100점짜리 맛을 낼 수 있는 요리가 있죠. 때로는 30분이면 충분히 완성되는 요리도 있고요.


 그런데 어떤 요리는 재료를 손질하고 잡내를 빼고 수십 시간 동안 끓여내어 육수를 내는 거쳐야만 온전히 제 맛을 내는 요리도 있어요. 그런 요리를 어쩔 수 없이, 예능 요리프로같은 곳에서 단시간내에 완성하려고 하면 온갖 무리수를 둬야 하죠. 물론 꼼수에 따라 70점 정도의 맛은 낼 수 있겠지만 그게 끝이예요.

 

 아무리 경험과 스킬이 뛰어난 요리사라도, 그 레시피가 요구하는 '시간'자체를 단축시키는 마법을 부릴 수는 없거든요. 10시간이 걸려야 하는 요리라면 10시간을 써야 하고 10일을 요구하는 요리라면 10일을 써야 해요.



 3.글래디에이터2의 스토리도 딱 그런 요리예요. 이 스토리는 그 어떤 거장이 연출했어도 3시간 안에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마무리시킬 수 없어요. 온갖 msg를 치고 쎈불에 재료를 팍팍 굽고 해봤자 관객에게는 재롱으로만 여겨질 거거든요. 이런 스토리는 관객에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우러나려면 최소한 10시간은 끓여서 육수를 내야 하는 거니까요.



 4.휴.



 5.스파르타쿠스를 본 사람이라면 알거예요. 그 드라마에는 황제 따윈 나오지도 않고, 고작해야 지방에서 좀 잘나가는 의원이나 나오죠. 검투사 훈련소를 운영하는 바티아투스는 조그마한 자리 하나 얻어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요. 그런데도 그곳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교차하는 심계는 무시무시한 수준이예요. 


 한데 그것에 비해 글래디에이터2의 그것은 소꿉장난에 불관해요. 로마 황제와 원로원, 전대 황제의 딸이 등장하는 스토리라면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의 압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냥 지나가는 정치인이나 세력가라도 남들의 세치 혀에 쉽게 넘어가는 npc여선 안 된다고요. 그런 것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로마가 아니니까요. 로마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예요.



 6.물론 영화 초반은 재밌었어요. 하지만 로마가 쳐들어오고 주인공이 검투사로 잡혀간다는 공식은 너무 재밌는 공식이예요. 이 방정식이 돌아가는 동안에는 좋은 감독도 좋은 작가도 필요없죠. 어느정도의 기술자이기만 해도 이 방정식을 활용하는 동안엔 졸라 재미있는 장면들이 나올 수밖에 없죠.


 문제는 주인공이 로마에 온 다음부터예요. 여기부터 등장인물들이 너무 말랑말랑해지고 쉽게 설득되고, 대충 다퉈야 하니까 다투고 대충 화해할 타이밍이니까 화해하는 이벤트의 반복이죠.


 그러니까 나는 이 스토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식당에 갔는데 10시간동안 삶아야 하는 고기를 잠깐 끓는 물에 데쳤다가 내오면 그걸 어떻게 먹겠어요? 



 7.리들리 스콧이 재료 자체는 좋은 걸 구해놓고 요리를 엉망으로 한 건지, 아니면 재료부터가 엉망이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죠. 일단 나온 요리는 최악이긴 하고요.


 스파르타쿠스의 주인공도 한가락 하는 놈이었지만 콜로세움의 전투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굴렀어요. 엄청난 텃세도 겪었고요. 한데 영화에 나오는 성장형 주인공이 적응시간도 필요없이 단 며칠 사이에 전투에서 앞장서고, 원래 굴러먹던 검투사들이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고?


 

 8.그런 건 영화적 허용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이 영화엔 그런 장면이 무수히 많이 나와요. 덴젤워싱턴에게 속아넘어가는 세력가도 마치 wwe를 해주는 거처럼 져주잖아요? 그 세력가는 로마에서 평생동안 세력가로 살면서 살아남아온 사람인데 하필 우리가 그 영화를 감상하는 그 시간대가 되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털린다고? 그리고 황제들도 십년 넘게 나름대로 심계를 발휘해온 인물들인데 하필 저 순간에 저렇게 털린다고?


 로마처럼 빡센 세계관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게 저렇게 쉽게 진행되는 게 이 영화의 진짜 문제예요. 대충 무슨 스토리를 쓰고 싶은 건진 알겠는데, 그걸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그건 초딩의 망상노트에 불과해지는 거죠.


 이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어서 더 많고 더 어려운 시련을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줬어야 해요. 덴젤워싱턴에게도 말이죠. 아무런 시련과 고난이 없이 원하는 걸 마구 가지니까 이건 마치, 덴젤워싱턴이 조커놀이를 하고 있고 로마 전체가 그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느낌만 든단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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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이 드라마로 만들었어야 한다 어쩐다는 최대한 좋게 말한거고 이 영화는 쓰레기예요. 파인다이닝 식당에 갔는데 깜빡하고 어제 육수를 안 끓여놨다...10시간 끓였어야 하는 요리인데 그냥 15분만 끓여서 내왔다고 하면 그건 음식쓰레기잖아요?


 그리고 4천억을 들여서 만든 게 쓰레기라면 욕좀 먹어야죠. 솔직이 말하면 리들리 스콧이 거장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맨날 기복이 있어서 그러는거다 어쩐다 하는데 기복이라는 헛소리로 면피하는 게 이인간이 어디 한두번이어야죠.








    • 차라리 주인공을 '막시무스의 살아남은 충직한 부하'로 단순히 하고, 새로운 인연으로 스토리를 끌고 갔다면 더 나았을지도....(각본의 문제겠죠).  주인공이 거시기 팔뚝 쎄게 깨물고 쎄어지죠.. ㅋㅋ.  저는 전투씬을 눈 여겨 챙겨보는 데요, 작년의 나폴레옹도 그렇고 이번에도 초반 해상 전투씬은 훌륭했습니다. 나머지는 비판 받은 부분 그대로죠 뭐. 주연 배우의 평범함이 개연성 말아먹는데 더 일조 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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