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낮과 밤 사이
화요일 밤 아버지가 뜬금없이 카톡을 보냈습니다. "비상계엄"이라는 카톡이었는데, 저는 그게 어떤 의미를 담은 아버지의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하시더군요. 뉴스를 찾아보니 정말이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패닉이 일어났었고 저는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탄식을 함께 뱉어댔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평소 정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고향 친구들의 단톡방에서도 다들 화를 내더라고요.
의외로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 친구가 비분강개했습니다. 비행기 티켓만 구할 수 있으면 지금 당장 한국을 가고 싶다고요. 제가 그렇게까지 정을 주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그 친구가 보여주는 노여움에 망설임을 걷어냈습니다. 외국에 사는 친구가 이렇게 속터져하는데, 서울에 사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일까. 12시에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기사님은 무슨 상황인지 아예 감이 없으셨고 택시에서는 캐롤만 나왔습니다. 여의도에 가까워질수록 차가 막히자 기사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피곤해질 것 같아 뭐하나보네요, 하고 말을 흐렸습니다. 에잉 또 국회에서 당파싸움하나보네 민생은 관심이 없고 그저 지들끼리 싸우기만 하고. 내리면서 조용히 알려드렸습니다. 기사님,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했어요.
본관 정문으로 가야했지만 거기는 아예 막혀있겠거니 하고 왼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담타기로 넘어갔다고 하길래 저도 슬쩍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이미 경찰들이 담 안쪽에서 다 주둔해있었습니다. 각 문마다 경찰들이 이미 출입을 막고 있었고 누군가는 왜 자길 못들어가게 하냐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경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군인들이 있었고 헬기는 굉장히 낮게 날며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와 아주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군인들과 헬기가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긴장이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출입을 가로막는 경찰들에게 찾아가서 꾸짖고 일갈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시민들과 함께 뉴스를 같이 보다가 마침내 계엄령 해제 소식을 들었고 현장에서 다같이 환호했습니다. 헬기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본관 쪽으로 가서 시민들과 합류해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많았고 다같이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수면바지 차림으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의도는 한국 정치의 중추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양복 카라에 뱃지를 찬 이들이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합니다. 그 결정은 논의, 즉 말과 논리의 싸움입니다. 물론 "국케이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험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고성이 오가지만 기본적으로는 언쟁과 규칙의 싸움을 수단으로 합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정한 가장 기본적인 룰이며 그 근간에는 육체적 폭력 및 훼손으로 뭔가를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장군인들은 총기를 소지한 채 국회 내부에 침입했습니다. 그동안 봐왔던 것이 여의도의 낮이라면, 우리가 수요일 새벽 목격했던 것은 여의도의 밤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 날 분명히 어떤 야만이 국회의사당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피곤하면서도 꿈을 꾼 것 같은 감각에 휩쌓였습니다. 나는, 우리는 밤에 대체 무슨 일을 경험한 것일까. 어떤 시민들은 장갑차를 막아내고 군인들을 꾸짖기도 했지만 저는 그런 장면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있던 현장의 어떤 순간 어딘가에서는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을 크게 도려내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죽지도 않았고 피를 흘리지도 않았지만 상황은 급박했고 운이 좋았습니다. 이후 저는 출근하면 계속 트위터를 체크하며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뉴스를 보았고 그 때마다 화가 치밀어올랐다가 퇴근 후에는 집회를 가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거라도 안하면 너무 가만히 시국을 보내는 것 같아서 뭔가 견딜 수 없어집니다.

수요일 광화문 집회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길게 늘어지는 행렬의 꼬리를 보았습니다. 그 동안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청년참여자가 너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이 일거에 해소되었습니다. 목요일 국회의사당 집회에 갔더니 국회의사당 앞에 가지런히 정렬된 채로 촛불을 들고 계단을 채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참여해본 촛불 집회 중 가장 근사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집회였습니다. 금요일 오늘 저녁에 국회의사당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회 본관 앞의 행인용 보도를 발 디딜 틈없이 채웠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왔습니다. 2024 가요대전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집회가 시종일관 반짝거렸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아예 아이돌 응원봉들만 따로 올려서 잠깐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합니다)
여의도의 어떤 밤은 불길했고 어떤 밤은 활기찼습니다. 이것은 단지 빛의 유무, 어둠의 농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공간을 채우는 사람의 밀도입니다. 어떤 의지를 둘러싼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광장을 채울 때, 같은 밤조차도 완전히 다른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금요일 국회는 대낮에도 불안해했습니다. 2차 계엄이 실행될까봐 내란범 윤석열의 국회입장을 황급히 불허해야했고 헬기의 착륙을 방해하기 위해 차들을 주차시켜 헬기착륙 공간을 최대한 없앴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국회로 와달라는 내용이 sns를 통해 공유되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오히려 불안할 틈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평화로운 일상을 재현했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는 투쟁의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시민들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 일상의 평화를 구사해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들 화를 내고 윤석열 체포를 부르짖으면서도 가끔씩 웃고 또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며 생각들을 합니다. 감히 야만과 폭력이 나설 수 없는 공기를 만들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시민들의 근본적인 싸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제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 듀나게시판에서도 분명히 여의도의 어지러운 밤을 현장에서 똑같이 보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어떤 이유로든 그러지 못해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나가지만 단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분도 계실 것이고, 그래서 쑥스럽거나 낯설어하면서 집회에 참여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혹은 그 날 내란 주도자들이 아직도 또 다른 음모를 실행하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만약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저와 이번주 토요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는 촛불집회에 같이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백짓장도 둘이 들면 나으니까요. 의외로 별거 아니고, 그래도 해볼만한 경험입니다.
저는 늘 온라인 공간이 익명유저들의 자기말 대잔치로 끝나길 원치 않습니다.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고 그 감흥을 나눌 수 있는 실재의 세계이자 연결된 세계로서 온라인 공간이 활용되길 바랍니다. 저는 늘 혼자 다니던 퀴어퍼레이드를 이곳 듀나게시판을 통해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제 삶에서 신기하고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촛불집회는 혼자서도 가치있는 경험일 수 있지만, 여럿이서 겪는다면 훨씬 더 잊지 못할 체험이 될 지도 모릅니다.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텍스트적 존재의 한계를 깨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내일 촛불집회는 윤석열 탄핵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시민으로서 본격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합니다. 아주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것이고 저희 모두는 초조하고 간절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같이 하는 게 위로와 응원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저항은 아주 소수의 인원들에게만 공유되는 언어적 투정으로 그칩니다. 그 감정을 보다 확실한 '타격감'으로 바꾸고 무언가를 했다는 성취감을 얻고 싶으시다면 집회에서 함께 외치는 걸 권해보고 싶습니다. 시민으로서 정치인에게 이렇게 직접적이고 뚜렷한 메시지를 남길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후 5시는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입니다. 이른바 '개와 늑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그리고 어쩌면 저희가 개와 늑대 중 어느 동물을 불러낼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듀나게시판의 다른 분들도 함께 하니 부담갖지 마시고 쪽지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