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영화인 <러브레터>의 히로인, 나카야마 미호를 추모하며

(이 글은 글의 형태로 작성하여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러브레터 (고 나카야마 미호에게 바친다.)

하이얀 눈송이와 함께 추억이 밀려온다.
꿈결처럼 어린 아이 웃음처럼 
가슴 속에 응어리진 그리움처럼

비처럼 내린다. 어린 날의 기억이.
동명의 비극이 셰익스피어의 시처럼 다가온다.
아담과 이브. 태초의 꿈이였던가.

남자의 죽음이 태초의 꿈을 일깨운다.
마음 속에 아름다운 꽃이 핀다.
러브레터가 하늘로 날아 
꿈결같은 선물로 돌아온다.

너무나도 갑자기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1995)의 히로인인 나카야마 미호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 그녀가 너무 젊은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사인은 '목욕 중 익사'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슬픔이 더한 것 같다. 나는 이전 게시물들을 통해 나를 본격적으로 영화의 세계로 이끈 인생영화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러브레터>도 그 중 한 편이라서 나카야마 미호를 추모하지 않을 수 없다. 

<러브레터>가 국내에 개봉하기 전인 1998년에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일본영화 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일본영화가 정식으로 개봉할 수 없는 때였기 때문에 한글 자막을 입힌 비디오로 일본영화들을 상영했다. 그때 상영된 영화들로는 이타미 주조의 <담뽀뽀>(1985),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등이 있었다. <담뽀뽀>도 재미있었지만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영화는 <러브레터>였다. 눈 위에 눈을 감고 누워있던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가 일어나서 하늘을 바라본 뒤에 설원을 내려가는 모습을 부감 쇼트로 잡은 첫 장면을 보던 순간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 영화를 보는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얼굴이 똑같은 여성이 두 명 나오니까 계속 헷갈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1991)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비로소 같은 배우가 두 명의 여성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고 그때부터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유려하게 넘나들면서 여자 후지이 이츠키(사카이 미키)와 남자 후지이 이츠키(카시와바라 타카시)의 아름다운 학창 시절이 펼쳐질 때 마구 웃다가 레미디오스의 주옥 같은 음악들이 이와이 슌지가 연출한 가슴이 시리도록 서정적인 화면들 위로 시종일관 흘러가고 와타나베 히로코가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그 유명한 장면을 거쳐서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죽기 전에 꼭 읽고 싶은 책으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장면. 여자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가 그녀의 학교 후배들이 준 도서 카드를 뒤집는 순간 나타난 어떤 것과 함께 내 마음도 순식간에 뒤집어져 버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딱 그랬다. 그때 영화가 끝나고 스스로 그런 표현을 찾아내면서까지 그 감정을 소중히 했던 기억이 난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애틋함과 함께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어쩌지 못해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러브레터>의 장면들을 하나 하나 복기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러브레터> 속 첫사랑처럼 나에게 <러브레터>는 영화의 첫사랑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 한 편으로 나는 이와이 슌지의 열혈 팬이 되어버렸고 나카야마 미호는 나에게 청순미의 대명사이자 영원히 잊지 못할 배우가 되었고 <러브레터>의 음악도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불멸의 사운드트랙이 되었다.(아마도 <러브레터>를 본 관객들 중 나말고도 이런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러브레터>는 겨울이 되면 늘 떠오르는 영화 중에 1순위였고 수도 없이 재개봉한 이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영화에서 남자 이츠키의 엄마 역으로 나온 배우가 시노다 마사히로의 <말라버린 꽃>(1964)을 비롯해서 나카히라 고의 <월요일의 유카>(1964), 오구리 고헤이의 <진흙강>(1981), 스즈키 세이준의 <아지랑이좌>(1981) 등 일본영화사를 수놓은 명작들에 출연했던 카가 마리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이와 관련하여 카가 마리코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다. 글 링크: https://story.kakao.com/bresson7/DCq36PJwAY0 ) 임대형의 <윤희에게>(2019)를 보면서 이 영화가 오타루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윤희에게>는 <러브레터>에 대한 한국 감독의 응답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뉴진스의 하니가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러서 유명세를 탔을 때 이 노래가 등장하는 <러브레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 이유들만으로도 나에게 <러브레터>가 인생영화 중의 한 편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나에게 정말 각별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러브레터>는 내 영화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문화학교 서울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러브레터> 한 편으로 이와이 슌지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던 때 나는 우연히 신문에서 이와이 슌지 특별전이 열린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에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피크닉>(2005)을 포함한 몇 편의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영화들을 상영하는 장소가 바로 문화학교 서울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보기 위해 문화학교 서울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고 첫 영화로 <피크닉>을 보았다. 여전히 이와이 슌지의 서정적인 영상미가 나를 사로잡았고 특히 많은 깃털들이 휘날리는 엔딩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피크닉>을 보고 로비로 나온 나는 문화학교 서울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들이 상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첫 방문을 계기로 문화학교 서울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4),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을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들을 보게 되었고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1928)을 끝으로 문화학교 서울이 문을 닫는 날까지 나는 문화학교 서울의 열혈 회원이었다. 아직 필름으로 영화사에 남는 작품들을 볼 수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문화학교 서울에서 봤던 영화들은 영화를 공부하는 나에게 큰 자양분이 되었고 그 곳에서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의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러브레터>는 나를 문화학교 서울로 인도하면서 영화에 미쳐 살아온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하는 데 있어서 큰 기여를 한 영화가 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러브레터>를 잊을 수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어떤 배우의 팬이 되면 그 배우의 필모를 훑으면서 출연작들을 마구 찾아보는 것이 상식일 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나카야마 미호의 출연작들을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카야마 미호를 <러브레터>와 떼어놓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그런 가운데 정재은 감독의 <나비잠>(2017)에 출연한 그녀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부산에 내려간 나는 <나비잠>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때 드디어 그녀를 처음 볼 수 있었다. 너무 감격적이었던 것인지 몰라도 그녀의 실물을 계속 보면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러브레터> 출연 이후로 20년 이상 지난 시점이었으니 이 영화에 출연했을 때와 비교하자면 나이든 느낌이 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그녀의 싸인을 받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싸인을 받지 못한 것은 아직까지도 큰 미련으로 남아있다. <나비잠>은 괜찮은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나카야마 미호는 오직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일뿐이었는지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그녀를 스크린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와이 슌지의 <라스트 레터>(2020)에서였다. 여러모로 볼 때 <러브레터>의 속편격에 해당하는 <라스트 레터>에서 그녀는 <러브레터>에서 커플로 출연했던 토요카와 에츠시와 또다시 커플로 나오는데 두 배우는 이번에는 부부로 등장했다. 그런데 그녀의 출연 분량도 짧았고 그녀는 영화 속에서 왠지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나왔다. 거의 카메오로 출연한 것이나 다름없는 <라스트 레터>가 생전에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출연작이라는 사실이 정말 아쉽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가 갑자기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니 순수했던 나의 어린 시절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서 너무 슬프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에게 <러브레터>는 문화학교 서울 시절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년은 <러브레터> 개봉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서 그런지 30주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의 그녀의 죽음이 더욱 비통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가수로도 유명했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러브레터>의 와타나베 히로코, 후지이 이츠키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와타나베 히로코가 후지이 이츠키를 추모한 것처럼 이제는 내가 나카야마 미호를 추모할 차례이다. 이제라도 그녀가 출연했던 다른 영화들이나 그녀가 불렀던 노래들을 더 찾아봐야겠다.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러브레터>를 보고 시를 쓴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시를 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나에게 얼마나 각별한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썼던 거라서 시라고 하기에는 사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게 시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러브레터>에 대한 내 진심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시를 그녀의 영전에 바치고자 한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나카야마 미호 배우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P.S: <러브레터>에 대해 내가 쓴 글의 링크를 올린다.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러브레터> 글 링크: http://www.djuna.kr/xe/breview/14359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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