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칼의 날 감상...(스포)


 1.자칼의 날을 봤어요. 사실 캐스팅이 잘 된것 같진 않아요. 주인공은 너무 유명한 배우고 여주인공은 너무 안 어울리는 배우라서요. 주인공이 무슨 짓을 해도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선명한 필터를 걸치고 있기 때문에 배우에 대한 호감이 캐릭터에 대한 비뚤어진 호감으로 연결되는 캐스팅이예요. 


 말하자면 너무 영리해서 비열하기까지 한 듯한 캐스팅 하나, 그리고 그냥 잘못된 캐스팅 하나.



 2.일단 이 스토리는 시대착오적이예요. 현대는 자칼같은 무법자가 활동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죠. 아니, 아예 불가능한 시기예요. 요즘 세상에 라이플로 자유진영의 최중요급 인사들을 저격하고 다니는 놈이 어딨어요? 정 없애고 싶으면 독을 쓰는 게 주인공의 암살법보다 백배는 쉬울걸요. 주인공은 모든 쉬운 방법을 놔두고 일부러 하드 모드로 게임을 하는듯한 이상한 놈이예요. 그런 주인공을 고용하는 놈들도 이상하긴 한데.



 3.그리고 주인공의 능력은 현실을 넘었어요. 더블 타겟의 밥 리 스웨거도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에 서있는 놈이었는데 주인공은 그놈보다 훨씬 더 심해요. 말도 안 되는 저격기술은 기본에, 작전 입안-진입-도주...이 모든걸 조력자 없이 혼자 다 해결하는 괴물이죠. 


 자칼이 파이어족이 되는 데 필요한 목표액이 천억 원 정도인 것 같더군요. 한데 이정도의 능력을 가졌다면 암살을 하고 다니는 것보다 더 쉽게 천억원을 땡길 수 있거든요. 애초에 주인공의 업무의 특성상, 너무 고액의 의뢰는 어차피 의뢰비를 받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주인공이 받는 의뢰의 엄중함이 돈을 주고 끝낼 레벨이 아니거든요. 반드시 꼬리자르기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의뢰들을 맡는데, 보수가 1억 달러든 10억 달러든 의미가 없죠. 주인공은 어차피 저 돈 받을 수가 없다니까요.



 4.휴.



 5.그리고 여주인공의 수사력도 현실적이지 않아요. 전세계 누구도 모르는 총기 제작자들 중 딱 한명을 무당처럼 찍으니까 그게 맞아떨어지고, 아침에 뉴스 보다가 암살자 기사를 보고 신내림을 받는 듯한 수사를 하죠. 이 드라마에서 커버해야 할 지역이 유럽 전역인데, 그 넓은 지역에서 시행착오 없이 원하는 목표를 쏙쏙 골라낸다? 이건 말도 안되죠.


 그리고 그냥 지나가다가 들은 알렉산더란 이름에 완전 꽂혀버리더니 계속 죽은 사람을 조사하라고 하는 건 화룡점정. 이 드라마의 각본의 허술함은 여주인공에게 좀더 잔인해요.


 사실 에디 레드메인이 지닌 존재감은 말도 안 되는 각본도 말이 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페이소스가 있거든요. 한데 여주인공 배우의 연기력과 존재감은 그 수준이 아닌 게 문제죠. 두 배우 다 말도 안 되는 각본을 받긴 했는데 남주는 그걸 소화했고 여주는 소화 못한 것의 차이죠.



 6.주인공에 대한 평을 하자면...이 놈은 좀 이상해요. 아니 사실 이런 캐릭터는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진 스테레오 타입이예요. 레옹이라던가 뭐 그런, 소년미 있고 덜떨어진 듯한 프로페셔널들 말이죠. 새덕후인 주인공이 날아가는 새를 지그시 바라보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장면들은 이제 좀 썩는 냄새가 날 정도로 진부한 연출이니까요. 


 하여간 주인공은 그냥 말로 잘 때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느닷없이 '돈 드릴께요'라는 말부터 하질 않나, 계속해서 사람들과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죠. 노부부를 상대로도 본인이 마음속으로 그리는 각본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다가 칼을 맞고 반격으로 죽여버리고요.


 차라리 주인공이 냉정한 어른이었다면 그 노부부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 살려보내려 했어도 빡세게 경계는 했을거고 노부부도 알아서 포기하고 있다가 목숨을 건졌을 거니까요.


 

 7.위에 썼듯 이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란 말이죠. 게다가 매우 허술하고, 허술함을 넘어 핍진성도 없어요.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가치는 뭘까...결국 이 드라마는 일에 관한 우화가 아닌가 싶어요.


 이 두 주인공에겐 내가 잘 하는 일이 그저 직업이 아니라, 나를 대체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독이 든)성배예요.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위험해지고 아무리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이 두 녀석은 자신이 잘 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단 말이죠. 


 자칼은 돈을 위해 하는 일이고 충분한 돈만 벌면 그만두겠다고 말하지만 그게 과연 사실일까? 자칼은 사실 맘만 먹으면 돈 따윈 얼마든지 땡길 수 있는 놈이잖아요. 흑인 여주인공은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과연 가족이 그녀에게 일보다 중요할까?



 8.흑인 여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에 '난 이기는 걸 좋아해'라고 본심을 털어놔요. 그렇다면 자칼은 어떨까.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자칼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경외심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과거회상을 봐도 자칼은 동료들과 잘 맞물리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가 군대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건 그가 저격의 신이기 때문이지, 요령이 있거나 기세가 강해서가 아니거든요. 드라마에서 묘사된 자칼은 총쏘는 걸 잘하는 거 빼면 사람들 사이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하지만 자칼이 저격총을 드는 순간, 전 세계를 주름잡는 거물들조차도 자칼의 실력과 프로정신에 존경을 표하고 감탄을 금치 못하죠. 그리고 아무리 교만한 자들도 자칼을 고용할 때는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이 돼요.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전세계 70억명중에 자칼 한명 뿐이니까요.



 9.그래서 아마 자칼은 돈을 얼마를 벌든 불가능한 의뢰를 또다시 맡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냥 좀 어려운 의뢰는 본인 말고도 아무나 맡을 수 있고, 본인을 경외하도록 만드는 것은 오직 단 한건...그 자신을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불가능한 미션뿐이니까요.


 자칼은 저격총을 내려놓으면 존경받는 남자가 아니라 찌질한 새덕후 소년에 불과한 놈이거든요. 그래서 더간은 영원히 자칼을 그만둘 수 없을거예요.



 10.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뭐 이건 사족이니 또 나중에 써보죠.


 사실 이 드라마가 비현실적이고 허술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요즘 세상에 저런 시대착오적인 놈이 설치려면 주인공이 비현실적으로 강해짐과 동시에 다른 등장인물들이 허술하게 여겨질 정도로 너프를 먹어야 하거든요. 대체 왜 배경을 현대로 잡은 걸까.








    • 예전 영화(언제죠 80년대인가 나왔던)는 못 본 영화고 소설도 보지않았지만

      제목 자체가 너무 멋있단 말이죠. 자칼의 날.

      그 제목의 간지 때문에라도 언젠가 보지않을까 싶은 제목이었는데

      새로 시리즈가 나온대서 어쩔까 고전은 두고 최신판을 볼까 했는데

      음...보지 말자 싶어지네요 ㅋ
    • 자칼이 집에 왔다 곧바로 나가잖아요, 거기서 어떤 설렘이 느껴졌네요. 히트에서 톰 사이즈모어가 action is the juice라고 했듯 이 둘은 일이 주는 스릴 중독자들입니다. 둘 다 가정이란 세팅에서는 겉돌아요

    • 자칼 자체가 그 이후 수많은 캐릭터들 ㅡ 예를 들어 제이슨 본 ㅡ 의 효시이고 저는 중반까지도 제이슨 본은 자기 찾기이자 도덕적인 면으로 갔는데 자칼은 뭐가 될까 싶더군요.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처럼 자신의 죽음을 향하여 뚜벅뚜벅?


      이번 자칼 드라마는 괴도 루팡 보듯 봤어요. 영화에서는 일부러 덜 알려진 에드워드 폭스를 썼는데 레드메인이야 스타다 보니 자칼이 가진 그 익명성같은 게 살지를 못 했어요. 보면서 확신을 내내 못 갖던 캐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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