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진즉 봤는데요?

어이가 없네요. 작품 보기 전에 재미없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게 뭐 대단한 죄인지? 성엄숙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ND님께서 별달리 저격할 거리가 없으셔서 이번에는 제목따로 본문따로의 저격스타일을 바꾸셨나봅니다. 뭐 원래 이 게시판 분들이 본인들이 지적받으면 딴소리하면서 계속 비난만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는데요. 게시판에서 너무 쌈박질을 위한 쌈박질만 하면 재미없을테니 이참에 오징어게임 1 후기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본지는 한참 됐습니다. (안보는 게 뭔 신념인가요? 진짜 이상한 헛소리들을 왜 하는건지?)


1. 창작물을 후려치는 건 소비자의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미친 듯이 흥행을 했고 어차피 제가 강도높은 비판을 한다 해도 아무 영향이 없을테니 그냥 솔직하게 쓰겠습니다. 오징어게임 1은 단순하게 재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데스게임 류의 창작물들이 가지고 있는 설정만 얼기설기 짜깁기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주제는 자본주의와 무한경쟁 비판, 형식은 목숨을 걸어야되는데 아이들의 소꿉놀이, 스타일은 비밀과 여러 인물의 은원이 엇갈리는 미국드라마. 굉장히 진부한 이야기인데 주제의식이든 데스게임 장르로든 그렇게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 작품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됐을까요. 저는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드라마, 혹은 드라마라는 장르에서 유례없는 대량학살을 거의 최초로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가 극적인 재미가 있고 이런 게 아니라 일종의 스너프 필름처럼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여버리는 장면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의 기운이 딱히 도사리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무고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여버리는 그 부조리한 충격이 컸다고 추측합니다. 전쟁에서 적군들을 여럿 죽이거나, 괴물이 불을 쏴서 사람들을 불태워죽이거나 혹은 밟아죽이거나, 이런 것들은 파괴적일지언정 놀랍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밖에 없겠다는 예상을 하니까요. 그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약속의 문제입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의 살인씬들처럼, 평온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람들을 싸그리 몰살해버리는 그 충격이 컸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소 유아적인 놀이를 하다가 수틀리면 죽여버린다, 이 괴리감이 사람들에게 다소 써리얼한 느낌을 줬을 수도 있습니다. 이게 정말 벌어지는 일인가, 꿈을 꾸는 건가, 하는 그런 감각을 이 드라마가 건드렸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이 드라마의 미학적 힘이 어느정도 작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걸 빼면 이 드라마는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써리얼한 느낌은 [배틀 로얄]이나 다른 작품들에서 이미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딱히 고평가를 할만한 것도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엄청나게 폭력적이어서 그게 시청자들을 질리게 한 것이지 극적인 재미는 현저히 떨어집니다.


2. 데스게임의 장르로 이 작품을 평가한다면, 오징어게임에는 쓸데없는 잔가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상금에 목을 매는 탐욕의 군상극이라면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사연은 당연히 따라오겠죠. 문제는 드라마의 사방곳곳에서 펼쳐지는 잡소동들입니다. 하나의 군상극을 펼쳐놓을 거라면 군상극이 펼쳐져있는 테이블은 가지런하게 펼쳐져있어야 합니다. 테이블이 울퉁불퉁한데 어떻게 사건들과 캐릭터가 보기 좋게 펼쳐져있을 수 있나요? 이 드라마에는 참가자들의 사연이 있고, 데스게임을 진행하는 중간자의 사연이 있고, 게임의 장기말들인 병사들의 사연이 따로 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어수선해지고 세계관도 무의미한 수상쩍음만 더해집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참가자 중에 "병기"라는 의사였던 캐릭터가 있습니다. 그는 오징어게임에서 반쯤 죽은 참가자들의 신체에서 장기를 적출해내 그걸 매매하는 일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는 진행요원들이 있고 그 요원들은 병기에게 장기적출의 대가로 다음 게임을 알려줍니다. 이건 원래대로라면 주최측에서 절대 허용할리가 없는 일이죠. 그런데 병기와 요원들이 게임 뒷편에서 장기적출이라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설정이 있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아주 잔인하고 끔찍한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황동혁은 오징어게임의 세계관이 게임 자체만으로 환상적이라는 것을 설득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징어게임을 하는 도중에 어떤 사람들은 장기적출까지 한다,는 설정을 괜히 덧붙여놓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난삽한 설정의 대표적사례입니다.


이 설정에는 부작용이 바로 따라옵니다. 이 작품 속 '오징어게임'은 생각보다 헐렁하고 허술한 인위적 세계라는 걸 드러내고 만다는 것입니다. [트루먼쇼]에서 조명이 떨어지거나 엑스트라가 연기에 실패하는 장면을 보고 트루먼이 의아해하듯이, 작품 속 세계가 시시하고 속된 것으로 격하되고 맙니다. 병기가 진행요원들과 거래를 한다는 설정은 오징어게임은 절대적이고 타협불가한 무시무시한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을 잘 구슬리고 싸바싸바를 하면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는 그런 허술한 세계라는 함의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 이 게임을 보는 긴장이 떨어집니다. 뭐하러 저렇게 치열하게 게임을 하고 죽습니까? 진행요원들을 구슬리거나 적당히 해치우면 게임과 상관없이 생존할지도 모르는데? 한번 참가하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고 죽거나 우승으로만 벗어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그냥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 사이에서 모종의 거래를 통해 어느 단계까지는 살아남을 수도 있는 그런 게임입니다. 하다못해 이런 식의 티비예능에서도 자기들끼리 정치질하고 정보주고받고 팀먹으면 시시해지지 않습니까? 더 지니어스라는 예능이 시즌2부터 그래서 좀 맥이 빠졌던 것처럼요. 게임 자체가 절대적이고 사람들이 게임에 열중하게 하지 않으면 금새 그 게임은 협잡질이나 정치질로 오염됩니다. 즉 출시는 됐고 잔혹하긴 한데 버그가 많은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준호가 이 섬에 잠입하거나, 병사의 유니폼을 몰래 빼앗아서 변장할 때 저는 안그래도 적은 몰입감이 정말 많이 깨졌습니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비밀 파헤치기 스릴러 장르를 섞어놓는 기법인데 차라리 준호가 참가자 측으로 숨어들었다면 그건 그래도 '오징어게임'의 순수성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플레이어가 아닌 관리자 측으로 들어가서 게임을 해킹해버리면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죠. 치팅이 가능한 게임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떨어지고 플레이를 전심전력으로 할 필요가 그만큼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달고나 게임에서 진행요원이 총을 뺏길때? 오징어게임은 통제가 잘 안되고 관리자나 감상자를 여러모로 불편하게하는 실패작입니다. 권투경기에서 심판이 갑자기 힘들어하거나 중계위원이 자꾸 말을 버벅대면 보는 사람이 맛이 나겠습니까? 그런데 이 드라마 속 '오징어게임'은 환상성을 위해 더 무결하게 진행되어야하는데도 드라마가 스스로 그걸 깨트리며 아마츄어리즘으로 범벅이 됩니다.


데스게임 장르들이 괜히 초현실적인 국가적 법안이나 슈퍼재벌들이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현실적이라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집단적 폭력과 광기를 그 닫힌 세계 안의 참가자들과 바깥의 시청자들에게 완전히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은? 구멍이 뻥뻥 뚫려있습니다. 좀비영화에서 좀비한테 물려도 좀비로 안변하거나 무슨 주사만 맞으면 바로 치료된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3. 데스게임 장르의 특징 중 하나는 참가자들을 주인공 빼고 어떻게 죽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게임을 내놓을 때도 있고, 혹은 패배의 벌칙으로도 구현이 됩니다. 그 악조건에서 주인공의 기지와 선함이 발휘되곤 합니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같은 호러의 게임성을 어느 정도는 갖춰줘야 합니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은 데스게임으로서 엄청나게 시시합니다. 왜냐하면 게임 자체의 퍼즐적 재미나 고군분투는 거의 없고 게임을 넘기는 방식이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나, 혹은 이점을 차지할 수 있나, 데스게임에서는 이런 분석과 심리싸움이 거의 반드시 들어갑니다. 그게 데스게임이 유도하는 지적유희니까요. 오징어게임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게임플레이를 통달하는 지적 즐거움은 거의 없고 오로지 참혹함만이 남습니다. 일본만화 간츠처럼, 머리굴려도 소용없고 자칫하면 다 죽는다는 그런 느낌을 표방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오징어게임은 거의 반드시 선착순 혹은 대결을 통해 승자가 살아남는다는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여기서 이 드라마는 죽기는 싫은데 상대는 죽여야한다는 딜레마만 거듭 제시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철도 딜레마처럼 피할 길 없는 살인과 죄책감만이 반복됩니다. 


데스게임에서 주인공의 승리에는 늘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 재치와 영민함을 발휘하면 잔학한 세계에서 속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개인의 노력과 각성을 담고 있습니다. 라이어게임?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공동선을 추구합니다. 그 잔인한 [배틀 로얄]도 경쟁사회에 반드시 굴복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큐브]에서는 약자에 의존하면서도 그것을 착취하는 사회의 잔혹함을 비판합니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의 극복 과정은 늘 실패의 연속입니다. 누굴 죽이고, 누굴 또 죽이고, 누굴 죽여서 결국 승자가 되어봐야 쓸모없다는 허무주의의 수렁으로 빠집니다. 기훈이 오징어게임에서 최종우승을 했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과정에서 계속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타락을 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지적 유희를 포기하면서까지 강조한 드라마에서 이 드라마는 스스로 주제의식을 배반합니다. 남을 희생시키는 건 옳지 않다, 비참한 일이다는 주장을 남을 희생시켜서 슬퍼하는 주인공으로 보여줍니다. 그 간단한 도덕을 누가 모릅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우리 모두가 타인을 희생시키는 걸 불가결하다고 믿으니까 문제죠. 드라마가 그 상황으로 주인공으로 몰아넣고 너무 슬프다고 자기연민에 빠지는데 이건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합니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이 싸그리 총맞아 죽는 걸 보는 짜릿함과 생존했다는 쾌감이 더 크게 회자되죠.


4. 이 드라마는 '신이 말하는 대로'의 설정을 너무 많이 베꼈습니다. 황동혁은 자꾸 아니라고 하는데, 게임의 첫번째 순서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거대한 영희 인형은 해당 만화에서 첫번째 게임으로 똑같이 나오는 것과 다루마 인형이 실패자들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설정을 그대로 차용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왜 영희인형은 그렇게 사이즈가 크냐면, 해당 만화의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미션의 고양이가 사이즈가 엄청 크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건 그냥 우연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묻고 싶습니다. 왜 오징어게임은 첫번째 게임에서는 그렇게 거대 인형, 거대로봇이 자동화로 실패자들을 죽이는데 그 다음 게임부터는 운영자 인간들이 일일이 사격을 해서 쏴죽입니까? 게임을 통제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지지 않습니까? 왜 거대로봇같은 초월적 미쟝센은 두번다시 안나옵니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만 신이 말하는 대로의 요소를 차용했기 때문에 다른 게임들은 한층 인간의 통제로 흘러갑니다. 


저는 이 드라마에 큰 관심이 없고 보고 나서 실망한 작품에 대해 혹평을 쓰는 게 별로 영양가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왕에 누가 시비를 거니 그 참에 조금이라도 제 감상을 남길까 싶어서 생산적으로 써본 것이고요. 이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상한 고집을 부리면서 고평가를 하시려고 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이 욕먹으면 기분 나쁜 거야 십분 이해를 하지만 그냥 어떤 사람들에게는 별로 재미도 없고 살육포르노에 불과하다는 걸 좀 인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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