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한강진역 관저 앞 집회 다녀왔습니다

어제 공수처의 윤석열 체포가 중단되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공수처가 그 기대를 산산이 부숴놨습니다. 병력 대기가 아무리 길어진다고 해도 어제처럼 법 집행 자체를 포기하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내란범이 법적 조항을 근거로 억지를 부릴까봐, 법원에서 온갖 조항을 붙여서 체포영장을 '다 묵살해버리고' 집행하라고 아예 발부해줬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도 집행을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이제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공권력을 행사할 때 뭐라고 할 건가요? 윤씨는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이라 사병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체포를 못했지만, 당신은 힘이 없고 빽도 없으니까 법의 집행을 받아야한다...? 경찰이 민주노총이나 다른 사회활동가들을 제압할 때 단 한번도 저런 식으로 유혈사태를 걱정하면서 체포를 못한 적이 없습니다. 어제 공수처 인원이 몇명 갔냐면 300명도 안갔습니다. 민주노총 사무실 진입할 때 경찰이 2000명 갔습니다. 저는 어제의 체포영장 집행 포기가 사실상 윤씨를 향한 의전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미 수방사와 경호처가 내부에서 항명까지 하면서 길을 터줬는데도 경찰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기사도 떴습니다.
법이 작동을 안해버리는 이 초유의 사태를 보면서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감각을 체험했습니다. 법치국가의 가장 기초적인 틀이, 제일 위쪽에서 아예 부숴진 겁니다. 전장연 집회에 나가본 사람들이라면 압니다. 경찰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그런데 권력자에게 이렇게까지 공손하게 나온다면 이건 여태 공권력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마저도 버릴 수 밖에 없는거죠.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곤봉 하나 갖고 가서 경찰들 머리를 다 부수고 싶더라고요. 이렇게 '촛불집회'씩이나 평화롭게 해주는 것도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내전 상태입니다.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제가 어떤 수식어를 동원하는 게 아닙니다. 내전이라는 건 한 국가 내에서 두 세력이 법을 초월해서 적대시하고 유혈사태를 감내하려는 상태 아닙니까? 지금 윤석열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야됩니다. 그리고 피의자 신분입니다. 체포영장이 나왔으면 본인이 거기에 응해야됩니다. 그게 대통령 임명시 헌법 앞에서 선언한 사람의 최소한의 법적 의식 아닙니까? 그런데 이 모든 걸 다 무시하고, 병력을 동원해서 법의 집행을 아예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더 많은 병력의 투입과 더 강한 폭력의 행사뿐입니다. 르완다나 콩고나 수단 같은 다른 3세계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것 같은 일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군 통수권자였던 자가 아무 자격도 법적 권한도 없는데 국가의 병력을 사병처럼 쓰면서 법 집행을 아예 따르지 않는거죠. 완벽한 내전입니다.
어제 너무 비통해서 시위를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너네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냥 일이나 하고 퇴근해서 쉬기나 하라는 그런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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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집회에 나갈 때마다 늘 느낍니다. 혼자서 아무리 비분강개에 젖어있어도, 막상 함께 분노를 토해내려고 한 사람들이 모이면 그 현장은 또 화기애애합니다. 아마 이것은 '촛불집회'라는 그 평화롭고 질서있는 집회의 상징성이 전 국가에 자리잡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외의 투쟁들에서는 공권력이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집회 참여자들을 "떄려잡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제일 안전하고 제일 편안한 집회를 나가면서 괜히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화나는 거 알지만, 그래도 이 집회에서만큼은 우리가 책잡히지 말고 최대한 우리끼리 서로 위로하면서 목소리를 내자는. 저는 언젠가는 이 "평화시위"의 한계가 부숴질 수 있길 바랍니다.
한강진역에서 젊은 여성시민들이 많이 내리더군요. 역시나. 또 이렇게 이 사람들이 움직이는구나 싶었습니다. 윤석열 탄핵집회에 한정해본다면 이 여성시민들만큼 든든한 사람들이 또 없을 것입니다. 남태령에 바로 튀어나갔던 그 재빠르고 정확한 사람들. 그리고 지치지 않고 날밤을 새며 자리를 지키는 지독한 사람들. 저는 집회에 참여했다가 한 두시간 뒤에 자리를 떠났습니다만, 한강진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이 집회를 오는 여성시민들을 봤습니다. 그렇게 추운 날인데 또 밖에서 날을 새겠다며 오는 사람들에게 저는 완전히 기겁했고 작은 부끄러움도 느꼈습니다. 어느 한 쪽이 법을 초월하는 광기를 보여준다면, 다른 한 쪽 역시도 궂은 환경과 수면이라는 행위를 초월하는 광기를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그나마 뻑뻑한 법과 기득권 카르텔이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게 하는 것입니다.
탄핵집회에 나갈 때마다 느낍니다. 퀴어퍼레이드와 큰 차이점이 있나? 무대에 올라서는 사람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인지 밝히고, 수많은 시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커밍아웃 이후에는 기득권 세력을 규탄합니다. 말 그대로 한국의 집회 문화가 퀴어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저질스럽고 끔찍한 혐오들을 뚫고서, 이렇게 현실에서 얼굴과 목소리로 존재를 구현하는 사람들이 채우는 공간은 그 자체로 공간의 저항이 아닌가 하는. 이번 집회는 언어를 초월하는 존재의 향연이기도 한 것입니다. 존재가 언어를 선행하는 이 공간에서 온라인 속에서 조롱과 혐오로 점철되어 뒤쳐지는 존재들도 잠깐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하나일 것입니다. 어떻게 온라인 공간을 '현실화'시킬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소비자 정체성, 오프라인에서는 모두가 다 결국 한정된 존재라는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현장에서 모으고 발산하는 이 집회가 마침내 온라인까지도 광장으로 펼쳐지는 미래를 꿈꿔봅니다.
네 파이팅입니다!
"저 무도한 자식들"이라고 하니까 사진 속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ㅋㅋㅋ
내란수괴범 일당 진짜 하나도 놓칠 수 없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한남동으로 가야할지
광화문으로 가야할지 생각중인데,
한남동으로 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사람이 더 없어서 더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할 것 같아요!
뉴스를 보면 혈압 오르고 심장이 답답하네요. 그래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며 마음을 진정시켜요.
현장의 화기애애함은...얼마 전에 읽은 글이 떠오르네요. 분노나 긴장이 과도하게 지속되면 마비 증상 같은 것이 온다고 해요. 그리스 비극의 길이가 보통 두 시간 남짓인 이유도 그래서고요. 긴장과 이완, 분노와 일상이 어우려져야 오래 지속되나 봅니다.
저는 가지 못해서 Sonny 님이 이인 분 해 주시길 몰래 바라곤 합니다. 독감 조심하시길.
오늘도 참 고생이 많으셨고 리스펙트 합니다.
특히 --- 아래 부분이 구구절절 동감인데 Sonny님이 바라는 그런 미래가 오길 간절히 바라지만 낙관적인 자세를 갖기 힘들게 하는 현실이네요...
이 추운 날씨에 밤을 새며 버틸 시민들 생각하니 정말 심란하고 또 괜히 감상적인 마음이 되더군요.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다들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