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몇 권.
[무지의 즐거움] 우치다 다쓰루.
이 책은 일본에 출판된 것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한국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한국 독자를 대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엔 아직 안 나온 책이겠죠. 저는 이분 책을 처음 읽어 봤습니다. 이 책 좋았다는 후기를 보고 가장 최근에 나왔으며 가벼운 내용으로 보이니 읽어 보자는 생각으로요. 우치다 다쓰루 연구자를 자처한다는 역자와 편집자가 질문을 만들고 그에 대해 저자가 답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학문의 전도자라고 본인이 일컫는대로 전문 지식이 전문 지식인들 안에 고여 있어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대중과의 쉬운 소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소통의 수단인 말과 글을 통한 '설명'의 힘을 강조합니다. 알면 아는만큼 모르면 또 그 범위에서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네요. 학계에선 모르겠으나(본인 말에 의하면 일본에선 불문학을 전공한 자신을 불문학자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없다고. 사상가, 평론가, 무도가로 소개한답니다) 대중에게는 이러한 방향은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겠다 싶습니다.
규칙적, 반복적 일상 유지가 작업량을 담보한다거나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의 수련에 집중한다는 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라는 하루키에 대한 책도 썼네요. 이분은 합기도를 오래한 무도인으로서 도장을 운영하고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자택 아래 층 도장에서 수련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네요. 이것도 매일 달리기 같은 육체적 단련과 머리 쓰기에 시간을 나누어 사용하는 하루키와 비슷하군요.
내용은 대부분 동의 가능하였어요. 특히 세상에 열린 태도가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분을 좋아하는 이들이 이해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격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한 유도는 되지 않았어요. 이 책에 국한하자면 자기계발서 저자의 향기도 없잖아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자기계발서의 부정적인 면을 느꼈다는 뜻인데, 무도와 종교가 통하는 데가 있잖아요? 아마 그런 지점 같기도 합니다. 조금 단정적이고 도구적인 면 등이 있습니다. 그런 단순함은 오래 수련하여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한 말씀 듣는다'에 가까운 책의 기획 자체가 그런 성격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앞으로 또 좋은 평을 받는 다른 책이 나오면 다시 읽기를 시도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는 열어 놓고 싶네요.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
여백 많고 글자는 적고 글 한 편이 끝나면 그림 한 페이지가 들어가 있고. 이런 디자인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 책에 들어가 있는 9편의 짧은 글과는 무척 어울리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츠바이크의 마지막 시기 1940-1942에 쓰여진 미발표 원고 2편과 이곳저곳에 발표된 글들을 모아 나온 책입니다.
9편 중에 앞에 나오는 5편은 작가의 과거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을 풀어 놓습니다. 재미도 있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분명하고 생각거리를 줍니다. 다른 책에서 이 책으로 옮겨 와 읽기를 시작하자, 문장이 복잡하지 않고 얼마나 매끄럽게 읽히던지 놀라웠네요. 원래 그렇게 자연스럽게 썼으니 번역도 그게 가능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첫 글인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일용할 양식과 옷 그 이상은 받지 않으면서 이일저일 솔선해서 또는 부탁 들어오는 일을 맡아 해 주는, 동네의 기인에 대한 기억을 쓴 글입니다. 이 기인의 이름은 안톤. 안톤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이 점이 저는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어요. 동화같은 이야기였어요. 동화가 그렇듯이 하나의 원형으로 마음에 오래 남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글 '하르트로트와 히틀러'는 위의 글과는 여러모로 반대되는 성격의 글로서 인상적이었어요. 하르트로트는 히틀러 등장 25년 전에 나온 소설 속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부수 인물일 뿐이던 하르트로트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독일의 세계지배, 전쟁 계획 등을 주장했고, 당시에 츠바이크는 이 부분을 코웃음을 치며 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후 츠바이크가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이 반미치광이 캐릭터가 7000만 독일인의 일반적인 캐릭터가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츠바이크는 이제야 깨달았다고 씁니다. 이 모든 끔찍한 세계지배의 계획과 그 기반 사고는 히틀러가 고안한 것이 아니고 독일 국민의 무의식 속에 늘 존재했었고 히틀러에 의해 그 광기가 실현되었을 뿐이라는 것을요. 몇몇 개인의 사악한 꿈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수백만의 소망이 되었고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이 되었다고 씁니다. 1942년에 발표된 이 글이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한 거 같아서 두려움을 줍니다.
에세이 한 편이 끝나면 (아마 편집자가 뽑았을) 앞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이 한두 개 적혀 있는데 저와 생각이 대부분 일치해서 반가왔네요. 길이가 짧으니 도서관이나 어디서 마주치시면 함 읽어 보시길.

[샤이닝] 욘 포세.
2023년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입니다.
이 책도 길이가 짧습니다. 한 편의 장시같은 느낌을 줍니다. 단어와 문장의 연결로 생기는 운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 글이었습니다. 당연히 원어는 그런 점이 훨씬 다가 올 거 같지만 번역으로 접해도 느낄 수 있었어요. 시의 느낌을 받는 것은 반복되는 소리의 효과를 중요시한 것도 있지만 기승전결의 사건이랄 게 없는 이야기 구조도 이유가 됩니다. 이것이 소설일까. 상징적인 장시가 아닐까. 보시다시피 책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으니 소설이겠죠. 뭔들 어떨까 싶네요. 그런 구분이 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인물이 일상이 너무나 지루하여 집을 나와 마구잡이로 운전을 하다 보니 깊은 숲에 들어와 있습니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 사람이니 노르웨이의 한겨울 눈내리는 숲 되겠습니다. 차는 움푹하게 패인 길에 빠지고 곧 어둠이 내리고 눈도 내리고 인가를 찾아 나선 인물은 어디가 어딘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차마저도 어디 있는지 못 찾겠고.....그러는 얘기입니다. 뒤에 더 있습니다만.
짧으니 책 찾고 계셨다면 일독 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지금 읽기엔 너무 추울 듯하면 따뜻한 봄에.....춥긴 추워요. 한숨에 달아서 읽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저는 특별한 체험을 하듯이 읽었습니다.

무지의 즐거움이란 책은 thoma님 소개를 읽다가 뭔가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네... 라고 하고 있었는데 그 느낌을 딱 말씀해주셔서 놀랐네요. 저는 대중과의 쉬운 소통, 이라고 하면 일단 의심이 생기곤 하거든요. 그리고 규칙적 일과도 좀 그렇고...
제가 자기계발서로 분류된 책을 한 권도 안 읽어 봐서 그 형식은 정확하게 모릅니다만, 이 저자를 자기계발서 저자로 보진 않는 거 같아요.
막연하나마 비교하자면 자기계발서는 훨씬 세부적일 거 같고 요구 사항들이 독자를 향해 있을 거 같은데 이 책은 물어 보니 답하는데 - 식이었어요. 규칙적 일과도 본인의 일과일 뿐 이래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다만 대중과의 쉬운 소통은 이분이 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식이 넓은 범위로 퍼져야 의미나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학문장 안에서 개인 홀로 높은 성취를 해야 말할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존재하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어려운 것을 잘 설명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더군요. 정치 문제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서 일본 젊은이의 정치 무관심을 비판하더군요. 지성도 개인이 더 가져야 하고 정치 문제도 개인이 더 알아야 하고 내 문제와 직결됨을 알아야 한다, 이런 맥락인 듯했어요.
개인적으로 책의 기획이 좀 그래서 이 책으로는 판단을 유보할까 싶지만 일본 저자가 갖는 특유의 특징이(뭔가 도 닦는 느낌?) 느껴져서 저와 안 맞기도 하고 뭐 그랬습니다.
욘 포세의 샤이닝이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같은 작가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e북으로 예전에 사놓고 아직도 안읽고 있어서 이것부터 시작해야겠네요
ㅎㅎ 저도 [아침 그리고 저녁]을 갖고 있는데 나중에 나온 이 책부터 먼저 읽었어요.
[하지만 본격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한 유도는 되지 않았어요] ← 이부분 보고 웃음. 전 이 작가책 3권 읽었고(일본변경론, 하류지향, 청년이여마르크스를읽자) 읽을 당시엔 끄덕끄덕 다 좋게 읽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안남아요 ㅋㅋ 그래도 몇년 주기로 항상 검색해보는 저자이긴 합니다. 레비나스 관련책 곧 읽을 것 같긴 함 ㅋㅋ
편하고 재미있게, 통찰담긴 책 읽고싶을 때의 쓰임(?)이 있는 저자 같은. 좀더 강렬하지만 사사키 아타루('잘라라,기도하는그손을' 저자)도 이 계열.
세 권이나 보셨군요. 레비나스를 읽고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았어요. 공부를 하며 어떤 절정의 행복감 같은 것도 레비나스 연구 중에 가졌다고 하고요. 저자가 솔직하고 소탈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사사키 아타루의 저 책은 저도 봤는데 표현이 강해서 그렇지 바탕은 여전히 일본적인(이런 일반화를 자꾸하게 되어 찜찜하긴 하네요) 성실함의 강조 아닌가, 기억이 그렇게 남아 있네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오래 공들여 읽었습니다. thoma님이 설명하신 내용, 히틀러나 그 부류에 대해 코웃음을 쳤지만 그 전쟁의 공포가 세계를 뒤덮었을 때 츠바이크는 결국 견디지 못하였죠. 우리는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었다 하면서 안심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독일인 뿐 아니라 파시즘에 대한 숨겨진 욕망이 인류에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어제의 세계] 이 책도 안 읽었어요. 저는 츠바이크를 전기 작가로 인지하는 편인데, 집에 사둔 발자크 평전도 안 읽고 있고. ㅎ 맨날 신간에 눈 돌리지 말고 있는 책을 읽어야 하는데...
세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겪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는 전망이 전혀 안 보인다고 느꼈을 거 같기도 하고. 그 먼곳까지 갔으나.
확실히 국민적 특징이 있는 거 같아요. 일본 사람들은 배우고 가르침 받고 깨닫는 태도로, 항상 이런 태세로 사는 거 같아요. 이 책에도 나오는데 어른의 뭐라는 표현도 그래서 많이 쓰고요.
상식이라고 여기는 게 이렇게 서로 다르구나라는 걸 전사회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시간이네요. 끼리끼리 당연한 게 달라서 소통이 과연 가능할까 싶고 이제 그냥 권력 가지면 장땡이고 힘 있는 쪽에 마지못해 눌려 사는 식의 사회 같고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폭설권은 사사키 조 소설인가요? 검색해 보니 절판된지 오래인가 책이 없네요. 엄청 재미있을 거 같은 느낌인데요. 이 작가의 경관의 피, 경관의 조건만 검색됩니다. 요 책들도 재밌다는 말은 들었지만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