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한강진 집회에서 눈사람 만들었습니다
1월 4일 한강진역에서 시민들이 민주노총과 진보당 및 다른 야당과 함께 날을 샜다고 하더군요. 저는 4일날 밤 집에서 편안하고 비겁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람들이 은박담요로 몸을 둘러싼 채 아예 눈에 파묻혀있는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정말 경악했습니다. 눈이 안내리는 밤에도 엄청 추운데, 이렇게 눈을 맞아가며 한 자리에서 저렇게 앉은채로 날을 새는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광기라고밖에는... 마냥 감탄하거나 존경하기도 죄송스러워집니다. 저는 집회 나가서 어지간하면 앉질 않는데 요즘 같은 겨울에는 바닥이 너무 차갑기 때문입니다. 서있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그런데 저 눈오는 바닥에 앉아서 저분들은 저렇게 자리를 지켰던거죠. 여러 사람들이 "키세스 시위"라고 부르던데 저는 그런 식의 '모에화'를 차마 할 수가 없습니다. 1월 추운 겨울밤 서울의 실외에서 30분만 있어도 한기가 스며듭니다. 그런데 저걸 거의 일고여덟시간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침에 한강진역으로 다시 갔습니다. 트위터에서 이제 교대해주자는 글들이 종종 보이기도 했습니다. 별로 늦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지하철 역에 벌써 태극기 부대들이 있더군요. 살짝 긴장했습니다. 집회현장에 가보니 사람들이 무대는 아예 불이 꺼져있었고 사람들은 옆의 일신빌딩 안으로 상당수가 이동해있더군요.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거의 피난처였습니다. 날을 샜던 시민들이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자고 있는데 그걸 보자니 참... 바깥에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무대발언은 중지되어있었고 하는 것 없이 눈맞으면서 밖에 있기는 좀 그랬습니다.
현장에서는 당장 할 게 없었고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만들어놓은 미니눈사람들을 보고 갑자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참에 눈사람이나 크게 만들어보자.

눈사람을 정말정말 오랜만에 만들어봐서, 맨 처음에는 좀 미련하게 눈을 뭉쳤습니다. 화단 쪽에 쌓인 눈을 가지고 만드는 거라 계속 흙이나 나뭇가지나 부스러기들이 묻었고 그 때마다 그걸 일일이 털었는데 그냥 무시하고 굴려야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장갑이 젖을까봐 은박담요를 접어서 라면냄비 잡듯이 눈덩이를 만지면서 계속 굴리고 굴렸습니다.

그렇게 굴리고 굴려서 얼추 몸통과 머리를 만들었습니다. 역시 오랜만에 하다보니까 모양이 둥글게 딱 나오진 않더라고요. 눈사람 입장에서 왼쪽으로 살짝 쏠려있었는데 그냥 눈사람이 '좌파'라 그런거라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하얀 눈으로 표면을 칠하고 있었는데 시민들이 아는 척을 해주시더라고요. 눈사람이에요~? 윤석열 모양으로 만들어봐요! 그렇게 눈을 바르고 있는데 어떤 시민분은 몸통에 저 피켓을 붙여주고 가셨습니다. 어떤 분은 미니눈사람을 만들어서 제가 만들던 눈사람 위에 살포시 울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민분이 저에게 슬쩍 아이컨택을 하시더니 본인도 계속 눈을 가지고 와서 같이 발라주시더라고요. 전혀 모르는 분인데 그런 거 따질 새 없이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낭만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눈코입도 붙이고 눈사람 조소는 딱 여기까지 했습니다. 같이 마무리작업 해주시던 분과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저렇게 세워놓으니까 시민분들이 사진도 찍고 가시더라고요.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예술이 밥먹여주냐는 말도 있지만,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작게 기여하는 게 있지 않은지 그런 사회적 효용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봤습니다ㅎㅎ 예술가분들(특히 조소 작업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굉장히 커졌고, 길에서 눈사람 부수는 인간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더 커졌습니다. 그 외에도 눈을 뭉치고 굴려서 '사람'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 광장의 의견을 뭉치고 결집시켜서 하나의 거인으로 형상화하는 것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눈사람을 다 만들고나니 시간이 꽤 흘렀었고 집회 현장에서 크게 한 건 없지만 시민발언듣고 구호 외치다가 귀가했습니다. 뭔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집회 소식 잘 보았습니다. 건강을 핑계로 참여 못하는 중이라 현장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으니 신문기사를 읽는 것과는 다른 현장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눈을 맞으면서 밤새우는 분들 사진을 보고 저도 경악했었는데요, 날씨가 더 추워질 예정이라 뭐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지원금을 부쳤습니다.
실물에 비해 눈사람이 너무 귀엽습니다. 위에 ally 님 말씀처럼 기사와 다른 생생한 소식이라 늘 반갑게 읽어요. 오늘은 특히나 좋은 경험이 포함된 글이네요.ㅎㅎ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지난 일요일 저녁 한남동에서 귀여운 눈사람? 스노우캣? 들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