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한참 어수선한 가운데 넷플릭스의 '사나운 땅의 사람들'을 봤는데 재밌습니다.

  무법자들로 가득한 서부의 한 마을에 우아하고 강인해 보이는 부인이 들어섭니다. 한쪽 다리에 보조기구를 찬 남자아이와 함께요. 아이 아빠가 있는 도시로 가려고 하는데 안내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네요. 마을 유지가 그들에게 외곽에 혼자 살고 있는 한 남자를 적임자라며 소개해 주지만 남자는 여자와 아이 데리고 그 험지는 못간다며 퇴짜를 놔요. 하지만 여자와 아이는 다행히도 한 무리의 몰몬교도들과 길을 함께 하게 됩니다. 그들이 떠난 마을에 왠 남자가 들어오는데요. 알고 보니 그 부인이 살인자이고 현상금이 걸려 있다네요. 그 사실을 알게 된 현상금 사냥꾼들이 부인과 아이를 뒤쫓기 시작합니다.


  일단 번역 제목 매우 마음에 안 들고요. 원제는 American Primeval. 직역하면 태고의 미국인데 뉘앙스 살리기 어려운 제목인 거 같기는 해요. 그래도 사나운 땅의 사람들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넷플릭스 선생님. 무슨 대하 사극 같은 웅장한 제목인데 실제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고요. '야만의 땅' 정도면 어땠을지 싶네요. 써 놓고 보니 이것도 그냥 그렇긴 한데요. 차라리 그냥 영어 독음을 제목으로 올려봤어도 괜찮았을 것 같구요.


  서부 시대 미국이 총든 야만인들로 가득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가 이 드라마의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서 포인트는 '적나라'에 있습니다. '레버넌트'의 세계에 '왕좌의 게임' 감성을 끼얹은 것 같은 화면이 계속 이어져요. 눈 감으면 목 베어갈 거 같은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가운데 인정이나 의리 같은 건 눈에 씻고도 찾아볼 수 없고요. 넷플릭스 답게 표현 수위가 아주 센 편입니다. 꿈도 희망도 없는 개고생 여정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같은 느낌도 들어요. 


  이런 맛을 살리려고 그랬는지 세트나 촬영지 선정에 꽤 공을 들인 것 같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멋지고 웅장한 개척 정신의 미국을 보여주는 화면은 없고요. 사회 고발 현장 취재 다큐멘터리 같이 카메라가 인물들에 달라붙어 다니고, 그러는 바람에 눈발 섞인 진흙 덩어리가 화면 밖으로 튈 거 같은 부담스런 느낌이 팍팍 나는 편이에요. 


  점점 광기에 휩싸이는 찐따 같은 몰몬교도 남자가 낯이 익다 싶었는데 한 때 광기 어린 꽃미남의 대명사였던 데인 드한이더군요. 초장부터 얼굴에 험한 꼴을 당해서 못알아봤는데 드라마 다 보고 나중에 검색하다 알았네요. 생김새도 비슷한 것이 레버넌트에 나왔던 디카프리오랑 비슷한 길을 걷기로 한 거 같습니다. 디카프리오 닮은 드한부터 사나운 겨울을 배경으로한 서부극이라는 점도 그렇고 원주민들에게 길러진 백인 남성이라는 설정이 비중 있게 쓰이는 것도 그렇고 이 드라마와 레버넌트는 여러 모로 비슷하네요.


  서부극 본 게 별로 없어서인지 이 장르에 대한 이미지를 간지나게 총 쏘는 사나이들의 배신과 의리, 야망 같은 걸로 인식하고 있는 저에게는 아주 신선한 장면들이 이어졌던 편이고요. 딱 6편 만에 늘어지는 것 없이 깔끔하게 끝나는 점도 좋네요. 공유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게 봤습니다. 모처럼만에 나온 넷플릭스 걸작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 아직 레오파드 dvd 코멘터리와 셔플영상도 다 못보고 있는데 이렇게 볼게 계속 쌓이면 곤란합니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내용이 짐작도 안갔는데 출연진이 화려하다고 생각했더니 점점 흥미가 당기네요^^

      • 좋은 건 같이 봐야하니까요. 재밌게 보시면 좋겠네요.
    • 인정과 의리는 교역소에 많이 있더군요

      • 첫 씬에서 나온 거 보면 거기도 뭐...
    • 서부극이라면 "그 땅에는 신이 없다"가 넷플에 아직 있나 모르겠군요. "카우보이의 노래"도 심심하면 볼만했고, 다큐 쪽으로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 전쟁" 같은 것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 추천 감사합니다. 제목이 익숙한 걸 보니 한 번 씩은 보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 넷플에서 만든 시리즈라서 아직 있어요. 제가 며칠 전에 사나운 땅의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가 그 땅에는 신이 없다 (왜 제목들이 이렇게 긴가..) 언급도 좀 했었죠 ㅋㅋㅋ  

    • '눈발 섞인 진흙 덩어리가 화면 밖으로 튈 거 같은 부담스런 느낌'이라니 멈칫! 하게 되는군요. ㅋㅋㅋ 이런 거 리얼하게 표현한 작품들은 보면서 체력이 소진되더라구요. 그래서 2차대전 영화 같은 것도 잘 못 보는데... 암튼 일단 찜은 저번에 해놨으니 나아중에 심적 체력적으로 여유 있을 때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 생각하시는 그 느낌 맞을 거 같습니다. 좀 지치는 면이 있긴 해요 그래서.
    • 저 말고 재미있게 보신 분이 또 계시군요. 스토리가 이것저것 많이 꺼내 놨다가 마지막에 부랴부랴 주워담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볼 만했어요.  6부작이라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미니 시리즈라서 좋았는데 이런 내용의 드라마를 시즌제로 만든다면 힘들어져서 중도 하차하게 될 것 같아요

      • 재밌는 드라마 맞는 거 같습니다. ㅎ 전 그럭저럭 아쉬움 없는 마무리였어요. 시즌2 나오면 어떤식으로 만들게 될지 궁금하긴하네요. 여지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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