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연남동 카페와 격전지


 #.조조의 아들인 조식은 후계구도에서 탈락하고, 이후 여러번 상소를 올려서 공직에 발탁되게 해 달라고 했다죠. 그는 이대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일 없이 썩어가는 슬픔을 하소연하다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었다고 해요. 사실 그의 진정한 재능은 시성이라고 불릴 정도의, 문학에 대한 재능이었다고 하더군요.


 요즘은 그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조식 정도면, 날을 세우지 않았다면 평생 강남 텐프로 같은 곳에서 놀며 살 수 있었겠죠. 두보에 버금간다는 그 재능으로 멋진 글줄들을 더 많이 남길 수도 있었을 거고요. 하지만 사람에겐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이 꽃을 피우는 기쁨, 자신이 중요한 곳에서 쓰이는 보람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조식은 멋진 싯구나 지어대면서 살아가는 걸론 만족을 못했던 거겠죠.



 1.허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나같은 짠돌이는 허세를 한 번 부리면 그걸 꼭 사진에 담던가 돈쓴만큼 뽕을 뽑거나 하기 때문에 그짓도 거추장스럽거든요. 홍대나 상수, 합정역에 가서 가성비 좋은 제육덮밥 하나 먹고 마음에 드는 카페가 나올때까지 걷는 걸 좋아해요. 


 물론 그쪽엔 좋은 카페가 많기 때문에 훌륭하다 싶은 카페가 계속 눈에 띄어요. 하지만 그곳에 간 김에 좀더 내밀한 카페를 찾고 싶은거죠. 어떤 커피마니아가 평생의 꿈인 카페 창업을 드디어 이뤄내어 자신만의 소박한 왕국으로 꾸며놓은 듯한 가게를 말이죠. 그곳의 소품 하나, 벽 얼룩 하나까지도 말이죠.


 그렇게 걷다가 드디어 이거다 싶은 카페를 찾아내면 그곳에서 커피한잔 하면서 낮의 평화를 즐기는 게 나의 행복이예요.



 2.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여유를 즐기는 것에는 불안 또한 함께해요. 사람 없는 평일 낮에 이렇게 조용한 카페에서 한잔하는 건 좋지만, 이래도 되나? 남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도 되나? 라는 불안 말이죠.


 위에 썼듯이 남자에겐 양가적인 욕구가 있거든요. 평화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며 유유자적하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남자로 태어난 김에 사냥터로 가서 자신의 생산성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 말이죠.


 

 3.그래서 불안을 치료하는 특효약인 주식을 늘 해야 하는 거죠. 나의 본체는 그렇게 평온한 곳에 있어도 나의 일꾼들이 오늘 수익을 많이 땡기고 있으면 안심이 되니까요. 그렇게 앉아서 누군가의 월급이나 연봉을 벌고 있어야만 '나는 올바로 살고 있다.'라는 확신이 들거든요.


 물론 매일 돈을 벌 수는 없어요. 돈을 많이 못 버는 날도 있고 돈을 잃는 날도 있죠.



 4.휴.



 5.하지만 이것저것 잘 풀려서, 평화를 느끼는 동시에 격전지에서 큰 건을 따오는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날이 있곤 해요. 옛날에는 그렇게 수익을 확인하면 비싼 곳에 가거나 했지만 요즘은 그 기쁨을 살짝 갈무리하고 계속 걷거나 차한잔을 마시곤 하죠. 내가 여유로운 사람인 동시에 훌륭한 사냥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기분...그 기분을 만끽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6.사실 옛날이었다면 그럴 수는 없었겠죠. 남자들은 낮에 차나 술을 마시고 있으면 그 풍류를 즐기면서도 일터나 전쟁터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으니까요. 그리고 전쟁터에서 구르는 남자들은 '씨발 이것만 끝나면 진짜 다 때려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거고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평화를 만끽하는 동시에 격전지를 누비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거든요. 그리고 둘다 가질 수는 없었어요. 평일 낮에 술잔을 기울이든, 격무에 시달리고 있든간에 온전히 좋은 기분을 누리지 못하고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을 갈망하는 습성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한 번에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었고요. 술집 아니면 전쟁터 말이죠.



 7.하지만 현대에는 사람 없는 연남동 거리를 걸으면서도 동시에 전쟁터에 있을 수 있는 거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평화로워 보이겠지만 마음 속은 엄청난 격전을 치르고 있는 중인 거고요. 


 그리고 운좋게 두 개의 세계에서 동시에 승리한 날은 아주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나이를 먹으면 늘 한 사람 몫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겁게 다가오잖아요?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8.예전에는 큰돈을 벌면 돈 때문에 기분이 좋았지만 요즘은 좀 달라요. 마음속으로 계산을 해보거든요. 내가 오늘 서울 중산층 남자의 몇 사람 몫을 해낸 건지 말이죠. 

 

 한 사람...또는 열 사람. 심지어는 백명, 200명. 어떤 날은 365명 분의 몫까지 하루만에 해냈다는 계산이 되면 그날은 그걸로 충분한거죠. 오늘은 어딜 갈지...어디 가서 돈을 쓸지 고민했었지만 나이가 드니 잘 그러지는 않아요. 내가 누군가의 인생 1년 분의 몫을 해냈다는 계산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그냥 돌아가곤 하죠.



 9.옛날에는 아마, 내가 사냥을 잘 한 날엔 그걸 남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이 커서 그랬겠죠. '나도 훌륭한 사냥꾼이다!'라고 외치는 듯 말이죠. 하지만 요즘은 남에게 굳이 알리려고 하지 않아요. 사실 나 같은 성격은 남에게 알릴 때 반드시 '자랑비'를 내기 때문에 자랑하는 행위 자체가 손해기도 하고요. 


 

 10.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옛날에 태어났다면 전쟁터에 안 갔을 타입이거든요. 꼭 하나 고르라면 낮에 찻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걸 택했겠죠. 그리고 사냥터나 전쟁터에 나간 걸 자랑삼아 떠드는 놈들을 마음속으로 혐오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현대에 태어나서 사냥감이나 전리품을 획득하는 동시에 평화도 챙길 수 있다는 게 참 행운이예요. 나는 학구적인 타입이라 옛날에 태어났다면 평생을 전쟁터에 대한 혐오 내지는 동경을 가지고 살아갔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학자로 엄청나게 두각을 나타냈을 것 같지도 않고요.


 

 11.사실 지금 쓰는 글만 해도 그래요. 내가 2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굳이 원고지나 공책까지 사가며 글을 썼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이렇게 편하게 인터넷도 있고 키보드도 있으니까 접근성이 편리한 김에 쓰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평생 글쓸 일이 없었겠죠. 글에 대한 갈망에 굶주릴 정도까지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연휴 도중인 날에는 '아무 글이나 끄적거려 보고 싶다...'정도의 생각은 하면서 씁쓸해했겠죠. 내가 글도 써볼 수 있고, 사냥터에서 큼직한 사냥감도 잡으며 살아갈 수 있는 미래세계에 태어난 건 참 행운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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