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본격 울화통 재연 드라마, '본인 출연, 제리' 잡담입니다
- 2023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1시간 15분. 스포일러는...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결말은 마지막에 따로 흰 글자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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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포스터는 이렇구요.)
- 주인공은 당연히 제리. 젊을 때 대만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건너 온 사람입니다. 이제는 환갑을 넘어 칠순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아메리칸 드림' 까지는 이루지 못했고, 그래도 일생 아무 취미도 즐거움도 마다하며 소처럼 벌기만 하다가 은퇴한 덕에 재산이 적진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조그마한 집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네요. 이혼한 아내에게도 돈을 좀 보내주는 모양이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들에게도 한 몫 물려주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제리씨가 가족을 불러 모아요. 중요한 할 말이 있다는데... 여기에서부터는 이제 과거 회상식으로 갑니다. 어느 날 제리가 전화 한 통을 받거든요. 여긴 중국 본토인데 널 체포해서 송환해야겠다. 니가 국제 돈세탁에 연루 되었다는 증거가 우리들에게 있다!! 당연히 제리는 억울하겠죠. 그러자 그 쪽에선 그럼 니 결백을 증명해 보라면 무슨 비밀 요원처럼 이것저것 지령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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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버전 포스터는 이랬네요. 이것도 좋습니다. 다만 저 카피는 살짝 사기인 듯 아닌 듯 애매하네요. ㅋㅋ)
- 그렇습니다. 노인들을 타겟으로 한 보이스 피싱 범죄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요. 제목에 적어 놓았듯이 다큐멘터리를 빙자한 재연극 형식으로 가구요. 주인공 역할을 맡은 제리 할배 본인의 실제 체험을 충실하게 재현한 이야기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형식적으로 조금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범죄자와 은행원 정도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를 다 실제 인물들이 맡아서 연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재연극은 재연극인데 되게 다큐멘터리스러워지는 거죠. 게다가 이 양반들이 연기를 잘 합니다? ㅋㅋㅋㅋ 아마도 촬영 당시의 실제 일상 장면들을 찍어 놨다가 예전의 상황인 것처럼 편집해서 붙인 부분이 섞여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정말로 조금은 연기력이 필요한 재연 장면들에서도 참 잘 해요. 그래서 괜히 웃음이 나오는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왜 잘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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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가족들이 실제 가족 역으로 등장합니다. 검색해 보니 레드 카펫 사진들도 나오던데요. 하하.)
- 그래도 어쨌든 이야기 자체는 참 특별할 것 없는 범죄 사건 재연극이구요. 다 우리가 익히 보고 듣고 겪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죠. 게다가 결말이 뻔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보면서 막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할배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아악 송금 해버렸어!!! 또!!!!! 이러면서 보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재미가 있습니다. 아마도 주인공 제리와 그 가족들이 나름 재밌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어서였던 것 같아요.
일단 제리의 일상을 통해 이제 노년이 되어 은퇴한 중화권 이민 1세대의 생활과 사고 방식 같은 걸 경험하는 게 괜찮았어요. 되게 80~90년대 한국 아버지들이랑 똑같거든요. 죽어라 벌고 있는 힘껏 아껴서 돈 모으고 나중에 그걸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는 걸 인생 목표로 달리는. 그러다 보니 본인 인생은 영 재미가 없지만 본인은 거기 아무런 불만이 없는... 뭐 그런 사람이었어요. 나이 먹고 이혼을 한 데다가 자식들은 다 독립해 나가니 독거 노인이 되어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고. 본인은 그게 전혀 힘들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외로웠던 거죠. 이 양반이 피싱 범죄자들에게서 따스한 관심(...)을 느끼고 홀딱 넘어가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그리고 아내분이 참 재밌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좀 현실 빌런 같은 느낌이었는데, 후반의 전개를 보면 허허. 좀 얄밉긴 한데 그래도 좋아 보이더라구요. 입담도 좋아서 영화의 쿠키도 담당해 주셨습니다. ㅋㅋ 자식들은 뭐... 큰 개성은 없지만 그래도 인간미는 느껴져서 괜찮았구요. 특히 제리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털어 놓은 후에 보여준 모습들이 참 현실적으로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정말 100%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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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가 이러고 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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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는 이렇고 사니 뭔가 빌런인가? 싶었지만 아니더라구요. 그냥 넘나 재미난 분이셨던 것... ㅋㅋ)
- 연출이나 촬영은 준수합니다. 때깔 좋아요. 이건 제리가 직접 하지 않고 단편 영화들 몇 편 찍었던 젊은 감독을 기용해서 만든 부분인데요.
제리의 심정을 반영한 환타지스런 장면 연출이 몇 번 나오는데 대단할 건 없지만 참 적절했다 싶었구요. 은근히 킥킥대며 웃게 만드는 장면들도 꽤 있는데 이야기의 사실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적절히 집어 넣는 센스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기범들에게 우롱당하는 와중에도 내내 차분하고 따뜻한 톤을 유지하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응 그래 이런 느낌이 맞는 거였네. 라고 납득하게 되고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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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제리에게 연락한 '경찰'이 이런 사람일 리가 없잖습니까.)
- 그리고 뭣보다... 결말이 말이죠. 어차피 뻔하지만 나름 스포일러인 셈치고 본문엔 안 적겠습니다만. 이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ㅋㅋㅋ 뭐 저도 대략 공감했습니다. 아니 뭐 크게 사기 당해 탈탈 털린 사람이 영화 제작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니까 대략 짐작이 가죠. 결국 이게 한국의 OTT에까지 들어와 있으니 이런 판권 수입이 우리 제리 할배의 경제 사정에 많이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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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비극. 어찌 보면 소원 성취 환타지.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 결론적으로... 이런 소소한 다큐멘터리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보실만 합니다. 런닝 타임도 짧아서 부담 없구요. 애초에 재연극이라서 그런지 보다 보면 그냥 극영화 보는 느낌으로 재밌기도 하고 그래요.
다만 어쩔 수 없이 75분 중에 65분 정도는 복장 터지는 이야기라는 거. 그것만 감당 가능하시다면 한 번 시도해 보시라... 고 아주 소심하게 추천해 봅니다. 저는 재밌게 잘 봤어요.
+ 바로 스포일러 구간입니다만. 뭐 당연히 별 건 없으니 아주 짧습니다.
이 범죄자놈들이 참 정성이 뻗치는 놈들이구나... 싶은 게요. 이놈들이 속여서 바로 한 탕 해먹고 빠지는 게 아니라 아주 시간과 공을 들여요. 겁 줬다가, 위로해 줬다가, 나중엔 일상 대화까지 나누는 관계로 발전 시켜서 완전히 의지하게 만들고서 마지막 한 푼까지 다 쥐어 짜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제리님은 일생 아무 재미도 없이 살던 양반이 갑자기 경찰들이 자기를 '수사에 협조' 시키겠다며 이것저것 미션을 주니 무슨 스파이라도 된 기분에 인생이 즐거워지고. 또 본인 먹는 음식에까지 관심을 갖고 가족 문제 상담까지 해주는 중국 본토의 형사님들(...)에 감격해서 나중엔 진심 믿고 의지할 소중한 인연처럼 여겨 버려요.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은행 예금, 적금, 펀드, 주식에 각종 보험까지 싹 다 빼서 갖다 바치고 총액 100만 달러에 달하는 피해입니다. 큰 아들 결혼한다고 해서 새 집 얻어주려던 돈까지 남김 없이 탈탈.
결국 마지막 20만 달러를 송금하자마자 연락이 끊기고. 다음 날 다시 전화 해 보니 모르는 사람이 받아서 너 지금 무슨 얘긴데? 라는 투로 이야기하다가... "그거 꼭 사기 당하신 것 같은데요?" 라고 한 마디 해요. 그제서야 모든 걸 깨닫는 우리 제리 할아버지...
가족들은 이러다 이 양반 자살이라도 하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지만 제리 할배는 의외로 (겉으로는) 멀쩡합니다. 그냥 심플해요. 일생 모은 걸 다 날려 버렸으니 이제 다시 일 해야지 뭐. 그래서 음식 배달 일을 하며 또 돈을 벌기 시작하구요. 가족들은 처음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니가 더 돌봐드렸어야지, 그러는 니는 뭘 잘 했냐 이러고 싸우다가 나중엔 걍 '이 할배 상심해서 세상 등지지 않게 우리가 챙기자.'로 합의하고 이전보다 더 자주 찾아가고 자주 만나서 식사도 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그래요.
근데 그러다 병원에서 참 난감한 소식을 듣습니다. 경미한 뇌출혈이 있다는데, 아마도 알츠하이머 증후일 확률이 높다는 거에요. 이 말을 들은 제리는 최근에 당한 일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의사에게 '너 의사 맞어? 너 사실 배우지! 연기하는 거지!!' 라며 따지고. 의사는 난감해하고...
그래서 더더욱 아빠를 극진히 챙기게 된 아들들은 제리 집에서 머물며 이런저런 옛날 물건들을 꺼내 보다가 비디오 테이프들을 발견합니다. 사실 제리에겐 취미가 없는 게 아니었어요. 젊을 땐 영화를 하고 싶어했는데 '돈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포기했었다는 거죠. 그래서 자식들이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럼 우리 같이 영화나 한 편 만들어 볼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 영화이고. 그래서 마지막 부분은 이 영화를 찍으며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해 하는 제리의 모습. 그리고 그걸 보며 기뻐하는 가족들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할애됩니다. 결국엔 더 이상 미국에서 버티지 못하고 대만으로, 수십 년의 근면한 노동과 금욕적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냥 캐리어 두 개가 전재산인 꼴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영화 덕에 제리의 슬픔과 고통이 조금은 덜어졌다는 거죠. 네, 그러합니다.
+ 쿠키는 이겁니다. 제리의 전처가 등장해서 제작진에게 너스레를 떨어요. 근데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우울한 이야긴데 관객들이 좋아하겠냐. 그 사람들에겐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니 나 같으면 대만에 돌아간 제리가 그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사랑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끝을 내겠다. 라고 주장하는데요. 그러자 제작진이 '그 인연이 어떤 사람인데요?'라고 물으니 대답이 이렇습니다. 그거야 나도 모르죠? 하지만 나는 절대로 아니겠지. 음핫핫!!! ㅋㅋㅋㅋㅋㅋ
검찰청에서 '니 계좌가 불법적인 데 이용 됐으니 다 불어라' 라는 전화 오는 게 한국 보이스 피싱 특허인 줄 알았는데 외국도 똑같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는 게 이 영화 감상의 보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ㅋㅋ 끝날 때 자막으로 미국 노인들 보이스 피싱 피해액을 알려주는데 어마어마하더라구요. 역시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은!
이 영화 찍으면서 막판에 찾아 온 건강 문제도 많이 해결되고 그랬다... 는 얘기가 막판에 나와서 참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구나 싶었습니다. 요즘 뭐하고 지내시는지 궁금한데 그런 정보는 못 찾겠더라구요. 부디 이 영화 판권 여기저기 팔아서 사기 당한 돈 얼마라도 회복하셨길. ㅠ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 셀프재연극(?) 이라니 대략적인 설정만 봐도 엄청 끌리네요. 2023년에 나온 이런 좋은 작품이 있는데 여태 전혀 소문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들여오다니 왓챠가 정말 이런 점 하나는 칭찬할만 합니다. ㅋㅋ
작년 '시민 덕희'라는 보이스피싱 실화 기반 한국영화도 있었고 제이슨 스태덤 주연한 '비키퍼'도 비슷한 소재였는데 요즘 이런 걸 누가 당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절박한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든 교묘하게 잘 속여먹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가 봅니다.
설정을 보고 IS의 온라인 리쿠르팅에 딸들을 빼앗긴 사연을 비슷하게 엄마, 여동생들이 직접 출연하여 재연한 '울파의 네 딸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생각났는데 검색해보니 재밌게도 제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란히 상영됐다고 하네요.
사실 먹고 살자는 전략이긴 하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에겐 고맙기 그지 없지요. ㅋㅋ 다만 이런 작품 들여오는 것보다 야한 영화 편 수 늘리는 게 사업엔 더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최근 신작 라인업이 슬픕니다.
솔직히 제가 이 영화의 제리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지금보다 훨씬 지능적으로 변해 있을 그 미래의 보이스 피싱을 잘 피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어서 나름 꽤 몰입하면서 봤습니다. 시대를 못 따라가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건 참 슬픈 일이에요.
IS에 끌려가다니 이 영화보다 훨씬 큰 비극 같은데요. 검색을 해 보니 음... 이건 저는 절대 못 볼 영화네요. ㅋㅋㅋ 대충 설명만 읽어도 숨이 막힙니다.
아이고 그런 위험을 겪으셨나요. 그래도 안 당하셨다니 다행이구요.
전 너무 뻔하고도 전형적인 '검찰청인데 니 계좌로 범죄 행위가 있었다'는 전화를 받고 호기심에 그냥 맞장구를 좀 쳐 준 적 있거든요. 이름이랑 전화 번호는 그쪽이 알고 있었고, 그러다 주소를 불러 보라길래 "글쎄요오... 혹시 제 주소 아시나요?" 라고 물어봤더니 막 야단을 치더라구요. 그러고 다시 묻길래 "경기도... 어디게에요~!!?" 라고 한 번 더 장난 쳤다가 쌍욕과 살해 협박을 듣는 체험을 했습니다. ㅋㅋㅋ 전혀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니 그 다음부턴 피싱이다 싶으면 심플하게 그냥 끊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