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2차 관람 후 느낀 점
이제는 쉬는 신자이지만 천주교 신자 출신으로서 교황 선출 드라마는 흥미진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티칸 사람들의 권력 암투나 음모는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 와중에 새어 나오는 현실적인 배경과 카톨릭적인 세계관이 재미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다국적 배우 캐스팅은 이 추기경들이 원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의 원래 국적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레이프 파인즈가 맡은 주인공 로렌스는 이태리어에 능한 영국 사람이지만 그래도 원어민은 아닌데 그게 이해가 가는 설정인 겁니다. 이런 맥락에 맞게 스탠리 투치가 맡은 벨리니는 진보성향 미국 추기경, 테데스코는 보수적인 이태리 추기경으로 자연스럽게 국적과 성향을 드러낼 수 있고요.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매우 현실적인 언어 사용을 택합니다. 물론 주인공인 로렌스가 영어 사용자라서 영어가 중심언어지만 필요한 순간에 다른 언어들도 원어로 나와요.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는 그 상황에 맞는 공식 언어가 나오는데요. 전교황을 위해 하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라틴어였던 것 같고요. 로렌스가 추기경들을 모아놓고 하는 기도/연설도 공식어인 이태리어로 시작하죠. 하지만 본심을 소탈하게 이야기하면 다들 모국어가 튀어나옵니다.
로렌스가 테테스코와 이야기할 때 로렌스는 이태리어로 이야기하고, 테데스코는 이태리 억양이 심한 영어로 답하는 걸 보면 둘이 서로 예의만 차리고 맘이 안통하는 관계라는 걸 알 수 있죠. 영어와 이태리어가 주요언어이지만 중요한 부분에는 스페인어도 사용됩니다.
베네테츠는 원래 멕시코 사람이라는 설정인데, 깊은 이야기를 할 때는 스페인어를 씁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만한 장면에서 두 인물이 본인의 세계관을 밝힐 때 각자 이태리어와 스페인어로 본심이 튀어나오는 묘사는 좋았다고 봅니다. 어차피 자막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차이를 알기 어렵지만 이태리어나 스페인어 사용자라면 아주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 베니테츠는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설정인데, 이 배우의 경력을 찾아보니 흥미로운 것이 이 사람이 원래 배우가 아니었데요. 은퇴할 나이까지 건축가로 일하다가 노년에 코로나 상황에서 배우 수업을 들었는데 영화 출연까지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 영화 이전에 다른 영화출연 경력이 없어요.
교황이 되면 타고난 이름을 버리고 교황명을 선택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좀 불편한 번역도 있었다고 봅니다. 현 교황도 본명은 따로 있는데 예명이 프란시스잖아요. 당연히 이때 택하는 교황명은 자기가 어떤 교황이 되겠다는 선언 같은 건데요. 마지막에 선출된 새 교황이 택한 이름의 의미심장함 같은게 우리말로는 번역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플라워 킬링 문에서도 미사는 라틴 어로 하던 게 기억나네요.
테데스코는 이탈리아 어로 독일이란 뜻입니다
Tedesco (or Todesco, or Todisco; plural "Tedeschi") is an Italian word for "German". Etymologically, it derives from Theodiscus, sharing the same root of German "Deutsch".
벨기에 축구 대표팀 감독이 테데스코고 이탈리아 사람
축구 에이전트들도 모이면 무슨 말로 할까 영어 이탈리아 스페인 불어 중에 정하고 한다죠
여러 언어권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서 의사 소통을 하고 뜻을 모아야 한다는 설정 자체가 갈래갈래 나뉜 지구촌 상황을 표현하기 적절했지요. 초반에 테데스코가 '봐라 자기 언어권 끼리 모여 있지 않느냐'며 통일의 필요성을 얘기하지만 라틴어 회귀니 언어 통일 없어도 그럭저럭 합의에 이르는 걸 보여 주네요.
베니테스 역할 배우는 찾아 보신 정보를 보니 진정한 다크호스인걸요.ㅎ 마지막에 그분이 정한 교황명 자체가 한 수라고 생각이 됩니다.
콘클라베라는 의식(?)은 이전에 다른 영화에서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몇 번 접한 바 있었는데요. 워낙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살다 보니 말씀하신 언어와 관련된 부분은 전혀 생각을 못 했네요. 그런 부분을 살려서 영화를 재밌게 만들었다니 감독님 센스가 뛰어난 분이신가 봅니다. 엊그제 본 '휴먼 보이스' 코멘터리에서 감독이 '영어로 연기하고 있지만 내 언어의 느낌도 살려주길 원해서 그렇게 주문했다'는 얘길 하던 것도 생각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