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승'욕자 변현제

* 스타크래프트 1 이야기입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잘 모르는 분들도 최대한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게끔 써보려고는 합니다.


아주 예전, 엄재경 해설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인데도 공격을 당하는 쪽이 공격을 하는 쪽보다 몇배는 더 피로해진다고요. 현실의 격투기가 그렇듯 나는 상대를 때리고, 상대는 나를 때리지 못하게 하려는 그 본능이 게임 속에서 그대로 작동합니다. 그러니까 상대의 공격은 최대한 방어를 하려하고 자신이 공격할 때는 상대의 방어를 무력화하려고 합니다. 이 보신의 법칙이 컴퓨터 게임에도 호흡을 만들어냅니다. 상대가 공격을 할 타이밍에 나는 방어를 굳히고, 상대가 방어를 해야할 타이밍에는 자신있게 공격을 감행합니다. 아무리 주먹이 빠른 월드클래스 복서들이더라도 링 위에서 난타전을 하는 게 아니라 치고 빠지고 몰아붙이고 피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컴퓨터 게임에서도 서로 공격과 수비의 호흡을 나눠갖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 게시판에 변현제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독할 정도로 상대를 괴롭히고, 또 선수를 쳐서 게임을 지배하는 능력이 출중한 게이머라고 했었죠. 며칠 전 아프리카 스타리그가 다시 열렸고 변현제의 24강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경기를 보다가 저는 진심으로 놀라서 계속 욕을 퍼부었습니다. '이건 미친 놈이다, 이거 완전 정신이상한 인간 아니냐?' 상대가 변현제에게 공격을 퍼붓는데 변현제는 방어를 거의 포기하다시피했습니다. 오히려 역공만 퍼부었습니다. 오죽하면 해설진들도 격앙되어서 공격 또 갑니다~!! 하고 놀랐습니다. 스타크래프트를 본 게 20년 정도 되는데 이런 경기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분명히 수비를 할 타이밍인데 그걸 무시하고 변현제는 공격만 갔습니다. 살을 주고 뼈를 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 목젖에 칼이 들어와있는데도 변현제는 방어의 타이밍이라는 걸 인정안합니다. 피가 솟구치는데도턱으로 칼을 누르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는 계속 상대를 찌르는 그런 게임을 한 것입니다.


https://vod.sooplive.co.kr/player/155126865


이 게임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변현제가 세 번 정도 역공을 거듭한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역공은 그럴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까지도, 이렇게까지...? 하면서 놀랄 순 있지만 여타 게임에서도 보이는 양상입니다. 딱 봐도 상대가 자신에게 입힌 피해만큼 자신도 상대에게 피해를 줬습니다. 그러면 이제 자기 집에 불지르는 사람을 쫓아내고 불을 꺼야죠. 그런데 변현제는 상대방 집에 불을 또 지르러 갑니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투쟁심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전과 생존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의 파멸만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게 변현제가 바라보는 승부의 세계일 것입니다.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상대를 유린하는데만 집중합니다. 아마 이런 게임을 프로 시절에 했다면 변현제는 감독이나 코치에게 혼났을 것입니다. 역공도 어지간히 해야지 왜 그렇게 방어는 포기해버렸냐고요. 저는 변현제에게서 순수한 악의 같은 것마저 봅니다. 자기가 아무리 깨물리고 침에 쏘여도 벌레를 붙잡아 해체하며 웃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변현제의 이런 게임을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격형, 수비형, 승부사형, 안정지향형... 이 중에 변현제가 무엇으로 구분되어야할까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이런 게임에서 저는 변현제가 어딘가 마비된 것 같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이건 합리의 영역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긴다고 알아도, 대부분 게이머는 이렇게까지 못합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그 호신의 본능이 작동하기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게임은 나의 이득을 늘리고 상대로부터의 손해는 줄이는, 자본주의적인 양상을 초월한다고까지 볼 수 있겠습니다. 벌레들은 자기 몸이 뜯어먹혀도 턱으로 상대의 머리를 뜯어내길 멈추지 않듯, 변현제는 상대에게 더 최악의 시간을 주는데 골몰합니다. 


변현제는 그냥 지독한 게이머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상대하는 다른 게이머에게는 통제가 안되는 두드러기나 알러지 같은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그를 이기는 사람들은 역으로 평정심이 강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그런 인고의 게이머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변현제의 사디즘을 계속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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