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추모글 2) 걸작 누아르 <말라버린 꽃>을 남긴 일본 쇼치쿠 누벨바그의 주역,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을 추모…

(글의 형태로 작성해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얼마 전에 일본 쇼치쿠 누벨바그의 주역 중의 한 명인 시노다 마사히로가 타계했다. 향년 94세. 시노다 마사히로를 떠올릴 때면 그의 부인인 배우 이와시타 시마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이와시타 시마는 오즈 야스지로의 유작인 <꽁치의 맛>(1962)에서 류 치슈의 딸 역으로 출연한 걸로 유명한데 이 영화에서 결혼식 장면에서의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잊기 힘들다. 쇼치쿠 누벨바그 감독들에게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기주, 시노다 마사히로는 각각 여배우인 고야마 아키코, 오카다 마리코, 이와시타 시마와 결혼했고 그들의 부인들이 모두 각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시노다 마사히로와 이와시타 시마의 관계가 가장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와시타 시마는 시노다 마사히로의 두번째 영화인 <메마른 호수>(1960)에 출연한 해에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이후에 그와 1967년에 결혼한 뒤에 그의 유작인 <스파이 소르게>(2003)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시노다의 영화들에 출연했고 시노다의 영화로 연기상도 여러 번 수상했다. 시노다 마사히로는 <암살>(1964), <사무라이 스파이>(1965), <동반자살>(1969) 등 뛰어난 미학을 선보인 시대극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노다 마사히로의 영화는 걸작 느와르인 <말라버린 꽃>(1964)이다. 지금 봐도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와 같은 영화가 연상될 정도로 세련된 무드로 가득한 <말라버린 꽃>은 야쿠자 무라키(이케베 료)와 그가 도박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에코(카가 마리코)와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시노다는 이 영화에서 뛰어난 미적 감각과 함께 최고의 연출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최고의 영화 음악 작곡가 중의 한 명인 다케미츠 토루의 음악도 매우 훌륭하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2021년 시노다 마사히로 회고전 당시에 쓴 글이 있어서 아래 그 글을 다시 남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시노다 마사히로의 영화를 아직 못 보았다면 <말라버린 꽃> 한 편만이라도 꼭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미 세상을 떠난 오시마 나기사, 요기다 기주와 함께 시노다 마사히로가 사망함으로써 쇼치쿠 누벨바그의 주역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못 본 시노다의 영화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 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래는 전에 썼던 글이다.)

제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전에 다녀왔어요. 다시 봐도 예전에 봤던 <말라버린 꽃>(1964)이 역시 최고이더라구요.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드리기 위해 글을 올리게 됐어요. <말라버린 꽃>은 9월 30일 오후 4시에 마지막으로 상영되는데요. 이 글을 보시고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 영화를 보러 가셨으면 좋겠네요. 제가 좌석을 매진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이 영화를 추천드리고 싶어요.(참고로 아직 온라인 예매가 가능해요.)

<말라버린 꽃>은 한마디로 슈퍼 쿨 느와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영화가 왜 '슈퍼' 쿨인지는 영화를 직접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어요. 이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를 드리기 전에 먼저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카가 마리코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네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1995)에서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어머니 역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저는 예전부터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가 역할의 비중에 비해서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배우에 대해 무척 궁금했었죠. 그러다가 얼마 전에 그 배우가 바로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 태엽 오렌지>(1971)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나카히라 고의 걸작 <월요일의 유카>(1964)에 출연했던 카가 마리코라는 걸 알게 되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러브레터>에 대한 해석이 더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러브레터>가 기억에 관한 영화라면 이와이 슌지가 카가 마리코를 <러브레터>에 출연시킨 게 그녀를 출연시킴으로써 일본 영화사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이와이 슌지가 카가 마리코를 출연시킨 이유가 사실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러브레터>가 더 애틋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죠. 실제로 카가 마리코는 마침 오늘 <말라버린 꽃> 상영 이후 저녁 7시에 상영되는 시노다 마사히로의 <눈물을, 사자의 갈기에>(1962)로 데뷔해서 <말라버린 꽃>을 비롯한 시노다 마사히로의 영화들과 기노시타 게이스케, 오시마 나기사, 스즈키 세이준, 오구리 고헤이의 영화들 등 일본영화사에 남는 명작들에 출연하고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전설의 일본 여배우라고 할 수 있어요. 국내에는 하라 세츠코, 다카미네 히데코, 오카다 마리코 등 다른 고전 일본 영화의 여배우들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카가 마리코의 필모를 보시면 쇼치쿠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일본 영화의 흐름에 일조한 뛰어난 배우임을 아실 수 있어요. <말라버린 꽃>은 바로 카가 마리코의 진면목을 확인하실 수 있는 그녀의 전성기 시절의 걸작이에요. 따라서 <러브레터>에서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어머니 역이 인상적이셨다거나 전설의 일본 여배우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말라버린 꽃>을 꼭 보시기를 바래요. <말라버린 꽃>에서 카가 마리코가 맡은 사에코는 일종의 팜므 파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팜므 파탈은 아니에요. 순수하지만 어딘지 모를 비밀을 감추고 있는 카가 마리코만의 매력을 느껴보시기를 바래요. 

<말라버린 꽃>에 대해서 좀 더 얘기를 해볼게요. 위에서의 '슈퍼 쿨'이라는 수식어에서 짐작하실 수 있으실텐데요. 이 영화는 무드가 끝내주는 야쿠자 영화에요. 그런 면에서 무드의 대가인 왕가위가 만들었을 법한 야쿠자 영화라고나 할까요. <말라버린 꽃>에서 남자 주인공인 무라키(이케베 료)와 사에코는 도박장에서 여러번 함께 도박을 하는데요. <화양연화>(2000)에서의 차우와 리첸이 도박장에서 여러번 만나서 도박을 했다면 이 영화와 비슷한 그림이 그려질 법하다고 말씀드리면 대충 이 영화가 연상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화양연화>만큼 세련된 영화라는 거죠. <화양연화>에서의 차우와 리첸이 속마음을 숨기기 위해 '연기'를 했다면 <말라버린 꽃>에서의 무라키와 사에코는 '도박'을 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무드' 하면 빠질 수 없는 느와르 중에 장 피에르 멜빌의 걸작인 <사무라이>(1967)가 있는데요. <말라버린 꽃>은 <사무라이>에 비견할 만해요. 실제로 영화의 줄거리도 통하는 면이 있구요. 일본 영화 중에는 스즈키 세이준의 <살인의 낙인>(1967)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어요. 무드와의 관련성 안에서 국내 영화 중에는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2005)이나 김수용의 <안개>(1967), 이만희의 <귀로>(1967) 같은 영화들이 연상되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떠오르는 건 당연할테구요. 마이클 만의 느와르도 떠오르고 흥미롭게도 저는 에드워드 양의 <타이베이 스토리>와 유사한 지점도 찾을 수 있었어요.

무드가 중요한 느와르라는 말에서 짐작하실 수 있었을텐데요. 이 영화는 사실 별다른 줄거리가 없어요. 심중을 알 수 없는 두 남녀가 함께 도박을 하러 다니다가 막판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정도가 전부이거든요. 우리가 흔히 야쿠자 장르나 느와르에서 기대할 법한 장르적 관습이 <말라버린 꽃>에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장르적 관습은 이 영화에서 장르의 표식 정도만 인식할 수 있는 선에서 최소화되어 있어요. 그리고 지워져 있는 나머지 부분이 끝내주는 영화적 무드로 가득 차 있다고 보시면 돼요. 이유도 알 수 없이 무라키와 사에코가 밤 거리를 질주하다가 갑자기 어떤 차와 경주를 벌이고 도박 장면이 몇 분씩 자세히 묘사가 된다거나 조직의 보스가 사온 수박을 조직원들이 나눠먹는다거나 하는 식의 장면들이 나열되죠. 이 영화에서 제대로 된 액션 장면은 딱 하나 정도 나온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시노다 마사히로는 그 액션 장면도 거두절미하게 끝내버려요. 물론 그 장면에서 유일하게 바로크풍의 음악이 흐르며 그 장면은 다른 장면들보다 훨씬 강조가 되어 연출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요. 뛰어난 흑백 촬영,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 나루세 미키오의 <흐트러진 구름>(1967) 등 수많은 걸작들에 참여한 거장 작곡가인 다케미츠 토루의 실험적인 음악, 이케베 료와 카가 마리코를 비롯해서 두 보스로 출연한 미야구치 세이지와 도노 에이지로 등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와 탁월한 리듬감의 편집까지 영화의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말라버린 꽃>만의 매혹적인 무드를 만들어내요. 그 무드는 반드시 극장에서 시네마스코프의 큰 화면으로 느껴보실 필요가 있어요.(그 무드가 강력함은 제가 결국 이런 추천글을 쓰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입증이 되는 것 같네요.)

시노다 마사히로는 <말라버린 꽃>에 대해 "촬영이 끝났을 때, 제 청춘이 끝나버린 것을 깨달았죠."라고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를 보시면 아마도 누구나 그 말에 공감을 하게 되실 거에요. 무라키와 사에코가 도대체 어떤 관계였던 건지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쉽사리 정의가 되지 않는 모호함이 남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모호함은 영화가 끝나고 바로 재관람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며 영화가 끝나면 정말 시노다 감독의 말처럼 뭔가가 끝나버린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서 감정의 여진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드실 거에요. 영화팬이 세계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쇼치쿠 누벨바그의 걸작인 <말라버린 꽃>을 보시지 않는다면 아마 오랫동안 후회하실 거에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시기도 쉽지 않은 만큼 이번 기회에 꼭 보시기를 바래요. 그럼 이만 글을 마칠게요. 감사합니다! ^^

P.S: 추가로 이번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전의 상영작들 중에 추천작을 말씀드려요. 제가 본 것 중에는 <오린의 발라드>(1977), <암살>(1964), <동반자살>(1969), <침묵>(1971)이 좋았어요. <침묵>의 경우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2016)보다 더 훌륭했어요. <침묵>에 연출력이 대가급으로 탁월하다고 느껴지는 시퀀스가 세 개 있었어요.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전은 10월 7일까지 진행되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많이 챙겨보시기를요. 이번 기회가 아니면 10편이 넘는 시노다 감독의 영화들을 필름으로 보실 기회는 많지 않으실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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