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영화 두 편.

1. 근래 들어서 빡센 산책을 했더니 몸이 좀 가벼워졌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은 팥이랑 버터 두껍게 들어간 앙버터바게트인가 그런 간식을 먹었어요. 문제는 이 버터덩어리빵을 먹는 동안 커피도 많이 마셨다는 거. 요즘 밤에 잠의 질이 안 좋아서 커피 조심을 하고 싶은데 말예요. 해질 무렵에 걷기를 길게 하는 것도 잠을 잘 유도하려는 건데, 이건 잘 안 통하더라고요. 평균 이상 걸은 날은 누웠을 때 다리가 저리고 뭔가 다리 근육이 헛헛한 증상만 강해지고요. 그런데 커피는 영향이 있음을 느껴요. 어쩌다 건너뛴 날은 확실히 잘 자는 거 같아요. 몸이 이런 식으로 민감해지는 것은 참 반갑지 않습니다만.

요즘 구글지도로 숙소와 식당을 검색하곤 하는데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엄청 빨리 가요. 미리 표시해 두면 여행 가서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후기랑 사진 봐 가면서 찾아 보는데 한두 시간 이러고 나면 웃기게도 여행 다녀온 듯한 피로가 몰려 옵니다. 돌아다닌 듯한 이 느낌 무엇인가...안 가도 되겠는데? 심지어 사진으로 본 메뉴가 많이 땡기면 비스무리한 음식을 만들거나 사먹기도 했더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일종의 뇌를 속이는 효과일지도요. 

  


2. 왓챠에서 '피안화'를 봤습니다.

아래 포스터에 나오는 세 여성은 각각 다른 집안의 딸입니다. 1958년 즈음의 일본 아버지들이 결혼은 자기가 원하는 상대와 하겠다는 딸들을 보며 반대도 하고 속을 끓이기도 하다가 쓸쓸해 하고 허전해 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결혼을 두고 부모 자식간 충돌하는 문제는 유구한 드라마 속의 소재인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이 영화는 매우 싱거운 맛으로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딸이 연애 상대와 결혼하겠다고 아버지와 맞서는 한편 부모 속을 썩여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지만 관객에게 이런 모든 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동안 독하게 전개되는 부모 자식 대립의 경우의 수를 많이 봐와서 그럴 수도 있겠고 오래 전 영화의 부드러운 연출 방식도 이유가 될 거 같습니다. 

하여튼 이 감독님의 다른 영화도 그렇듯이 모든 장면들이 이입되기 보다는 관조적으로 보이는 거 같습니다. 좀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표면만 훑고 가는 느낌도 있습니다. 후벼 파듯이 표현해야 깊이 있는 영화가 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닌데 어쩐지 '피안화'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예전에 본 '동경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동경 이야기' 역시 관조적이라는 느낌을 가졌어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노부부의 여기저기 이동과 죽음이라는 사건이, 그러니까 점점이 이어지던 쓰라린 내용이 순한 연출에 담겨 있어서 그 오묘한 격차가 영화를 아주 인상적으로 보게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피안화'는 그냥 통속적인 인생사를 순한 맛으로 푼 것에 머문 느낌입니다. 인물들의 고통이 안 전달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고전 영화를 오래 생각하지 않고 쉽게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요. 뭐 모르는 저의 단순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오래 전 영화면서 큰 자극을 만들지 않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도 보는 동안 지루함이 없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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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넷플릭스에 갓 올라온 '승부'를 봤어요.

배우 문제가 있어서 뒤늦게 개봉했다는 영화. 참 의아했던 것은 아래 이창호 아역(김강훈)이 어떻게 커서 유아인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외모에서도 그렇지만 외부 세계를 대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른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표현이 적극적이고, 똘똘한 주장을 하는 데에 거침없던 어린이가 돌부처 인간이 되니까요. 사실이 그러니 이렇게 그렸다면 할 말이 없지만요. 바둑에서 조훈현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 자체, 인성의 개조가 따라야 하는 것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연출일까요. 

성인 이창호가 클로즈업 될 때 부담스러웠지만, 이병헌은 얄밉게도 연기를 잘 했고, 영화는 무난하게 보았습니다. 감동의 압박 같은 거 크게 없었고(소소하게는 있습니다), 이제는 한물 간 거 같은 기원이 흔했던 시기를 그리는 시대극의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아마도 한때 기원을 드나들었던 노인들에게는 보는 재미가 각별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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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방금 '승부'를 막 봤는데 이렇게 반가운 우연이! ㅋㅋㅋ 저도 아역시절이랑 캐릭터가 너무 바뀐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게 이창호의 실제 성격이었다면 조훈현이 학대해서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닐까하는 음모론을 제시해봅니다. 하하;;




      사제간의 대결이 가장 중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조연 캐릭터들이 납작해도 너무 납작해서 제 취향에는 재미가 많이 없더군요. 그냥 대단한 두 인물에 대해 옆에서 해설해주고 용비어천가를 불러주는 역할들이었어요. 작품을 볼때는 사생활 이슈는 최대한 잊고 보자는 주의지만 그래도 훈훈한 감동을 지향하는 작품이기에 연기는 참 잘하네~ 하면서 보다가도 짜게 식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바둑을 전혀 모르다보니 이게 왜 그렇게 긴장되는 상황이고 끝에서 왜 이겼는지 직관적으로 이해도 안되고 캐릭터들의 설명하는 대사에 의존해야하니까 그런 부분도 아쉬웠습니다. '퀸스 갬빗' 같은 작품에서 체스도 전혀 모르지만 어쨌든 상대의 말을 잡아먹는 경기이니 그건 보는 맛이 있었는데요.

      • 천하 1위 스승의 압박 아래 남의 집에서 한참 민감한 시기를 살았으니 전혀 근거없는 추측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을...


        저도 그렇게 봤어요. 조연들 보는 재미가 넘 없었는데 짧게 나왔지만 전무송 배우를 볼 수 있어 좋았고 조우진 배우가 그나마 연기가 눈에 들어오는 정도였어요. 


        두 주역 배우가 영화 선택에 난관이긴 했어요. 

        • 감독 인터뷰를 좀 찾아보니까 이창호 기사가 원래 어릴때는 좀 까불대는 성향도 있었는데 바둑을 접한 이후로는 그 잘 알려진 '돌부처' 성격으로 변했다고 하더군요. 사투리도 그렇게 심하게 안썼고... 그런데 일부러 어린시절과 대비를 주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건방진 천재 같은 캐릭터로 묘사했나봐요. 특히 그 기원에서 일대 다수로 바둑 둬서 다 이긴다던지 이런 건 허구라고

          • 그 기원에서 일대 다수로 두는 건 어디서 봤더라 생각했는데 '퀸즈 갬빗'에 그런 장면 있었던 거 같아요. 남이 만든 걸 활용해서 이 장면은 좀 깨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 1. 저는 야식을 끊고 간식도 거의 끊은지 조금 되었는데... 덕택에 '아, 이제 이 정도로는 살이 안 빠지는 몸이 되었구나'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ㅋㅋㅋ 운동을 더 열심히, 꾸준히 해야 할 텐데 요즘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꾸 대충 하게 되네요. 정신 차려야...




      2. 오즈 야스지로 영화는 젊을 때 대표작들 몰아서 보고 이후론 전혀 안 보고 있는데요. 말하자면 저는 구로사와 아키라 쪽이 더 취향인 젊은이였던 거죠. 이제 다시 보면 분명 느낌이 다르긴 할 텐데 선뜻 손이 안 가네요. 허허; 하지만 왓챠 때문에 조만간 몇 편은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싶구요. 기특한 왓챠...




      3. 배우 문제를 떠나 소재와 장르가 제 취향이 아니라 안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안 볼 것 같습니다만. 기원 얘길 하시니 이 동네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원이 떠오르네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딱 한 번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아주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래도 그 풍경과 분위기가 떠오르기는 하는 게 신기해요. 아마 조만간 그 마지막 기원도 사라지겠지만, 별다른 추억 없이도 괜히 그리워질 것 같네요.

      • 칠팔십 퍼센트는 육체 노동인 교직에 있으면서 퇴근 후 운동은 참 힘든 일이죠. 일단은 살과 상관없이 야식은 계속 끊는 걸로 가시길.ㅎ 


        오즈 야스지로는 독신으로 살았다는데 만든 영화가 자녀와 부모, 가족 관계 속 노후 문제 같은 게 많아서 신기한 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멀찍이 놓고 보는 느낌이 강하네요. 왓챠는 좋습니다!


        담배를 피우면서 바둑을 두던, 그리고 귀갓길의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감하던 나이든 남자들의 건전한? 놀이터가 이젠 거의 소멸인 거 같아요. 대체하는 장소도 없는 거 같고. 바둑을 모르지만 그런 점은 아쉽네요.  

    • 저도 [승부]를 보면서 좀 의아했습니다. 가장 단순한 추측으로는 전형적인 드라마타이즈로 아역을 묘사한 게 저런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어차피 실화를 100퍼센트 재현한 것도 아니고 극적 허용으로 이해는 했는데 좀 아쉽긴 하더라고요. 

      • 좀 그렇죠... 양념이 들어간 건 이해해도 신선함이 부족하다 싶은 부분이 많아요.

    • 1. 앙버터빵 맛있죠. 버터랑 빵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한동안 파운드 케이크랑 채스츄리를 엄청 먹어서 배가 무지막지하게 나왔습니다ㅜ 빵 좀 끊어야 할텐데요ㅜㅜㅜ


      2. 오즈 야스지로 영화는 하나도 안 본거 같습니다… 이분 것도 숙제하는 기분으로 좀 봐야겠어요. 고전 영화 좋은데 또 ott를 추가하긴 볼 시간이 너무 없고 참으로 그렇습니다…
      • 일흔...아님 (소심해지네요) 여든 넘어가면 버터와 빵과 케이크 종류를 제한 없이 먹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입맛이 없어져 버릴까 걱정이네요. 어릴 때 어른 되면 과자가 별로 안 좋아진다는 걸 들었을 때 안타까웠는데 제가 요즘 과자가 안 땡기게 되었거든요.




        그래도 최근 시리즈는 아주 열심히 보셨죠. 제 경우에 고전 영화는 다른 볼 것들에 손이 잘 안 갈 때 마음 편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 보신 영화의 다른 제목은 [가을햇살]이네요. 포스터를 보니 아는 영화라서 검색 해보았어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네요 :)


      가을햇살 - 나무위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어떤 외국영화를 몇년 기한으로 판권(?)을 사요. 그래서 오즈 영화도 많이 해주었어요. 


      오즈 영화제를 한 적도 있었고요. 오즈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나는 하라 세츠코를 사랑한다." 였다네요.


      하라 세츠코는 평생 독신이고요.




      영화에서 아야코 사사키의 친구 유키코로 나오는 오카다 마리코 경력이 이채로워요. 일본 탑급 배우였는데 예술영화 감독과 


      결혼했어요... 그 중의 한편이 [아키츠온천]이어요. 여주인공이 저렇게 무너져가면서 파멸하는 영화는 처음 보았어요. 


      영화 속에서 계속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데 장관이어요. 소감은 푸치니 오페라에 견주어도 되요.  




      영화 소개여요.


      아키츠 온천 > 필름 아카이브 - (사)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서울아트시네마)




      왓챠에 있네요.


      아키츠 온천 (1962) - 왓챠피디아

      • '가을햇살'은 오즈 감독의 다른 영화입니다. 그런데 왓챠에서 '피안화' 보고 클릭해 들어가면 아래 올린 '가을햇살' 포스터 일부인 세 여성이 떠서 혼동하게 되어 있어요. 저도 '피안화'에 하라 세츠코가 끝까지 안 나와서 의아해서 찾아 봤지요.ㅎ 이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은 비슷한 소재가 많아서 착각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아키츠 온천'은 왓챠에서 내렸는지 지금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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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송합니다. 이 영화네요.


          [피안화] 彼岸花 '아키츠 온천'은 기회가 되면 꼭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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