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 쿳시의 소설

올해 1월에 이 작가의 [폴란드인] 이라는 책이 번역되었어요. 스페인어로 2022년에, 다음 해에 영어로 나왔다네요. 작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인데 2002년부터 호주로 이주하여 산다고 합니다. 올해 85세. 이후에 새 책이 발표될 것인가 궁금합니다.   

이 작가의 소설은 2003년 노벨상 수상 직후에 구입한 [마이클 K]를 읽었어요. 이후에 다른 책 두 권을 더 샀고 언제 읽어 보겠다 하고는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앞 책이 재미있게 막 넘어가는 내용은 아니다 보니 미루다가 그렇게 됐어요. 지금은 이 작가의 책이 문학동네에서 새로 여러 권 나왔는데 출판사가 바뀌고 새단장하면서 제목도 원제대로 [마이클 K 의 삶과 시대]가 되었습니다. 

[폴란드인]을 살까 하다가 마음을 돌려 집에 있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와 [추락]을 펼쳐 보았어요. 20년 가까이 된 책인데 글자가 진하고 읽기 좋습니다. 상태가 아주 좋아요. 본문 글자 크기가 작거나 글자가 흐리면 읽기가 거북해서, 보관 중인 책들 중에 빼 보기 두려운 책이 늘고 있어요. 

평은 부커상 받은 [추락]이 좋습니다만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먼저 읽었습니다. 왕은철 번역가가 제가 읽은 들녘 출판사 책을 비롯해서 쿳시 작가의 책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책 속 부부의 대화에서 여성만 남성에게 경어를 쓰네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창비에서 새로 나왔는데 인터넷 서점에서 이 부분을 찾아 보니 김성호 번역가가 작업한 창비의 책에는 둘 다 반말을 씁니다.

책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라는 작가가 등장하는 여덟 꼭지의 글로 되어 있습니다. 동물의 삶에 대해 쓴 두 편은 연결해 읽으면 좋겠지만 그냥 순서없이 읽어도 되는, 연속된 스토리가 없는 책입니다. 연작이라고 부르기에도 바탕의 통일성이 뚜렷하지 않고, 그냥 나이 든 여성 작가의 강연을 중심으로 개인사가 조금 덧붙어 전개되는 작품들 여러 편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저는 현장에 가서 강연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이 저 같은 이에게 적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연자의 스타성과 객석에 있을 때 청중의 1인으로 집단으로 묶이는 수동성 같은 것이 만드는 분위기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이 책에서 등장 인물들의 관심과 참여도 면에서의 활기로 인하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여겨지는 '동물들의 삶'에 대한 두 편의 글은 저역시 관심을 갖고 읽었고 되풀이 읽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비유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아마 현장에서 들으며 바로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강연이 끝나고 이어지는 토론에서 다른 입장을 가진 학자의 의문과 반론은 아주 구체적이고 이해가 잘 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육식 문제와 동물권 문제의 현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얘기하거든요. 기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지금까지의 통념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하여, 익숙한 내용이니까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말은 우리의 익숙함을 벗어난 내용이라 흔히 말하는 그 '현실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비유적이면서 본연적인 대처로 느껴져요. 눈 앞에 보이지 않고, 너무 멀리 가 있는 것 같지요. 

하지만 저는 주인공이 옳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저는 육식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저의 살아온 익숙한 현실이지만 자꾸 생각할수록 그렇습니다. 

저는 개와 사는 경험을 하기 전엔 다른 동물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릴 때는 보양식이란 명목으로 지금은 입에 올릴 수 없는 그런 음식도 먹었어요. 그런데 개를 사랑하게 되었고, 지금은 생각해 보곤 합니다. 나의 개만 특별한 동물일까...그런 생각. 

책 속의 어떤 학자는 이렇게 반론합니다. '죽음이 동물들에게는 그저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물체로서 그것에 대한 반항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영혼의 반항은 아닙니다. 동물들에게 죽음은 삶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극심해져 동물들을 포함한 다른 존재들에게 그것을 투사하는 것은 오직,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인간들에게만 있는 일입니다. 동물들은 살다가 죽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런 관점은 완전히 인간 중심적입니다. 이분법적이고 단절되어 있고요. '인간은 하느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의 연장선에 있는 생각입니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와 다른 인물들 사이에는 여러 차원의 턱이 놓여 있습니다. 크고 작은 반발 속에 있는 주인공을 보며 아들은 왜 그렇게 열심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그렇다고, 다른 사람은 다 받아들이고 사는데 왜 나는 그럴 수 없는지, 라면서 눈물을 보입니다. 


쿳시 작가는 강연집으로 수필의 형태로 책을 내지 않고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소설적 가공의 옷을 입혀서 여유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둘러싼 주변의 반응과 막후의 고민들까지 좀더 풍부하게 들려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작가 자신이 다른 성에 이입하는 경험도 갖게 되고요. 이 책의 어느 파트는 실제로 작가가 강연 한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고 하네요. 수월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읽고 나니 쿳시 작가의 다른 책들에 새로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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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 형식의 소설이라니 작가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박식해야 그런 걸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ㅋㅋ 찾아보니 영문학과 수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쳤고 언어학은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고. 음. 역시 그렇군요. 




      '책 속 부부의 대화에서 여성만 남성에게 경어를 쓰네요.' <- 이 부분은 듀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영화 리뷰들에서 정말 꾸준히 지적하셨던 부분이죠. 부부나 연인이 나오면 둘의 관계나 나이 상관 없이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높이는 식의 번역으로 자막을 만들어 붙이던. 그래도 요즘엔 이런 게 거의 안 보이는 걸 보면 한국 사회도 진보하고 있습니다!! 하하;

      • 위에도 적었는데 영어권 작가가 스페인어로 발표했다는 것부터 놀라워요. 그런 작가들이 있지만 들을 때마다 놀랍습니다. 학술서도 아니고 소설을 나이들어 습득한 언어로 쓴다는 건 어떤 차원의 능력인지 상상이 어렵네요. 




        아마도 옛날처럼 쓰면 누가 하는 말인지 구별이 쉽다는 건 있었을 것이지만, 바꾸려면 불편해도 신경써야 되고...그게 익숙해지면 또 당연시 되고 그런 것 같아요.  

    • 오랜만의 책 후기 잘 읽었습니다.

      조금 어려울 거 같기도 하고, 동물의 삶이라는 주제가 힘들거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 읽어볼게요.
      • 주인공 작가의 강연이나 답변이 비유적이라 좀 어렵고 동의도 쉽진 않아요. 그게 단답형의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행정가도 아니라 규제를 제안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세계관 문제가 되니까 우회하는 식으로 얘기하게 되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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