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신흥 종교, MCU교

얼마 전에 어느 학교 졸업식을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식순에 각 반 별로 학생들이 영상을 만들어서 상영하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반마다 남여학생이 어우러져서 당시 유행하던 거 패러디 하거나 훈훈한 내용이 나오거나 해서 호응이 그럭저럭 있었는데 그 중에 어떤 반이 좀 특이했습니다.


여학생들 없이 남학생들만 우루루 나와서 어설프게 어벤져스 엔드게임 장면을 재현하는 게 아닙니까. 마지막은 당연히 아이언맨 마스크 쓴 애가 핑거 스냅하고 졸업하는 것으로 끝. 이게 대체 뭔가 싶었고 당연히 호응도 전무했습니다. 저는 무슨 나온지 5년도 넘게 지난 트렌디 하지도 않은 영화를 인용하는 것에 어처구니없어 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나중에 온라인에서 어떤 봉변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MCU 캡틴 마블에 대해 다루는 영상을 보다보니 댓글이 이런 내용이 달려있더라구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캡틴 마블이 인피니티 스톤이 다 붙어있는 토니 스타크가 만든 건틀렛을 들고 있었으면서도 핑거 스냅을 하지 않은 것 보면 참 이기적이고 못됐다’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건 억까라고 하면서 '그럼 당신은 캡틴 마블이 핑거 스냅하고 인류 구원하고 영화가 끝났으면 만족했겠냐. 작가가 그런 역할을 주지 않은 것을 어떡하냐. 애초에 엔드 게임 각본은 아이언맨이 마지막에 핑거 스냅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우주를 구원하는 것으로 빌드업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캡틴 마블이 하지 않은 것’이라고 댓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악플세례를 받았습니다. 악플에 대해서 처음에는 재반박을 하려고 했는데 끝이 없더군요.


그 때서야 깨닫게 되었죠. 아, 이건 종교로구나.


제가 쓴 댓글이 그런 광신도의 심기를 엄청나게 거스르는 내용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댓글을 지우고 알림을 꺼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 위에 졸업식 영상이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그건 종교활동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21세기의 예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를 기리는.


나무위키에 가서 토니 스타크 항목을 보시면 옛날부터 수퍼히어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엄청나게 기가 막힌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별칭 : The World’s Greatest Hero” 문구죠ㅋㅋㅋㅋㅋㅋ


너무너무너무 인기가 없어서 안 팔린 떨거지들로 만든 영화 시리즈가 10년에 걸쳐 거대한 사이비 종교가 되어버렸던 겁니다. 물론 토니 스타크 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를 잘한 덕분이긴 하지만 전 이제 와서는 그것도 그리 좋게는 안보입니다. 


MCU교는 토니 스타크를 신(혹은 예수)로 모시고 나머지 어벤져스 대원들은 사도들로 모시는, 백인 마초 남성을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토니 스타크와 비슷하게 숭고한 희생을 한 나타샤 로마노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캡틴 마블은 그녀가 그렇게 강한 것이 개연성이 부족하며(어벤져스의 숱한 다른 설정들은 그럼 개연성이 충만한가요? 진짜 놀고 있단 말이죠ㅋㅋㅋ) 위의 건틀렛 사건 등을 언급하며 가롯 유다급으로 비난합니다.

(사실 캡틴 마블이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캐릭터와 배우가 일종의 페미니즘의 상징처럼 되어서이긴 하지만) 


그리고 유투브에서 어벤져스 시리즈 영상을 쫓아다니며 지들 만의 경전을 읊듯이 ‘아 이땐 이랬지… 저땐 저랬지…’ ‘와, 이 때 토니 진짜 빡친 거 ㄷㄷㄷ’ ‘저거는 사실 저랬던 거임 ㅇㅇ’ 같은 댓글을 달며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강화하곤 하죠. 유튜브 영상이 요즘도 자꾸 올라오는 건 다른 게 아닙니다. 그냥 부흥회예요.


이들은 캡틴 마블을 그토록 비난하면서 내용상 캡틴 마블이 없었으면 토니는 우주에서 떠돌다 죽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거기에 자신들이 말하는 것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죠.


인피니티 스톤 중 하나인 스페이스 스톤의 힘을 받은 캡틴 마블이 스톤 6개를 든 타노스와 맞짱뜨는 거 → 개연성 말아먹음


주인공 역할을 아이언맨에게 몰아주기 위해서 인피니티 스톤이 잔뜩 박혀있는 건틀렛을 받아 들고 다니던 캡틴 마블이 핑거 스냅을 하지 않은 거 → 개연성 있음. 캡틴 마블이 이기적이라서 안한 거임 ㅇㅇ


그렇게 영웅들 잔뜩 불러다 개싸움한 거 아무런 소용도 없고 결국 끝에 끝까지 가서는 백인 남자 주인공이 인피니티 스톤을 몽땅 다 자기의 손으로 모아서 핑거 스냅으로 본인을 희생하며 전쟁을 끝내는 거 → 개연성 킹왕짱 서사


그러니까… 사실 그냥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는 적당한 수준의 오락물인데 자기들의 취향에 따라서 어느 부분은 개연성 없고, 딱 봐도 별로 말이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맘에 든다는 이유로 개연성이 충만하다는 식으로 지멋대로의 잣대로 평가하는 거 봐도 그냥 딱 종교, 광신도들의 인식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에 대한 해석도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하지, 그 신념에 살짝이라도 어긋나는 댓글을 달면 이단으로 몰려서 악플의 돌팔매를 맞게 되는 것이고요.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 전 유튜브에서 가끔 생각났을 때 찾아봤던 어벤져스 관련 영상들을 몽땅 관심없음 처리하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모르는 사람과 만났을 때 MCU 페이즈 1 얘기하면서 흥분하는 사람(특히 남자)보면 경계할 것 같아요. 전 사이비 종교인과는 그닥 어울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 소위 말하는 '핍진성'이라는 것도 자기들 꼴리는 기준으로 어떤 건 충족하고 어떤 건 아니라고 하는 부류들이군요.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 프랜차이즈 악성팬들에게서도 많이 본 비슷한 현상입니다. ㅎㅎ

      • 요즘은 핍진성이란 말 뜻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떤 작품에 대한 본인들 해석이 맞다는 말의 근거로 갖다 쓰던데 알고 쓰기 보다는 그냥 있어 보이려고 붙이는 느낌입니다.
    • 고작 그 정도로 종교 행위 운운하는 건 좀… 차라리 부동산 불패, 민주당은 나쁘다~ 나라 팔아먹어도 보수 찍는다~ 등등을 시전하는 부류들 쪽이 좀 더 종교스럽다고 생각합니다만. :DAIN_EOM.

      • 말씀하신 쪽이 종교 색채가 더 강한 것도 맞고(그리고 실제로 그 부류에는 기독교계가 얽혀있고) 제가 말한 쪽도 작품을 해석하는 게 종교스러워서 써봤습니다. 유튜브 댓글들 보면 실제로 토니 스타크에 대한 숭배가 느껴지긴 해요.
    • 브리 라슨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요. 스탠 리 추모라고 비싼 가방 턱 올려놓고 찍은 사진은 좀 별로였지만 배우도 크게 욕먹을 행실한 적은 없고 그냥 더 룸으로 아카데미 상 받고 성실한 프로 연기자같고 사람이 허세가 있어 보이지도 않던데요.
      •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일단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증상과 디즈니에서 더 마블스같은 여성서사 밀어주는 것에 불만인 것들이 겹쳐서 그리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무슨 마이너 시상식인지 쇼케이스인지에서 로다쥬가 나오자 나머지 배우들이 죄다 좌르륵 한쪽 무릎 꿇고 올려다보는 거 보면서 아주 꼴깝들을 떤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 적도 있었나요ㅋㅋ 제가 말한 토니 스타크 숭배의 연장선인지 아니면 배우 자체에 대한 존중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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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TV 무비 어워드에서 공로상 그런 거 탈 때 어벤져스 동료 출연진들이 와서 반장난으로 띄워주듯이 한 거였을 겁니다. 이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ㅎㅎ

        • 리퍼런스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잘 봤습니다.

    • 마블 영화의 파급력과 인기란 게 이미 저물기 시작한지 오래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지 오래인 사람인지라 글 내용을 보고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ㅋ


      그냥 강력한 팬심이란 게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아이돌이든 정치인이든 인기 창작물이든 말이죠. 심지어 게임기와 물아일체가 되어서 이러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뭐. 하하.

      • 그렇죠.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아무래도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종교적 습성이 내재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위에 다인님이 지적했듯이 종교라고 단정하는 건 무리한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요즘 사회곳곳에 너무 종교적으로 맹신하는 그런 사람들에 질려서 그렇게 표현했네요. 요즘 느끼기에 FANDOM이랑 FANATIC은 그냥 동의어같아요.
        • 마블은 아니지만 사생활땜에 말많은 모 선수빠들이 이강인 챔스 우승 기록 인정 안 하려고 날조해서 uefa에 어떤 사람이 확인 차 메일 보내 챔스 우승 맞다고 답장받은 해프닝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어떻게든 세상 좋은 거,최고 독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리가 작동하는 거 같습니다.



          비교종교학 전공한 조지 루카스가 이집트 이런 데서 피라미드를 짓고 한 이유가 사람들 마음 속에는 자신들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뛰어나고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심릭가 있어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스타워즈 프리퀼 제작할 때 높고 웅장한 건축,색채가 화려한 의상을 썼다고 합니다.
          • 그 선수 팬들이 그런 일도 벌였군요;; 이래서 ㅇㅇ팬덤이라고 하면 도무지 좋게 볼 수가 없단 말이죠. 죄다 유사종교 단체 같아요.
            • 그 팬덤은 유난해요.저는 예전에 그 선수빠들이 이탈리아 원문 자기네 입맞에 밎게 정반대로 해석하는 거 보고 학을 뗐습니다.이번도 영어 칼럼 한 문장을 왜곡해서 번역해 그걸 본 기자가 기사화해서 쇼츠같은 게 양산돼 이강인 팬들이 신고하고 그럽니다. 그 선수가 챔스 우승을 못 했고 30넘도록 못 간 빅클럽을 이제 갈 일 없는 거 아는데 한국인 선수가 챔스 우승하는 건 못 봐 준다는 거죠 그 선수 팬덤이 국뽕에 기반한 걸로 아는데 다른 한국 선수 기록까지 부정하는 거 보고 국뽕도 아닌 개인 숭배임을 알게 됐죠.  유로파 우승>>>>>>>챔스 우승인 나라는 전 세계 통틀어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그 선수 시슨 내내 역사상 최악의 주장 소리들었는데요. 유럽 챔피언은 챔스 우승에 붙는 말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유로파 우승에 붙는 말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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