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이야기... (ddp에서 헌팅남을 미행해보다)


 1.강남 호텔들엔 워낙 사람이 많아서 가장 사람이 없는 동대문 호텔 회원권을 하나 끊었어요. 동대문은 별로 좋은 곳은 아니지만 좋은 곳이 아니란 점이 장점이예요. 강남과는 달리 사람들이 호텔을 안 오거든요.


 어쨌든 거기는 사람이 없어서 아주 쾌적하죠. 그렇게 동대문을 자주 가고 있는데 ddp때문인지 외국인이 꽤나 많아요. 어떤 스팟에 외국인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색다른 활기를 띄게 되죠.



 2.최근에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내려 걷고 있는데 한 여자와 남자가 서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아무것도 아닌 그 일상의 광경은 나의 관심을 끌었어요. 왜냐면 두 사람의 '그림체'가 너무나 달랐거든요. 


 물론 그림체가 다른 사람끼리 이야기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래도 나의 시선을 잡아끌 정도의 위화감이 있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나는 어쨌든 '저 두 사람은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겠군. 아마도 모임 끝나고 잠깐 인사를 나누는 걸거야.'라고 결론내렸어요. 물론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모임에서 만났다고 하기에도 두 사람의 그림체는 너무 달랐지만,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만족스러우니까요.


 하지만 모임이 끝난 뒤에 굳이 두 사람만 따로 남아 인사를 한다는 점은 미심쩍긴 했어요. 그러기엔 역시 그림체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요. 나는 그 부분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가는 방향이 같아서 어쩌다 보니 둘만 남은 거겠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3.어쨌든 나는 별생각없이 역내를 걷고 있었는데...앗? 또다시 그 남자가, 자신과 그림체가 너무나도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순간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어요.


 '헌팅'이라는 해답 말이죠. 저 남자는 지금 역내를 돌며 불특정 다수의 여자에게 건전한, 또는 불건전한 만남을 제안하고 있는 거죠. 물론 최종목표는 불건전한 만남이긴 하겠지만요. 단기적인 목표설정은 일단 건전한 만남으로 했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몇년동안 내 글을 잃어온 여러분이라면 내가 뭘했을지 이미 잘알고 있겠죠. 나는 그 남자를 미행하기 시작했어요.



 4.휴.



 5.문제는 이거예요. 사람은 나쁜 짓을 하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만한 일을 하는 도중에는 감이 날카로워지죠. 예를 들어 불법 도박장이나 음란 업소에 들어가는 거 말이죠. 그런 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한번씩 뒤에 누가 있나 살펴대곤 해요.


 그 남자도 그런 모양인지...마치 내가 미행하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챈 듯 걷다 말고 내 쪽을 돌아봤어요. 물론 나는 그가 한번쯤을 뒤를 돌아볼 거라는 걸 벌써 알고 있었고, 대비도 해놓고 있었죠. 저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쯤은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듯 뻔한 거잖아요. 주식시장에서 다른놈들이 내게 털리는 795가지 이유 중 하나죠. 어쨌든 나는 그가 뒤를 돌아보는 타이밍에 맞춰 휴대폰을 보는 척 했어요. 그리고 얼굴을 찌푸리며 미리 준비해둔 대사를 외쳤어요.


 'Fuck! Korea's subway system is over-advanced! It's complicated like a spider's web!'



 6.따라오는 건 한국 지하철에서 길을 헤매는 외국인이라는 걸 확인한 그 남자는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돌려 걷기 시작했어요. 그리고...앞에 다가온다! 꽤 예쁜 여자가! 이제 곧 말을 걸겠지! 도대체 그는 어떤 기술을 선보일까? 자신은 있는거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자는 그 여자들을 그냥 지나쳤어요. 어라? 내가 사람을 잘못 본건가? 저 사람은 불건전한 헌팅남이 아니라 그냥 아는 여자와 얘기하던 거였나? 라고 갸웃거리던 와중에...다른 여자들에게 말을 거는 남자를 볼 수 있었어요. 


 그제서야 나는 알았어요. 저 남자는 조금 예쁜 여자가 아니라 자신과 그림체가 압도적으로 다른 여자에게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어쨌든 나는 그가 대체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떻게 하나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멀어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요.



 7.사실, 그가 뭘 말하는지 애써 들을 필요는 없었어요. 왜냐면 그남자의 헌팅 대상인 여자들의 표정만 봐도 잘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남자가 무언가를 하나 제안하고...제안이 거절당하자 또다른 제안을 해보는 게 반복되자 예의있게 거절하는 여자들의 표정은 조금씩 썩어가기 시작했어요. 


 하긴 그의 헌팅 기술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죠. 설령 제우스의 헌팅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저 정도로 그림체 차이가 나면 헌팅은 안되는 거예요. 어쨌든 여자들의 표정이 더이상 썩을 수 없을정도로 썩게 되었을 때 남자는 헌팅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그는 또다른 타겟을 물색하기 위해 떠났지만 나는 그를 더이상 미행하지 않았어요.


 성공한 헌팅남에게서나 뭔가를 배울 수 있는거니까요. 실패한 헌팅남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건...아마도 용기뿐이겠죠. 만용인지 용기인지.



 8.하지만 잘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보다는 실패하고 돌아오는 하루가 나을지도 모르죠. 하루를 써서 실패라는 경험을 산 거니까요.


 물론 실패하는 경험의 상대가 된 여자들의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요. 사실, 너무나도 실패가 확실한 것에 도전하는 건 용기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건 그냥 안될 줄 알면서 로또를 사는 거랑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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